창조적 기법

신경숙 표절논란, '기쁨을 아는 몸'의 의문

ThinkTanker 2015. 6. 18. 17:00

 

(사진 출처 및 권리= SBS)

 

 

[신경숙은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의 '임병석'이었을까]

 

그녀의 책 <엄마를 부탁해>200만부가 넘게 팔렸다.

 

많은 사람들이 울었다. 오프라 윈프리는 영문 번역본 <Please Look After Mom>을 자신의 추천도서 목록에 올렸다.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 받은 수상 목록은 넘치고 넘친다. 이 책의 작가는 아직까지 일본과 달리 노벨문학상을 배출하지 못한 대한민국에서 문학의 희망이다.

 

그녀의 이름은 신경숙(52)이다.

 

그녀가 만든 문장은 수십만 개일 것이다. 최근과 과거 표절 논란에 휩싸인 문장은 십여 개이다. 태평양 한 가운데 떨어진 몇 개의 물방울에 지나지 않는다. 표도 나지 않고 시간이 지나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자정된다.

 

하지만 그 태평양이 신경숙이라면 문제가 다르다. 단 몇 방울의 물방울이 바다 전체를 오염시킬 수 있는 치명적인 독극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신경숙의 바다는 많은 사람들이 찾는 해수욕장이었다. 그러나 오염된 바닷물이라고 생각하면 누구도 그 해수욕장을 찾지 않을 수 있다.

 

바다의 존재가 워낙 막강해 신경숙의 표절 시비는 모두가 조심스러워한다. 이렇게 문제가 시끄러워졌는데 누구도 확실한 결론을 내리지 못한다. 신경숙을 아끼는 팬들도 갈리고 문학 전문가들도 애매한 입장을 취한다. 미디어도 눈치를 보기는 똑같다. 싱크탱커 역시 마찬가지다. 신경숙 스스로가 표절을 부인하는 상황에서 표절이다라고 말할 수는 없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신경숙이 표절했다고 명시적으로 말하는 사람은 처음 문제를 제기한 작가 이응준이 유일하다. <허핑턴포스트>에 실린 그의 원본 글을 자세히 읽어봤다. 언론에 소개된 것처럼 문장이 똑같았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문구가 하나 눈에 들어왔다.

 

기쁨을 아는 몸이었다. 이 표현은 이번 표절 논란에서 가장 핵심적인 화두다.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憂國)’에 나오는 이 표현은 남녀관계에 눈을 뜬 여자를 빗대 기쁨을 아는 여자의 몸으로 비유했다. 신경숙도 표절로 문제가 된 단편 <전설>에서 똑같이 썼다.

 

기쁨을 아는 몸은 매우 새로웠다. 듣자마자 귀가 환기됐다. 자칫 성을 소재로 저급해 질 수 있는 남녀관계의 묘사를 고급스러우면서도 수위를 지키며 적절히 표현했다.

 

하지만 일상생활에서는 거의 쓸 수 없는 표현이다. 만약 남녀관계를 마치고 남자가 여자에게 침대에서 당신은 이제 기쁨을 아는 몸이 됐다고 말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문학이기 때문에 이게 뭔가 있어 보이는 문장이 된 것이다.

 

문제는 기쁨을 아는 몸을 쓴 사람이 원작자 미시마 유키오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시인인 김후란이 사랑의 기쁨기쁨을 아는 몸으로 바꾼 것이다. 공교롭게도 신경숙은 이 번역된 표현과 똑같은 문구를 썼다.

 

만약 내가 달콤매콤 쌉싸르므 떫은 무지개 비빔밥을 흡수했다라는 말을 썼다고 해보자. 장담컨대 지금 이 문장은 전 세계에서 나 밖에 쓰지 않은 표현이다. 내 머릿속에서 억지로 새롭게 하려고 짜낸 문장이기 때문이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정보를 담고 있는 구글에서 역시나 결과는 아래와 같았다.

 

 

 

기쁨을 아는 몸역시 달콤매콤 쌉싸르므 떫은 무지개 비빔밥과 다르지 않다. 김후란의 이 표현은 김후란의 머릿속에서만 1983년에 처음 발화된 것이다. ‘사랑의 기쁨을 자신이 스스로 생각해 바꾼 것이다. 물론 기쁨을 안다는 것은 여러 가지 표현에서 나올 수 있다.

 

그러나 그 기쁨을 아는 것이 격렬한 밤에 이어 <남녀관계>으로 객체화된 것은 적어도 구글과 국내 유명포털 등 내가 찾아본 국내외 인터넷 문헌에서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인터넷에 나오지 않는 정보에서 남녀관계에서 기쁨을 아는 몸이 나올 수는 있을지언정) 그만큼 독창적이었다. 이에 대해 김후란은 “20년 전 번역한 것이다. 개입을 원치 않는다며 말을 아꼈다.

 

표절을 공론화한 이응준은 기쁨을 아는 몸이 되었다는 표현은 가령 추억의 속도와 같은 지극히 시적인 표현으로 의식적으로 도용하지 않고서는 절대로 튀어나올 수 없다어디서 우연히 보고 들은 것을 실수로 적어서는 결코 발화될 수 없는 차원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이어 이 표현이 문학적 유전공학의 결과물이라고 비꼬았다.

 

이응준의 이 지적에 개인적으로 상당부분 공감하지만 어디서 우연히 보고 들은 것을 실수로 적어서는 결코 발화될 수 없는 차원이라는 부분에는 그럴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제기한다.

 

(사진= 영화 <헐리우드키드의 생애> 공식 포스터 및 스틸컷)

 

그럴 가능성은 <헐리우드 키드의 가능성>이다. 안정효 원작의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와 이를 영화로 한 정지영 감독의 동명작품은 크리에이터라면 반드시 봐야 할 작품이다.

 

크리에이터가 스스로 자신이 만든 창작의 결합물에 속아 매몰되는 과정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여러 차례 <창조의 재료탱크>창조는 결합이라고 말해왔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기존의 것을 결합하고 변형하는 과정에서 창조는 발화된다.

 

작품의 주인공 임병석(최민수 분)이 그랬다. 그는 학창시절 지독한 영화광이었다. 쉬는 시간 10분 동안 946명 배우들의 출석부를 작성하고, 유명 대사를 줄줄이 외웠다. 드라큘라 영화에서도 에로티시즘의 진수를 발견하고 영화 제목만으로도 끝나지 않는 이야기를 엮어내는 아이였다. 그는 성장해 영화감독이 됐고 대종상 영화제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한다.

 

하지만 임병석의 오랜 친구 윤명길(독고영재 분)은 병석이 자신이 오래전부터 본 영화의 유명 대사를 짜깁기해 영화를 만들었음을 알고 그를 찾아가 다그친다.

 

그때 병석은 괴로워하며 말한다.

 

나도 헐리우드 키드에 속았어!”

 

크리에이터라면 누구나 헐리우드 키드가 될 수 있고 임병석이 될 수 있다. 창작하는 사람은 자신만의 창작의 재료가 있고 저장고가 있다. 그 재료들은 100% 자신이 채워 넣은 것이 아니다. 채운 행위는 자신이 한 것이지만 재료들은 하늘 아래의 것이다. 재료들을 꺼내는 과정에서 누군가의 날 것 그대로가 튀어나올 수가 있다.

 

(사진 출처 및 권리= SBS)

 

신경숙은 어릴 때부터 독서광이었다. 자신의 생각이나 좋아하는 문구를 기록하고 노트를 만들었다. 창작의 저장고가 있었다. 그 노트를 바탕으로 우연히 반성문을 썼는데 그것이 선생님의 권유로 작가의 길을 만들었다고 2013년 방송된 SBS <힐링캠프>에서 밝힌 적이 있다. 그녀가 습작시절 작가 김승옥에 반해 무진기행을 그대로 필사하며 연습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누군가의 날 것 그대로가 튀어나올 때, 이것을 다시 자신의 창작물로 바꾸려면 맥락만큼은 새롭게 설계해야 한다. 살바도르 달리, 파블로 피카소, 모차르트, 베토벤 등 수많은 크리에이터들도 활동기간 표절의혹을 받았지만 자신만의 창작세계가 무너지지 않은 이유는 창조의 맥락을 바꾸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 문제가 된 기쁨을 아는 몸에는 창조의 맥락은 발견하기 어려웠다. 심지어 미디어의 은어인 우라까이의 맥락조차 찾을 수 없었다.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憂國)'에서 쓴 문장이 나온 상황과 전후 텍스트가 너무나 똑같았다.

 

운동을 격렬히 하고, 아름다운 음악을 듣고도 몸은 기쁨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왜 하필 자위대의 궐기를 외치며 할복자살한 일본 극우주의자의 작품과 똑같이 침대에서 기쁨을 아는 몸이 그녀의 작품에서 튀어나왔을까. 창조의 맥락이 재설계 되지 못한 것일까.

 

(사진 출처 및 권리= SBS)

 

신경숙은 당시 <힐링캠프>에서 자신의 인생모토가 “Dreams Come True(꿈을 이루세요)”라며 독자들에게 이 사인을 해준다고 했다.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작품과 문장을 좋아한다. 구로공단 여공시절 작가의 꿈을 키운 것처럼 그녀를 보고 소중한 꿈을 이루려고 노력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 사람들을 실망시켜서는 안 된다.

 

신경숙은 이번 표절논란에 대해 독자 분들께 미안하고 마음이 아프다. 풍파를 함께 해왔듯이 나를 믿어주시길 바랄 뿐"이라는 말을 남겼다. 나 역시 신경숙이 혹시나 이번 사안에서 임병석일지언정 표절했다고 믿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왜 자꾸 ‘유쾌하지 않은 우연의 일치가 그녀의 작품 속에서 시간을 두고 반복되는 것일까.

 

신경숙이라는 바다가 오염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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