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피츠버그 파이어리츠 홈페이지)
[강정호의 연착륙과 KBO리그 수준의 척도]
[‘투수’ 박찬호의 사례와는 다른 강정호의 개척]
극단적인 가정을 해보자.
각각 모두 1,000명(타자 500명, 투수500명)으로 구성된 두 개의 야구리그가 있다.
두 리그 모두 타자 500명은 메이저리그 최고의 타자 미겔 카브레라(디트로이트 타이거즈)로 구성돼 있다. 투수는 다르다. A리그 투수는 모두 유희관(두산 베어스)으로, B리그는 아롤디스 채프먼(신시네티 레즈) 500명으로 이루어져있다.
시즌이 끝나고 A, B리그의 특정 카브레라는 똑같이 타율 3할4푼, 홈런30개 100타점을 기록했다. 당신이 스카우트라면 어떤 리그의 카브레라를 선택할 것인가. 답변은 불문가지일 것이다.
오해하지 말자. 유희관을 폄하하거나 (그는 매우 뛰어난 투수다) 그가 채프먼보다 못한 투수라는 단편적인 의미가 아니다. 핵심은 구속의 차이다. 이 두 명의 투수를 가정한 것은 유희관의 느린공과 채프먼의 빠른공이라는 극단적 대비에 어울렸기 때문이다.
리그의 수준은 투수의 공 스피드가 좌우한다. 야구의 대응력에 근본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리틀야구 → 고교야구 → 프로야구 → 메이저리그의 차이는 포심 패스트볼 평균 스피드의 차이다. 어느 리틀 야구의 어린 타자가 매일 사이클링 히트를 친다고 해도 그 타자가 상대한 투수는 직구 구속 120km도 힘든 어린 투수를 상대로 한 기록이다.
야구는 투수가 공을 던지면서 시작한다. 투수가 타자를 만든다. 타자는 투수의 공에 적응해야 한다. 그래서 타자의 존재는 투수에게 종속돼 있다. 공의 스피드가 빠를수록 타자 배트의 스피드도 비례해서 대응해야 한다. 연구해야 한다.
120km의 공은 큰 준비가 필요 없다. 올스타전 홈런 더비 공을 던져주는 투수의 공을 연구하는 타자는 없다. 보고 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150km가 넘는 공은 두려움과 분석을 동반한다. 체인지업이나 슬라이더 류의 변화구는 빠른 공 투수가 느린 공 투수보다 위력이 더하다. 전력분석 팀과 타자가 노력을 기울여야 할 투수 연구는 폭넓게 파생된다.
시간이 지나면 타자의 대응력은 축적되고 채프먼의 160km에 가까운 공도 익숙해지는 순간이 온다. 이런 시간들이 더 흐르면 리그의 층이 두꺼워지고 수준이 된다.
(사진=피츠버그 파이어리츠)
강정호(28·피츠버그 파이어리츠)는 한국 프로야구에서 3할5푼6리, 40홈런을 쳤던 타자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A리그의 타자다. KBO리그 출신이다.
그래서 메이저리그에 진출해 과연 잘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기우였다. 그는 6월 16일 현재까지 잘 하고 있다. 47경기에서 2할7푼3리, 3홈런, 20타점이란 성적은 아직 큰 성공이라 할 수는 없지만 이 정도면 훌륭한 연착륙이다. 특히 16일 시카고 화이트삭스 전에서는 4번 타자로 나서 4타수 2안타(2루타 1개) 1볼넷 2타점을 기록했다. 넥센 히어로즈에서도 4번을 치지 않았던 선수가 메이저리그에서는 감독이 그를 4번 타자로 인정했다.
강정호의 활약과 성공은 한국 프로야구 ‘타자의 개척’이란 측면에서 큰 의미를 가진다. 기존에 메이저리그에서 타자로서 활약했던 최희섭(KIA 타이거즈)이나 현재의 추신수(텍사스 레인저스)는 KBO리그를 거치지 않았다. 그러나 강정호는 순수 국내 프로야구를 거쳐 빅리그로 갔다. 누구도 가지 않았던 새로운 길을 여는 토종 크리에이터인 셈이다.
‘타자의 개척’은 한 국가 야구의 수준을 더욱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척도가 된다는 점에서 ‘투수의 개척’보다 의미의 가중치가 더 크다. 투수는 타자의 존재를 종속하기 때문에 스스로 잘 던져 괴물로 평가받을 수 있다.
리틀 야구에서 매일 20탈삼진을 잡는 투수는 설사 그 리그에 카브레라나 마이크 트라웃(LA 에인절스)이 100명 있다 하더라도 뛰어난 타자들의 존재와 큰 상관관계 없이 (있으면 비교가 더 쉽겠지만) 능력의 상한선을 추정하기 어렵다. KBO리그 수준인지, 메이저리그 수준인지, 우주리그 수준인지 알 수 없다는 의미이다.
‘투수’ 박찬호나 류현진(LA 다저스)은 KBO리그 수준을 판단할 비교의 대상과 거리가 멀었다. 박찬호는 국내에서 아마야구만 경험했고, 류현진은 KBO리그 출신이지만 투수로서 류현진의 한계를 판단할 수 없었기에 KBO 수준을 짐작할 수 없었다.
(사진= 피츠버그 파이어리츠 홈페이지)
하지만 ‘타자’ 강정호는 출신이 명확하다. KBO리그 투수만 상대했다는 타자의 확실한 이력과 KBO 통산 성적이 외부로 나갔을 때 국내 프로야구 리그 투수 수준과 야구 수준을 대변할 수 있게 만든다.
강정호의 활약은 국내 KBO리그 수준에 긍정적인 신호를 켤 수 있다는 희망을 준다. KBO리그의 클래스 타자는 메이저리그에서도 성공할 수 있다는 가능성과 연계돼 있기 때문이다.
KBO리그가 메이저리그에 비해 열등하다는 것은 굳이 큰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국내 고교야구팀은 55개(2011년 기준)이다. 일본은 4,000개가 넘고 미국은 1만5천개에 달한다. 야구 인구가 많을수록 빠른 공을 던질 수 있는 투수가 많고, 그럴수록 리그의 수준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심지어 메이저리그는 대표적인 강속구 투수 스티븐 스트라스버그(워싱턴 내셔널스)조차 고교시절에는 드래프트도 받지 못할 정도로 완벽한 무명 선수였다. 그 정도로 선수층의 깊이와 규모가 상대가 안 된다.
미국의 고등학교와 대학에서 해마다 46만 명이 넘는 선수가 빅리거의 꿈을 꾸고 있다. 강정호는 이런 환경에서 한국 프로야구 타자를 대표하고 있다.
미디어에 공개하지 못하는 상당한 압박감과 부담감이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싱크탱커는 그의 팬은 아니었다. 하지만 요즘에는 강정호를 응원하게 된다. 그가 가는 길은 앞으로 자라나는 국내리그의 유망주들에게 큰 버팀목이 될 것이다.
한 가지 희망적인 것은 공 스피드가 빠른 메이저리그의 높은 수준에 강정호는 이미 KBO리그 시절부터 자신감을 보였다는 점이다. 지난해 11월 4일 삼성 라이온즈와 넥센의 한국시리즈 미디어데이에서 포스트시즌 사상 초유의 ‘초구 예고제’가 있었다.
당시 삼성 안지만은 강정호를 상대하는 첫 타석에서 무조건 초구로 직구를 던진다고 했다. 강정호 역시 “지만이 형이 직구에 자신이 있다고 생각하고, 나도 직구에 강점이 있다. 최선을 다해 붙어보겠다”고 했다.
시간이 흘러 강정호는 안지만의 직구보다 발전된 형태의 직구를 상대했다. 메이저리그 최고의 광속구 투수 아롤디스 채프먼이었다. 그는 전혀 주눅 들지 않고 자신 있게 161km 빠른 공을 공략해 2루타를 때려냈다. 현재 메이저리그에는 채프먼보다 빠른 공을 던지는 투수는 없다. 그가 공 스피드 때문에 두려워 할 투수 역시 없다.
By ThinkTanker (Copyrightⓒ. <창조의 재료탱크> All Rights Reserved)
' 창작물 & 창조적 글쓰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서정학·소향·조관우·정훈희, <꽃밭에서>가상합창 (0) | 2015.06.21 |
---|---|
MLB 더쇼15 명승부<6>, 끝까지 포기하지 말아야 할 이유 (0) | 2015.06.20 |
경마수학문제...하루 자금 배분의 중요성 (0) | 2015.06.15 |
MLB 더쇼15 명승부<5>, 추신수가 박수 받아야 할 이유 (0) | 2015.06.13 |
옥주현 레베카, 돋보인 역대급 무대..원곡비교 (0) | 2015.06.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