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출처 및 권리= tvN)
[개그콘서트 위기 속에 주목받는 '코빅'의 약진]
지난 20일 KBS 개그콘서트(이하 개콘)는 동창회 특집에 힘입어 시청률이 소폭 상승했다.
앞선 방송분(9.9%)보다 2.7% 오른 12.6%(닐슨코리아 통계)를 기록했다.
김병만, 김대희, 윤형빈, 김준현 등 개콘의 황금기를 이끌던 개그맨들을 오랜만에 다시 볼 수 있어서 반가웠다. 하지만 이들이 활약했음에도 생각보다는 시청률이 덜 나왔다.
역설적으로 이들의 익숙함을 걷어내자 다시 허전함이 묻어났다. 개콘이 매주 동창회 특집을 방송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미 미디어에서 개콘의 위기는 수차례 지적했다. 시청률도 상당 기간 한 자리 숫자로 주저앉은바 있다.
현재의 개콘이 위기와 침체라는 것을 스스로 드러냄을 알게 해주는 코너가 2개 있다.
‘유전자(유행어를 전파하는 자)’와 ‘어그봤(어제 그거 봤어)’이다.
(사진 출처 및 권리= KBS)
두 코너 모두 아이디어는 괜찮다. 재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유전자’는 첫 회에서 박성광이 “그동안 개콘에서 따라할 만한 유행어를 만들지 못해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개콘에서 따라할 말한 유행어가 없기 때문에 유행어를 작위적으로 만들어 상황극에 끼워 넣는 설정 자체가 전성기의 개콘 답지 못했다. 굳이 그렇게 자조적으로 선언하지 않아도 예전에 개콘이 잘 나갔을 때는 알아서 시청자들이 유행어를 따라했기 때문이다.
‘어그봤’ 역시 마찬가지다. “어제 그거 봤어?”를 최효종이 콩트로 만들지 않아도 그 시절 개콘은 방송 다음날인 월요일,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했고 미디어에서 화제도 됐다. 그런데 현재 개콘의 개그맨들은 우리의 개그를 알아달라고 시청자들에게 부탁을 한다.
반면, tvN의 ‘코미디빅리그(이하 코빅)’가 약진하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드러냄을 알게 해주는 증거는 명확하다.
(사진 출처 및 권리= tvN)
코빅은 이제 개콘을 따라하지 않는다.
2~3년 전 만에도 코빅의 개그맨들에게는 마이너리티의 이미지가 있었다. ‘우리의 개그는 사람들이 많이 보지 않는 개그, 개콘의 개그는 공중파답게 다수가 보는 개그’라는 인식을 개콘을 의식하는 듯한 대사를 통해 종종 드러내곤 했다. 심지어 그들의 코너 중 몇몇 장면에는 개콘의 유행어가 등장했다.
하지만 이제 코빅에서 이런 모습은 찾기 힘들어졌다. 오히려 개콘이 20일 방송에서 김준현을 통해 코빅의 간판 이국주를 언급했다. 몇몇 인기 코너가 자체적으로 경쟁력을 갖추면서 프로그램의 전체적인 재미가 상승했다. 재미가 있으면 알게 모르게 입소문이 나게 마련이고 시청률도 올라갈 수밖에 없다.
2013년까지 주로 1%대에 머물던 코빅의 시청률은 2014년 들어 ‘썸&쌈’, '사망토론', ‘10년 째 연애중’ 등이 인기를 모으며 올해 초반 꾸준히 2%대를 유지했다. 가을을 지나서는 더 올라갔다. 2015년 4쿼터 10라운드는 평균 시청률 3.5%, 최고 시청률 4.2%를 기록하며 비지상파 채널 전체를 통틀어 동시간대 1위를 차지했다.
코빅의 이같은 약진의 이유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사진 출처 및 권리= tvN)
1. 케이블 환경의 활용...性的코드
윈스턴 처칠은 바지 지퍼가 내려간 것을 지적당하자 “죽어 있는 새는 새장 밖을 날아갈 수 없다”고 대답했다. 발언자가 처칠이라 뭔가 있어 보이지만 사실 이건 완벽한 ‘성적 개그’다. 처칠이 사망한지가 50년이 지났음에도 아직도 이 개그는 사람들에게 회자된다.
그런데 방송에서 성(性)을 개그 소재로 담는다는 것은 위험성을 동반한다. 한계를 벗어나는 순간 처칠이 아니라 즉각적으로 저질이 된다. 비난도 피할 수 없다. 그런데 그 아슬아슬한 상상의 경계를 지키면서 수용할 수 있는 유쾌함을 녹인다면 그때 ‘성적 개그’는 그 어떤 개그보다 강력함을 유발한다.
코빅은 요즘 대세라는 ‘성적 코드 개그’를 기술적으로 쓴다. 케이블이라는 다소 완화된 환경을 십분 이용하는 것이다. 남자에서 여자로 성전환수술을 한 장도연은 코너 ‘여자 사람 친구’에서 “있다 없어졌다”면서 사타구니를 향해 V자 모션을 취한다. ‘개인주의’에서 장동민은 넘어져서 남자의 팬티 안을 쳐다보며 왕방울을 언급한다. 부끄러울 수 있는 장면들인데 관객들은 큰 웃음을 짓는다.
‘오지라퍼’에서 이상준은 남자들의 데이트 선호 장소로 “이곳에 가면 여자 친구와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며 ‘ㅁㅌ’이 쓰인 푯말을 들어올린다. 상대역인 이국주는 “미쳤나봐. 이거 (방송에 나가면) 안 돼”라며 분위기를 잡는다. 정답은 모두가 생각한 ‘그곳’이 아닌 ‘마트’였다.
개콘의 개그맨들도 이런 개그를 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할 수 있지만 다만 못하는 것이다. 개콘의 김성원도 과거 비슷한 시도를 한 적이 있다. 하지만 코너는 오래가지 않았다. 반면 코빅은 자극적인 소재와 표현을 더욱 보수적으로 지켜야 하는 공중파 개그의 한계에서 보다 자유롭다는 강점을 철저하게 활용한다. 분명한 최근의 개그 흐름은 사람들은 이제 먹는 개그, 외모비하 개그를 식상하게 여기지만 ‘성적 개그’에는 확실한 반응을 보인다는 점이다.
(사진 출처 및 권리= tvN)
2. 관객참여
코빅은 관객과의 소통도 큰 비중으로 다룬다. 패턴은 과거 ‘사망토론’과 같이 청중에게 도발적인 질문을 던져 적극적인 반응을 유도하거나, 최근의 ‘직업의 정석’처럼 아예 관객이 코너의 등장인물로 무대에 오르는 것이다.
장점은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신선함이다. 일반 청중들은 전문적인 개그맨은 아니지만 막상 판이 만들어지면 어눌한 연기를 펼친다. 여기서 오는 새로움이 자연스러운 웃음을 준다. 청중들의 얼굴은 매주 바뀐다. 매주 새로운 개그맨이 탄생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우발성이다. 청중들의 연기를 위해 ‘직업의 정석’은 제작진과 코너의 중심 양세형이 설정된 시나리오를 청중에게 미리 제시하는 큰 틀이 있다. 그러나 일반인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연기를 할 것인가는 대본이 없다. 어떤 말과 동작이 나올 지는 아무도 모른다. 불확실성과 의외성이 주는 재미는 기존의 개그 프로그램에서 전혀 보지 못한 새로운 웃음 코드다.
사람들의 반응이 긍정적이라는 것은 결과가 말해준다. 과거 ‘사망토론’은 야구장 키스 타임을 패러디해 외식상품권을 걸고 남자 관객끼리 키스하는 장면을 만들어 큰 폭소와 화제를 모았다. ‘직업의 정석’은 올해 코빅의 마지막 4쿼터에서 1위를 차지했다. 청중들이 직접 참여한 개그를 사람들이 가장 재미있다고 평가한 것이다.
(사진 출처 및 권리= tvN)
3. 스타의 가능성
2013년 코빅의 코너 ‘79금 라디오’에 출연해 육중한 몸을 이끌고 땀을 뻘뻘 흘리며 연기를 했던 그녀의 모습을 싱크탱커는 잊지 못한다. 그녀는 2006년 MBC 공채 개그맨 출신으로 신인상도 받은 유망주였다. 하지만 이후 크게 주목받지 못한 개그우먼이었다. 그러나 무대에서 너무나 열심인 모습에 마음으로 박수를 치고 싶었다. 노력의 결과였을까. 점점 그녀의 ‘호로록’은 식탐송으로 인기를 모았고 이제 이국주는 당당히 스타가 됐다.
자신이 서는 무대가 스스로 한층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의 발판이 된다면 그 무대의 가치는 더욱 높아진다. 보통 지금까지는 개콘이 그 중심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코빅을 통해서도 충분히 스타 개그맨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이국주 말고도 여러 개그맨들을 통해 증명됐다.
과거 장도연과 박나래는 개콘에서 존재감이 약했다. 키가 크고 작은 콤비로 몇 코너에 나왔지만 많은 개그맨들의 활약 속에 묻혔다. 하지만 코빅으로 옮긴 뒤 장도연과 박나래는 완전히 다른 개그맨이 된 것처럼 마음껏 날개를 펼치며 잠재력을 폭발했다.
특히 박나래는 코빅에서 차승원, 황정민 등 매주 변장 캐릭터를 바꾸며 천의 얼굴을 뽐내는데 개콘의 박나래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화면을 꽉 채운다. 요즘에는 분장한 박나래의 얼굴만 봐도 웃음이 나온다. 현재 전방위적 활약을 뽐내는 안영미는 코빅에서 김부선을 흉내 내며 상승세를 탔으며, 다소 침체기를 거쳤던 황제성 역시 ‘깝스’를 통해 재기하며 이제는 CF에도 자주 출연한다.
(사진 출처 및 권리= tvN)
4. 뉴 시스템
알려진 대로 코빅은 개그맨들끼리의 건강한 경쟁을 유도하는 서바이벌과 순위제를 도입했다. 방청객과 시청자들의 피드백이 즉각적으로 반영되고 코너의 순위는 1등부터 꼴찌까지 정확하게 점수로 공표된다. 쿼터가 끝나고 상금도 3등까지 주어진다. 개그맨들은 매주 방청객 판정단의 반응에 따라 치열하게 고민하고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 노력할 수밖에 없다.
보통 음악이나 영화 등은 개별 노래나 한 작품이 대중들의 평가를 받고 결과에 대한 호응도를 작품의 생산자가 알 수 있었지만, 개그 프로그램을 구성하는 개그 코너는 그렇지 않았다. 이점에서 코너의 독자성과 평가 요소를 부각시킨 코빅의 시스템은 매우 새로웠다.
하나의 시스템에 시스템이란 용어를 붙일 수 있으려면 어느 정도 숙성과 검증의 시간이 필요하다. 단순한 방법의 전환을 시스템이라 말하기는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스템에는 단점보다는 장점이 많아야 하고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선순환의 구조도 갖춰야 한다.
코빅은 2011년 9월 개콘 출신 스타 PD와 방송 3사 출신 개그맨들이 힘을 합쳐 외인구단처럼 출범했다. 그리고 4년여의 시간이 흐른 현재 코빅만의 독특한 방식은 더욱 빠르고 강력한 웃음을 선사하는 토대로 자리 잡았다. 이 정도면 성공한 ‘뉴 시스템’이라는 용어를 충분히 붙일 수 있다.
(사진 출처 및 권리= tvN)
5. 조연의 가치에 감사하는 팀워크
개그맨은 남을 웃기는 직업이지만 모든 개그맨이 남을 웃기는 역할만 할 수는 없다. 야구에만 희생번트가 있는 것은 아니다. 개그 코너에도 ‘희생’이 필요하다. 전면에 나서서 대중들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개그맨 뒤에는 이들의 연기를 빛나게 하는 수많은 동료 개그맨들이 있다. 유상무처럼 받쳐주는 역할을 잘 해주는 조연은 그 코너의 주목도를 높이는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래서 코빅의 인기 코너였던 ‘사망토론’은 사회자인 예재형 때문에 매우 돋보이는 코너였다. 이 코너는 주로 이상준과 김기욱이 코믹한 토론을 통해 웃음의 중심에 섰다. 하지만 예재형이 이들에 가려진 채 웃음을 의도적으로 유발하는 웃음과 진행이 없었다면 빛을 잃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런 동료 연기자들의 희생과 가치를 주연 개그맨들이 존중하고 알아주는 자세다. 여기서 팀워크와 코너의 시너지가 파생한다. 이상준은 당시 수시로 예재형의 존재감에 대해 고마움을 표시한 바 있다.
최근에도 마찬가지다. 코빅의 인기 코너 ‘깽스맨’에서 이진호는 가장 부각되는 주인공이다. ‘속초’와 ‘우녀니 형님’으로 대표되는 언어 개그는 큰 성공을 거두고 있다. 하지만 ‘깽스맨’에도 이진호가 등장하기 전에 “속초가 나타났다”는 대사 한마디를 외치고 사라지는 신인 개그맨 이병호가 있고, 코너를 끌어가는 보스 역할의 최성민 등이 이진호를 받쳐주고 있다.
이들에 대해 이진호는 지난 6일 방송에서 아래와 같이 1등 소감을 밝힌 적이 있다. 이미 과거 방송에서도 이병호에 대해 고마움을 전했던 이진호였다.
“깽스맨에서 저랑 양세형씨, 문세윤씨가 주인공으로 나오지만 그 뒤에 우리 최성민씨, 오인택씨, 강완서씨가 매주 새로운 코드를 만들어요. 저희보다도 뒤에서 열심히 해주는 멤버들에게 정말 고맙다는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나는 이진호의 이같은 동료를 향한 고마움의 발언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이런 개그맨이 있다는 것, 또 서로를 도와주고 알아주며 끈끈한 팀워크를 함께 나누는 개그맨들이 모여 있는 프로그램은 안 되려고 해야 안 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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