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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적 기법

스티븐 킹과 아이디어를 바라보는 시선

 

(사진=StephenKing.com)

 

 

[스티븐 킹의 명저 유혹하는 글쓰기의 유용성]

[‘아이디어의 착상’ < ‘아이디어의 판단’]

 

‘Bullshit’

 

책의 첫 문장부터 거장은 욕을 꺼낸다.

 

Bullshit은 영한사전을 보면 비교적 점잖게 헛소리로 해석한다. 그러나 미드나 영화를 본 사람들은 이 단어가 주로 어떻게 쓰이는 지를 안다. Bullshit은 개소리다. 심하게는 C-BAL로도 영화 자막에 쓰인다. 심지어는 세종대왕도 썼다는 지랄하고 자빠졌네로도 맥락에 따라 사용 강도를 높인다.

 

이 거장의 이름은 스티븐 킹, 책 제목은 <유혹하는 글쓰기>(김진준 옮김, 김영사)이다. 두 번째 머리말 첫 문장은 정확하게 이렇게 시작한다.

 

글쓰기에 대한 책에는 대개 헛소리가 가득하다. 그래서 이 책은 오히려 짧다.”

 

싱크탱커는 킹의 이 머리말을 읽고 이 남자의 자신감을 읽을 수 있었다. 전 세계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스토리의 마술사가 글쓰기에 대한 책에 헛소리가 가득하다고 외친 것은 앞으로 서술해 나갈 자기 책, 자기 창작 세계에 대한 강력한 확신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소리다. 매우 인상적이었다.

 

혹시나 번역가가 오버한 것은 아니었을까. 그래서 원서(On writing)를 찾아봤다. 하지만 아래의 사진과 같이 번역은 정확했다. Bullshit이 정말로 나왔다.

 

(사진= <창조의 재료탱크>)

 

저자가 이렇게 책에 대한 확신으로 첫 문장을 끌어가면 독자는 자동으로 빨려 들어가게 돼 있다. 나는 그렇게 이 책에 유혹됐다. 시작부터 킹은 이처럼 전형적인 크리에이터의 기법을 썼다.

 

킹은 허언증의 남자가 아니었다. 이 책은 글쓰기에 대한 모든 것을 말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쓸데없는 뼈를 다 발라내고 필요한 살만 떠먹여주기 때문에 다 읽으면 뭔가 킹이 말한 대로 글을 쓰고 싶게 만드는 기묘한 마력에 사로잡히게 된다. <유혹하는 글쓰기>가 국내에서 2002년 발행된 뒤 5년 만에 17쇄를 발행한 베스트셀러가 된 데에는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이 책은 발간된 지 오래됐지만 가끔씩 다시 볼 정도로 볼 때마다 새롭게 뇌를 자극한다. 이력서, 연장통, 창작론으로 이어지는 구성안에서 흥미롭게 펼쳐지는 구체적인 문장 쓰기의 기술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서술했기 때문에 <창조의 재료탱크>에서는 언급하지 않겠다.

 

3가지 새롭게 느낀 점 가운데 눈길을 끌었던 첫 번째는 과연 킹은 어디서 창조의 재료를 얻어왔냐는 점이었다. 그의 유니크한 어린 시절이 흥미로웠다.

 

킹이 1년 동안 1톤 분량의 만화책을 읽어치웠다는 것이 남다르게 다가왔다. 많은 작가들이 어린 시절 많은 책을 읽었다고 말하는 반면, 킹은 만화책을 언급했다. 만화 속 그림과 이미지가 그의 상상력 배양에 더 도움을 주지는 않았을까.

 

(사진=StephenKing.com)

 

좋은 만화책은 정말로 깊게 머릿속에 잔상을 남긴다는 것을 나는 과거 어린 시절 읽었던 고우영 화백의 만화 <삼국지>(어린 학생들에게 적극 추천하는 책이다.)를 통해 체험했다.

 

우연히 지인과 삼국지에 대한 대화를 나누게 됐는데, 나는 적벽대전을 중심으로 제갈량과 주유, 조조와 관우가 나눈 장면과 대화 내용을 지인에게 말했다. 그런데 지인이 다소 놀랐다. 어떻게 그렇게 자세하고 생생하게 내용을 기억하느냐는 것이었다.

 

만화의 힘 말고는 다른 것이 없었다. 영화나 드라마 삼국지와는 효과가 달랐다. 움직이지 않는 고정된 만화의 그림 안에서 위트와 재미를 통해 형성된 삼국지의 수많은 여백은 나로 인해 채워졌고 그래서 더 각인됐다.  

 

어린 시절 만화책의 경험을 겪고 성인이 된 킹은 책에서 역시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책을 반드시 소지한다는 것이 이채로웠던 두 번째 내용이었다.

 

독서는 작가의 창조적인 삶에서 핵심적인 부분이다. 나는 어디로 가든지 반드시 책 한 권을 들고 다니는데, 그러다 보면 책을 읽을 기회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 (P179)

 

비슷한 것을 경험했다. 과거 <1년에 50권 책 읽기> 프로젝트를 계획하고 몇 해 동안 한 적이 있었는데, 1년이 56주 정도 되니까 대략 일주일에 한 권 정도는 읽어야 가능하다. 역시나 게으름과 각종 핑계 때문에 쉽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킹처럼 의식적으로 책을 어떻게든 가지고 다니니까 정말로 책을 읽을 수밖에 없는 상황과 시간이 은근히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 단순히 책의 내용뿐만 아니라, 책의 텍스트 자체가 일상 안에서 다양한 생각의 파생효과를 일으킨다는 것을 느끼게 됐다.

 

마지막으로 가장 특별했던 세 번째 내용은 킹이 아이디어를 대하는 자세였다. 아래의 내용이 그것이다.

 

(사진= <창조의 재료탱크>)

 

창조가 합성이라는 생각은 변함없이 모든 크리에이터들의 공통된 시각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아이디어의 착상보다 어떤 아이디어가 좋은 아이디어라고 재빨리 알아차리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 가장 인상적이다.

 

아이디어는 보통 떠올리는 것으로 생각한다. 떠오르게 되면 무언가라도 되는 양 호들갑을 떨고 흥분하게 된다. 그런데 킹은 여기서 냉정하게 숨을 골랐다. 떠올린 아이디어를 다시 외부에서 자기 시선으로 바라보는 행위를 강조했다. 21세기 정보의 홍수 시대에서 이런 태도는 정말로 필요함을 체감한다.

 

실제로 스마트 IT 시대에 아이디어가 없다는 것은 사실 잘못됐다. 아이디어는 요즘에 떠올리기 보단 클릭이나 리딩의 대상이다. 찾으면 얼마든지 있다. 다만 찾다 끝난다는 것이 문제다. 무엇이 진정한 아이디어인지 인식하기 힘들 정도로 현대인들은 빅데이터에 함몰돼 있다.

 

킹은 그래서 시대를 앞서갔다. 수많은 작품을 창작하고 성공한 킹의 아이디어가 어찌 수많은 작품 수만큼 똑같았을까.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훨씬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떠올리고 모은 창조의 재료와 무수한 아이디어에 진정한 아이디어라는 언어를 붙일 수 있는 지를 우선적으로 선별하고 영민하게 판단했다. ‘스릴러의 거장’은 그렇게 탄생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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