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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적 기법

'처칠, 나의 청춘기', 따분함은 모든 것을 말한다!

 

(사진: <창조의 재료탱크>ThinkTanker, 사진속 이 청년은 글쓰기에 대해 오래전부터 고민해왔다.)

 

 

[이시형, 김정운, 이어령, 윈스턴 처칠의 공통점]

 

 

글쓰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균형이다.

 

시각의 균형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사안에 따라서는 한쪽을 강하게 주장하고, 자신이 믿는 것에 대해 직진해야 할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글쓰기의 균형에는 내용의 균형, 길이의 균형, 표현의 균형 등이 포함된다.

 

이 균형 가운데, 만약 글쓴이가 지식인일 때 특히 유의할 점은 지식의 균형이다. 싱크탱커가 지식인이라는 말이 아니다. 알려진 지식인의 글을 볼 때 가장 조심할 점이 지식의 균형이라고 느껴온 독자의 측면이다.

 

지식인들은 자신이 가진 지식인이라는 명칭 자체가 첫 번째 함정이다. 지식인이기 때문에 지식을 뭔가 현학적으로 사람들에게 알리고, 과시하고, 드러내고 싶어 한다. 누구라고 실명을 밝히지는 않겠지만, 이런 지식인들 국내에 아주 많다.

 

뭔가 사람들이 모르는 것을 말하거나, 글에 쓰면 독자들이 우와~” “!” 하며 환호하고 존경할 줄 안다. 하지만 이것이 두 번째 함정이다. 이런 독자들이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대부분은 감흥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많은 독자들이 글을 쓴 지식인만큼 지식인이기 아니기 때문이다. 지식인이 혼자만 아는 것 떠들어봤자 요즘에는 핵노잼된다. 자신이 쓴 글이 사람들에게 따분함을 일으키면 그 텍스트 게임은 끝난 것이다.

 

그런데 또 지식인이 모두 아는 쉬운 내용과 용어로만 글로 쓰면, 사람들이 또 무시한다. 지식인이 아니라고 한다. “에이~ 이런 글은 나도 쓰겠다. 나 보다 훨씬 모르네하며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상대적 우월감을 심어주는 동시에 자신은 지식인이 아닌 것이 된다.

 

그래서 지식의 균형이 필요하다. 적절히 쉬우면서, 또 적절히 늘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착각하는 전지전능한 사람들을 위해 오호~ 이런 것도 있었네라는 살짝의 어려움이나 가려져 있는 지식을 환기시켜야 한다. 그래서 지식인들은 참 힘들 것 같다.

 

이 지식의 균형에 필요한 것이 위트와 유머가 가미된 재미있음이다. ‘재미있음은 모든 것의 방법이 될 수 있다. 어려워하거나 쉬워하는 독자들의 가슴에 자동으로 균형을 맞춰준다. 재미없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웃음을 싫어하는 사람도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최근 포스팅에서 재미있음을 추구하는 행위는 창의성 발현에 핵심적인 방법이 된다고 기록한 적이 있다. (2015/04/13 - [창조적 기법] - 이진아의 감탄 능력과 창의성 능력) 창의성을 일으키는 유머나 위트는 글을 쓰는 사람이나 그 글을 읽는 사람이나 모두에게 도움이 된다.

 

(사진: <창조의 재료탱크>ThinkTanker, 이 4명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이 같은 지식의 균형을 글로 잘 쓰는 사람이 국내에 3명이 있다. 이시형, 김정운, 이어령이다.

 

정신과 전문의인 이시형 박사는 내가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던 분이다. 이 분의 글은 좋은 글쓰기의 전형이다. 실제로 문단에서 극찬도 수차례 받았다. 매우 쉽게 읽힌다. 친근하면서도 적절한 거리감도 유지한다. 그렇다고 내용이 부실한건 절대 아니다. 재미있고 도움이 되는 내용이 너무나 많다. 시대가 변하면서 조용히 흐름에 맞는 내용들을 꾸준히 발표했다. 최근에는 세로토닌이나 걷기 운동의 전도사로 통한다.

 

국내 출판사상 최초의 논픽션 밀리언셀러로 기록된 이시형 박사의 배짱으로 삽시다는 명저라는 두 글자가 아깝지 않은 책이다. 읽으면 혈관을 꿈틀거리게 하는 책이다. 이 책은 내가 아버지 서재에서 매우 어렸을 때 읽은 책이다. 그럼에도 유년기에 내가 이해할 정도로 쉽게 쓰였다. 이후 쓰인 내성적인 사람이 강하다도 마찬가지다. 이 책에 기록된 전 국가대표 농구선수 김화순의 인터뷰는 지금도 기억할 정도다.

 

김정운 박사 역시 마찬가지다. 위트의 대표 모델이다. 학자적 자존심이 텍스트에 짙게 묻어있지만 그 자존심마저도 유머로 풀어내는 재치가 돋보인다. 문화심리학이라는 학문 자체가 많은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범용적 어드밴티지가 있긴 하다. 그러나 그 범용적인 정보를 재미있게 풀어내기는 쉽지 않다. 김정운 박사는 그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여러 차례 자신의 책을 통해 보여줬다.

 

이어령 선생은 또 어떤가. 굳이 많은 설명이 필요 없는 분이다. <창조의 재료탱크>에서 창조의 재료로써, 또 배워야할 부분에서 이진아와 더불어 가장 많이 언급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0순위 대한민국 크리에이터다. 누구나 볼 수 있는 쉬운 소재를 가지고 누구나 볼 수 없는 것을 글로 끌어내는 창조적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내용도 전반적으로 흥미롭고 재미있다.

 

외국인은 누가 있을까. 전문적인 작가 말고 이렇게 재미있게 글쓰기를 잘하는 사람은 누가 있을까.

 

싱크탱커가 꼽는 대표적인 인물은 윈스턴 처칠이다.

 

처칠은 훌륭한 정치인 이전에 훌륭한 지식인이자 문필가였다.

 

그의 일생은 위트와 유머로 도배가 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말과 글에서 주옥같은 유머의 명언과 일화를 쏟아낸 정치인이다. (구체적인 내용은 향후 포스팅으로 소개할 예정이다.)

 

나이가 들어 정치인이 됐다고 갑자기 생긴 능력이 아니다. 오래전부터 처칠은 청년시절부터 재미있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해왔고, 글을 쓰는 노력을 통해 능력을 배양해왔다. <말라칸트 야전군의 이야기>, <하천전쟁>, <프레토리어 경유의 런던에서 레이디스미드까지>, <세계의 위기> 등은 모두 좋은 평가를 받는 그의 책들이다.

 

이 가운데 젊은 시절의 자서전인 <처칠, 나의 청춘기>는 매우 특별한 책이다.

 

책 자체는 평범할 수도 있다. 처칠의 유년시절, 육사시절, 종군시절, 군에서 정계로 옮겨가 하원 의원이 되기까지 반생의 기록은 아주 자세히 읽을 만한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이 책에는 좋은 글쓰기가 어떤 것인지에 대한 중요한 내용들이 수록돼 있다. 그래서 의미가 있다. 그가 글쓰기를 어떻게 해야겠다는 결심이 시작되는 지점이 책에 있다.

 

(사진: <창조의 재료탱크>ThinkTanker)

 

가장 눈을 사로잡은 내용은 처칠이 프랑스의 명구 중에 하나인 따분하게 만드는 법은 모든 것을 말하는 것이다를 되풀이해서 그것을 가르침으로 삼았다는 것에 있다. 그는 청년시절부터 재미없으면 그 글은 게임 끝이라는 점을 깨달았다. 그래서 일생의 하의는 위트로, 상의는 유머로 옷을 입었다.

 

따분함은 모든 것을 설명해준다...굳이 부연이 불필요한 너무나 의미심장한 문장이다. 말 자체다. 따분함이란 재미있음의 반대말이다. ‘핵노잼의 동의어다. 최근에 개봉한 제목을 밝힐 수 없는 어느 한국영화를 보고 나는 따분함을 느꼈다. 그 영화에 대한 가장 압축적인 설명에 더 이상 추가 설명은 요구되지 않는다.

 

글의 구성적 측면을 언급한 부분도 주목할 부분이다.

 

나는 문장이라는 것은, 특히 이야기식의 (문장이라는) 것은 단순히 센텐스(문장)의 문제가 아니고 파라그라프(문단)에 관계된다는 것을 알았다. 사실 파라그라프는 센텐스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파라그라프도 하나의 에피소드(스토리)를 포함하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

 

처칠의 이 문장론에는 핵심어 3가지가 나온다. 문장과 문단, 스토리다. 글을 쓰다보면 구성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된다. 그때 숲이라는 구성을 너무 쳐다보면 나무라는 문장을 놓친다. 그렇다고 문장에 신경을 쓰면 숲이라는 문단을 놓친다.

 

아주 새로운 얘기는 아니지만, 막상 글을 쓰게 될 때 놓치는 부분을 젊은 시절 인식하고 글쓰기의 중점으로 삼았다는 것은 쉽게 이야기할 부분은 아니다. 마지막 발언에 숲과 나무가 이루어졌을 때 최종적으로 좋은 수목원이라는 스토리가 탄생한다는 점을 지적한 것은 효과적인 마무리였다.

 

텍스트 크기가 약간 작아 읽기 불편함에도 좋은 글쓰기의 고민과 내용 때문에 소장의 가치가 충분한 책이다.

 

살아가면서 도움이 되는 문장들도 우리를 일깨운다.

 

인간은 불운을 만났을 때 앞으로 더 큰 불행에서 구출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 또 어떤 일이든 큰 잘못을 저질렀을 때 그것이 복을 가져다 줄 수도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불운도 힘든 것인데, 놀랍게도 그것보다 더 큰 불행을 가정하고 있다. 그리고 그 어려움이 오히려 복을 가져다 줄 수도 있다고 말한다. 이런 극한의 긍정적 태도는 재미있음을 추구하는 밝음의 자세가 없으면 나올 수 없는 언어다.

 

글이 인간을 만들기도 한다.

 

젊어서 자신의 결심을 기록한 글이 인생의 중요한 시기에 큰 울림을 주기도 한다.

 

2차 대전이라는 최악의 전쟁에 이른 국가적 불운을 위트와 유머를 바탕으로 슬기롭게 넘어선 처칠이 그랬다.

 

By ThinkTank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