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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적 기법

이진아의 감탄 능력과 창의성 능력

 

(사진: SBS, 몇 차례 이야기했지만 이런 적절한 자막을 넣는 SBS 제작진은 참 감각이 있는 사람이다.)

 

 

[K팝스타 결승전날, 이진아의 첫 방송을 다시 보고 놀란 이유]

 

앨버트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은 어려운 것이 아니다.

 

이진아의 <시간아 천천히> 노래 가사를 보면 알 수 있다.

 

너와 항상 있다간 할머니 되겠네.”...이것이 답이다.

 

계속 같이 있고 싶은 남자와 데이트를 하면 시간이 빨리 간다. 남자도 마찬가지다. 역으로 같이 있고 싶지 않은 여자와 데이트를 하면 아무리 시간이 빨리 가도 절대 할아버지가 안 된다.

 

이것이 상대성이론이다. 터무니없는 비유가 아니다. 실제로 그렇게 설명한 사람이 아인슈타인이다. 그는 상대성이론을 이해하지 못하는 옆집 할머니에게 미녀와의 1시간은 1분으로 느껴지고, 뜨거운 불 위에 손을 올려놓은 1초는 1시간보다 훨씬 더 길게 느껴진다고 설명했다. 재미있기 때문에 시간이 빨리 가는 것처럼 휙 지나간다. 시간은 이처럼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상대적이다.

 

유사한 것이 나이를 먹으면 젊은 시절에 비해 상대적으로 시간이 빨리 간다고 느끼는 현상이다. 여기서 시간이 빨리 가는 것은 전술한 재미있기 때문에 시간이 빨리 지나가는 것과 성격이 다르다. 시간이 무던하게 그냥 흘러간다고 느껴져, 돌이켜 볼 때 그 쌓여진 시간이 너무 금방 지나왔다는 무감각의 시간이다.

 

싱크탱커는 이 문제가 예전부터 너무나 궁금했다. 도대체 왜 그럴까. 생체시계는 나이를 먹으면 왜 속도가 빨라질까.

 

학자들의 이론과 여러 서적에는 이에 대한 다양한 학설이 있었다. 노화가 진행될수록 행동이 둔해진다는 이론, 저하된 뇌의 정보 처리속도, 신경세포의 정보전달 속도를 높여주는 도파민 분비량이 적어지기 때문이라는 이유도 있었다.

 

그러나 여러 가지 학설과 이론을 통해 내가 내린 결론은 간단하다.

 

자극에 감탄할 수 없기 때문이다. 놀라지 않았기 때문이다.

 

첫 키스를 생각해보자.

 

첫 키스라는 말에는 앞에 이라는 수식어가 붙었기 때문에 키스의 의미가 강해진다. 첫 키스는 누군가의 머릿속에 촘촘한 기억을 만든다. 이성과 스킨십을 하는 첫 접촉이 될 수도 있고, 상대가 누구였는지, 그때의 입술 감촉이 어떠했는지, 키스 후 가슴에 어떤 감정이 일어났는지 우리는 어렴풋이, 또 반대로 자세하게 묘사하고 기억할 수 있다. 첫 키스는 이토록 시간을 슬로비디오로 만든다.

 

경험에 대해 처음으로 지각하며 놀라고 감탄했기 때문이다. 인간이 어떤 감각을 자세히 기억한다는 것은 자세한 장면이 특별해 머릿속에 집어넣었기에 가능하다. 많이 느껴야 많이 저장할 수 있다. 많이 느끼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슬로비디오로 느리게 시간이 가야 기억에 유리하다.

 

이때 첫 키스의 절대 시간을 두 번째 키스나 두 번째 키스 상대와 비교해보자. 이 두 번째 기억에 많은 시간이 필요할까? 두 번째 키스는 기억나지도 않는다. 감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별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사람에 따라 특별하고 감탄할 수 있는 두 번째 키스가 있긴 하다. 그렇다고 세 번째, 네 번째 키스도 설마?)

 

(사진: 동아제약(오른쪽), 남녀가 무감각해지면 왼쪽사진을 거쳐 오른쪽 사진이 된다)

 

첫 소주의 맛, 첫 흡연의 흡입, 첫 운전의 불안함, 1등의 기쁨, 첫 꼴등의 아픔, 첫날밤의 설렘...모두 마찬가지다. 박카스 CF처럼 남녀가 한 방에서 스파크가 튀어도 시간이 흐르고 무감각해지면 가족이 아니어도 가족끼리 왜 이래가 된다.

 

자극에 둔감해지면 시간에 의미 부여가 안 된다. 의미 없는 경험은 기억나지 않는다. 스쳐지듯 사라진다. 일상이 다람쥐 바퀴의 반복처럼 느껴진다. 자극에 둔감해졌다는 것은 감탄하고 놀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든 경험과 자극에 둔감해지는 노화가 진행되면 시간을 빨리 지나온 것처럼 느껴진다. 16배속 비디오 화면이 된다. 감탄능력이 동시에 퇴화된 것이 주요한 원인이다.

 

감탄 능력은 그래서 인생에 의미가 있다. 다른 사람보다 특별하게 인생의 장면과 순간에 감탄하며 많은 의미를 담는 과정에서 창의성 능력을 발현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감탄은 느낌표(!)’. 창의성 능력의 생성과 창조적인 삶도 새롭게 다가오는 것에 대한 느낌표가 있어야 유리하다.

 

대한민국 대표 크리에이터김정운 박사 역시 이 문제를 오래전부터 책과 방송을 통해 주장해왔다. 그의 주장은 간명하다. 창조는 놀라는 능력, 감탄능력에서 시작된다는 것이다. 양 손을 들어 적극 동감한다.

 

그는 놀라워하는 감탄능력을 적극적으로 신봉하는 학자다. 심지어 인간의 문명도 창조를 일으키는 감탄 때문에 생겼다고 말한다. “아기는 엄마의 감탄을 먹고 자란다. 그래서 인간은 끝없이 감탄해야만 한다. 감탄이 사라지는 순간 더 이상 인간이 아니다라고까지 덧붙인다.

 

추가적으로 김정운 박사는 우리에게 의미 있는 질문을 던졌다.

 

인간의 모든 행위 뒤에는 감탄의 욕구가 숨겨져 있다. 음악을 도대체 왜 작곡할까? 그림은 왜 그릴까? 간단하다. 감탄하기 위해서다. 내가 지금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지의 기준은 아주 간단하다. 하루에 도대체 몇 번 감탄하는가를 생각해보면 된다. 재미를 느끼면서 인간은 감탄을 한다. 최근 3일 동안 감탄한 적이 있는가!”

 

최근 3? 애석하게도 나는 그 72시간 동안 아주 크게 감탄한 적이 없었다. (어제 포스팅한 박정현의 아름다워를 들으며 감동한 것이 유일하다.)

(2015/04/12 '박정현'이란 가수의 가치, 윤수일 '아름다워' 가상듀엣)

 

그런데 412일 오늘 나는 드디어 크게 감탄했다. 3일은커녕, 불과 10분여 동안 수차례 자극에 감탄하는 영상 속 천재소녀 때문이었다. 이진아였다.

 

12K팝스타 결승전에 잠시 나온 그녀가 아쉬워 예전 영상을 다시 보게 됐다. 이진아가 K팝스타에 처음으로 등장한 지난해 1123일 방송 장면이었다.

 

무대 준비 직전 대기 장면부터 그녀는 남달랐다. 방송에는 표정 하나하나가 만화 같은이라는 자막이 입혀졌다. 이 자막 뒤에는 만화같이 (재미있는) 이라는 말이 생략된 것이라 봐도 무방했다. 그녀는 세상 모든 것에 재미를 느끼는 것 같았다. 뭐가 그리 신기한지 주변을 자꾸 두리번거리며 놀라워했다.

 

무대에 오르기 전 그녀에게 알려지지 않은 대사 3종 세트가 있었다.

 

1.“~”, 2.“우와~” 3.“~”이었다.

 

(사진: SBS, Edit <창조의 재료탱크>By ThinkTanker, 이 감탄능력이 무던한 싱크탱커는 부럽다!)

 

앞선 참가자의 무대를 보면서 ~”, 다음 참가자 준비하세요에 또 !”, 무대에 발이 닿고 방송세트를 둘러보면서 이번엔 우와~”였다.

 

박진영과 많은 사람들이 이진아의 음악은 들어본 적이 없었다고 했다. 그 음악 이전에 나는 몇년간 K팝스타를 보아왔지만, 노래를 하기 전부터 이런 감탄의 표정과 놀라움의 감정을 맑고 순수하게 드러내는 참가자를 도대체 본 적이 없다!

 

한마디로 이진아는 세상 모든 것에 호기심을 보이고 놀라워하는 ‘24살의 신생아같았다.

 

노래가 끝났다. 연주도, 멜로디도, 가사도, 목소리도 모두 다 놀라웠다. 이번에는 그녀가 반대로 모든 사람들을 감탄시켰다.

 

이진아의 감탄은 심사평을 들으면서도 계속됐다. 박진영과 유희열 등 심사위원들이 호평의 언어를 말할 때마다 그녀는 깜짝깜짝 놀랐다. 놀라서 눈이 아래의 사진처럼 왕방울 만해지기도 했다. 그리고 조금씩 눈가가 촉촉해졌다. 처음으로 자신의 음악이 인정받은 것에 대한 기쁨의 이슬이었다.

 

(사진: SBS, 이런 '희번덕'의 표정은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하지만 아무때나 나오지 않기 때문에 바쁜 현대인은 바퀴를 굴리는 다람쥐가 된다.)

 

나는 그녀가 하루를 마치고 집에 돌아가 일기를 쓴다고 가정해봤다. 그녀의 일기장에는 어떤 감정의 언어들이 기록될까.

 

한 가지는 확실하다. 이날 그녀의 경험은 슬로비디오였을 것이다. 아기처럼 모든 것이 경이롭게 다가오는 경험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이며 놀라고 감탄했다면, 16배속 비디오를 보며 무던하게 일상의 반복을 지나치는 사람보다 훨씬 많은 것을 느끼고 기억했을 것이다.

 

같은 것을 봐도 남들과 다른 정서적 경험을 하는 사람이 창조적인 사람, 크리에이터다.

 

감탄을 통한 강렬한 자극은 기억 속의 경험을 훨씬 촘촘하게 기록한다. 일기장의 감성과 언어가 보통인과는 다르게 풍부해진다. 바람에 꽃빛을 채색하는 <두근두근 왈츠>의 작사가가 창의적인 사람이다. 이진아가 좋아하는 에스페란자 스팔딩의 불규칙한 재즈 화성에 박진영의 끈적이는 그루브를 합성할 수 있는 사람이 새로운 멜로디를 만들 수 있는 창의적 아티스트이다.

 

12일 방송된 K팝스타 시즌4 결승전 무대에서 그녀는 케이티 김과 정승환의 뒤에 밝은 얼굴로 서있었다. 그리고 방송 영상을 통해 그동안의 시간들을 돌아보며 표현한 첫 번째 언어가 감탄했기 때문에 쓸 수 있는 “모든일이 신기했다였다. 매우 인상적인 5개월의 요약이었다.

 

(사진: SBS, 이렇게 눈가가 촉촉해지기 위해 그녀가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을까. 시작은 감탄능력이었을 것이다.)

 

'크리에이터' 이진아는 천재 소녀이기 전에... ‘감탄 소녀였다.

 

그녀에게,

 

그리고 그녀의 음악에 감탄할 수 있었던 지난 150여일이 또 한 번 고맙고 감사하게 느껴졌다.

 

By ThinkTank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