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Edit By <창조의 재료탱크>)
[‘화약 없는 폭탄’ 심리전의 중요성]
[확성기의 어떤 메시지가 북한을 자극했을까]
드라마 <미생>에서 박종식 과장을 무너뜨리며 장그래가 했던 명대사를 다시 떠올려보자.
“하나의 수는 그 직전의 수가 원인이 된다. 지금 이 수가 왜 놓였는지를 이해하려면 그 전의 수를 봐야 한다. 상대가 반발하는 것을 이해하려면 지금까지의 수 중에 무엇이 아팠는지 알아야 한다.”
‘지금까지의 수 가운데 상대에게 가장 아픈 수...’
이 문구는 굉장히 의미가 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여러 가지로 전략적 활용이 가능한 언어가 되기 때문이다. 애석하게도 사회는 유토피아가 아니다. 사랑과 인정만 넘치는 달콤한 딸기 아이스크림이 아닌 것이다. <미생>처럼 직장은 물론, 학교와 일상생활에서도 인간은 인간끼리의 투쟁을 통해 전쟁을 경험한다.
자신을 위해, 또는 조직 내의 생존을 위해 상대를 반드시 꺾어야 하는 상황에 맞닥뜨린다. 그때 필요한 전략은 상대의 약점을 심리적으로 모색하는 것에서 시작하고, 상대의 약점은 ‘상대가 가장 아프게 느낄 수’에서 찾을 수 있다.
한 발 더 파고 들어가면 ‘상대가 가장 아프게 느낄 수’는 상대가 비이성적으로 극도로 흥분하는 지점, 상대의 목이 타들어가는 결정적 순간에서 단서를 얻을 수 있다.
이런 단서를 써야 할 투쟁이 가장 확대된 개념은 국가끼리의 투쟁이다. 많은 시간과 역사는 그 투쟁이 극단적으로 발전한 형태가 전쟁으로 나타났다고 기억한다.
대한민국에게 그 투쟁의 대상은 북한이다. 북한은 우리에게 장그래처럼 한 개인에게 조직 내 생존을 위협하는 존재 정도가 아니라 국가의 존립 자체를 위협하는 대상이다. 수많은 시간 그들은 우리의 영토를 위협했고 젊은이들의 생명을 앗아갔으며 도발했다.
그런데 싱크탱커가 그때마다 느꼈던 그들의 공통적인 태도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뻔뻔함’이었다. 어쩜 그렇게 그들은 그들의 모든 행위와 결과에 당당하고 뻔뻔할 수 있을까. ‘그들에게 아픈 수’는 절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아무리 찔러도 바늘이 들어가지 않는 초합금 로봇 피부였다.
주기적인 한미 연합 군사훈련 때 흥분하기는 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우리가 그 훈련을 통해 북한을 먼저 침공하여 전쟁을 일으킨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북한에게 일시적인 긴장감을 줄지언정 현실적인 위협으로 연결된다고 보기는 힘들었고 연례행사였다.
하지만 역시나 완벽한 지상 절대의 철옹성은 없었다. 북한을 부들거리게 하고 얼굴에 살짝 홍조를 띄게 하는 상황이 2004년에 생긴 것이다.
심리전의 일종인 대북 확성기 방송이었다. 확성기 방송이 그때 처음 시행된 것은 아니다. 우리 군은 1962년부터 방송을 했다. 그런데 2004년 확성기는 운용법과 성능이 더 좋아졌다. 확성기 방송이 한밤 중 개성지역까지 들린 것이다.
(사진 출처 및 권리= MBN)
북한은 결국 방송 중단을 요청했다. 이것은 매우 중요했다. 그들이 드디어 ‘어떤 불편함’을 느낀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었다. 바늘이 피부 속으로 들어가 모종의 통증을 느낀 것이다. ‘그들에게 아픈 수’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연 것이다. 하지만 2004년 6월 16일 남북 합의에 따라 확성기 방송은 중단됐다.
이후 11년이 지났다. 그동안 여전히 그들은 대한민국과 대통령을 ‘괴리정부’와 ‘력도’라 부르며 “찢어죽여야 한다”는 특유의 저급한 언어를 사용해왔다. 그리고 참으로 얍삽하게도 GP 통문을 열고 지나가면 밟을 수밖에 곳에 목함 지뢰를 슬쩍 매설하고 푸르른 대한민국 청년의 발목을 유린했다.
우리의 확성기 방송은 그때 다시 시작됐다. 10년 넘게 방송되지 않았던 심리전이었다. 세월과 강산이 변했다. 과연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었다.
그런데 이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는 것은 최근의 뉴스 추이를 보고 쉽게 알 수 있었다.
북한이 또 확성기 방송 중단을 요구한 것이다. 먼저 잘못을 저질러 놓고 먼저 회담을 제의해왔다. 회담에서 그들이 요구한 첫 번째도 확성기 방송 중단, 최종 합의문 결과를 통해 전리품처럼 자랑스럽게 그들이 얻어간 것도 확성기 방송 중단이었다. 스피커를 끄자 잠수함이 돌아갔고 준전시상태가 해제된 것이다. 수많은 전쟁 장비와 물자는 이동만 해도 기름 값이 든다. 그런데 우리는 스피커만 끄고 북한을 그렇게 소모시킨 것이다.
지뢰 도발과 확성기 대결은 치킨 게임이었다. 그러나 차가 절벽에 떨어질까 두려워 핸들을 먼저 꺾은 것은 북한이었다. 목이 먼저 마르고, 똥줄이 먼저 탄 것도 북한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다급한 마음에 회담을 먼저 제안해왔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대북 심리전 확성기 방송은 그들에게 ‘가장 아픈 수’는 아니었을까.
입장을 바꿔보자. 만약 북한의 대남방송이 연천이나 연평도, 또는 극단적으로 서울까지 들린다고 가정해보자. 그때 그 방송을 듣고 동요할 대한민국 국민이 있을까. 얼토당토 않는 잡소리에 짜증은 나겠지만 방송과 선동의 내용을 가슴 깊게 새기거나 우리의 체제가 무너질 것이라고 믿는 국민은 없을 것이다. 이제 마트에서 사재기하면 한마디로 코미디다.
그러나 북한은 다르다. 북한이란 나라는 ‘최고 존엄’이라는 존재가 3대를 우려먹으며 성립된 매우 보기 드문 국가다. 첫 번째도 최고 존엄, 두 번째도 최고 존엄이다. 그 최고 존엄이 생채기를 당하거나, 흠집이나 기타 상처를 입어 무너지는 것은 국가의 존립과 생존에 관계된 중차대한 문제가 된다.
그래서 많은 대북 전문가들이 지적한 것처럼 북한은 체제 유지를 위해 주민들의 눈과 귀를 막아야 하며 민감한 정보와 서구 문화를 차단해 내부를 결속해야 한다. 북한 주민들이 모든 실체를 알고, 현실에 눈을 떠 최고 존엄의 철옹성에 위협을 가하는 것은 가장 두려워하는 시나리오다. 김일성에 감동 받았다던 루마니아의 공산주의 독재자 차우셰스쿠는 국민 혁명에 의해 국민들에 의해 총살됐다. 이런 일이 북한에서도 일어나지 말란 법은 없는 것이다.
이번 대북 확성기 방송도 북한군인 들뿐만 아니라 북한 주민들이 들을 수 있는 지역까지 전파됐다고 했다. 북한으로서는 매우 당혹스러운 상황을 10년 만에 다시 마주한 것이다.
(사진 출처 및 권리= YTN)
그럼 어떤 확성기 방송 내용이 북한에게 ‘가장 아픈 수’가 됐을까.
여러 가지 대북 심리전 방송 내용이 언론에 공개됐지만 싱크탱커가 가장 크게 주목한 것은 아래의 방송 문구였다. 그리고 이 문구를 만든 어느 군 관계자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었다. 그는 언어를 통해 인간의 감정을 자극하는 크리에이터이자 심리전의 매우 효과적인 교과서였다.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이후 중국만 3번 방문했지만 김정은은 취임 이후 단 한 번도 외국 방문을 못했다.”
바로 이 내용이었다. 이 문구는 언뜻 보면 그렇게 크게 심각해보이지 않는다. 어느 국가 원수가 누구를 몇 번 방문하고 안하고가 뭐가 그렇게 큰 대수일까. 심지어 유치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러나 41글자의 이 단순한 언어는 매우 위력적이다. 심리전 전술가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심리전의 제1원칙은 ‘진실’이며, 내가 설득하려는 적을 모욕하지 않는 것이다. 41글자의 내용은 심리전의 이 원칙을 충실히 따랐다.
미 육군 심리전대대에 있었던 알프레드 패도크는 히스토리 채널이 방영했던 다큐멘터리 ‘심리전(마커스 세갈 제작)’을 통해 “심리전 성공의 필수적인 요소는 거짓말이 아니라 진실이다. 심리전은 조작술이지만 최대한 사실에 기초를 둔 조작술이다”라고 말했다. 심리전 저술가 스탠리 샌들러의 지적도 다르지 않다. “심리전의 기본 원칙은 내가 설득하려는 적을 모욕하지 말라이다.”
다시 문구로 들어가 보자.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이후 중국만 3번 방문했지만 김정은은 취임 이후 단 한 번도 외국 방문을 못했다.”
이 내용에 거짓이 있나? 없다. 기름기를 뺀 아주 드라이한 사실이다. 나는 북한의 지도자 김정은이 2013년 취임 이후 3년 가까운 시간동안 어디 외국에 나가 해외 정상들과 오찬과 회담을 나누었다는 소식을 도대체 들어본 적이 없다.
그런데 같은 기간 박근혜 대통령은 정말로 중국의 주석 시진핑과 만나 사이좋게 악수도 하고 중국의 어느 대학에서 중국 대학생들 앞에서 중국말로 연설도 했다. 가공되지 않은 팩트다.
(사진 출처 및 권리= KBS)
이 팩트를 ‘최고 존엄’을 절대시 하는 북한의 입장에서 보자. 어떤가. 창피한 것이다. 대놓고 말해서 무지 쪽팔린 거다. 아니, 최고 존엄이라면서 어떻게 다른 외국은 고사하고 중국도 한번 방문하지 못할 수가 있는가. 최고 존엄이 뭐 이런가.
상황이 이 지경이고 정상적인 국가라면 그 나라의 외교 라인들은 모두 사퇴해야 한다. 동시에 41글자는 최고 존엄 자체가 가진 문제점을 팩트로써 은근히 고발했다. 이런 사실이 자꾸 북한 내부로 알려지면 김정은과 그를 둘러싼 북한의 기득권층은 속이 쓰리다. 당연히 스피커를 발로라도 막아야 한다.
중국은 전통적으로 북한의 우방이었다. 많은 역사학자들이 한국전쟁 때 중공군만 없었다면 압록강에 태극기를 꽂았을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그의 할아버지 김일성은 중국의 지도자 모택동과 매우 친했다. 한국에 침공할 당시 스탈린, 모택동과 남침할 것을 사전 협의했고, 전세가 불리해지자 모택동에 원군을 요청했다. 결국 연합군의 1.4 후퇴를 만들었다. 김정일 역시 수시로 중국을 방문했다.
그런데 정말로 김정은은 중국을 한 번도 방문하지 못했다. 솔직히 어떤 외국 정상이 김정은을 초청하고 싶을까. 정상 회담에서 그 새파란 젊은이와 무슨 대화를 할 수 있을까. 정상 회담이랍시고 같이 사진이라도 찍혀 해외 언론에 나란히 보도된다고 해보자. 그다지 폼 나는 앵글은 아니다. 그러니 그 최고 존엄은 코에 피어싱한 데니스 로드맨만 주구장창 만나는 것이다.
...라고
(사진 출처 및 권리= KBS)
북한 주민들은 그 방송을 듣고 이렇게도 생각할 수가 있는 것이다. 전방에서 총을 들고 있는 북한 군인들도 이런 생각을 품는다면 가히 치명적이다.
그러면서도 확성기의 41글자를 다시 보면 김정은을 그들의 언어처럼 “력도”나 “찢어죽여야 한다”고 저질스럽게 말하지 않는다. 그냥 중국에 한 번도 가지 못했다고 말할 뿐이다.
심리전의 1원칙인 거짓말이 아닌, 진실을 말했을 뿐이며 실상은 모욕인데 상대를 자극적으로 모욕하지는 않았다. 모욕인듯 모욕아닌 모욕같은 모욕이다. 방송을 듣고 느끼기를, 또 느껴지게끔 3초간 조용히 뇌를 언어로 툭툭 건드린다. 이 방송 내용을 하루 8시간 이상 듣는다면 과연 인간의 머릿속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까.
김정은의 해외 방문 전무 사실을 지적한 확성기의 41글자는 심리전에서 말하는 ‘선택적 진실’에도 충실했다. ‘선택적 진실’은 영국 프로파간다 전문가인 리처드 크로스맨이 고안한 심리전의 개념으로, 아군이 쓰고자 하는 심리전의 콘텐츠가 적에게 선택적으로 작용해 영향을 끼치는 것을 말한다.
‘선택적 진실’은 심리전의 역사에서 큰 부분을 차지했다. 1960-70년대 베트남 전쟁에서 미국은 ‘방황하는 영혼’이라는 오디오 테이프를 고안했다. 그 음성은 월남의 전설에 착안한 아이디어였다. 월남에서 사람이 죽으면 조상 곁에 묻어야 한다는 전설이 있는데 그렇게 하지 않으면 영혼이 정처 없이 떠돈다고 믿었다.
미군은 심리전을 위해 유사한 음성을 녹음실에서 만들었고 전장에서 확성기를 통해 틀었다. 실제로 그 음성을 들어보면 죽은 군인의 혼이 허공을 떠도는 듯 불안하고 무서운 느낌을 준다. 군인의 전투 의지를 극도로 꺾는 공포의 사운드다. 그런데 효과가 너무 좋아서 오히려 부작용이 일어났다. 월맹이나 베트콩뿐만 아니라 미군의 우군인 월남군까지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선택적 진실의 측면에서 보면 우리 군이 송출한 확성기의 ‘41글자’는 완벽한 선택적 진실이 됐다. 유사한 내용이 전장에서 같이 방송됐을 때 그것에 영향을 받는 군인과 국민들이 누구일지는 불문가지이다.
(사진 출처 및 권리= YTN)
창의성과 전략적 관점에서 언어를 어떻게 설계하느냐는 이토록 중요할 수 있다. 북한의 최고 존엄에 상처를 가하는 언어와 방법론에는 수백 개의 선택지가 있었을 것이다. 여기서 어떤 말을 골라 어떻게 전달하느냐의 문제에 있어 대한민국의 심리전 담당자는 효과적인 접근을 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상대가 무엇을 결정적으로 아파하는 지를 우리는 확실하게 목격했다.
이번에 극적으로 타결된 남북 회담에 대한 자세한 느낌은 생략하겠다. 다만 김관진 국가안보실장과 홍영표 통일부장관이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모든 확성기 방송을 중단한다는 조항 안에 ‘비정상적인 사태가 발생하지 않는 한’이라는 단서 조항을 집어넣은 것은 매우 적절한 방어책이었다.
‘비정상적인 사태’란 말은 포괄적이며 주관적이다. 우리가 북한의 도발이나 행동에 따라 언제든지 다시 그들의 목을 타게 할 확성기 방송을 재개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둔 것이다.
손자병법에서 손무는 “전쟁에서 상대를 꼭 파괴해야 되는 것은 아니다. 전투 의지만 꺾으면 된다”고 말했다.
화약과 총알은 상대를 파괴할 수 있다. 그러나 확성기와 스피커는 상대가 가장 중요하고 가치 있게 생각하는 것을 가장 부실하고 무가치하게 만들어 전투 의지에 영향을 줄 수 있는 화약 없는 폭탄이 될 수 있다. 심리전은 그래서 중요하다.
By ThinkTanker (Copyrightⓒ. <창조의 재료탱크> All Rights Reserved)
'창조적 기법' 카테고리의 다른 글
창의성 도구 Scapple, 토니 부잔과 마인드 맵 (0) | 2015.09.10 |
---|---|
이어령의 100년 서재, 개념의 창조 사슬 (0) | 2015.09.09 |
이진아·송소희 '사는게 니나노 & 태평가' 가상듀엣 (0) | 2015.08.15 |
이진아 '사는게 니나노'와 페이코 광고...유감 (0) | 2015.08.10 |
영화 '손님', 창의성 포인트 & 이지수 음악의 힘 (0) | 2015.07.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