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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물 & 창조적 글쓰기

비호감의 운명...드라마 캐스팅은 왜 중요할까

 

 

 

 

[비호감은 시각을 어떻게 지배하는가]

[신경생물학, 아기의 눈, 그리고 드라마]

 

싱크탱커의 어머니는 나보다도 매우 직설적인 화법을 구사하는 분이다.

 

몇 년 전 나는 어떤 드라마를 본 적이 있다. 극 초반 어느 정도 화제도 모은 작품이었다. 어느 날 우연히 그 드라마가 방영하는 시간대에 TV 앞을 지나치는 어머니에게 같이 보자고 권해드렸다. 그런데 어머니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나의 제안을 거부하셨다.

 

그때 돌아온 답변이 예술이다.

 

나오는 것들이 하나같이 마음에 안 들어~”

 

...

 

간단했다. 출연 배우들이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에 그 드라마를 안 본다는 명확한 입장이었다. 일상의 일화지만 바로 이게 아줌마고 엄마다. 등장인물의 이미지가 하나같이 마음에 안 들면 나오는 배우나오는 것들로 순식간에 둔갑될 수 있다. 드라마를 아무리 지상 최고의 진리와 품격과 고차원으로 비벼 봐도 소용없다. 아줌마들의 시선을 사로잡지 못하면 그 드라마는 이미 끝난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에피소드를 나의 어머니라는 특수성만으로 축소하기 어려웠던 이유는 화제를 모았던 그 드라마가 조금씩 힘이 빠지더니 결국 조기 종영이라는 비운을 맛보았기 때문이다.

 

이후 시간이 흘렀다.

 

최근에 싱크탱커는 유사하게 또 한 번 주목을 받은 어느 드라마를 한 편 보았다. 언론에서도 관심이 많았다. 구성과 내용도 좋고 작가의 주제의식도 훌륭했다. 그런데 참으로 애석하게도 나는 그 드라마를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몇 년 전 나의 어머니가 내게 했던 똑같은 답변을 모전자전처럼 쓸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나오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마음에 안 들었다.”

 

(사진= <창조의 재료탱크>)

 

이유는 드라마 캐스팅이었다. 어쩜 그렇게 신기하게도 제작진은 비호감 종합선물세트 같은 사람들만 골라 모아서 드라마를 만들었을까.

 

예의는 지키겠다. 이 드라마의 제목과 비호감 배우들의 실명은 노코멘트 하겠다. 외부에서 보는 시청자의 입장으로 내부에서 드라마에 쏟은 많은 사람들의 노력까지 함부로 재단해서는 안 된다. 정확한 실상은 관찰자로서 노터치 구역이다.

 

그러나 드라마를 소비하는 시청자 입장에서는 드라마 소비 행위 자체가 곤혹스러웠다. 일단 출연 배우들이 비호감이다보니 보기가 싫었다. 도무지 TV 화면 속으로 몰입이 안 됐다. 쉽게 설명하겠다. 우리가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보기 싫은 사람은 안 보게 된다. 똑같다. 보기 싫은 배우들이 나오는 드라마도 자연스럽게 멀리하게 된다.

 

역시나 나만의 특수성은 아닌 것 같다. 이 드라마를 아끼는 소수의 지지자들에게는 미안한 얘기지만 시청률이 말해준다. 사람들이 안 본다. 극 초반 화제성은 언제 그랬냐는 듯 신기루가 됐다. 애국가 시청률이 매주 계속되는 가운데 그들만의 고군분투가 이어지고 있다. 미스 캐스팅이 시청률 부진의 유일한 이유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미스 캐스팅의 큰 비중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 점에서 싱크탱커는 드라마 제작진들이 주연 배우를 고를 때 회당 많은 비용 등 심혈을 기울여 캐스팅하는 것을 어느 정도 지지하는 편이다.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김태희, 전지현, 황정음 등이 TV 시장에서 여전히 각광받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그 배우를 주목해서 보게 만드는 본능의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사진 출처 및 권리= psych tutor)

 

학창시절 나의 국어 선생님은 록의 대부신중현의 노래 <미인>의 가사를 언급한 적이 있다. 이 노래에는 한 번 보고 두 번 보고 자꾸만 보고 싶네.”라는 가사가 나온다. 선생님은 이 가사가 인간 본능을 꿰뚫는 노랫말이라고 극찬했다. 정말로 그렇다. 미인을 보면 남자는 한 번 보고 두 번 보고 세 번도 보고 싶다. TV속 드라마 배우도 똑같다. 미인이 나오는 드라마는 한 번 보고, 두 번 보고, 자꾸만 보게 된다.

 

만약 지친 일상을 끝내고 밤늦은 시간 TV를 틀었는데 어느 개그프로에서 나오는 대사처럼 얼굴이 박살난 여자가 드라마 화면을 의기양양하게 가득 채우고 있다고 해보자. 이 드라마? 절대 안 본다. 한 번 보고 두 번 안 보고 자꾸만 안 보게 된다.

 

그래서 드라마 캐스팅은 영화 캐스팅 이상으로 더 중요하다. 드라마 캐스팅은 영화처럼 ‘2시간 게임이 아니라 대부분 ‘20시간 게임이다. 호흡이 더 길고 매주 반복적이다. 미스 캐스팅은 이런 시청의 최초 호흡을 사전에 차단한다.

 

오해는 말자. 싱크탱커는 외모지상주의자가 아니다. 첨언하자면, 반드시 드라마에 미남·미녀만이 나와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꼭 예쁘고 잘생기지 않아도 친근함을 주며 드라마에 성공한 배우들은 많다. 중요한 것은 전반적인 주·조연 배우들이 주는 호감과 매력 DNA이다. 더 축소하자면 최소한 비호감을 주는 배우들은 배역의 특별함이 아닌 이상 가급적 드라마 캐스팅에서 피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보는 것이 많아진 21세기에 가장 핵심적인 감각인 시각의 측면에서도 그렇다. 많은 학자들은 인간은 진화과정에서 아름다움, 비례, 대칭 등 여러 호감 요소에 영향을 받는 시각적 감각을 발달시켜왔다고 지적한다.

 

세계적인 신경과학자 진 월렌스타인은 저서 <The Pleasure Instinct(쾌감 본능)>에서 인간은 숨은 과일과 포식자의 위치를 파악해야 했기 때문에 후각이 지배했던 포유동물의 감각계는 초기 영장류 단계에서 시각이 최우선인 새 모델로 점차 이동했다고 주장했다.

 

이때 일어난 중요한 혁신 가운데 하나가 시각 근육의 운동을 전담하는 후두정엽 영역과 안쪽 측두 부위의 진화였다. 개선된 정면 시력이 눈과 손의 협조를 향상할 수 있도록 설계된 신경계의 발달을 동반한 것이다.

(Cartmill, Matt, 1972 Arboreal Adaptations and the Origin of the Order Primates. In The Functional and Evolutionary Biology of Primates)

 

(당신이 아기라면 어떤 사진을 선택할 것인가. 사진 출처 및 권리= psych tutor)

 

이후 시각은 감각계의 미세 조정을 거쳐 매력적이고 호감을 주는 얼굴을 선호하는 것으로 발전하게 됐는데 신생아의 실험이 대표적이다.

 

텍사스 대학의 심리학자 주디스 랑글루아 연구팀은 먼저 여자 얼굴을 찍은 슬라이드 필름을 남녀 학부생들에게 보여주고 각 얼굴의 매력도를 평가해 1부터 5까지 점수를 매겨 매력 있는 그룹과 매력 없는 그룹 두 개로 사진을 묶었다.

 

이후 생후 2개월 된 아기들에게 사진을 각각 보였더니 결과는 뚜렷했다. 연구팀은 신생아들이 매력 없는 얼굴보다 매력적인 얼굴을 더 오래 본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 테스트는 이후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 등 다른 문화권에서도 반복됐는데 결과는 똑같았다.

(Langlois, Judith H.; Roggman, Lori A.; Infant preferences for attractive faces: Rudiments of a stereotype?)

 

이 연구 결과는 흥미로우면서도 의미심장하다. 생후 2개월 된 아기란 어떤 존재인가. 가히 스스로 존재의 의미를 인식할 수 없는 머릿속이 하얀 백지상태다. 순수한 인간이다.

 

그럼에도 우리의 귀여운 아가들은 매력과 호감을 태어나면서부터 본능적으로 알아낸 것이다. 반대로 다른 실험에서 비호감의 대명사 을 보여주자 아기는 울음을 터뜨렸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태어나서 한 번도 뱀을 본 적이 없는 아기는 왜 뱀을 보고 울었을까.

 

증거는 일상에서도 찾을 수 있다. 자신이 만약 어린 조카가 있다면 누나, 언니, 오빠 등으로부터 아기들도 미남·미녀를 알아보고 더 좋아 한단다는 말을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중요한건 아기들도 호감 있는 얼굴을 더 오래봤다는 점이다. 호감의 시각이 눈을 붙들어 놓을 수 있는 시간의 길이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준 것이다.

 

당연히 드라마도 시각과 시간의 지배를 받는다. 사람들이 오래 TV 화면을 볼수록 드라마는 유리하다. 그런데 성인이 된 시청자들도 누구나 '원초적 감각의 시작점' 아기라는 시절을 거쳤다. 호감 있는 배우들을 드라마 전면에 배치하는 것은 그래서 중요하다. 드라마 캐스팅은 이토록 인간의 본능에 관계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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