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출처 및 권리= KBS, KBO)
[팬들이 만든 감독 자리가 주었던 성적의 압박감]
[배영수 투수 교체를 통해 본 김성근 감독 혹사 논란]
김성근 감독은 그때 ‘야구의 신’이라는 ‘야신(野神)’을 넘어섰다.
그는 2014년 11월 청와대에서 초청 강연을 했다. 이 순간은 아마도 김성근 감독 개인 인생뿐만 아니라 한국 야구 역사에서도 특별하게 기억될 만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청와대가 도대체 어떤 곳인가. 대한민국 권력의 최정점이자 국가의 리더인 대통령이 24시간 숨 쉬는 곳이다. 거의 모든 국가의 중대한 의사 결정은 이곳에서 시작된다.
그런데 놀랍게도 한 명의 야구 감독이 권력의 심장부에서 리더십 강연을 했다. 단언컨대 한국 프로야구 역사를 넘어 스포츠사를 통틀어 앞으로도 스포츠 감독이 청와대에서 강연하는 일은 좀처럼 나오기 힘들 것이다. 미국 메이저 스포츠의 전설적 명장 토니 라루사(MLB)나 필 잭슨(NBA)도 백악관에서 강연했다는 말은 들어본적이 없다. 그만큼 이례적이었다.
하지만 당시의 김성근 감독이라면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야구는 인생의 축소판이라 했다. 그런데 그는 야신이다. 그렇다면 인생을 통찰하는 신도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는 그때 야구 감독을 넘어 사회의 어른이자 훌륭한 경영학자 내지는 CEO, 만인이 지향하는 리더의 롤 모델이었다.
(사진 출처 및 권리= MBN)
청와대 강연에서 두 가지 내용이 눈길을 끌었다. 첫 번째로 그는 ‘절박감’을 가지라고 강연했다. 절박감은 자신의 인생 모토인 일구이무(一球二無)의 연장선상이었다. 한 번 떠난 공은 다시 불러들일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매우 절박한 심정으로 공을 던져야 하고 주변의 손가락질에 굴하지 않고 살을 깎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의 야구 인생과 다름없었다.
두 번째는 “리더의 궁극적인 목적은 결과이다. 성과 없는 리더는 아무 쓸모없다”는 내용이었다. 이날 그의 강연에는 250명이 넘는 청와대 직원들이 참가했다. 모든 사회 리더들의 가슴을 뜨끔하게 하고 후벼 파는 명강연이었다는 평가가 줄을 이었다.
그리고 시간이 상당히 흘렀고, 많은 일이 일어났다.
그는 다시 리더가 됐다. 2015년 만년 꼴찌 한화 이글스의 감독으로 선임됐다. 꼴찌의 성공 스토리는 원래 전 세계가 공통적으로 선호하는 스토리다. 사람들은 열광했다. 한화 야구가 보여준 끈기와 투혼 때문에 ‘마리한화’라는 신조어도 생겼다.
한화 이글스는 5월 초반 3위까지 치고 올라갔다. 싱크탱커는 4월이었던 시즌 초반 윤규진과 권혁의 탈삼진쇼를 보고 한화에 힘이 생겼다는 포스팅을 작성하기도 했다. 전반기에만 무려 27번의 역전승을 달성했다. 신드롬이 됐다.
하지만 몇 개월이 또 흐르고 모든 것은 점점 신기루가 됐다. 3일 신생팀 KT wiz와의 시즌 최종전에서 김성근 감독은 팀이 1-2로 뒤지던 6회말 두번째 투수 배영수가 흔들리자 곧바로 투수를 교체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바뀐 투수 송창식은 야신의 결단이 끝나기 무섭게 등판하자마자 공교롭게 추가 홈런을 허용했다. 결과론이지만 패착이 된 감독의 투수교체가 됐다. 한화는 패했다. 포스트시즌 트래직 넘버가 소멸되는 경기였다.
시즌이 끝난 뒤 그는 “감독이 모자랐다”는 멘트를 남겼다. 그는 1년 전 성과 없는 리더는 쓸모없다는 강연을 한 사람이었다. 시즌 초 스프링캠프에서 한화를 반드시 포스트시즌에 진출시키겠다고 했다. 그 이상인 삼성을 바라본다고도 했다. 야신이 그린 성과의 청사진이었다. 이 기준에서 보면 야신의 야구는 올해 성과를 내지 못했다. 자신의 말처럼 ‘쓸모없는 리더’가 된 것이다.
언론은 그의 올 시즌 야구를 프로야구 흥행과 탈꼴찌를 포함해 ‘절반의 성공’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50%의 성공’은 체감 온도와 다르다. 전반기 5위를 달리며 포스트시즌 진출을 할 것만 같았던 한화가 가을 야구에 실패해 하위권 성적을 다시 받아들었다는 심리적 박탈감이 성공이라는 단어에 괴리감을 갖게 한다. 한화를 바라보는 팬들의 정서는 실패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한화는 9월 8일 LG와의 경기에서 7-2로 앞서던 경기를 5시간 43분간의 혈투 끝에 8-7로 역전패하며
6위로 미끌어졌다. 한화의 올시즌 패배 가운데 가장 치명적인 패배이자 몰락의 전환점이 된 경기였다.
이날 패배하던 순간 한화 더그아웃의 모습이다. 사진 출처 및 권리= MBCsports+)
그럼 김성근 야구는 올해 왜 실패했을까.
가장 첫 번째로 싱크탱커는 야신이 무엇에 쫓기듯 너무 조급했다는 인상을 지우기 힘들었다.
감독 선임 과정부터 그는 반드시 성적을 내야 하는 위치에 서 있었다. 고양 원더스 감독 이후 야인으로 있던 그를 감독으로 만드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은 다름 아닌 한화 팬들이었다. 요즘은 야신을 비난하는 사람들이 엄청 많아졌지만 시계를 작년 겨울로 돌려보자. 당시 야신을 비난한다는 것은 상상에서도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졌다. 팬들이 김성근 감독을 한화 감독으로 선임해달라고 릴레이 청원운동을 한 것이다. 눈물까지 흘리며 "무조건 김성근 감독을 모셔오자"며 연호하는 팬도 있었다. 어떤 팬은 한화 본사 앞에서 1인 시위를 했다. 결국 김승연 회장이 직접 나서 김성근 감독 영입을 지시했다. 그렇게 그는 감독이 됐다. 김성근 감독은 당시 “팬들이 나를 감독으로 만들었다”고 감격했다.
(사진 출처 및 권리= KBS)
이런 과정은 그의 성취동기에 강한 압박감으로 작용하지는 않았을까. 열두 번 감독직에서 잘렸던 사람이다. 야신은 원래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는 사람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팬들이 만든, 팬들의 응원으로 감독이 됐다. 팬들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눈에 보이는 승리와 성적이 필수적이었다.
언론과 주변 환경, 그를 만든 그동안의 배경, 모두 기대치가 매우 높았다. 2007년 SK 와이번스 감독에 선임 됐을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성적에 대한 프레셔가 컸다. 당시 SK에 대해 우승할 것이라고, 또 우승을 해야 한다고 종용하거나 전망하는 언론과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김성근 감독에게 2015년 한화 이글스는 하늘이 무너져도 최소 5강안에는 들어야 하는 팀이 됐다. 그는 인생을 통찰하는 리더의 롤 모델이다. 청와대에서까지 강연을 한 사람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야신이다. 그에게 야신의 칭호를 붙인 김응룡 감독은 한화를 포스트시즌으로 이끌지 못했다. 그럼 인간이 붙인 ‘야신’을 증명하려면 최소한 김응룡 감독의 한화보다는 좋은 성적을 내야 자연스러운 것이다.
SK 시절과는 완전히 달라진 이런 성취동기의 크나 큰 차이가 한 개인에게 무리한 압박감을 주지는 않았을까.
가뜩이나 한화는 최근 6년간 5차례나 꼴찌를 한 팀이다. 기존에 한화를 맡았던 감독들은 바보가 아니었다. 그들도 훌륭한 야구인들이었고 노력을 했다. 하지만 실패했다. 야신은 달라야 했다. 이런 약한 팀을 이끌고 어떻게든 초능력을 써서라도 성적을 가시화 해야 했다. 절박했다.
야신은 절박함을 강조하는 감독이다. 하지만 절박함이 지나치면 조급함으로 변질될 수 있다. 조급함은 반드시 팀이 이기는 야구를 해야 할 때 나타나기도 한다. 김성근 감독은 야구는 감독이 한다는 지론을 갖고 있는 감독이다. 어떻게든 팀이 위기에 처해있으면 감독이 나서서 상황을 바꿔야 한다.
이는 시즌 중 한화 야구의 흐름이 무척 조급하다는 인상을 심어줬다. 내게 벤치에 비춰진 야신의 모습은 팀이 선취점을 내주거나 역전을 허용하는 것을 좀처럼 참기 힘들어한다는 느낌을 줬다. 물론 어떤 감독도 선취점이나 역전 실점을 좋아하는 감독은 없다.
하지만 야구는 5이닝 경기가 아니라 9이닝 경기다. 1시간 게임이 아니라 3시간 게임이다. 야구가 인생의 축소판이 되는 이유는 야구가 100미터 경기가 아니라 마라톤 게임이기 때문이다. 승부는 다양한 변수로 인해 요동치고 경기 후반 역전의 실마리가 찾아오기도 한다. 이제는 전설이 된 메이저리그의 투수 그렉 매덕스(전 애틀랜타 브레이브스)는 자신이 몇 회까지 던질지를 1회부터 미리 예정하고 등판하는 계획 투구로 유명한 투수였다. 야구는 계획과 조망이지 100미터 단거리 게임이 아닌 것이다.
야구를 100미터 단거리 게임으로 생각할 때 리드를 상대팀에게 내주는 것은 죄악이다. 우사인 볼트에게 10미터 뒤진 채 출발하면 그 경기는 이미 게임 오버이다. 애석하게도 나는 한화와 김성근 야구에서 우사인 볼트를 바라보는 100미터 달리기 선수를 봤다. 그때 야구는 단기전 야구가 된다.
단기전에서는 흐름을 상대에게 내주지 않는 야구를 한다. 많은 투수들이 투입되고 경기에 대한 집중감과 피로감은 높아진다. 선수들은 한국시리즈 한 경기가 정규시즌 3경기를 치르는 것과 유사한 체력 소모를 준다고 말한다. 한화의 야구가 올해 매 경기 한국시리즈를 한다는 소리를 자주 들었다. 하지만 정규시즌 144경기가 모두 한국시리즈 1차전은 아니다.
매 경기 급박한 야구를 설명했던 것이 김성근 감독의 퀵후크(quick hook·3실점 이하 선발 투수의 6회 이전 강판)이다. 한화는 올해 10개 구단 가운데 퀵후크가 66회로 10개 구단 가운데 가장 많았다.
퀵후크가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다. 퀵후크를 통해 승리했다면 감독이 적절한 결단을 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퀵후크의 가장 큰 문제점은 팀 승패를 떠나 퀵후크로 인해 추가 투입된 마운드의 피로 누적을 데이터로 유형화할 수 없다는 점이다. 단기전에서는 1승의 효과를 발휘 할 수 있지만 정규 시즌에 당겨 쓴 투수들을 결국은 누군가 다른 투수들이 퀵 후크로 빠져나간 이닝을 보충해 줘야 한다.
대표적인 것이 아래의 투수 기용이다.
당신이 만약 A의 팀의 감독이라면 선발 투수 교체를 할 것인가. A팀의 선발 투수는 3회까지 3실점을 했다. 흐름을 내줬다. 팀이 4회말 동점을 만들었는데 다시 5회초 또 1실점을 하며 역전을 허용했다. 하지만 A팀의 감독은 투수를 교체하지 않았고 팀은 최종적으로 역전승했다. 이날 A팀은 모두 5명의 투수가 투입됐다.
당신이 만약 B팀의 감독이라면 선발 투수 교체를 할 것인가. B팀의 선발 투수는 A팀과 비슷하게 3이닝 동안 3실점을 했다. 4회초까지 아직은 동점 상황이다. 하지만 B팀의 감독은 투수를 교체했고 공교롭게도 바뀐 투수들이 대량 실점을 하면서 팀은 최종적으로 패했다. 승패는 중요하지 않다. B팀의 감독이 이와 유사한 경기 운용으로 승리도 챙겼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투입 투수의 양이다. 이날 B팀은 무려 8명의 투수가 소모됐다.
정답을 공개하겠다. A의 스코어보드는 2014년 5월 21일 삼성과 롯데전, B의 스코어보드는 올해 7월 15일 한화와 롯데전이다. A팀 감독은 삼성의 류중일 감독, B팀은 김성근 감독이었다. 그리고 선발 투수의 이름은 공통적으로 배.영.수.였다.
(어떤 투수가 3이닝까지 3실점을 했다고 하자. 그때 강판했다면 그 선수의 평균자책점은 9.0이다.
하지만 이후 위기를 넘고 나머지 6이닝을 무실점으로 버티며 완투할 수도 있는 것이 야구다.
그때 그 투수의 평균자책점은 3.0이다.)
배영수는 올해 한화로 유니폼을 갈아입은 뒤 선발 투수로 등판해 5회 이상을 던져본 적이 거의 없다. 모두 21차례 선발로 나와 4승 11패를 거두었는데 5회 이상 던진 적은 5차례에 불과했다. 배영수의 올 시즌 등판 기록을 보라. 3.2이닝, 4.1이닝. 2.2이닝이 주류를 이룬다.
배영수의 기량 저하를 지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난해 삼성의 선발 배영수는 올해 한화의 선발 배영수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불안한 선발 투수라는 지적은 2014 시즌 내내 뒤따랐다.
그럼에도 지난해 삼성의 배영수는 20차례 선발 등판해 단 2차례만 5회 이전에 강판됐다. 꾸역꾸역 이닝을 소화하며 선발 투수로 111.1이닝을 소화했다. 구원을 포함한 전체 이닝은 133.2이닝으로 놀랍게도 팀 내에서 3번째로 많은 이닝을 책임졌는데 이는 장원삼과 마틴보다도 많은 이닝이었다.
배영수가 지난해 올해처럼 그다지 훌륭한 선발 투수가 아니었고 초반에 많은 실점을 했다는 점은 기록이 말해준다. 그의 시즌 평균자책점은 5.45였지만 4회까지를 기준으로는 무려 5.88(78이닝 51자책점)로 더 좋지 않았다. 많은 경기에서 초반에 항상 실점하면서 경기를 이끌어 갔다. 하지만 최종적으로는 평균 자책점이 5점대 중반인 투수가 시즌 전체로는 133이닝이나 던지고 8승이나 올렸다.
(유니폼의 색깔은 때론 야구 선수의 경력을 좌우하기도 한다. 사진 출처 및 권리= MBCsports+, KBO)
그럼 혹시 배영수가 어렵게 5회를 버틴 경기에서 삼성의 승률은 떨어졌을까. 통계는 삼성의 편을 들어줬다. 배영수가 20차례 선발로 등판한 경기에서 삼성은 11승 1무 8패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잘 알려졌듯이 지난해 삼성은 0.5경기 차로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배영수의 8승은 결코 작은 기여가 아니었다.
류중일 감독은 배영수의 불안한 초반 이닝에서 흔들리지 않았다. 3이닝 2실점, 4이닝 3실점, 모두 교체할 수 있었지만 비교적 긴 이닝까지 끌고 갔다. 타선과 전력의 우열이 있기 때문에 한화와 상황은 물론 다르다. 하지만 투수 교체가 이루어지는 특정 시점에 대한 판단은 감독들이 투수에 대한 믿음을 우선적으로 고려한다는 점, 팀이 처한 위기를 어떻게든 해석해야 한다는 점에 있어서는 공통적으로 마주하는 순간이다.
김성근 감독은 배영수의 기량과 5회까지의 내구성을 바라보는 시선, 향후 투수 운영이라는 벤치의 기본 틀에서 조기 교체라는 다른 결정을 내렸고, 이는 결국 배영수를 비롯한 다른 투수들의 유사한 퀵후크로 이어졌다. 김성근 감독은 배영수가 처한 위기를 많은 경기에서 인내하지 않았다. 배영수가 남긴 이닝들은 물론 한화의 미들맨들이 떠맡았다.
2014년 배영수는 선발 투수로 모두 111.1이닝을 던졌고 올해는 84.2이닝을 소화했다. 큰 차이가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아웃카운트로 따지면 제법 많은 90개에 육박하는 수치다. 한 타자당 평균 4개라는 상대 투구수로 따지면 360개의 투구다. 조금 비약해 투수 한 명에 대한 아웃카운트를 5선발 시스템으로 확대하면 크게는 450개의 아웃카운트와 1,800개의 투구수 처리 문제가 감독의 판단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얘기다.
더 극단적으로 가정해보자. 야구 경기가 매번 1,800개를 반드시 던져야 하는 리그가 있다. 그때 선발투수 1명이 등판 할 때마다 1,800개의 투구를 책임지는 팀과, 경기마다 18명의 투수가 나와 공을 100개씩 던지는 팀 가운데 어떤 팀이 더 좋은 팀일까. 장기 레이스에서 어떤 팀이 마운드의 힘을 더 비축할 수 있을까. 정답은 불문가지이다.
퀵후크가 파생시킨 한화의 남은 아웃카운트는 결국 어떤 투수들이 처리했을까. 시즌 내내 김성근 감독을 괴롭힌 혹사 논란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됐다.
(그는 어떤 리더로 기억될 것인가. 사진 출처 및 권리= KBS, KBO)
싱크탱커는 올해 김성근 감독의 한 해를 보면서 다소 안타까웠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진출로 국민적 영웅으로 떠올랐다가 성적 부진으로 국민에게 지탄을 받으며 급추락한 차범근 감독의 사례와도 묘하게 오버랩이 됐다. 야신은 올해 그동안 쌓아온 개인적 명성에 상당한 내상을 입었다.
언론은 한때 김성근 감독이 무슨 말만 하면 야신 “땡땡땡”으로 기사 한줄 내기에 바빴다. 그래서 심지어 어떤 네티즌은 김성근 감독이 화장실 가는 것도 기사로 나오겠다고 댓글을 달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언론은 김성근 감독이 과거 고양 원더스 감독 시절 용병 투수 마데이의 투수 기용을 둘러싼 혹사 문제, 팀보다는 감독 개인의 영광과 성취에 흠이 나지 않기 위한 야구를 한다는 문제를 거론한다.
이런 내용들에 대한 시시비비를 일일이 따지지는 않겠다. 당신이 김성근 감독을 지지하든 비난하든, 그것은 순전히 개인에 따라 가치 판단의 영역으로 남길 문제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야신은 올해 어쨌든 자신의 청사진과 다르게 실패했다는 사실이다. 수많은 실패를 딛고 성공의 정점에 올라서며 사회의 어른으로 추앙받던 70대 노병이 다시 쓰라린 실패를 맛보며 언론과 사람들의 싸늘한 시선을 마주하게 된 것은 많은 것을 떠올리게 한다.
몇 해 전 그의 책 <김성근이다>를 읽은 적이 있다. 책에는 정말로 삶의 지침이 될 만한 주옥같은 명문장이 가득했다. 몇 가지 내용이 눈길을 끌었다. “리더는 한 번 성공했던 방식을 고수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가 여러 강연을 통해 자주 강조했던 말이기도 하다. 하지만 올해 야신은 역설적으로 자신이 성공했던 과거의 방식을 따르다 실패했다.
스스로 자신이 만든 언어의 덫에 빠진 것이다. 책에는 이 같은 최악의 위기 상황을 벗는 방법도 서술돼 있다.
“현실이 최악이면 나는 그것보다 더 최악을 가정한다. 거기서부터 계획을 짠다. 거의 모든 것을 재창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성근이다> 첫 페이지에는 야신이 직접 쓴 '일구이무'의
친필 서명이 나온다. 사진 출처 및 권리=<창조의 재료탱크> )
이제 야신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의 말처럼 최악을 이겨내는 재창조가 아닐까. 나는 이 지점에서 야신을 지탱해온 평생의 모토이자 또 내가 좋아했던 언어 ‘일구이무(一球二無)’를 이제는 수정해야 함을 느꼈다.
야구와 인생이 어찌 공 하나로 결정될 수 있을까. 하나의 공만으로 모든 것이 결정될 수 있다는 것은 21세기 창조의 시대에는 너무 삭막하고 각박하다. 조급하게 다가온다. 최선을 다한 노력에는 분명 박수를 보내야 한다. 하지만 그 노력이 실패했다면 냉정한 분석과 진단도 뒤따라야 한다.
그래서 공을 잘못 던졌다면 두 번째 공을 다시 던져야 하고, 이것도 잘못됐다면 세 번째 공도 던질 수 있어야 한다. 리더라면, 또 실패를 딛고 일어서야 하는 인간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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