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출처 및 권리= MBC)
[잘 던지던 장원삼은 왜 5회초에 무너졌을까]
['삼성 천적' 위용 보여준 더스틴 니퍼트]
1968년 58.2이닝 무실점 기록을 포함, 메이저리그 통산 209승을 올렸던 명투수 돈 드라이스데일은 야구의 볼카운트와 관련해 유명한 명언을 남겼다.
“볼카운트 1B 2S에서는 투수가 이긴다. 볼카운트 2B 1S에서는 타자가 이긴다. 이 둘의 차이는 1인치에 있다.”
볼카운트 싸움은 가장 기본적인 투수와 타자의 대결이지만 야구의 모든 과정이 시작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그 중에서도 1B 2S와 2B 1S는 야구에서 자주 접할 수 있는 볼카운트다. 그러나 드라이스데일의 말처럼 둘의 차이는 매우 크다.
2B 1S는 투수에게 위기의 볼카운트다. 공의 여유가 1개 밖에 없다. 역으로 유인구를 유도할 수는 있지만 더 좋지 않은 3B 1S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 투수는 반드시 다음 공을 스트라이크로 던져야 한다. 타자에게는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그래서 베팅 찬스 카운트로 불린다.
반면 1B 2S는 타자에게 위기의 볼카운트다. 공의 여유가 1개 밖에 없다. 투수는 역으로 유인구를 던질 수 있지만 곧바로 삼진을 노리고 승부를 할 수도 있다. 타자는 적극적이면서도 또 소극적이어야 한다.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역으로 투수는 복잡해진 타자를 조급하게 만들 공 2개의 여유 옵션이 있다. 그래서 1B 2S는 투수에게 매우 유리하다.
(드라이스데일은 일찍이 볼카운트의 중요성을 인식했다.
사진= vintagecardprices.com)
그런데 드라이스데일은 이 둘의 차이가 불과 1인치라고 했다. 볼카운트 의미의 차이는 크지만 투수가 던지는 공의 로케이션 차이는 크지 않다는 것이다. 드라이스데일 자신이 투수였기 때문에 투수 입장에서 더욱 세밀하게 공의 위치에 신경 써야 한다는 점을 반영했을 것이다.
1인치는 2.54cm이다. 야구공의 직경은 7cm가 조금 넘는다. 즉, 공 반개 차이에도 못 미치는 투수의 로케이션에 따라 투타게임이 근본적으로 바뀔 수 있다는 뜻이다.
27일 열린 한국시리즈 2차전은 드라이스데일의 명언이 생각나게 한 경기였다. 이 경기는 두산이 삼성에 6-1로 승리해 시리즈 전적 1승 1패로 균형을 이뤘다.
내용은 두산의 낙승이었지만 삼성의 선발 투수 장원삼(32)은 경기 초반 쉽게 무너질 것 같지 않았다.
그는 이날 상남자였다. 외모부터 평소와 달랐다. 수염을 잔뜩 기른 모습으로 마운드에 섰다. 아주 빠른 공은 아니었다. 하지만 포수 미트에 묵직하게 들어오는 구위가 두산 타자들을 압도했다. 이미 한국시리즈 통산 11경기에서 3승 1패 평균자책점 1.80을 기록할 정도로 가을 사나이였다. 지난 5월 21일 두산 전에서도 6.2이닝 1실점(무자책)으로 호투하며 승리 투수가 됐는데 그때 상대의 패전 투수도 니퍼트였다. 그는 자신감이 넘쳐보였다.
여기에 2차전 대구구장 외야에서 내야로 강하게 부는 특이한 바람은 장타의 위험성을 크게 떨어뜨렸다. 3회초 2사 1루에서 박건우에게 던진 2구째 공을 던지고 장원삼은 홈런을 직감하고 고개를 떨구었다. 박건우 역시 스윙 이후 배트를 던질 정도로 홈런을 예감할 만한 좋은 타구였다. 하지만 바람의 영향으로 좌익수 플라이로 잡혔다. 장원삼은 더욱 자신감이 생겼다.
4회초 투구가 절정이었다. 공은 10개만 던졌다. 민병헌, 김현수, 양의지로 이어지는 두산의 클린업 트리오는 모두 볼카운트가 0B 2S나 1B 2S로 몰리며 삼자범퇴로 돌아섰다. 두산은 4회까지 장원삼에 1안타에 묶이며 2루를 밟지 못했다.
하지만 지나친 자신감이 독이 됐을까. 장원삼은 5회초 1사 이후 오재원에게 2루타를 맞고 2사 3루에 몰렸다. 여기까지는 괜찮았다. 한 타자만 잡으면 공수교대였다. 타석에서 맞은 9번 타자 김재호를 상대로도 볼카운트 1B 2S까지 끌고 갔다. 그러나 4번째 직구가 가운데 상단으로 몰리며 선취 적시타를 허용했다.
(민병헌에게 맞은 적시타는 장원삼에게 치명적이었다. 사진 출처 및 권리= MBC)
이어 허경민에게 다시 좌전 안타, 다음 타자 박건우에게도 볼카운트 1B 2S에서 다리에 맞고 굴절되는 내야 안타를 허용했다. 2사 만루. 장원삼으로서는 여기까지도 괜찮았다. 1실점으로 5회를 막으면 후반을 기대할 수 있었다.
그러나 후속 민병헌에게 다시 볼카운트 1B 2S에서 2타점 안타를 맞고 김현수에게도 우전 안타를 내주며 5회초에만 집중 6피안타에 4실점 했다. 두산의 선발 니퍼트를 감안하면 삼성에게는 따라가기 벅찬 점수였고 승부도 여기서 사실상 끝났다.
5회초 장원삼에게 어려움을 안겨준 실점으로 직결된 3안타에는 모두 공통점이 있었다. 볼카운트 1B 2S였다. 김재호, 박건우, 민병헌을 상대로 장원삼은 볼카운트 싸움에서 앞서나갔다. 하지만 결과는 모두 안타로 이어졌다.
(박건우의 타구에 다리를 맞는 불운도 장원삼에게는 악재였다. 사진 출처 및 권리= MBC)
무대는 한국시리즈였다. 약점을 분석하고 기회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한국시리즈였다. 두산의 타자들은 5회초 장원삼이 적극적으로 들어오는 승부 타이밍을 놓치지 않았지만 장원삼은 볼카운트 1B 2S에서 4번째 공에 신중하지 못했다. 빗맞은 타구 등 불운도 있었다.
그러나 제구가 되지 않았고 확실하게 공을 빼지 못했다. 영민한 볼배합이 요구되는 1인치 싸움이었다. 하지만 드라이스데일이 말한 투수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볼카운트 1B 2S는 장원삼에게 무기가 되지 못했다.
반면 두산의 선발 니퍼트는 ‘삼성 천적’으로서의 위용을 유감없이 보여줬다. 통산 삼성전 성적14승 2패 평균자책점 2.59, 대구구장 7승 무패 평균자책점 2.28의 기록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이날 승리로 니퍼트는 포스트시즌 4경기 3승 무패 평균자책점 0.60(30이닝 2실점)의 ‘언히터블’과 '니느님'을 이어나갔다. 두산은 니퍼트가 등판할 다음 경기에도 자신감을 갖게 됐다.
3회말 1사 3루의 위기에서 노련한 박한이를 삼진으로 잡고 넘어선 것이 호투의 발판이었다. 3루 주자는 발 빠른 김상수였다. 컨택 능력이 좋은 박한이가 공을 그라운드에 굴리기만 해도 실점이었다. 그러나 니퍼트는 결정적인 삼진으로 공의 인플레이 가능성 자체를 없애버렸다. 여기서 두산이 먼저 선취점을 내주었으면 1차전 충격 역전패 침체의 흐름이 이어졌을 중요한 승부 포인트였다.
MBC 허구연 해설위원이 말처럼 “삼성은 니퍼트가 내려가면 무언가...”를 기대했을지도 모른다. 삼성의 희망처럼 니퍼트가 내려가긴 했다. 그러나 7회를 버티며 매우 늦게 내려갔다. 6점이라는 여유 속에 두산은 윤명준, 이현호를 시험 가동하며 1차전에서 무리한 마무리 이현승도 아꼈다.
타선에서는 두산의 허경민이 연일 돋보였다. 1차전 4안타에 이어 2차전에서도 2안타를 치며 가을에 '미치는 남자'가 될 본격 시동을 걸었다. 1차전도 그랬지만 2차전도 두산의 중요한 득점 과정에는 언제나 허경민이 있었다. 5회초에도 허경민은 흔들리는 장원삼에게 압박을 가하는 안타를 쳐 다득점의 연결 고리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허경민을 막지 못하면 삼성 마운드는 앞으로 매우 괴롭게 됐다.
이런 허경민을 두산 김태형 감독은 1번 타자에 전진 배치해 성공을 거두었다. 이런건 순전히 감독의 감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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