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뉴욕 메츠.com)
[ML 새역사 PS 6경기 연속 홈런, 가을의 전설을 쓰다]
[머피는 어떻게 ‘머피의 법칙’을 넘어섰나]
소풍 가는데 비가 온다.
아직은 참을 수 있다. 그런데 오랜만에 동네 목욕탕을 갔는데 꼭 정기 휴일일 때부터 뭔가 심상치 않다. DJ Doc가 그렇게 말했다. 그들은 1995년 2집 수록곡 <머피의 법칙>에서 “내가 마음에 들어 하는 여자들은 꼭 내 친구의 여자 친구”라고 노래했다.
1949년 미국의 공군대위 에드워드 머피는 다수가 모여도 꼭 실패하는 그 한 가지 방법론을 반드시 고르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고, 유사한 상황은 사회과학용어 ‘머피의 법칙(Murphy's law)’으로 쓰이게 됐다. 하지만 DJ Doc의 정의가 귀에 가장 잘 들어온다. “세상 모든 게 다 내 뜻과 어긋나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이 바로 머피의 법칙이다.
야구에도 대표적인 ‘머피의 법칙’이 있다. ‘파울 홈런 뒤에는 아웃’이라는 법칙이다. 물론 이것을 통계로 낼 수 있는 세이버 매트리션은 전 세계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야구팬이라면 대부분 인식한다.
파울 홈런 이후 타자는 소위 김이 샌다. 넘어갈 줄 알았는데 폴대를 살짝 빗겨가 가슴이 쓰리다. 반면 투수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린다. 이후 경계심을 갖고 비슷한 구질과 코스에 공을 던지지 않는다. 타자 역시 파울 홈런과 똑같은 스윙을 재차 하기 힘들다. 또 홈런 욕심에 스윙에 힘이 들어가고 변한 투타게임에 다시 적응하기 어렵다. 최소한 홈런은 안 나온다. 결과는 대부분 아웃이다.
타자로서는 머피의 법칙이다. 정확한 임팩트에 공이 걸렸다고 느끼고 넘어갔다고 봤는데, 파울이고 또 아웃된다. 세상 모든 게 내 뜻과 어긋나 나를 힘들게 한다.
그러나 최근 메이저리그에서 ‘베이스볼 머피의 법칙’의 깨진 놀라운 장면이 나왔다. 주인공은 연일 화제가 되고 있는 다니엘 머피(뉴욕 메츠)다. ‘머피의 법칙’은 포스트시즌에서 타 팀에게는 극복해야 할 법칙이 됐지만, 머피에게는 자신의 이름과 같은 음운의 이 달갑지 않은 법칙을 스스로 넘어서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뉴욕 메츠와 시카고 컵스의 내셔널리그 챔피언십시리즈 2차전에서 메츠가 1-0으로 앞선 1회말 무사 2루에서 머피는 컵스의 에이스 제이크 아리에타를 상대로 2점 홈런을 때려냈다.
이 홈런은 근래 매우 보기 드문 만화 같은 홈런이었다. 첫 번째 이유는 말도 안 되는 스윙 때문이다. 아래 홈런 사진을 보자. 스윙 자세가 제대로 무너져있다. 코스는 또 어떤가. 오른쪽 박스로 표시된 홈런이 나온 노란 컨택 지점을 보자. 완벽한 볼이다.
(사진 출처 및 권리= tbs, MLB)
(사진 출처 및 권리= tbs, MLB)
물론 메이저리거라면 배드볼 히터도 돼야 한다. 하지만 코스도 코스 나름이다. 이건 완전히 스트라이크존 밑으로 최소 공 3개는 빠지는, 치기도 힘들고 쳐서는 안 되는 볼이다. 그것도 아리에타가 볼카운트 1B 2S에서 볼을 던지기 위해 낙폭을 크게 떨어뜨린 브레이킹 볼이었다.
잘못 던진 공이 아니다. 잘못 맞으면 파울, 잘 맞아도 외야 플라이로 끝날 공이다. 그러나 머피는 이런 공을 극단적인 어퍼 스윙으로 퍼올려 홈런을 만들어냈다. 도대체 그는 무슨 생각으로 타석에 있었던 걸까.
두 번째 이유는 홈런이 나온 상황이다. 이미 머피는 2구째 아리에타의 낮은쪽 브레이킹 볼을 끌어당겨 파울 홈런을 쳤다. 상대는 올시즌 사이영상 유력후보이자 메이저리그 최고의 투수 천하의 아리에타였다. 그는 올해 22승(6패)을 거두었으며 리글리필드 평균자책점이 0.75였다.
이런 투수를 상대로 파울 홈런을 쳤다면 이후 시나리오는 ‘머피의 법칙’이 정답이다. 하지만 머피는 모두를 비웃으며 4구째 더 낮게 떨어지는 유사한 공을 공략해 2구째 파울 홈런이 나온 거의 똑같은 폴대 페어 지점에 홈런 공을 떨어뜨렸다. 도대체 그는 무슨 생각으로 타석에 있었던 걸까.
(사진= 뉴욕 메츠.com)
머피는 올해 메이저리그 포스트시즌에서 역대급 ‘가을의 전설’, ‘미친 사나이’, ‘기적의 머피’로 떠오르고 있다. 이미 포스트시즌 최다 연속 홈런(6개) 신기록을 세우며 메이저리그 역사를 새로 썼다. 올 포스트시즌 9경기 성적은 4할2푼1리(38타수 16안타), 7홈런, 11타점으로 안타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무려 7개가 홈런이다.
어떤 곳에 던져도 다 친다. 위의 오른쪽 사진은 5개의 홈런이 터진 코스를 보여주는데 우측 상단을 때려낸 6번째 홈런을 포함하면 모든 지점이 가히 지뢰밭이다.
현지 중계진과 메츠의 감독 테리 콜린스는 “믿을 수 없다는 언빌리버블(Unbelievable)을 연발했다.” 선수들의 극찬도 잇따르고 있다. 팀 동료 마이클 커다이어는 머피의 2차전 홈런을 보고 “완전히 미친 야구를 하고 있다. 이건 말이 안 된다”고 말했다. 상대팀 컵스의 포수 데이비드 로스 역시 “머피는 모든 실투를 놓치지 않는다. 놀라운 불방망이다”라고 덧붙였다.
그런데 머피의 최근 활약을 보면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그는 원래 홈런 타자가 아니다. 프로 7년간 통산 62홈런, 올해도 14개에 그쳤다. 특히 좌타자인 머피는 올해 162게임에 출장해 좌투수를 상대로 단 한 개의 홈런을 기록했는데, 포스트시즌에서는 클레이튼 커쇼, 존 레스터 등 정상급 좌투수들을 공략해 벌써 3개의 홈런을 쳤다. 파워에 비해 상대적으로 정확한 타자로는 알려져 있지만 통산 타율 2할8푼8리에서 보듯 그렇다고 뛰어난 교타자도 아니다.
지난해 머피는 올스타에 처음 뽑히기도 했지만 체이스 어틀리의 백업 선수로 이름을 올렸다. 한 마디로 스타라고 하기는 힘든, 메이저리그의 주전 라인업에 포함되는 평균적인 그저 그런 선수다.
그의 야구 인생이 그랬다. ‘평균과 그저 그럼’의 연속이었다. 머피는 주목받지 못한 선수였다. 머피의 아버지 톰 머피는 어린 선수시절부터 그의 아들을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대부분이 평균이었다. 수비, 주루, 피칭 모두 대단한 수준은 아니었다. 다만, 그중에서도 공을 컨택하는 능력은 좋았다.”
메츠 역시 2006년 잭슨빌 대학 출신의 머피를 기대치가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13라운드에 드래프트했다. 잘하면 메이저리그까지 올라오는데 4~5년, 이 과정을 포기하면 다시 대학으로 돌아가 학위를 마칠 것으로 예상했다.
머피는 스스로를 수용했다. “인생을 살다보면 후퇴를 받아들여야 할 때가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모든 것이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앞으로의 승리를 위한 행동만 필요할 뿐이다.”
이후 그는 개인 기록의 영광은 생각하지 않았다. 아래 추가적인 그 당시 인터뷰 원문 내용(mlb.com)을 보면 머피가 어떤 생각으로 야구를 했는지를 알 수 있다.
"I want to play well and help this team win. I'm not worried about my average, home runs or RBI. 'W's': that's it.”
철저히 팀 승리와 야구만 생각하다보니 그는 먹는 것, 자는 것 이외에 타격에만 몰두했다. 마이너리그 시절 팀 동료였던 닉 에반스는 “그를 말리지 않으면 하루 종일 야구 이야기만 했을 것이다. TV 야구 중계를 보면서도 피칭 로케이션의 특정 지점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 했다”고 떠올렸다.
그 시기에 머피는 흔치 않은 타격 이론가로 거듭났다. 그는 결국 모두의 예상을 뒤로하고 2년 만에 빅리그에 진입했다.
(사진 출처 및 권리= tbs, MLB)
머피가 기울인 구체적인 타격 기술 발전의 노력은 잭슨빌 대학의 감독 테리 알렉산더의 증언으로 확인할 수 있다.
머피는 연습 시간 3시간 전부터 가장 먼저 나오는 선수였다. 15분간 배트를 만지작거린 뒤 피칭머신에서 나오는 공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어떠한 스윙도 하지 않은 채 오로지 공이 어떻게 타석까지 도달하는지 움직임만 바라봤다.
이어진 타격 연습은 극단적인 포인트 타격이 이루어졌다. 특정 지점에 오는 공을 집중적으로 반복 타격하고 또 동시에 야구장 특정 지점으로 타구를 보내는 훈련이었다.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공을 보내지 않으면 머피는 야구장을 떠나지 않았다. 영화나 게임 속에나 나오는 설정이었지만 그는 묵묵히 수행해냈다. 좌타자임에도 라인 드라이브로 뻗어나가 왼쪽 담장을 넘기는 홈런 타구가 나올 때까지 연습을 이어갔고 이 노력은 현재에도 이어지고 있다.
“머피는 타석에서 항상 공마다 타격 계획을 설정하고 타석에 들어섰다. 투수가 던진 지점을 미세하게 분석하는 기술을 연습했다. 그는 타격을 하나의 과학 행위로 받아들이기를 원했다.” 알렉산더는 머피가 은퇴한 이후에도 뛰어난 타격 코치가 될 거라는 전망을 덧붙였다.
머피가 아리에타를 상대로 뽑은 그 만화 같은 홈런은 얻어 걸린 스윙도 아니었고 우연도 아니었다. 6경기 연속 홈런 역시 그냥 나온 것은 아니었다. 10년간 기울인 자기만의 타격 연습과 노력은 2015년 가을, 그를 ‘미친 남자’로 만들었지만 그 '미침'에는 타당한 이유가 있었다.
머피는 지난 2009년 CBSsports와의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의견을 밝힌 적이 있다.
“내가 유명하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다. 아직 그런 명성을 얻지 않았다는 것도 안다. 그러나 나는 잡히지 않은 레이더망의 하늘을 비행하고 있다. 언젠가는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하고 싶다.”
그 언젠가가 정말로 현실로 다가왔다. 그는 이제 월드시리즈에 진출했다. 이 과정에서 머피는 하나의 법칙을 무너뜨렸다. 세상 모든 게 내 뜻과 어긋나 스스로를 힘들게 한다는 법칙이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원하는 공을 원하는 결과로 나타내 보일 수 있다는 신기의 타격을 선보이며 그렇게 ‘머피의 법칙’을 무너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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