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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물 & 창조적 글쓰기

이태임, 노출의 숙명 그리고 여배우

 

(사진: MBC)

 

[이태임, 정선경, 조여정...그리고 노출신]

 

FBI 전문가가 말하는 이태임의 뇌에 형성된 <부정적 정서의 단서>는 무엇일까.

한 가지 알려진 팩트를 통해 비교적 명확하게 추측할 수 있는 것은 이태임이 느낀 이 부정적 단서가 오래 지속됐을 것이라는 점이다. ‘느닷없이화를 냈다고 느낀 것이라면 이태임만이 아는 어떤 분노가 시간을 두고 뇌 속에 축적됐을 가능성이 높다.

 

위의 어제 포스팅(2015/03/04  이태임 '욕설 논란', '무엇이' 그녀를 욕하게 했을까)에 이어...

 

 

세월 금방이야, 이 사람아. 댁이 언제까지 톱스타일 것 같은데. 몇 년 지나면 노처녀 하다, 이혼녀 하다, 애 엄마 할 거 아냐.”

 

2008년 방송가를 사실적으로 묘사해 호평 받았던 드라마 <온에어>의 대사다. 시상식 출연을 거부하는 배우 오승아(김하늘 분)를 향해 PD 이경민(고 박용하 분)이 소리친 이 말은 어쩌면 대한민국 여배우의 삶을 극단적으로 아프게 함축하는 말인지도 모른다. 배우들의 생태계를 누구보다도 잘 아는 언어의 마술사김은숙 작가가 만든 대사였기에 내게 더욱 기억에 남았다.

 

톱스타로 주목받는 여배우는 사실 매우 나약한 존재다. 여배우들은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뒤에 언제나 선택을 기다려야 하는 수동적인 시간이 숨어있다고 말한다. 2011SBS스페셜 <대한민국 여배우로 산다는 것>에 출연했던 연기 경력이 40년이 넘는 베테랑 여배우 윤여정 조차 작품 이후 6개월 정도 지나도 후속 캐스팅 연락이 없으면 내가 무엇을 잘 못했나하는 생각이 든다고 여배우의 초조함을 표현했다. 엄지원은 여배우는 한 순간에 잊혀질 수 있다는 공포감이 있다고 했다.

 

대한민국 여배우의 인기와 관심은 이처럼 유통기한이 있다. 젊음과 미모 역시 유통기한이 있다. 오늘 새로운 미녀가 나오고, 내일 더 섹시한 여배우가 등장한다. 미모가 사라지기 전에 경쟁자들 보다 뜨지 못하고 유통기한이 지나면 노처녀 하다, 이혼녀 하다, 애 엄마가 될 수 있다.

 

이태임은 그동안 미모에 비해 뜨지 못했던 여배우다. 2010KBS드라마 결혼해주세요를 통해 얼굴을 알렸지만, 드라마가 끝나고 금방 잊혀졌다. 몇 년 뒤 화제를 모을 수 있는 예능 프로그램 <라디오 스타>에 출연하고도 이슈메이커가 되지 못했다.

 

그녀가 택한 전략은 노출이었다. 지난해 개봉한 영화 <황제를 위하여>에서 이태임은 과감한 노출과 함께 정사신을 연기했고 이름을 확실히 알렸다. 이후 각종 예능 프로그램 등에 출연하며 배우로서 인지도가 높아졌다.

 

여배우로서 노출은 최후의 수단이다. 노출신은 영화라는 기록으로 남아 영원히 삭제할 수 없다. 그래서 오랫동안 사람들의 뇌리 속에 박힌다. 특히 정사신은 정사라는 장면 자체가 가지는 연상 작용의 파급력이 강해 여배우로서는 매우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는 방법이다.

 

만약 그동안 노출을 하지 않았던 김태희, 전지현, 신민아, 이나영 등이 노출이 심한 정사신을 한다고 상상해보자. 그리고 실제로 당신이 이 상상을 했다면 뭔가 그동안 가졌던 이미지가 순간적으로 파괴되는 느낌을 경험할 것이다. ‘내 여자 친구가 다른 남자와 잠을 잤다는 것이 굳이 그 장면을 보지 않아도 상상만으로 어떤 이미지가 그려지고 또 무너지는 것과 유사하다. 정사신이 가진 위력이다.

 

벗어서까지 뜨지 못하면 연예계에서 대부분 사라진다. 실명을 거론하기 너무 많을 정도로 우리는 그동안 여러 명의 벗다가 잊혀져간 연예인들을 목격해왔다. 그만큼 여배우의 노출은 파급력이 강하지만 마지막 승부수이기도 하다. 그래서 언제, 어떻게, 누구와, 어디서, 벗는지에 대해 깊은 고민이 있어야 한다. 이점에서 이태임이 선택한 영화 <황제를 위하여>는 그다지 효율적인 선택이 아니었다.

 

 

정사신을 동반한 수위 높은 노출신은 성공과 함께 노출이 주는 이미지의 질긴 생명력을 동시에 전달하기도 한다. 비교할 수 있는 대표적인 여배우가 정선경이다. 정선경이 누군가. 싱크탱커가 기억하는 정선경은 당시 현재의 이태임보다 노출신이 훨씬 심했다. 대사 역시 그대로 옮기기 민망한 대사가 많았다. 1994년 영화 <너에게 나를 보낸다>에서 정선경은 엉덩이가 예쁜 여자로 통했다. 수차례 파격적인 장면을 찍었다.

 

이후 정선경의 수식어에는 늘 꼬리표처럼 엉덩이가 예쁜 여자가 따라다녔다. 시간이 흘러 정선경이 사극에서 한복을 입고 있어도 나는 자꾸 정선경의 예전 정사신과 엉덩이가 생각났다. 2011년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도 당시 기자가 17년 전 영화의 배역에 대해 질문할 정도였다. 내가 기자라도 물어보았을 것이다. 그만큼 정사신의 목숨은 질기다. 이에 대해 정선경은 과거를 부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17년 동안 <너에게 나를 보낸다>를 보지 않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선경의 노출에는 맥락이 있었다. 일단 영화가 크게 성공했다. 당시로는 매우 많은 38만 명이 이 영화를 관람하며 흥행 1위에 올랐다. 사회적으로도 엄청난 화제를 모았다. 그리고 이태임과 달리 정선경은 신인이었다. “단순히 벗는 영화가 아니라 원천적 예술행위이기 때문에 기꺼이 출연했다는 당찬 포부가 있었다. 영화 자체도 김수영 문학상을 수상했던 원작자 장정일의 작품으로, 에로티시즘을 소재로 현대 사회의 병폐를 꼬집는다는 사회적인 메시지가 있었다.

 

무수한 정사신이 등장했음에도 <너에게 나를 보낸다>가 제15회 청룡영화제에서 장선우 감독이 감독상을 받은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여기에 지적인 배우 이미지가 강했던 상대배우 문성근은 남우주연상에 올랐고 정선경도 여자신인상을 수상했다. 정선경은 대종상영화제, 백상예술대상, 춘사영화예술제에서도 신인상을 휩쓸었다. 한 출판사는 이 영화를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한국영화 리스트에 올리기도 했다. 정선경은 이후 꾸준한 연기 스펙트럼을 보여주며 상당부분 노출 이미지를 벗고 여배우로서 성공적으로 롱런했다. ‘맥락이 있는 노출이 가져온 결과다.

 

2010년 개봉한 영화 <방자전>의 조여정도 유사한 케이스다. 조여정도 이 영화를 찍기 전까지는 예쁜 마스크에 비해 그다지 존재감을 알리지 못했다. 그러나 <방자전>에서 조여정은 과감한 노출을 통해 엄청난 주목을 끌었고 이후 성공적인 여배우로서 길을 걷고 있다.

 

영화 자체의 완성도가 <너에게 나를 보낸다>처럼 높은 평가를 받은 것이 컸다. 현재 국내 최대포털에서 가장 많은 공감수를 받은 한 네티즌의 <방자전> 영화평은 다음과 같다. “난 되게 영화를 아름답게 봤는데...노출신이 충격적이긴 했지만 그것보다는 마지막 스토리가 너무너무 감동적이었던 영화라 아름다운 영화라 기억되는데 왜 이렇게들 노출신에 집착하는지 모르겠다.”

 

노출신에 집착할지언정 스토리 때문에 노출신보다는 영화 자체를 아름다운 영화로 기억하는 사람이 대다수다. ‘맥락이 있는 노출이 가져온 결과다.

 

(사진: 영화 <황제를 위하여> 공식 스틸컷 & 포스터)

 

반면, <황제를 위하여>를 검색창에 쳐보라. 연관검색어로 가장 먼저 뜨는 것이 이태임 시간이다. 모두들 알겠지만 굳이 풀어서 써보자면 이태임의 시간은 이태임의 정사신이 영화에 등장하는 시간대일 것이다. 이 영화를 혹시나 매우 좋게 보신분이나, 영화 제작에 관계된 분들에게는 매우 미안한 얘기지만, 나 역시 <황제를 위하여>라는 영화의 특정 정보에서 가장 관심 있는 키워드는 이태임 시간이었다.

 

영화의 줄거리는 거의 기억나지 않는다. 치고받고 칼이 나오고 어지러운 상황 속에서 몇 차례 이태임의 노출신이 등장했던 것은 확실히 기억한다. 노출신도 그다지 아름답거나 아니면 차라리 확 야하거나 그렇지도 않았다. 그냥 한 번도 노출하지 않은 여배우가 괴롭게 노출하는 장면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이태임의 팬으로서 가슴만 아플 뿐이었다. 이태임의 노출에는 맥락이 없었다.

 

서두에서 이야기한 시간을 두고 머릿속에 축적되고 있었던 이태임만의 분노 발화점은 여기서 부터가 아니었을까. 사람들은 <황제를 위하여> 이후 이태임 시간을 가장 먼저 연관 지었고, 이 시간에 등장하는 이태임의 특정부위에 대해 또 연관 지었을 것이다. 엄청난 스트레스가 뒤따랐을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이태임의 소속사 어니언매니지먼트그룹은 4일 이와 관련한 공식 입장을 발표했다. “2014년 영화 개봉 이후 이태임씨의 출연작들이 이슈가 될 때 마다 프로그램과 전혀 상관없는 특정신체부위가 이슈 되었고, 수많은 악플들로 인하여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으며, 같은 해 방영되었던 드라마의 조기종영으로 인한 심적 상처가 깊었습니다.” 그리고 최근 예원에게 한 욕설 등도 사실상 인정하고 반성·사과하면서 예원과의 싸움으로 문제가 확대되는 것을 진화했다.

 

(사진: MBC)

 

이제 이태임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정신적인 안정일 것이다. 그러나 안정 이후에는 노출에 따른 시선과 압박감을 이겨낼 수 있는 힘과 배짱도 필요하다. 어차피 노출을 한 이상, 힘들겠지만 정선경이 그랬던 것처럼 노출의 숙명을 받아들이고 헤쳐 나가야 한다. 이태임에게는 앞으로 17년 넘게 '황제를 위하여'가 '너에게 나를 보낸다'가 될 가능성이 높다.

 

한 개인의 아픔과 어려움은 그 사람이 아니면 정확하게 알 수 없고 누구도 대신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지난 3일 언론을 통해 이태임이 세상 사람들은 섹시스타로 주목 받은 여배우를 그냥 마음에 안 들어 하는 것 같다. 마치 마음대로 해도 되는 장난감인 것 같다고 말한 것은 그다지 프로답지 못하다. 이태임의 얼굴과 몸매를 가지고 노출 이후의 입방아와 시선을 이겨낼 각오가 없었으면 벗지 말았어야 했다. 벗었다면 책임을 지고 떳떳해져라. 불필요한 자기검열은 스스로를 더욱 위축시킬 뿐이다.

 

<대한민국 여배우로 산다는 것>에 출연했던 ‘70년대 미녀 트로이카중 한명 이었던 금보라가 말한 나도 젊었을때 온갖 루머때문에 연예계를 떠나려고 했다. 그런데 내가 왜 이 좋은 직업을 때려치워? 잘못한 게 없고 잘못된 기사 때문에!”라는 자신 있는 자세도 필요하다. 작품 선택도 신중하게 해야 한다. 언제, 어떻게, 누구와, 어디서, 벗는지에 대한 깊은 고민이 있어야 한다. 분노에 욕설을 제어하는 감정적 컨트롤은 기본이다.

 

드라마 <온에어>에서 서영은 작가(송윤아 분)예쁜 것으로 치면 10% 데려다가 연기시켜야죠라고 말했다. 그렇다. 예쁜 여자는 많다. 그러나 대한민국에서 연기하는 예쁜 여배우는 극소수다. 여배우라는 자존심을 잃지 말았으면 좋겠다.

 

시간이 흐르고 그 언제가 되면 이태임 욕설은 기억에서 희미해질 것이다. 동시에 이태임의 미모와 몸매도 그 빛을 잃을 것이다. 그러나 비난에 굴복하는 나약한 배우가 아닌, 비난과 시기 질투를 딛고 일어서는 강하고 진정한 여배우가 된다면 오래도록 빛이 퇴색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이태임을 오래도록 여배우로 보고 싶다. 이것이 이태임을 아끼는 팬으로서 하고 싶은 말이다.

 

By ThinkTank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