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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물 & 창조적 글쓰기

K팝스타 손지연의 목소리 그리고 유희열의 용기

 

(사진 출처 및 권리= SBS)

 

[손지연의 노래가 감동을 준 이유]

[다수안에 다수, 다수안에 소수...유희열의 주목 화법]

 

문학, 음악, 미술 등 자신이 만든 예술적 크리에이션이 모든 사람을 만족시킨다고 믿거나 기대하는 것은 크리에이터로서 착각이자 오만이다.

 

노래도 마찬가지다. 내가 부른 노래를 다 좋아할 수는 없다. 싫게 들리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가수는 인정해야 한다. 쉽게 말해 청자의 취향은 제 각각으로 흔히 쓰인다.

 

그러나 가수라면, 또 가수를 꿈꾸는 사람이라면 자신이 부른 노래를 999명이 싫어해도 누군가 1명은 좋아할 수 있다는 사실도 잊어서는 안 된다. 꿈을 키우는 아마추어 가수에게는 특히 중요하다. 왜 그럴까. 이것은 단순한 소망이나 판에 박힌 식상한 기적의 스토리가 아니라 실제로 벌어지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SBS K팝스타가 그렇다. 예를 들어보자. 어떤 유망주가 노래를 불렀는데 999명이 싫게 들었다. 그런데 단 1명의 심사위원이 너무나 좋게 들어 와일드카드를 썼다. 이후 기사회생한 이 유망주는 잠재력을 폭발하며 사람들의 마음을 바꿔 K팝스타 우승에 이어 10년이 흐른 뒤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가수로 자리매김한다.

 

전혀 불가능한 가정이 아니다. K팝스타 초기 라운드가 수백만 시청자들의 느낌과는 전혀 별개로 심사위원 3명 가운데 2, 또는 단 한 명의 선택만으로 상위 라운드에 진출하는 심사 시스템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소수설은 다수설을 이길 수 있다.

 

그런데 29일 방송된 K팝스타에서는 반대의 상황이 펼쳐졌다. 다수가 좋게 들은 음악을 소수가 싫게 들어 어느 유망주의 날개가 날갯짓 한 번 못하고 꺾일 위기에 몰렸던 것이다.

 

(사진 출처 및 권리= SBS)

 

19세 소녀 손지연이 주인공이었다. 참 나쁜 소녀였다.

 

편안한 일요일 저녁 식사 시간이었다. 그런데 이 소녀는 싱크탱커를 밥 먹다 말고 공연히 눈시울을 뜨겁게 만들었다. 굳이 그러고 싶지도 않고, 그럴 상황이나 이유도 전혀 없었음에도 식욕을 잊게 할 만큼 내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그래서 나쁜 소녀였다.

 

손지연은 이소라의 <나를 사랑하지 않는 그대에게>를 불렀다. 참으로 오랜만에 경험한 노래를 듣고 느낀 감동이었다. 이 소녀는 학교에서 왕따를 겪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나의 노래로 누군가에게 힘을 주고 싶다고 했다. 이런 스토리, 얼굴의 반을 가린 동그란 안경과 소녀의 작은 체형 등 외모적 부분에 영향을 받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노래 중간쯤 눈을 한 번 감고 들었다.

 

음색은 노래를 잘 하는 일반 발라드 여가수와 아주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과거의 K팝스타 시즌에도 이렇게 맑은 목소리로 노래하는 참가자는 많았다.

 

그런데 나는 한 가지 큰 차이를 느꼈다. 노래의 마디가 끝날 때마다 음색의 끝에 희미하게 들리는 어떤...설명하기 힘든 이상한 공명이 사람의 마음을 맑게, 때로는 따뜻하게 어루만져 주고 있었다. 그래서 눈물이 났을까. 처음 겪는 경험이었다.

 

도대체 싱크탱커를 포함해 손지연의 노래를 듣고 눈물이 났다는 사람은 왜 그렇게 많았을까. 객원 심사위원도 그랬고 SNS나 인터넷에서 내가 접한 대체적인 의견은 아래의 사진과 같았다. 공감률은 거의 99%였다. 비공감은 극소수였다. 당연히 노래가 끝나고 객석에서 큰 박수가 터져 나왔다. 합격이 예상됐다.

 

(사진 출처 및 권리= SBS)

 

(사진 출처 및 권리= SBS)

 

 

(사진 출처 및 권리= SBS)

 

그러나 박진영과 양현석은 불합격 버튼을 눌렀다. 내게는 998명은 좋게 들었지만 이 2명만 좋지 않게 들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불합격의 공통적인 이유는 기성가수 흉내, 몰개성, 비경쟁력이었다. 박진영와 양현석은 거대 기획사의 사장이다. 음반이 팔릴 수 있을까를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위치라는 수백일 뒤에나 벌어질 법한 상투적 이유를 거론하고 싶지는 않다. 이것은 옳고 그른 가치판단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 취향의 문제다.

 

아쉽게도 손지연은 박진영과 양현석의 취향에 부합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런데 만약 손지연의 외모가 똑같은 음색을 가진 채 YG의 산다라박이나 JYP의 수지였다면 혹시나 어떤 결과가 나왔을지도 상상해봤다.

 

박진영은 손지연의 노래를 듣고 나는 가수다의 무대가 떠올랐다. 장혜진 선배나 이은미 선배가 연상된다고 했다. “그것도 고등학생이라는 단서도 붙였다. 기법이 기성가수와 같아 노래를 정말 너무 잘했는데 불합격이다라고 했다. 양현석도 심사평은 비슷했다.

 

노래를 정말 너무 잘했는데 불합격이다...이걸 어떻게 봐야 할까. 이은미는 또 누군가. 대한민국 여성 보컬 가운데 최고의 디바로 꼽히는 가수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것도 고등학생이노래를 불렀는데 이은미가 떠올랐다... 이건 또 어떻게 봐야 할까. 하지만 차가운 현실 속에 이미 불합격이 확정됐다.

 

(사진 출처 및 권리= SBS)

 

그런데 마지막 심사위원 유희열은 손지연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미 손지연이 노래하는 중간 흐뭇해하며 감탄하는 모습이 화면에 비춰진 유희열이었다. 손지연에게 유희열은 수렁에 빠진 소녀를 향해 한 줄기 푸른 빛을 전달하는 예수님으로 보였다.

 

동시에 여기서 싱크탱커는 한 인간의 용기를 봤다. 용기는 자신의 판단이 옳다는 확고한 가슴이 있을 때, 세상 그 어떤 두려움도 극복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나타난다. <창조의 재료탱크>는 이것이 크리에이터가 가져야 할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라고 수차례 언급했다.

 

유희열은 그 용기를 이유 있는 항의와 확신으로 표현했다. 나는 아래에 유희열 스스로 표현한 선배 심사위원들에게 대들고 싶다는 화법과 전문 모두를 그대로 타이핑해서 보관하고 싶을 만큼 창의성의 관점에서 큰 가치를 느꼈다.

 

유희열이 발언 당시 다수안에 다수, 다수안에 소수를 오버랩하고 있다는 독특한 위치도 특별했다. 많은 사람들이 손지연의 노래에 공감했다는 점에서 이들을 지지하는 유희열은 다수였다. 그러나 3명 심사위원 가운데 2명의 다른 의견을 마주하는 점에서는 소수였다. 이런 상황은 누구라도 겪을 수 있다. 흡사한 중첩적 위치에서 그때 반드시 발언을 해야 한다면 당신이라면 어떻게 말할 것인가.

 

유희열은 아래와 같이 말했다.

 

(사진 출처 및 권리= SBS)

 

지금 밑에 불이 막 들어와 있죠? 반짝반짝 거리고 있죠? 객원 심사위원들 반 이상이 합격을 눌렀다는 뜻일 거예요. 그런데 저는......(양현석을 바라보며) 심사기준이 너무 높은 것 같아요.

 

양현석 : 어쩔 수가 없는 거예요. 저희가 5년 동안 단련이 돼 있기 때문에 지금까지 너무 노래 잘하는 친구들을 많이 봐 왔기 때문에 (박진영을 쳐다보며) 이제 어느 정도로는 놀랍지도 않아요.

 

박진영 : 그리고 시대가 너무 계속 바뀌고 있어서요. 음악시대가.

 

그거는 저도 충분히 동의해요. 근데. 약간의 선배님처럼 노래하는 창법이 있긴 한데 저는 눈감고 들었거든요. 피아노 하나에 저 정도 라이브로 노래하는 기성가수 많지 않아요. 거의 없어요. 저는 그래서 와~ 노래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한다.

 

계속 이러면서 들었는데. 이게 만약 4라운드, 5라운드라면 그냥 맞다. 거기까지 갔는데 이 정도 수준이다 이러면 저도 어쩔 수 없이 백기를 들겠지만 1라운드고, 아니, 이 정도면 올라가야 하는 거 아닌가. 그리고 그런 상투성에 관한 것을 빼주는 것을 우리가 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감히 한 번,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었어요.

 

그런데 떨어지기에는 노래를 너무 잘했어요. 저는 저보다 선배 심사위원들이기도 하지만 막내 심사위원으로서 한 번 대들어보고 싶은, 하는 생각도 있네요. 이 정도로 잘 한다면 기회 한번 줘야 되는 게 아닌가하는 목 놓아 주장하고 싶은...저 와일드카드 쓰겠습니다.

 

손지연은 그렇게 다음 라운드에 진출할 수 있었다. 싱크탱커 역시 한 번 더 이 소녀의 맑은 노래를 듣고 싶다. 이 소녀가 몇 라운드까지 갈지는 모르겠다. 인간은 원래 자신이 한 번 내린 마음을 잘 바꾸지 않는다. 두 명의 심사위원으로부터 지적된 약점을 슬기롭게 극복했으면 좋겠다. 하지만 진출 라운드와 관계없이 적어도 손지연이 부른 <나를 사랑하지 않는 그대에게>만큼은 누군가의 마음을 감동으로 적시는데 충분했다.

 

(유희열의 와일드카드를 보고 손지연의 눈가에 맺힌 눈물은

소녀의 맑은 노래 이상 더 맑아보였다. 사진 출처 및 권리=SBS)

 

(SBS 제작진은 왜 방송 자막에 '그 어느 때보다'라는 말을 추가했을까.

사진 출처 및 권리= SBS)

 

불합격이 합격으로 바뀌고 객석에서 다시 한 번 함성이 터져 나오자 소녀는 깊은 눈물을 흘렸다. 그 순간 K팝스타 방송 배경 음악으로 토이의 <그럴 때 마다>가 흘렀다.

 

K팝스타를 볼 때 마다 느끼는 거지만, K팝스타는 참가자들의 참가 배경을 소개하거나 합격 불합격 이후 영상의 분위기를 형성하는 배경 음악의 선택에 탁월하다. 어떤 배경음을 혼합 하느냐에 따라 TV 화면은 완전히 분위기를 달리 할 수 있다. 연출 등 제작진이 작은 부분도 신중을 기울인다는 것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그럴 때 마다>는 유희열이 직접 작사 작곡한 곡이다. 예전부터 <스케치북> 등 인간의 가슴을 보듬는 따뜻한 가사를 잘 쓰는 유희열 특유의 감성이 묻어난 명곡이다.

 

<그럴 때 마다>의 가사는 마치 소녀를 위한 것 같았다. 이 노래에는 아래와 같은 노랫말이 나온다.

 

(사진 출처 및 권리= 유희열 7집 공식재킷)

 

아무런 약속도 없는 일요일 오후 늦게 잠에서 깨 이유 없이

괜히 서글퍼질 땐 그대 곁엔 세상 누구보다 그댈 이해하는

내 자신보다 그댈 먼저 생각하는 남자가 있죠

 

내겐 그대의 작은 부탁조차도 조그만 행복이죠

항상 그대의 지쳐있는 마음에 조그만 위로 돼 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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