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창작물 & 창조적 글쓰기

서정학·소향·조관우·정훈희, <꽃밭에서>가상합창

 

(사진= KBS, MBC)

 

 

[하나의 노래에 다양한 음색을 섞으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바리톤' 서정학이 보여준 여유와 깊이]

 

누군가 불러야만 좋게 들리는 곡이 있고 누가 불러도 좋은 곡이 있다.

 

전자는 리메이크의 이유가 되기도 한다. 대표적인 곡이 신중현의 <아름다운 강산>이다. 1972년 신중현은 이 뛰어난 한국대중음악의 명곡을 작곡했지만, 정작 본인의 음색으로 입혀진 아름다운 강산은 사람들에게 큰 울림을 주지 못했다.

 

시간이 흘러 이선희는 이 곡에 새 생명을 불어넣었다. 이선희 이외의 가수들도 여러 차례 아름다운 강산을 불렀다. 하지만 이선희 버전의 아우라는 누구도 뛰어넘지 못했다.

 

후자인 누가 불러도 좋은 곡의 이유는 기본적으로 곡이 좋다는 것이 첫 번째다. 곡 자체가 가지는 완성도, 이미지, 여백의 여운 등이 어떤 음색으로 불려도 다양한 해석과 감동을 낳는 이유는 곡의 훌륭함이다.

 

대표적인 곡이 <꽃밭에서>이다.

 

이 노래는 최근에 이진아가 드라마 프로듀사에서 리메이크해 화제가 됐던 <무인도>의 이봉조 작곡, 이종택 작사 콤비가 1978년에 만들었고 정훈희가 처음 불렀던 노래다.

 

지난 6일 방송된 MBC '휴먼다큐'에 출연한 정훈희는 이 곡의 에피소드를 공개한 적이 있다.

 

그녀는 이봉조 작곡가의 집에 갔다가 이 노래를 받았다며 "(이봉조 작곡가가) '네 곡이다' 이러시는데 '제가 이걸 어떻게 불러요'라고 했다. '언젠가는 풀리겠지'라고 하시며 곡을 주셨다"고 회고했다. 1976년 대마초 사건에 연루돼 일체의 방송 활동이 금지됐던 정훈희는 '꽃밭에서'를 통해 재기에 성공했다.

 

아래의 영상에 일부분 수록했지만 당시 정훈희의 음색은 놀랍다. 천상의 천사가 따로 없다. 맑음, 순수, 청아, 아름다움...모든 미사여구의 단어를 끌어와도 부족하다. 특히 노래 중간 뚜르르르허밍으로 부르는 하이라이트 부분을 들으면 나의 모든 죄를 씻어가듯 마음을 정화시켜준다.

 

정훈희의 원곡은 이후 수많은 가수들이 리메이크 했고, 방송에서 불렀다. 모두 좋았다. 어떤 음색으로 <꽃밭에서>가 표현돼도 곡의 감동을 전달하기에는 무리가 없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가수로는 1995년 조관우와 2012나는 가수다의 소향일 것이다.

 

조관우는 특유의 가성으로 곡의 효과를 극대화했다. 소향 역시 복제할 수 없는 고음으로 꽃밭을 목소리로 자유롭게 향유했다.

 

(사진= KBS)

 

그리고 20일 방송된 KBS ‘불후의 명곡에서 또 하나의 역대급 꽃밭에서가 나왔다.

 

불후의 명곡에 성악가 최초로 단독 출연한 바리톤 서정학은 <미국음악협회 콩쿠르> 대상, 올해의 음악가상 등 각종 해외 콩쿠르 우승 경력의 세계적 명성이 그냥 얻은 것이 아님을 보여줬다.

 

무대 시작 전에는 다소 염려스러웠다. 루키 세발까마귀빗속의 여인으로 434점이라는 고득점을 받았고 흥겨운 비트와 스피드 있는 무대로 열기가 식지 않았다. 조용한 노래 꽃밭에서는 그대로 분위기에 묻힐 염려가 있는 무대였다. 사회자 정재형이 지금 이 순간 제일 걱정되는 분이 서정학씨라고 말할 만 했다.

 

하지만 기우였다.

 

편안한 미소를 머금으며 노래의 첫 소절 아아아아~”10여 초 간 느리게 부르자 분위기는 일순간에 장악됐다. 음색의 힘이었다. 울림이 강한 성악의 품격과 파워, 베이스의 차분함, 테너의 화려함을 모두 품은 바리톤(Baritone)의 역습이었다. 흔히 말하는 귀가 호강 한다는 것은 이럴 때 쓸 수 있는 표현이었다. 서정학을 무대에 올린 불후의 명곡’ PD의 안목이 돋보였다.

 

서정학의 무대를 보자마자 또 이 참을 수 없는 결합의 욕구가 생겼다. 청아함(정훈희), 가성(조관우), 고음(소향), 바리톤(서정학) 4개의 음색을 하나의 꽃밭에서에 담고 싶어졌다. 여기에는 남자 2, 여자 2명이라는 자동 혼성 합창 구성이라는 호기심도 포함됐다. 그래서 또 하나의 무모한 싱크탱커의 <뮤직 콜라주>를 만들게 됐다.

 

 

사실 <꽃밭에서>의 역사는 1978년이 아니다. 엄밀하게 말하면 600여 년 전이다. 세종때 이조참판을 지낸 최한경이 마음속의 여인을 생각하고 지은 화원(花園)이란 한시를 작사가 이종택이 한글로 번역했다. 여기에 이봉조가 곡을 붙였다.

 

花園 (화원)

 

坐中花園 膽彼夭葉(좌중화원 담피요엽)

꽃밭에 앉아서 꽃잎을 보네

 

兮兮美色 云何來矣(혜혜미색 운하래의)

고운 빛은 어디에서 왔을까

 

灼灼其花 何彼艶矣(작작기화 하피염의)

아름다운 꽃이여 그리도 농염한지

 

斯于吉日 吉日于斯(사우길일 길일우사)

이렇게 좋은날에 이렇게 좋은날에

 

君子之來 云何之樂(군자지래 운하지락)

그님이 오신다면 얼마나 좋을까

 

600년 전 한 남자가 품은 마음의 언어가 수백 년 시간을 뛰어넘어 한 작사가의 마음에 그대로 전이돼 한글로 변형됐고, 다시 뛰어난 작곡가가 이 언어에 멜로디를 입히고 훌륭한 가수들이 목소리로 표현했다. 소생 싱크탱커는 21세기 인터넷 시대에 그걸 다시 편집이라는 이름으로 하나로 결합했다.

 

이건 도대체 뭘까...

 

문화와 언어가 가진 찬란한 생명력, 크리에이션의 힘이다.

 

By ThinkTanker (Copyright. <창조의 재료탱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