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출처 및 권리= 영화 <손님> 공식 페이스북)
[영화 '손님'의 눈길을 끌었던 3가지 요소]
[※스포일러 포함]
김광태 감독은 솔직했다.
미디어와의 인터뷰를 통해 “관객들의 호불호가 갈리고 혹평들이 많다”고 말했다.
호평과 혹평은 한글 ‘ㄱ’ 받침 하나 차이다. 이 ‘ㄱ’ 받침 하나를 어떻게 위치시킬 지에 대해 싱크탱커 역시 조금은 주저하게 된다. 좋은 점도 있었지만 나쁜 점도 분명히 있었다. 하지만 창의성 관점에서 영화 ‘손님’(제작 유비유필름·공동제작 웃는얼굴)은 3가지 주목할 만한 포인트가 있었다. 그래서 이 영화는 과소평가할 수 없었다. 혹평의 요소가 있더라도 쉽게 하대할 만한 영화는 아니라는 얘기다.
(사진 출처 및 권리= 영화 <손님> 공식 페이스북
1. 결합과 변형의 미학
처음부터 영화 ‘손님’의 스토리 라인을 크게 기대해서는 안 된다. 피리를 부르는 사나이가 있다. 피리를 불어 마을의 쥐를 없앴다. 보수를 준다고 했는데 약속을 어겼다. 이 과정에서 사나이는 아들을 잃었다. 그래서 복수한다. 이것이 끝이다. 간단하다.
줄거리의 골격이 이미 다 알려진 이야기다. 뭔가 대단한 박진감과 서스펜스, 반전이 있는 것이 아니다. 초등학교 때 동화책 한번 읽어 본 사람이면 큰 줄기는 다 안다. 중세시대 독일의 도시 하멜른에서 내려오는 ‘피리 부는 사나이(The Pied Piper of Hamelin)’의 전설을 바탕으로 했기 때문이다. 그만큼 줄거리는 평범하다.
하지만 김광태 감독은 누구나 아는 이 평범한 줄거리를 오래전부터 고민해 영화라는 엔터테인먼트 물로 만들었고 여기에 ‘공포’라는 인자를 녹였다. 이 자체가 창조적이었다.
김광태 감독만이 피리 부는 사나이의 전설을 이용한 것은 아니다. 독일의 그림형제, 영국의 로버트 브라우닝, 일본의 아베 긴야 등이 이미 오래전에 동화로 재구성했다. 그러나 공포영화로 만든 것은 최초다. 세계 최초일 것이다. 새로움의 관점에서 싱싱했던 매우 좋은 선택이었다.
판타지 호러라는 장르를 내세웠고 일부 판타지를 느낄 장면은 있었지만 두드러지진 않았다. 그것보다는 1,000년 전 전설을 영화로 ‘결합’하고 약속은 꼭 지켜야한다는 교훈을 주는 동화를 180도 다른 공포로 분위기를 ‘변형’한 것이 좋았다.
창의성 기법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결합’과 ‘변형’이다. 말은 쉽다. 그러나 막상 그것이 시장경제에서 평가 받을 수 있는 창조의 결과물로 만든다는 것은 쉽지 않다. 신인 감독의 패기가 돋보였다. 그는 ‘손님’을 만들기 전 4년 동안 몰입한 작품이 무산되는 아픔을 겪은 남자다. 그러다 ‘피리 부는 사나이’를 생각해냈다. 티핑포인트였다. 원작이라는 재료를 비틀어 시나리오를 작성했다.
‘집단 이기주의’, ‘독재자’, ‘고용불안’ 등 대한민국의 현실까지 숨은 비유로 더할 수 있다는 원대한 취지는 이 영화를 통해 느끼기에는 다소 무리다. 그런 비유를 억지로 끌어내는 것은 넌센스고 견강부회다. 하나의 공포영화로 바라보는 것이 편하다. 공포영화는 관객에게 공포를 주었다면 원초적 목적은 충실히 다한 것이다.
(사진 출처 및 권리= 영화 <손님> 공식 페이스북)
2. 공포의 경제성...'쥐' 그리고 '무당'
영화 ‘손님’은 그 목적에 성실했다. 공포를 어떻게 창의적으로 표현했을 지의 시선에서 바라보면 이 영화는 특별하다.
대부분의 공포영화에는 패턴이 있다. 무서운 분위기를 초반부터 만들고 공포를 시작부터 끝까지 시간의 흐름에 따라 공평하게 분배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손님’은 그렇지 않았다. 박수 받을 부분은 ‘공포의 경제성’을 효과적으로 썼다는 점이다.
같이 영화를 보았던 지인은 무서움을 참지 못해 공포영화를 원래 보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꼬드겨서 억지로 데려갔다.) 그런데 그 지인은 영화 중반 오히려 내게 되물었다.
“이 영화 공포영화 맞아?”
영화 초반 잠깐 귀의 일부가 뜯겨나간 어린이를 클로즈업 하고 레드 계란 프라이가 등장하기는 하지만 전체적인 양상은 무섭지 않다. 영화 중반까지 오히려 설익은 코미디가 흐른다. “Kiss My Ass. Monkey”라는 쪽지를 중요한 주소로 믿는 설정 등이 그렇다. ‘웰컴 투 동막골’ 같은 웃음의 분위기도 느껴진다.
그러나 영화 중반 갑자기 쥐가 사람을 파먹고 얼굴이 황폐화된 무당이 등장하면서 영화는 급격한 공포로 드라이브를 건다. 그때 지인은 영화가 너무 무섭고 기분이 나쁘다며 장면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웃으면서 따귀를 때리고, 잽을 맞다 강력한 카운터펀치를 날린다. 영화는 그렇게 급작스런 공포를 선사한다. 공포의 경제성이다. 공포는 남발하면 안 된다. 남발하면 무감각해지거나 개그가 된다. ‘손님’은 이점을 피했다. 공포 장면은 중반의 강렬함으로 끝이었다. 영화 후반부는 다시 공포의 강도를 줄였다. 효과적인 공포의 정규분포 곡선이었다.
공포 곡선의 최정점에서 쥐의 이미지를 제대로 이용했다. 쥐를 좋아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누구에게나 검은 쥐는 미키마우스가 아닌 이상 혐오의 대상이다. 그런데 그 쥐가 피를 튀기며 인간의 살을 파먹는다. 인간의 감정에 상처를 내는 매우 기분 나쁜 이미지 설정이다.
문둥병 무당의 이미지도 잘 연출했다. 문둥병은 누구에게나 공포의 대상이다. 살점이 썩고 떨어져 나가는 병이다. 눈살이 찌푸려진다. 문둥병 무당 역의 김영선이 특수 분장을 하고 화면을 꽉 채운 채 영화 중반 저주를 외치는 장면은 큰 압박감을 줬다. 살인 쥐의 이미지와도 잘 결합 시켰다.
연기의 신이라는 두 남자 류승룡(우룡)과 이성민(촌장)이 함께 했으니 둘의 연기에 대해 논하는 것은 사족일 것이다. 공포를 진중하게 잘 뒷받침 해줬다. 특히나 류승룡은 부드러운 충청도 사투리가 흐름에 따라 무서운 언어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작곡가 이지수, 사진 출처 및 권리= 소리바다)
3. '한국의 한스 짐머' 이지수 음악의 힘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딧이 흐르기를 기다렸다.
도대체 영화 ‘손님’의 음악을 맡은 사람이 누굴까. 이 훌륭한 영화 음악을 만든 사람의 이름 석 자가 너무 궁금했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주인공은 ‘이지수’였다.
그는 영화 음악계에서 천재 작곡가로 알려져 있다. 유희열은 그의 서울대 음대 작곡과 선배다. 영화 <올드보이>의 유명한 ‘우진테마’를 비롯해, <혈의누>, <실미도>, <건축학개론>, 애니메이션 <마당을 나온 암탉>, 드라마 <겨울연가> 등의 주옥같은 음악을 만들어온 뛰어난 뮤지션이다. 대한민국 영화대상, 대종영화제에서 여러 음악상을 수상한 검증된 ‘멜로디 스틸러’다.
영화 중반 우룡이 쥐를 유도하기 위해 마을의 소로에 가루를 뿌리는 장면이 있다. 그때 1분 넘게 흐르는 예사롭지 않은 음악이 나의 귀를 잡아끌었다.
충격이자 감동이었다. 바로크 시대의 관현악이나 현악 실내악을 듣는 것 같았다. 멜로디는 매우 클래식했고 풍성했다. 듣기 만해도 마음을 넓고 좋아지게 하는 진행이었다. 영화 화면보다는 음악에 귀를 빼앗겼다. 우룡이 피리를 불면서 바이올린을 켜는 아들과 합주를 하는 장면의 음악 역시 탁월한 앙상블이었다.
(사진 출처 및 권리= 영화 <손님> 공식 페이스북)
애석하게도 이런 나의 경험은 조선비즈와의 인터뷰(훌륭한 인터뷰 기사이므로 일독하기를 권한다)를 통해 밝힌 이지수의 영화음악관에 배치되는 상황이었다. 그는 아래와 같이 말했다.
좋은 영상 음악은 어떤 건가?
영화음악을 공부할 때 처음 배우는 게 ‘가려짐의 원칙’이다. 의식적으로 음악이 드러나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극 흐름에 맞는 정도의 음악만 나와야지, 음악이 시청자의 귀에 들리는 순간 영상의 집중도를 음악에 빼앗긴다. 기본 개념이 이렇다. 이걸 기반으로 하면서 정말 필요한 순간, 감정을 끌어올리는 한순간에만 음악이 치고 나와야 한다. (중략) 좋은 음악이라는 건 영상이 주도권을 갖고 가다가 여유를 주는 타이밍에만 음악이 치고 올라오는 거다.
그랬다. 사실 이지수의 ‘그 장면 그 음악’은 산골마을과 공포영화에 어울리지 않는 불협화음이었고, 음악의 탁월함으로 영상이 주도권을 갖지 못하게 하는 선율이었다. OST ‘가려짐의 원칙’이 잘 지켜지지 않은 것이다.
처음 생각은 그랬다. 그런데 영화가 진행되고 시간이 흐르면서 그것이 오히려 역으로 공포를 극대화한 멜로디였음을 깨닫게 됐다. 평화로운 클래식은 쥐와 무당이 나오면서 새로운 공포의 음향효과와 사운드로 돌변했다.
스트라빈스키가 ‘봄의 제전’을 통해 폐부를 찌르는 칼날 같은 음률로 관객에게 충격을 준 것과 흡사했다. 공포의 경제성과 유사한 급격한 소리의 변이였으며, 무서운 화면과 어우러지며 음악은 영상과 함께 효과적인 시너지를 유발했다. 그는 멜로디 스틸러였지만 결과적으로는 좋은 장치였다. 감정을 끌어올리는 한순간에만 음악이 치고 나와야 한다는 이지수의 음악관은 여전히 유효했다.
그의 음악들은 독일의 영화음악가 한스 짐머를 연상시킨다. 웅장한 진중함을 놓치지 않는다. 공교롭게도 인터뷰에서 이지수도 한스 짐머를 좋아한다고 했다. 그밖에도 존 윌리엄스, 엔니오 모리꼬네, 이병우를 언급했다. 신기하게도 모두 싱크탱커가 평소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엔딩 크레딧을 기다린 이유가 풀렸다. ‘좋아함’은 결국 하나로 통한다.
영화 ‘손님’은 뛰어난 크리에이터가 OST으로 빛을 냈다. 영화를 보다가 생각지도 못한 멜로디의 매력에 빠졌다. 정식 발매되면 반드시 구입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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