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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에이터

'7등 감독' 김기태 감독이 박수 받아야 할 이유

 

(사진 출처 및 권리= KBSNsports, KBO)

 

[‘크리에이터김기태 감독의 창의적 야구]

[팀을 위해 자기를 희생하는 리더의 야구]

 

그는 최고의 타자였다.

 

동시에 새로움을 창조하는 크리에이터였다. 아니, 크리에이터가 돼야만 했다.

 

장종훈 코치는 그의 현역 시절 놀라운 배트 스피드에 대해 1루에서 보면 움찔거릴 정도로 대단했다고 기억했다. 하지만 그는 약한 팀을 홀로 이끄는 4번 타자였다. 상대팀 투수는 위기가 오면 쌍방울 레이더스의 이 4번 타자를 습관적으로 걸렀다. 그는 상대의 전략에 어떻게든 살아남고 대응해야 했다. 중심타자로서 혼자 팀을 이끄는 방법을 늘 생각하고 고민해야 했다.

 

야구에서 10번 가운데 3번 잘 치면 좋은 타자로 평가받는다. 그래서 그는 이 3번을 언제, 어떻게 경기장에서 펼쳐야 할지에 대해 숙고했다. 그래서 남들이 좀처럼 생각하지 못하는 자기만의 전략을 만들어냈다. 고의로 타석에서 죽는 것이었다.

 

그는 현역 시절 어느 경기에서 당대 최고의 투수인 해태 조계현(KIA 코치)을 만났다. 그리고 타석 초반 삼진을 당했다. 하지만 의도된 삼진이었다. 계산된 스탠딩 삼진이었다. 경기 후반 마음을 놓은 조계현은 같은 공을 던지다 그에게 3점 홈런을 얻어맞고 무너졌다. 조계현은 시간이 지나고 이 타자에 대해 그는 찬스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머리를 쓰는 스타일이었다고 회고했다.

 

이 남자의 이름은 김기태. 그는 선수 시절 많은 동료, ·후배들의 귀감이 됐다. 따르고 싶은 형, 같이 하고 싶은 남자라는 야구계의 평가가 이어졌다. 그래서 그와 아무런 개인적 연고가 없던 김경문 감독(NC감독)은 올림픽 대표팀 감독 시절 김기태를 코치로 불렀다. 순전히 인간적인 평가 때문이 이유였다.

 

요미우리 시절 김기태를 코치로 초청한 이승엽, 단순 인스트럭터에서 그를 정식 타격 코치로 승격시킨 자존심 강한 요미우리 역시 김기태에 대한 평가는 다르지 않았다. 그를 접한 사람들은 김기태에게는 보스와 리더의 피가 흐르고 있다고 한 목소리로 말했다.

 

자연스럽게 2012LG 트윈스의 감독이 됐다. ‘뉴 리더의 출현이었다. 2012912일 잠실 SK전에서 9회 상대의 투수 교체 방식에 불만을 나타내며 감독 김기태는 투수 신동훈을 타자로 내보냈다. 신동훈은 프로 데뷔전을 투수가 아닌 타자로 나서야만 했다. 리더로서의 뚝심과 자기 확신에 대한 웅변이었다. 감독으로서 보여준 첫 번째 파격이었지만 감정적 대응이라는 비난에 후폭풍은 거셌다.

 

그럼에도 감독 김기태의 자기 확신은 이후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남들이 볼 때는 기행이자 돌출 행동으로 나타났다. 탁발승이라는 비웃음을 당하면서도 팀 분위기를 위해 감독 스스로 삭발을 했다. 하나의 머리카락조차 남기지 않는, 선수조차 하기 힘든 100% 완벽한 삭발이었다.

 

(사진 출처 및 권리= KBSNsports, KBO)

 

시간이 지나고 사람들의 비웃음은 환호로 바뀌었다. 김기태는 결국 2013년 만년 하위팀이었던 LG를 무려 11년 만에 가을야구로 이끌었다. 하지만 곧바로 이듬해 시즌 17경기만 치른 상황에서 성적 부진을 이유로 돌연 자진사퇴 한 것도 김기태스러웠다.

 

2015년 그는 KIA 타이거즈의 사령탑이 됐다. 그는 변함없었다. 심판 판정에 항의하며 그라운드에 스스로 넘어져 사람들에게 눕기태로 웃음을 주고, 패스트볼을 대비해 3루수를 포수 뒤편에 세우는 파격적인 수비 시프트로 메이저리그의 가십이 됐다.

 

그런데 그의 팀은 이후 달라졌다. 선수들은 더그아웃에서 감독이 승리를 위해 고민하다 야구 규칙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위기를 어떻게든 넘어서려했던 것을, 또 차가운 바닥에 몸을 내던지며 직접 희생하는 것을, 그렇게 또 퇴장당하고 해외 토픽이 되는 것을 지켜봤다.

 

김다원, 이은총, 김민우, 이홍구. 이들은 팬들에게 인지도가 약하고 주목받지 선수들이었다. 김기태는 새로운 얼굴들에게 기회를 줬고, 그들은 역전타와 대타 만루 홈런 등으로 보답했다. 박정수는 프로에 데뷔하자마자 선발 투수로 나서는 주인공이 됐고, 팀의 베테랑 중심타자 나지완은 7년 만에 1번 타자라는 깜짝 임무를 수행했다. 그렇게 KIA 야구는 5월 초반 10번의 드라마틱한 역전승을 거두며 포기를 모르는 야구의 바람을 일으키기도 했다.

 

(사진 출처 및 권리= YTN, KBO, Edit By ThinkTanker)

 

감독 김기태는 늘 새로운 야구를 했지만 선수에 대한 존중과 고마움도 잊지 않았다. 지난 81일 한화전을 승리한 뒤 그는 마무리 투수로 3이닝을 힘들게 책임진 윤석민을 향해 경기가 끝나고 목례를 했다.

 

위계질서가 강한 한국 야구판이다. 그런데 감독이 선수에게 모자를 벗고 고개를 숙이는 야구사 초유의 장면을 아무렇지도 않게 연출했다. 그는 경기가 끝나고 “()석민이에게 고맙고 또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의 기행은 단순한 깜짝쇼가 아니었다. 그가 지금까지 보여준 파격 행위 가운데 가장 놀라웠던 장면은 지난 89NC전이었다. 그는 팀이 5-2로 앞선 4회초 13루에서 타자 박찬호에게 풀카운트에서 스퀴즈 작전을 지시해 추가점을 만들어냈다.

 

풀카운트에서 스퀴즈 번트란 사실 존재할 수 없다. 나와서도 안 된다. 스리번트를 하다 실패하면 그대로 아웃이다. 그럼에도 그는 자기 야구를 결정적인 승부처에서 풀어냈고 이를 발판으로 팀의 9-2 대승을 이끌었다.

 

(사진 출처 및 권리= SBSsports, KBO)

 

이 장면은 그의 기행 가운데 가장 화제를 모으지 못했던 기행이었다. 하지만 전 세계 어느 감독도 하지 못한 상대의 허를 찌르는 가장 창조적인 야구였다. 당시 이 방송을 해설했던 SBS SPORTS 이종열 해설위원은 제가 평생 야구를 하면서 풀카운트에서 스퀴즈는 처음 본다며 놀라워했다.

 

2015106, 올 시즌 프로야구의 마지막 경기인 720번째 경기이자 KIALG의 최종전이 열렸다. KIA는 이 경기에서 패했다. 포스트시즌에도 이미 진출하지 못했다.

 

1등만을 기억하는 세상에서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7등이 됐다. 하지만 화면에 잠시 비춘 감독 김기태의 얼굴은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한 듯 편안하게 보였다.

 

혹자는 김기태의 기행을 행위 예술이라고도 했다. 하지만 야구가 고맙게도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옷을 갈아입으면 이상했던 수비가 혁신적인 수비도 될 수 있고 깜짝쇼로만 보인 돌출행동이 창의적인 야구도 될 수도 있다.

 

리더가 된 그의 가슴에는 고의로 삼진을 당했던 그 시절 쌍방울의 김기태처럼 리더로서 어떻게든 팀에 보탬이 되고자 했던 창의적인 그 무언가가 담겨 있었는지도 모른다. 창조란 이렇게 원래 남이 보지 못하는 것을 행하는 것이다.

 

(사진 출처 및 권리= KIA 타이커즈)

 

올 시즌 프로야구는 5년 연속 정규시즌을 우승한 감독, 만년 꼴찌팀을 최하위에서 벗어나게 한 감독, 신생팀을 이끌고 선전한 감독, 새롭게 팀을 맡아 포스트시즌에 진출시킨 박수를 받을 감독들이 있었다. 하지만 싱크탱커가 가장 큰 박수를 보내고 싶은 감독은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자기를 희생하며 자신 있게 창의적인 야구를 펼친 7등 감독이었다.

 

그는 마지막 최종전이 끝난 뒤 그라운드에서 마이크를 잡고 팬들에게 감사의 소감을 말하며 자신의 옆에 있던 호랑이 탈을 쓴 KIA의 마스코트에게 까지도 고생했다며 고마움의 인사를 전했다. 그는 그런 남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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