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출처 및 권리= SBS & KBO)
[역대급 황당 실책으로 경기 내준 두산]
[서로를 압도하지 못하는 ‘불완전 한국시리즈’ 될까]
한명재 캐스터의 샤우팅은 정확했다.
“보고 있지만 믿을 수 없는 순간입니다!”
이지영(삼성)의 타구는 크게 바운드를 튀며 투수 이현승(두산)의 글러브로 들어갔다. 평범한 투수 땅볼이었다.
누가 봐도 아웃이었고, 누가 봐도 공수 교대였다. 그런데 5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한 희귀한 장면이 가장 중요한 한국시리즈에서 벌어졌다. 공식 기록은 공을 제대로 포구하지 못한 두산 1루수 오재일의 실책이었다. 하지만 투수 이현승의 송구 방향도 썩 좋지는 못했다. 사실상 실책의 공동정범이었다.
삼성의 주자 2명이 무혈입성하며 경기는 9-8 삼성의 리드로 뒤집어졌다. 결국 최종 승부는 이 점수 그대로 굳어졌다.
26일 대구구장에서 열린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 삼성이 두산에 9-8로 승리했다. 두산으로서는 너무나 뼈아픈 패배를 당했다. 초반 5-0, 중반 8-4의 리드를 지키지 못하고 경기 후반 역전패를 허용했다. 포스트시즌부터 이어온 상승 흐름에 제동이 걸렸다. 삼성은 1차전 초반 경기 감각 둔화로 대량 실점하며 흐름을 완전히 내줬지만 행운의 역전승을 거두었다.
한국시리즈 1차전은 향후 시리즈, 그리고 현재 양 팀 전력의 현주소가 어떤지를 극명하게 압축한 미니게임이 됐다.
1차전에서 양 팀은 서로를 압도하지 못했다. 서로를 압도하지 못한다는 의미는 예년의 한국시리즈처럼 각 팀이 가진 전력의 강점 대결로 박빙의 승부를 펼친다는 뜻과는 사뭇 다르다. 각 팀의 약점이 너무나 명확하게 드러나 오히려 약점을 누가 먼저 드러내고 늦게 무너질 것인가에 더욱 가깝다. 똑같이 전력 누수를 안고 있는 ‘불완전 한국시리즈’가 된 것이다.
(사진 출처 및 권리= SBS & KBO)
가장 크게 다가오는 부분은 역시 마운드의 허리와 뒷문이다. 1차전에서 양 팀은 모두 상대 타선을 확실하게 압도할 만한 구원 투수들이 없었다.
삼성은 알려진 대로 필승조 안지만과 임창용이 없다. 삼성이 기대를 걸었던 박근홍과 심창민은 1차전에서 실망을 주었다. 백정현이 1.1이닝을 무실점으로 던지며 승리투수가 됐지만 오늘과 달리 압박감이 심한 상황에서 향후 어떤 피칭을 할지는 더 두고 봐야 한다.
삼성이 9-8로 앞선 8회초 1사 1,3루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김현수를 극적인 3구 삼진으로 잡으며 위기를 넘어선 차우찬은 올 시즌 삼진왕 답게 구위는 위력적이었다. 하지만 마무리 투수로 믿기 쓰기에는 제구력 불안이라는 위험성을 드러냈다.
차우찬은 9회초 1사 이후 로메로부터 마지막 고영민까지 3타자 연속으로 갑자기 제구가 심하게 흔들렸다. 연속해서 볼이 7개가 들어오는 등 모두 볼카운트가 3B 1S까지 몰리며 볼넷 1개를 포함해 힘겹게 투구를 이어갔다.
빠른 공의 구위로 위기를 가까스로 넘어섰지만 마무리 투수가 제구력이 흔들린다는 것은 삼성으로는 시리즈 내내 불안 요소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안지만이 빠져 나간 자리를 대신할 오른손 정통파 파워 피처가 없다는 것도 경기 후반 삼성이 허경민과 민병헌을 잡을 승부 포인트에서 투수 기용에 주저함을 갖게 한다.
두산의 상황도 심각하다. 일단 구원 투수 쪽에서 김태형 감독의 믿음이 이현승에게만 몰려있다는 것이 눈길을 끈다.
1차전 두산이 8-7로 앞선 7회말 2사 1루에서 삼성 채태인이 두산의 3번째 투수 노경은의 두 번째 공을 크게 헛스윙하자 갑자기 김태형 감독은 볼카운트 1B 1S에서 투수를 마무리 이현승으로 조기 교체했다. 앞서 노경은이 이승엽을 상대로 한 공이 큰 외야플라이가 나온 것을 의식했을까.
이 투수 교체는 결과적으로는 패착이 됐다. 조기 투입된 이현승은 나오자마자 채태인에게 안타를 맞았고 불안한 제구 속에 결정적인 폭투로 1,2루에 있던 주자를 2,3루로 만들었다. 결국 그 두 명의 주자가 모두 홈을 밟았다.
(사진 출처 및 권리= SBS & KBO)
야구에서 마무리 투수가 적은 타자를 상대해야 하는 이유는 간명하다. 상대 타자들의 눈에 공에 대한 적응력을 주지 않기 위해서다. 특히 단기전은 시리즈가 연이어 이어진다는 점에서 경기 후반 상대 타자들의 눈에 또 만나게 될 마무리 투수의 공을 최소로 노출하는 것이 유리하다.
이점에서 이현승은 1차전에서 소득 없는 피칭을 하며 체력을 소모하고 전력만 노출했다. 이날 29개의 공을 던진 것도 좋지 않았지만, 삼성의 중심타선을 포함해 거의 타선의 한 사이클인 7타자나 상대했다는 것이 더 좋지 않았다. 이현승은 힘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마무리 투수가 아니다. 그래서 굳이 삼성의 여러 타자들에게 투구 패턴을 많이 보여줄 필요가 없다.
여기에 두산의 딜레마가 있다. 김태형 감독은 준플레이오프부터 한국시리즈 1차전까지 함덕주와 노경은, 이현승 말고는 다른 구원 투수의 기용은 거의 하지 않았다. 그런데 함덕주는 아직 큰 무대를 이겨낼 힘과 자신감이 부족한 피칭을 보여줬고, 노경은 또한 1차전에서 보듯 감독의 신뢰를 받지 못했다.
선발이 무조건 길게 끌어주고 미들맨 없이 이현승이 나와야 하는 경기 흐름이 두산의 승리 시나리오인데, 이 과정에서 이현승은 ‘1이닝 플러스 알파’ 마무리 투수가 될 가능성이 높다. 동시에 위험성도 높아진다는 얘기다. 7회에 등판한 이현승은 8회말 피안타 1개를 포함해 의식적으로 낮은 제구에 신경 쓰다 폭투를 2개나 던졌다.
추가적으로 두산에게는 삼성의 차우찬처럼 경기 후반 위기에서 어떠한 출루도 허용하지 않은 삼진 능력으로 타자를 윽박지를 만한 투수가 없다는 것도 마이너스 요소다.
(사진 출처 및 권리= SBS & KBO)
타선은 상대 투수에 따라 기복이 있기 때문에 아직은 섣불리 말할 수 없다. 다만 1차전 2번 타순과 4번 타순에서 두산은 삼성을 완전히 압도했다.
삼성의 2번 타자 박해민은 번트 실패를 비롯해 4회말 삼성이 6-4로 추격한 2사 1,2루 승부처에서 좌익수 플라이로 물러나 고비를 넘지 못했다. 두산의 유희관이 크게 흔들리고 있었기 때문에 만약 박해민이 출루했다면 다음 타자 오른손 거포 나바로를 의식해 두산 벤치는 유희관을 조기에 교체할 가능성이 있었다.
4번 타자 최형우는 팀이 9점을 뽑는 과정에서 단 한 차례도 출루하지 못하고 5타수 무안타로 돌아섰다. 떨어지는 유인구에 쉽게 방망이가 나왔고 타이밍도 맞지 않았다.
반면 두산의 2번 타자 허경민은 1차전에서 홈런 1개를 포함해 4안타 경기를 하며 펄펄 날았다. 매안타가 거의 완벽한 타이밍에서 맞은 깨끗한 안타였으며 어떤 투수가 나와도 칠 수 있다는 자신감이 타석에 흘렀다. 이번 시리즈 ‘미친 타자’의 예감을 심어주었다.
김현수 역시 8회초 결정적인 삼진을 당하긴 했지만 이날 3안타를 쳐내 전체적인 모습은 삼성에 압박감을 크게 주는 타자의 이미지가 강했다.
삼성은 이날 박석민과 나바로의 홈런 2개가 터지며 우여곡절 끝에 승리했지만, 줄곧 두산에 밀리는 경기 흐름으로 고전했다. 4회말과 7회말 두산이 저지른 두 개의 결정적 실책이 없었다면 승리를 장담하기 힘들었다.
이제 1차전이 끝났을 뿐이다. 그러나 1차전 압축 게임을 통해 한 가지는 명확해졌다. 기존의 한국시리즈는 선발투수가 5회를 버텨주면 강한 미들맨들을 통해 승부를 틀어쥐는 흐름의 시리즈가 보통이었다.
2015 한국시리즈는 다르다. 어떻게든 미들맨들이 나오는 것을 막고 최소 미들맨만으로 승리할 것인가가 열쇠가 됐다. 만약 이 흐름을 깨는 강력한 미들맨이 나온다면 그 선수는 최고의 구세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것이다.
시리즈가 빨리 끝나든, 장기전으로 가든, 이번 한국시리즈는 경기 마다 내용상의 치열함을 예고하고 있다. 그런데 모두 불완전한 전력을 갖춘 상태에서 강한 미들맨이 없는 양 팀의 야구를 바라보는 시선은 아직은 뭔가 어수선하고 혼돈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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