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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물 & 창조적 글쓰기

봉중근의 장기 부진...봉의사는 사라졌나

 

(사진= SBS)

 

[봉중근 부진의 원인은 무엇인가]

[이해하기 힘든 LG 트윈스의 봉중근 투수 운용]

 

지금까지 본 시구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시구였다.

 

3년 전인 2012921일 잠실구장.

 

봉중근(35·LG 트윈스)은 캐처 미트를 꼈다. 아버지 봉동식씨는 아들을 향해 공을 던졌다. 아들 야구경기 보는 게 평생의 낙인 분이었다. 아버지의 오랜 소원은 이뤄졌다. 암 투병 중인 아버지를 향한 봉중근의 마음 역시 애틋했다. 그는 아버지의 손을 꼭 잡았다. 택시 운전을 하던 아버지는 형편이 넉넉지 않았지만 헌신적인 뒷바라지로 아들을 자랑스러운 투수로 키워냈다.

 

그는 정말로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투수였다.

 

때로는 누군가와 이름이 같다는 이유가 그 사람의 인생에 큰 영향을 주기도 한다. 20093월 봉중근은 대한민국 독립투사 안중근이었다.

 

그해 제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 출전한 봉중근은 일본 킬러였다. 예선에서 한국은 일본에 2-14로 대패했다. 김광현(SK)2회를 버티지 못했다. 치욕적인 콜드게임 패배였다. 봉중근은 참지 못했다. 결국 이틀 뒤인 39일 일본과의 아시아 라운드 순위 결정전 등판을 자원했고 5.1이닝 3피안타 무실점으로 쾌투하며 한국의 1-0 승리를 이끌었다.

 

4강 직행 티켓이 걸려 있던 3182라운드 경기에서도 일본은 봉중근에게 철저히 막혔다. 그는 5.1이닝 3피안타 1실점으로 호투했고 4-1 승리에 기여했다. 봉중근은 2번의 일본전서 인상적인 투구로 신일본킬러로 떠올랐다.

 

특히 일본의 자존심스즈키 이치로는 봉중근에게 완전히 눌렸다. 2009년의 스즈키 이치로는 여전히 타격 천재였다. 그해 225개의 안타, 352리로 실버슬러거상을 받은 메이저리그의 정상급 타자였다. 하지만 2차례 경기 봉중근과의 맞대결에서 6타수 무안타로 봉쇄당했다.

 

이치로 뿐만 아니었다. 일본 타자들은 봉중근의 공을 전혀 공략하지 못했다. 150km를 넘나드는 빠른 공은 날카로운 코너워크를 동반했으며, 타자 앞에서 급격히 떨어지는 써클 체인지업은 땅볼제조기였다. 당시 미국 현지 중계진은 봉중근의 체인지업이 타자 앞에서 그대로 사라져버린다며 극찬했고, MLB.com 또한 슈퍼맨 모드라며 놀라워했다.

 

 

(사진= LG 트윈스)

 

위기의 순간 한국을 구한 봉중근을 향해 야구팬들은 안중근 의사와 이름까지 같다며 의사(義士)’열사(烈士)’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한국 경기 관중석에도 봉중근의 영문 이니셜 J.K.B를 따 ‘Japan Killer Bong’이라는 플래카드가 걸릴 정도였다. LG트윈스가 당시 300장으로 한정 제작한 봉중근의 패러디 티셔츠는 하루 만에 모두 품절됐다.

 

봉중근이 아버지의 시구를 받은 2012년은 그가 본격적으로 LG의 마무리 투수로 나선 시기다. 성공적인 전환이었다. 그해 38이닝을 던지며 내준 자책점은 단 5. 평균자책은 1.18이었으며 26세이브를 올렸다. 이듬해에도 언터쳐블(38세이브, 평균자책 1.33)이었다. 지난해 역시 30세이브를 거두며 최근 3년간 94세이브를 챙겼다. LG의 불안한 뒷문은 봉중근이 클로저로 나서며 난공불락이 됐다. 1주 주자를 묶어두는 특유의 견제 능력 또한 리그 최정상이었다.

 

올해 봉중근은 1년 만에 전혀 다른 투수가 됐다. 329KIA와의 개막전에서 블론 세이브를 했을 때만 해도 일시적 부진으로 보였다. 하지만 이후 봉중근의 성적은 숫자가 말해준다.

 

5일까지 31경기에 나와 평균자책 5.67, 이닝당 출루허용률(WHIP)은 무려 1.74. 마무리 투수가 등판할 때 마다 2명에 육박하는 주자를 출루시킨다는 것은 언제나 실점 위험이 큰 스코어링 포지션에서 피칭 한다는 것을 뜻한다. 최근 10경기에서 안정감을 찾는 듯 했지만 여전히 장기 부진의 늪에서 좀처럼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5일 삼성전 그의 투구를 보고 조금 충격을 받았다. LG4점 뒤져 승부가 기운 8회말 거의 패전처리 투수 같은 분위기로 이틀 연속 등판했다는 사실이 첫 번째, 왼손 투수인 그가 연속 5명의 좌타자를 상대하며 이 가운데 무려 4명을 출루시키며 1이닝도 채 버티지 못했다는 점이 두 번째였다. 안타까웠다

 

이것이 정녕 내가 아는 봉중근인가.

 

야구에서 타자가 투수의 공을 받쳐놓고 친다는 것은 투수의 공에 전혀 어려움이나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날 봉중근을 상대하는 삼성타자들이 그랬다. 채태인과 구자욱은 봉중근의 공을 너무 손쉽게 때려냈다. 심지어 경산에서 올라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좌타자 백상원이나 최선호까지 봉중근의 공에 자신감을 보였다.

 

(사진= SKY SPORTS)

 

문제점은 도대체 뭘까.

 

혹시 세월이 흐른 나이가 문제일까. 하지만 마흔 살 임창용(삼성)이 여전히 빠른 공을 던지는 프로야구 불혹의 시대에 봉중근의 35살 나이는 노쇠화를 논하기에는 아직은 시기상조다.

 

가장 두드러지는 부분은 시즌 초반부터 여러 야구 전문가들이 지적해온 것처럼 직구 구속의 저하다. 과거의 봉중근은 우선적으로 140km 후반의 빠른 공으로 타자를 압도했다. 하지만 이날 봉중근의 구속은 이승엽을 상대로 던진 147km가 나온 딱 하나의 공을 제외하고 거의 140km 초반에 형성됐다. 삼성 타자들은 이 힘없는 직구를 쉽게 공략했다. 박석민이 뽑아낸 홈런은 아주 높은 쪽으로 형성된 141km의 직구였다. 예전 봉중근의 구속이었다면 중견수 플라이로 끝날 공이었다.

 

직구의 구속이 떨어지다 보니 자연스럽게 변화구에도 연쇄적인 악영향이 이어진다. 봉중근의 또 다른 무기 커브나 써클 체인지업은 직구 구속이 바탕이 되지 못하면 위력을 얻기 어렵다. 정교함을 자랑하던 코너워크도 찾아 볼 수 없었다. 스트라이크와 볼의 구별이 TV화면으로도 확연하게 드러날 정도로 컸다. 볼카운트 싸움은 불리할 수밖에 없었고 타자에게 끌려 다녔다.

 

0점이 잡히지 않은 변화구 제구력은 타자를 전혀 속이지 못했다. 이날 변화구로 봉중근이 스트라이크를 잡은 공은 파울을 제외하고 단 하나도 없었다. 타자 입장에서 답은 뻔하다. 위력 떨어진 직구만 노리고 치면 된다. 그때 받쳐놓고 치는 타구가 나온다. 봉중근은 이날 강판당하며 숙인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스스로를 납득하고 받아들이기가 무척 힘들었을 것이다.

 

봉중근은 야구계에서도 소문난 승부근성의 소유자다. 2009년 미디어와의 인터뷰에서 어린 선수들에게는 무엇보다 몸을 아끼지 않는 승부욕이 제일 중요하다. 야구장에서 눈물을 흘릴 수도 있어야 한다고 말했던 그다.

 

그래서 2012622일 롯데 전에서 마무리 투수로 첫 블론 세이브를 하고 스스로의 분을 참지 못하고 더그아웃 뒤에 있는 소화전을 내리쳐 오른손 골절 부상을 당했던 선수가 봉중근이다.

 

그래서 2009WBC 일본과의 결승전에서 한국이 연장 접전 끝에 패하자 뜨거운 눈물을 흘리고, 올해 몇 차례 마무리 실패 이후 종종 눈물을 보여 팬들에게 봉크라이라는 애증 섞인 닉네임을 얻게 된 선수가 봉중근이다. 남자의 눈물은 수치가 아니다. 남자는 태어나서 3번만 눈물을 흘려야 한다는 것은 시간을 정해놓고 우는 뻐꾹 시계일 뿐이다. 가슴이 뜨겁다면 눈물로 감정을 분출 시킬 수도 있는 것이다.

 

봉중근은 이런 선수다. 꺾이지 않는 자존심을 지켜줘야 할 선수다. 마무리 투수에게는 더하다. 팀의 클로저는 자신의 팀 동료들이 지켜온 3시간의 리드를 5분 만에 날릴 수 있는 위험성을 늘 안고 있다. 한 번의 실패는 자괴감과 자신감 저하로 이어진다. 그래서 딛고 일어서는 힘과 얼마간의 뻔뻔함은 마무리 투수에게 필수적이다.

 

(사진= SKY SPORTS)

 

그런데 다소 이해하기 힘든 부분은 LG벤치의 봉중근 운용이다. 굳이 봉중근을 이틀 연속 패전처리 투수와 유사한 모습(LG벤치가 그럴 의도가 아니었다 하더라도 경기 상황과 등판의 외양은 그렇게 보일 수밖에 없다.)으로 등판시킬 필요가 있을까.

 

등판 간격에 따른 컨디션 점검 차원일 수는 있다. 하지만 봉중근은 LG 마운드의 상징이다. 이런 선수를 꼭 팀의 패색이 짙은 경기 후반 몇 타자 상대하라고 내보는 것이 과연 봉중근에게 도움이 될까. 여기서 타자 몇 명 잡는다고 봉중근의 자신감이 상승될까.

 

아마 봉중근으로서는 이런 상황에서 등판하는 것 자체가 심리적으로 동기를 얻기 힘들 것이다. 5일 경기를 중계했던 SKY SPORTS 이효봉 해설위원은 “LG입장에서는 어제 오늘 이렇게 지고 있는 경기에서 봉중근 선수가 나온다는 게 조금 씁쓸하네요라고 말했다. 봉중근에게는 결코 익숙한 상황이 아니다.

 

성취동기 없는 경기에서 낮은 자세로 임하는 경기를 펼치기에 봉중근은 어울리는 선수가 아니다. 팀 내 위상과 그동안 쌓아온 커리어에도 조화되기 힘들다.

 

자존심 강한 팀의 상징 같은 선수는 자존심을 끝까지 지켜줘야 한다. 한국프로야구의 전설 최동원은 생전에 자신이 절대로 잊을 수 없는 경기로 선동렬과의 15회 완투 경기 이외에도 1990LG와의 한국시리즈 1차전을 꼽았다.

 

이 경기에서 최동원은 소속팀 삼성이 0-7로 뒤진 5회말 삼성의 3번째 투수로 등판했다. 패전처리였다. 그때 최동원은 나의 자존심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고 회고했다. 왜 최동원은 이 경기를 절대로 잊지 못한다고 했을까.

 

봉중근에 대한 세심한 관리와 배려가 필요하다. 다시 터프 세이브 상황에 등판시켜 스스로 극복하면서 자신감을 찾게 하거나, 야구 기술적으로 문제가 있다면 정밀진단을 할 수 있다. 야구 외적이라면 심리적으로 문제를 받고 있는 부분은 없는지 구단에서 찾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올해 봉중근이 계속 좋지 않다면 극단적으로 두산의 노경은 처럼 시즌 아웃 형식을 빌려 전면 부활 할 때까지 관리하는 방법도 고려할 수 있다. 야구 올해만 하는 것 아니다. 이런 식으로 의미를 찾기 힘든 봉중근의 연이은 패전처리 유사 기용은 팀과 개인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사진=SBS)

 

봉중근의 아버지 봉동식 씨는 2012년 아들의 시구를 받은 2개월 뒤 별세 했다. 그는 생전 인터뷰에서 우리 아들을 2009WBC에서 안중근으로 불러줘서 많이 뿌듯했다고 말했다.

 

봉동식씨 뿐만 아니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그 시절 한국야구의 자존심을 지켜줬던 봉열사를 기억한다. 그는 불과 2년전만 해도 프로야구 올스타전에서 역대 최다득표를 했던 선수다. 봉중근, 그가 다시 부활하는 날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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