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KBS & 페이코, Edit By <창조의 재료탱크>ThinkTanker)
[이진아 이전에 정사인이 있었다]
[이진아의 멜로디 변형...창조물은 어떻게 탄생하는가]
지난 포스팅에서 싱크탱커는 이진아의 페이코(Payco) CF송 ‘사는게 니나노’의 매력을 언급한 적이 있다. 그러나 티저광고에서 처음에 주었던 이진아의 노래와 감성이 페이코의 어지러운 광고 화면과 조화되지 않아 아쉬웠다는 유감을 덧붙이며 글을 끝맺음 했었다.
[2015/08/10 - [창조적 기법] - 이진아 '사는게 니나노'와 페이코 광고...유감]
그래도 음악이 우선이다. 그래서 이진아가 보여준 뛰어난 창의성 기법, 멜로디의 변형을 조금 더 느끼고 싶었다.
변형은 원본을 전제로 한다. 그렇다면 크리에이션 ‘사는게 니나노’의 원본이 된 ‘태평가’를 먼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 과정에서 나는 몇 가지 흥미로운 사실들을 알게 됐다.
태평가는 사실 전통 국악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오히려 가요의 한 범주에 포함되는 것이 더 가까웠다.
태평가의 원래 제목은 ‘태평연’이며, 1935년에 정사인 작곡, 강남월 작사, 선우일선 노래로 음반이 처음 발표되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 따르면 “1930∼40년대 창작가요의 양상으로 보면 이른바 신민요라는 가요 장르의 애매모호한 대중 가요적 양식을 짐작할 수 있다”고 표현할 정도로 이 노래를 완전한 전통 국악으로 분류하지 않고 있었다.
하나의 어구에 눈길이 갔다. 창의성을 일으키는 ‘애매성’이다. 원본 태평가가 ‘애매모호한 대중 가요적 양식’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에서 이미 태생적으로 이 노래가 ‘창의적 변형’을 구사했음을 짐작하게 했기 때문이다.
태평가의 작곡가 정사인의 특별한 이력을 보고 실감하게 했다. 현대에 와서 많은 대중음악인들이 가요나 기타 장르에 국악을 접목시키는 시도를 많이 하고 있지만, 정사인은 이미 이런 시도를 거의 100년 전부터 행동으로 옮긴 선구자였다.
그는 고종 황제 시절 사람이다. 1881년에 태어났다. 1902년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군악대 대원으로 입대했다.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은 상투를 유지할지 넥타이를 맬지를 결정해야 되는 시기였다. 전통과 현대라는 역사가 오버랩이 되는 시점이다. 그는 전통 가락을 기본적으로 숙지하고 있었지만 당시 군악대의 지도자이던 독일인 에케르트에게 지도를 받으며 서양 음악의 멜로디도 같이 경험하고 있었다.
정사인은 놀랍게도 그 시절 플루트를 연주하였으며, 작곡을 배워 여러 노래 등을 남겼다. 후에 관현악단에서 연주자로 활동했다. 국악과 양악의 크로스오버가 자연스럽게 탄생할 수밖에 없는 뮤지션의 길을 20세기 초반부터 걸어온 것이다. 태평가의 멜로디도 그 시기에 탄생했다.
정사인은 크리에이터였다. 그 역시 이진아처럼 ‘변형’의 창의성 기법을 썼다. 태평가도 원본을 뒤바꿔버린 창조물이었다. 태평가의 원본은 경기민요 ‘창부타령’이었다. 창부타령은 서울의 굿판에서 무당이 부르던 무가(巫歌)였던 것이 후에 경기민요 소리꾼들에 의해 통속 민요로 변했다.
태평가의 멜로디는 이진아의 ‘사는게 니나노’와 매우 흡사하다. 그러나 ‘창부타령’과 ‘태평가’의 멜로디는 매우 이질적이다. 창부타령에 흐르는 곡조와 멜로디의 분위기는 태평가와 유사하다. 그러나 창부타령은 완전한 국악이다. 음악의 속도는 현저하게 느리며 멜로디는 특별한 정지 지점 없이 계속 흐른다. 창부타령을 한번 들어보시기를 권할 정도로 이 노래는 변형을 허락지 않는 음악이다.
그런데 정사인은 이 창부타령을 가요로 변형했다. 그것도 국악의 맛과 멋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일반 대중들의 귀에 쉽게 들리도록 흥겨움의 가요로 이식했다. 한국의 전통적인 음조를 바탕으로 새로운 의미의 신한국음악의 기반을 이룩하는 데 기여하였다는 평가는 “늴리리야 니나노”에서 느낄 수 있다.
이진아 이전에 정사인이 있었다. 이진아의 ‘사는게 니나노’ 원본에 ‘태평가’가 있었고, 태평가의 원본에 ‘창부타령’이 있었다. ‘사는게 니나노’라는 창조물은...새삼스럽지만 역시나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다.
이진아의 멜로디 이전에 작곡가 정사인을 비롯해 뛰어난 노랫말을 남긴 작사가 강남월이 있었고, 이 두 명 이전에도 서울의 어느 굿판에서 민요라는 멜로디를 탄생시킨 수많은 이름 모를 크리에이터들이 기울인 숙성의 시간, 현대로 흐르는 멜로디 타임머신의 시간 흐름이 있었다.
그 멜로디를 전해주는 크리에이터의 마지막에는 ‘끝판왕’ 이진아가 있었다. A라는 원재료는 B,C,D를 거쳐 X에서 이진아를 만나 많은 사람들의 귀를 행복하게 열어주는 해피엔딩을 맞이하게 됐다. 가히 버나드 쇼가 말한 ‘창조적 진화’가 100년을 거친 음악을 통해 이루어진 셈이다.
아래의 가상듀엣은 이런 맥락을 통해 제작했다. 이 영상은 강조하지만 감히 또 한 번의 창조적 진화라는 말을 붙이기에 민망할 정도로 조악하다. 핑계를 대자면 송소희가 노래하는 태평가의 국악 선율과 이진아의 피아노 선율을 합성하니 그다지 좋게 들리는 음악은 나오지 않았다. 음도 맞지 않았고 속도도 일치하지 않았다.
그래도 싱크탱커가 이 영상을 기어코 만든 이유는 원본의 변형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느끼고 싶은 이유가 첫 번째, 송소희의 맑고 청아한 국악 음성과 ‘천재’ 이진아의 선율을 어울리게 하고 싶다는 호기심이 두 번째 였다.
한 가지 추가적으로 내가 쓴 방법은 '삭제'와 '축소'다. A도 좋고 B도 너무 좋다. 두 개를 모두 줄이거나 버리기가 너무 아깝다. 그런데 C로 합치면 이상하다. 그럴때는 과감하게 삭제하고 축소해야 한다.
'사는게 니나노'는 1분 30초, 송소희의 '태평가'는 2분 38초의 노래다. 길이가 맞지 않는다. 특히나 '사는게 니나노'에서 이진아가 쓴 피아노 음은 너무 좋아 영상에 꼭 넣고 싶었다. 그러나 송소희의 '태평가'와 자연스럽게 연결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눈물을 머금고 많은 부분 드러냈다. 태평가 역시 비슷했다. 태평가 내에서는 좋은 부분이지만 합성했을때는 어색하다. 답은 삭제하고 재구성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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