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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물 & 창조적 글쓰기

야구의 역할론, 야구는 누가 하는 것일까

 

 

[감독 역할론 vs 선수 역할론]

[감독의 결단과 작전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MLB 더쇼15, 야시엘 푸이그와 앤드류 맥커친의 선택]

 

야구는 감독이 하는 것일까. 선수가 하는 것일까.

 

이 물음은 사실 매우 오래된 의문이다. 야구의 역할론에 더 초점이 맞추어진 이유로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에 해당되는 선후 관계의 질문과는 약간 성격이 다르다.

 

그래서 야구의 역할론에서 이 물음을 다시 바라보면, 당연한 이야기지만 야구의 개별 플레이를 감독이 한다고 볼 수는 없다. 감독이 투수가 마음에 안 든다고 마운드에서 올라, 투수교체를 빙자해 은퇴한 선동렬 감독(KIA)이 현역 시절처럼 무등산 폭격기로 변해 직접 공을 던질 수는 없는 것이다.

 

분명 야구의 구체적 특정 행위는 선수가 하는 것이다. 하지만 야구 선수의 행위를 감독이 선택과 작전을 통해 통제한다는 엄연한 사실은 다시 한 번 야구의 역할론이 누구에 있는가라는 물음에 불을 지핀다.

 

옷만 봐도 그렇다. 왜 야구는 감독이 선수와 똑같은 유니폼을 입는 것일까. 그 어떤 스포츠도 매니저(Manager)로 통칭되는 감독이 선수와 같은 옷을 입지 않는다. 야구만이 유일하다. 허재 감독(KCC)이나 그렉 포포비치(샌안토니오 스퍼스) 감독이 경기 중 반바지를 입은 채 농구 작전판으로 전략을 지시하는 것을 본 사람이 있나.

 

올림픽 레슬링 경기에서 감독이 레슬링 선수와 똑같은 옷을 입는다면 얼마나 우스꽝스러울까. 박태환의 스승이었던 노민상 감독이 박태환과 동일한 삼각팬티 수영복을 입고 경기장 주변에서 작전 지시를 한다? 도대체 상상할 수가 없는 것이다.

 

야구는 반대다. 선수와 감독의 옷이 다르면 코미디가 된다. 야구 감독이 축구나 농구처럼 더그아웃에서 멋들어지게 넥타이에 양복을 입고 런앤히트를 지시하는 장면을 상상해보라. 벌써부터 뇌가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다.

 

류중일 감독(삼성 라이온즈)이나 더스티 베이커 감독(전 신시내티 레즈)이 짙은색 슈트에 검정색색 넥타이를 메고 마운드에 올라 투수에게 말하는 화면을 그려보자. (혹시나 선글라스까지 착용했다면 영화 맨인블랙의 윌 스미스가 되는 것이다!) 유지현 (LG 트윈스) 주루 코치가 떡 하니 양복을 입은 채, 3루 베이스를 도는 주자에게 거침없이 팔로 선풍기를 돌리며 홈으로 쇄도하라는 모션을 취해보자. 야구에선 매우 어색한 개그콘서트가 된다.

 

야구에서 감독이 선수와 같은 옷을 입고 경기에 나선다는 것은 야구의 역할론에 유의미한 상징성을 부여한다. 유니폼이라는 형식적인 측면에서부터 이미 야구는 선수와 감독의 플레이에 공동책임이 있다고 암시한다.

 

누가 더 책임이 있고 누구 역할이 큰 지에 대해서는 야구인들 사이에서도 아직까지 명확한 결론은 없다. 감독마다 생각이 다르고, 리그 마다 또 다르다. 퍼센티지로 개량화하는 것은 더욱 넌센스다. 작게는 5%부터 크게는 60%까지 말하는 사람도 있다. 야구는 모든 스포츠 가운데 가장 감독의 역할이 작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모두 확실한 정답은 아니다.

 

(김성근 감독(왼쪽)과 토니 라루사 감독, 사진 출처 및 권리= 한화 이글스 월페이퍼, 아마존닷컴)

 

잘 알려진 것처럼 야구는 감독이 하는 것이다의 대표적인 주장자는 야신김성근 감독(한화 이글스)이다. 그가 야구의 신이 된 이유는 현역 시절 투수 출신으로 삼진을 많이 잡았기 때문이 아니다. 감독이 돼서 펼친 신기의 작전이 그의 야구를 신이 하는 야구로 만든 것이다.

 

염경엽 감독(넥센 히어로즈)염갈량이 된 이유는 현역시절 3할을 훌쩍 넘긴 타격왕 출신이어서가 아니다. 그는 통산 타율 195리로 멘도사 라인을 지키지 못한 약한 타자였다. 감독이 돼서 펼친 적극적 개입의 야구가 그를 그라운드의 제갈량으로 만든 것이다.

 

메이저리그로 눈길을 돌려보면 야구는 감독이 하는 것이다0순위 지지자로 토니 라루사(전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를 꼽을 수 있다. 라루사가 누군가. 그는 현대 야구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바꾼 인물이다. 선발투수, 콤팩트한 벌떼 불펜 운용, 1이닝 마무리 투수로 이어지는 개념을 최초로 야구에 구현한 제대로 된 크리에이터다. 그러면서도 우승을 햄버거 먹듯이 했다. ‘라루사이즘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이들을 보면 정말 야구는 선수가 아니라 감독이 하는 것 같다. ‘감독 역할론의 대표적 인물들이다. 3명이 맡은 팀들은 대부분 잘 나갔거나 잘 나가고 있다.

 

하지만 야구는 그렇게 녹록한 대상이 아니다. ‘선수 역할론의 성공사례와 주장자들도 만만치 않다.

 

(김응룡 감독(왼쪽)과 토미 라소다 감독, 사진 출처 및 권리= EBS & SI)

 

KBO리그에서 감독 역할론의 대척점에 선 인물은 단연 코끼리김응룡 감독(전 해태 타이거즈)이다. 그는 해태왕조 시절부터 말했다. “야구는 선수가 하는 것이다.”

 

단순 겸양이나 겸손, 작전이 부실했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는 선수를 전형적으로 믿는 스타일이었다. 해태 선수들의 역량이 뛰어난 이유도 있었지만 그는 기본적으로 촐랑거리는 촉새가 아니라 우직하게 밀고나가는 코끼리였다. 아니다 싶을 때 더그아웃에서 가끔씩 의자를 던지거나 심판에게 강력한 항의를 했던 액션도 그에게는 팀의 분위기를 만드는 전략이었다. 감독으로서 큰 줄기를 잡고 필요한 작전을 하는 것만으로도 그는 한국 야구의 전설이 됐다.

 

김응룡 감독 뿐 만 아니다. 과거 미디어와의 인터뷰에서 양승호 전 롯데 감독은 감독이 한 시즌 기여하는 승수는 대략 7~8, 연간 10% 정도로 낮게 봤다.

 

메이저리그에 라루사가 있다면 토미 라소다(LA 다저스)도 있다. 라소다 역시 명장이었지만 시선은 양승호 감독과 비슷했다. 그는 야구는 결국 선수가 하는 것이다. 감독의 역량이 한 시즌 162경기 가운데 미치는 승수는 5승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결과는 이랬다. 누가 더 우위에 있다고 이야기 할 수 없었고 감독 역할과 선수 역할 가운데 어느 것이 더 중요하다고 확정할 수 없었다.

 

내 나름의 결론을 내기 위해 상황 속 경험을 해보고 싶었다. 그런데 최근에 간접 체험을 하면서 싱크탱커의 생각은 야구는 정말 감독 역할론에 혹시 더 무게중심이 있지 않을까에 가까워졌다.

 

최고의 야구 게임 MLB 더쇼15를 플레이하면서 그랬다. 더쇼는 자신이 야구 감독과 야구 선수가 동시에 될 수 있다. 직접 야구 게임을 플레이하는 선수의 특정 행위는 버튼과 스틱의 동작으로 행동하지만, 투수 교체나 라인업 짜기, 수비 위치, 요소요소의 결단과 작전의 순간에는 감독의 뇌를 그대로 따라하게 된다.

 

 

선수 선택부터 시작이다. 당신이 메이저리그 최고의 타자인 마이크 트라웃(LA 에인절스)과 지안카를로 스탠튼(마이애미 말린스) 조합과 야시엘 푸이그(LA 다저스), 앤드류 맥커친(피츠버그 파이어리츠) 조합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무엇을 고를 것인가.

 

나의 선택은 후자였다. 2번 타자 푸이그, 3번 타자 맥커친의 조합은 영상으로 올린 경기에서 엄청난 위력을 발휘했다. 둘 다 발이 빨라 모두 도루가 가능하다는 것이 이유가 됐다.

 

마지막 장면에서 2사에 1루 주자는 맥커친, 3루 주자는 푸이그였고 감독인 나는 하나의 선택을 했다. 가장 극적인 순간에 더블스틸을 이용해 드라마틱한 끝내기 홈스틸을 지시했다.

 

이 작전은 감독만이 할 수 있는 것이었다. 당시 타석에는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전설의 타자 랄프 카이너가 등장했다. 충분히 타자의 역량에 맡길 수도 있었다. 그러나 감독인 나는 홈스틸 작전을 감행했고 결국 승리했다.

 

만약 카이너에 맡겼다가 범타로 물러나 팀이 졌다면, 또는 트라웃, 스탠튼 조합을 골랐다면 이것은 특정 선택과 작전에 따른 결과에 감독이 전적으로 책임질 수 있는 매우 집중된 선택의 영역으로 남게 된다. 감독의 역할론에 무게가 실린 이유다.

 

그런데 다시 이전 상황을 돌아보고 나의 생각은 성급한 결론이었음을 알게 됐다. 푸이그가 동점 3루타를 친 장면이었다. 나는 그때 상대 마무리 투수 아롤디스 채프먼이 바깥쪽 스플리터로 승부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야구의 실제 상황과 대입시켜보면 푸이그가 스스로 예측할 수도 있지만, 타격 코치나 감독이 미리 채프먼의 볼배합을 파악해 벤치에서 지시했을 수도 있다. 여기까지는 감독 역할론이다. 그런데 감독의 지시나 작전으로 이 사실을 푸이그가 설사 알았다 해도 직접 그런 타격을 못했다고 상상해보자. 헛스윙을 하거나 타이밍이 늦어 정타가 안 나올 수도 있는 것이다.

 

푸이그가 안타를 만들어낸 타격 행위 자체는 순전히 푸이그라는 선수의 개인 타격 기술이나 역량에 관계된 결과가 주가 됐다고 말하는 것이 정확하다. 감독 역할론이 이때는 확실히 선수 역할론에 비해 무게감이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결국 결론은 뻔 하게 됐지만 어쩔 수 없이 나는 야구에서 감독 역할론과 선수 역할론 둘의 중요성은 5050으로 거의 같다고 수정해야 했다.

 

그리고 새삼 느껴졌다. 왜 야구에서 감독과 선수가 같은 유니폼을 입고 경기에 나서는지 역사와 기원을 떠나 이유를 알게 됐다. 야구에서 승리를 부르는 매니저와 플레이어의 경계는 불분명했다. 둘은 몸과 뇌는 달랐지만 상황에 따라 서로의 몸과 뇌를 이식하고 공유하는 그레이존(회색지대)에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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