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출처 및 권리: KBSN SPORTS, KBO, EDIT by ThinkTanker)
[‘리그의 품격’을 높인 이승엽의 세심함]
남 몰래 선행을 일삼더니 어쩌면 또 그렇게 좋은 행동만 골라서 하는 것일까.
이승엽(삼성 라이온즈)은 고개를 푹 숙이고 1루를 향했다. 그 장면의 일부만 편집해서 보면 4타수 무안타에 실망하며 범타로 물러나는 선수의 모습이었다.
아니었다. 초대형 홈런이었다. 사직구장 역대 7번째 장외 홈런이었다.
이승엽은 23일 사직구장에서 열린 롯데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 삼성이 9-3으로 앞선 8회 1사 1루서 롯데 5번째 투수 조현우의 2구째를 그대로 잡아 당겨 2점 홈런을 터뜨렸다. 비거리는 무려 140m였다.
승부가 삼성 쪽으로 기운 상황에서 친 홈런에 호들갑을 떠는 게 오히려 이상할 수는 있다. 하지만 나이 마흔 살에 친 사직구장 장외홈런이었다. 충분히 고무적이었고 그 흔한 주먹 한번 살짝 쥐거나 팔을 들고 장외 홈런 타구를 약간 바라보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었다.
이승엽은 400호 홈런을 쳤을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너무나 조용한 세리머니, 아니 일체의 홈런 세리머니는 없었다. 타구를 잠깐 보자마자 갑자기 죄 지은 사람처럼 고개를 땅에 떨구었다.
이날 경기 해설을 담당했던 KBS N SPORTS의 송진우 해설위원은 많은 사람들의 생각을 동시에 대변했다. 그는 이승엽을 극찬했다.
“보통 선수였다면 환호했을 것이다. 그러나 홈런 이후 타석에서 머리를 숙였다. 투수에 대한 약간의 미안함, 후배를 위해 배려한 것이다. 조그마한 것이지만 저런 행동 하나가 올스타 팬 투표에서 1위를 할 만큼 많은 팬들에게 사랑을 받는 것이다.”
송진우는 한국 프로야구 전설의 투수 출신이다. 누구보다도 투수의 마음을 잘 안다.
홈런은 투수를 초라하게 만든다. 홈런을 친 타자가 그라운드를 돌 때 가장 외로운 사람이기도 하다. 누구도 그 마음을 대신해주지 않는다. 어린 투수일수록 피홈런의 심리적 타격은 크다.
조현우는 어린 투수이다. 이승엽이 19살에 프로에 데뷔했을 때 그는 야구의 ‘야’자도 모르는 12개월 된 아기였다. 지난해 고등학교를 갓 졸업했고 kt wiz에 입단했다. 다시 롯데로 트레이드됐다. 프로에 입단해서도 조현우의 경력은 아직 일천했다. 올해 6월 12일 첫 1군 엔트리에 등록했다.
시간이 흘러 조현우는 마운드에서 대타자를 마주했다. 이승엽의 시간과 조현우의 시간이 18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만났다. 그는 프로 첫 피홈런을 장외홈런으로 허용했다.
조현우는 이 시간을 어떻게 기억할까. 만약 이승엽이 홈런을 치고 요란하게 세리머니를 했다면 조현우는 이승엽을 어떻게 기억할까. 세월이 흐르고 만약 조현우가 대투수로 은퇴할 때 그의 프로 첫 번째 피홈런은 어떻게 기억될까.
리그의 품격은 다른 것이 아니다. 10, 20년이 지나도 어떤 후배가 어떤 야구 선배의 행동을 그대로 따라할 수 있고 본받을 수 있다고 말해 줄 수 있는 것이면 충분하다.
이승엽은 그것을 보여줬다. 국민타자이기 전에 그는 머릿속 정신까지 어린 선수들이 따라해야 할 야구 교과서다.
어떤 네티즌이 아래와 같은 댓글을 남겼다.
"제발 이 형 3년만 더 보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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