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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물 & 창조적 글쓰기

독립기념관의 어이없는 똥냄새

 

(사진 출처 및 권리= 독립기념관 공식 홈페이지)

 

[‘그곳의 냄새는 무엇을 남기나]

[독립기념관과 프루스트 현상]

 

냄새는 대상을 특징한다.

 

완벽한 미녀가 당신을 마주하고 있다. 그런데 그 초절정 섹시미녀가 말할 때마다 입에서 담배 썩는 냄새를 풍긴다고 상상해보자. 그 순간 미녀는 미녀가 아니다. 아름다운 외모의 특징을 썩은 냄새가 순간적으로 말살 시킨 것이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주인공은 홍차에 적신 마들렌 과자의 냄새를 맡고 어린 시절을 회상한다. 익숙한 냄새는 다른 감각 신호보다도 훨씬 강한 감정으로 과거를 상기시키는 효과가 있다. ‘프루스트 현상(Proust Phenomenon)’이다. 냄새는 누군가를 규정한다. 냄새는 시간을 뛰어넘는다. 이토록 위력적이다.

 

독립기념관은 독립이라는 역사의 향기로 대한민국의 과거를 회상시키는 곳이다. 이곳에는 어떤 향기와 냄새가 나야할까.

 

지난 24일 월차를 맞아 독립기념관을 찾았다. 한국에 살면서 반드시 가보고 싶은 곳이었지만 미루다 가보지 못한 곳이었다. 드디어 지인과 함께 그곳을 가게 됐다.

 

입구를 지나자 멀리 겨레의 탑이 보였다. 장마전선의 보슬비가 하루 종일 오는 날이었다. 탁 트인 흰회색 배경은 투명한 수분을 머금어 장관을 이뤘다.

 

한 걸음 한 걸음 겨레의 탑을 지나 겨레의 집으로 향했다. 이 거리는 생각보다 멀다. 10분 넘게 걸어야 한다. 평일에 비가 와서 그런지 관람객은 매우 적었다. 10여명 정도만 눈에 띄었다. 그래도 좋았다. 이곳은 독립기념관이었다.

 

물이 있는 다리를 건너 중간쯤 걸었을까.

 

싱크탱커는 전혀 예상치 못한 냄새에 코를 테러 당했다.

 

이럴 수가! 그 냄새의 정체는 똥냄새였다!!!

 

처음에 고심했다. 이 냄새를 순화시키기 위해 X냄새나 인분냄새로 완화하려 했다. 그러나 경각심을 느끼게 하기 위해 그대로 쓰는 게 맞다고 판단했다.

 

그랬다. 이 냄새는 순도 100%의 똥냄새였다. 누구의 똥인지는 확인할 수 없었다. 인간의 똥인지, 가축의 똥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래도 냄새의 정체가 ’, 가히 완벽한 똥이라는 것은 확실했다. 우리가 고속도로를 차로 가다 창문을 열었을 때 어느 시골에서 나는 그 거름 냄새와 거의 흡사했는데 강도가 더 파워풀했다.

 

이 현상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나는 당혹스러웠다. 냄새의 피폭지역은 추정컨대 아래의 사진으로 표시한 것처럼 의외로 광범위 했다. 옆에서 우산을 쓰고 엄마와 걷고 있던 어느 소녀는 심지어 코를 막고 그 지역을 통과했다.

 

(사진 출처= 독립기념관, EDIT By ThinkTanker)

 

애써 나는 가까스로 무시했다. 바람이 살짝 불어 어디선가 빗 내음을 타고 똥냄새가 일시적으로 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석연치 않은 냄새는 독립기념관 첫 방문이라는 기쁨을 방해할 수는 없었다.

 

독립기념관을 둘러봤다. 엄청났다. 구성과 내용 모두 좋았다. 평점 10점 만점에 9.5점을 주고 싶었다.

 

1전시관 <겨레의 뿌리>부터 제7전시관 <함께하는 독립운동>은 시계방향으로 관람 경로를 따르게 배치했다. 7개의 전시관이 모두 연결돼있어 흐름의 편의성과 통일성을 잘 유지했다.

 

각각의 전시관에서 인상 깊었던 부분은 한국의 역사를 테마별로 꾸몄다는 점이다. 독립이라는 큰 주제를 설정했지만, 이에 이르는 전시 구성은 통사적이면서도 요약적이다. 요즘 청소년들이 역사를 잘 모른다는 보도를 본 적이 있다. 청소년을 떠나 한국인이라면 반드시 봐야할 ‘MUST SEE’ 아이템이다. 독립기념관을 걸어가기만 해도 살아있는 역사를 느끼고 체험할 수 있다.

 

박수를 치고 싶은 부분은 디테일이었다. 여러 전시물과 모형들을 가까이서보면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섬세하다.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오랜 시간 노력했다는 점, 허투루 제작하지 않았다는 점을 알게 해줬다.

 

한 가지 아쉬운 부분은 마지막 강력한 한 방의 배치, 클라이맥스가 약했다. 독립기념관의 하이라이트는 제6전시관 <새나라 세우기>에 등장하는 대한민국임시정부 33인의 밀랍인형이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부터, 김구 선생 등을 당신의 눈 1m 전방에서 볼 수 있다. 너무 정교하게 만들어져 살아있다는 착각을 줄 정도로 약간은 소름을 끼치게 하지만, 이들이 주는 감동이 먼저다. 나는 벅찬 마음에 김구 선생과 악수까지 했다.

 

(사진 출처 및 권리= 독립기념관 공식 홈페이지)

 

33인 밀랍인형을 전시의 맨 마지막에 배치했다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7전시관은 약간 힘이 빠진 느낌이었다. 차라리 관람객들에게 큰 감동을 주면서 전시관을 나오게 하는 게 효과적인 구성이 됐을 거라는 생각을 해봤다.

 

아무튼 좋았다. 그리고 이제 왔던 길을 걸어 독립기념관을 빠져나가는 일만 남았다.

 

그런데...!

 

또 그 문제의 지역을 지나면서 그 똥냄새가 화생방 연기처럼 피어올랐다. 일시적인 냄새가 아니었다. 맡아보니 아까보다 더 심해졌다.

 

바로 조금 전 썼던 표현이 잘못됐다. 독립기념관의 마지막 강력한 한 방은 따로 있었다. 임시정부 33인이 아닌 뇌세포를 마비시키는 똥냄새가 최후의 한 방이었다. 이 냄새는 관람이 주었던 벅찬 감동의 기분을 심하게 급락시켰다. 똥을 한 바가지로 뒤집어 쓴 기분이었다. 우리는 서둘러 그곳을 탈출하고 싶어져 빠른 걸음으로 독립기념관을 빠져나와야 했다.

 

독립기념관의 이 어이없는 똥냄새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생각해봤다. 일단 발원지의 측면에서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 냄새가 사람의 똥 냄새는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가축의 똥냄새일 텐데, 설마 독립기념관 내부에서 거름 농사를 짓지는 않을 것이다. 아니면 내부 초원을 오가는 야생동물의 배설물 냄새였을까. 독립기념관은 원칙적으로 애완견 등 어떠한 동물의 출입도 금지하는 곳이다.

 

내부가 아니라면 외부에서 바람을 타고 인근 논밭의 거름 냄새가 이 지역까지 타고 온 것일까. 이날 바람이 불긴 했지만 심한 바람이 아니었다. 바람의 영향이었다면 더욱 광범위한 지역에 퍼졌어야 했다. 그렇다고 독립기념관이 위치한 목천 주변에 특별한 농사지역이 있는 것도 아닌 것 같다. 혹시나 지근거리의 테딘워터파크에서 나는 냄새는 더더욱 아닐 것이다.

 

사소한 문제일 수도 있다. 내가 방문했던 이날만 그랬을 수도 있다.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다. 그러나 독립기념관에서 이런 어이없는 똥냄새가 났다는 사실 자체는 무시할 수 없다.

 

 

장소가 어디인가.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독.....이다. 대한민국 독립의 역사가 목숨 바친 안중근, 윤봉길 등 열사들의 피와 땀의 냄새가 아닌, 똥냄새가 피어나는 곳에 있다는 사실은 좀처럼 받아들이기 힘들다. 만약 외국 관광객이 한국의 독립 역사를 알아보기 위해 찾았다가 이런 냄새를 맡는다면 한국에 대한 인식이 어떨까. 그때 똥냄새 코리아가 되는 것이다.

 

관련 기관의 세심한 조사와 관리가 요구된다. 내부의 디테일만큼 독립기념관은 외부의 디테일도 매우 신경 써야 하는 곳이다. 냄새의 뇌관을 건드리면 모든 추억이 한꺼번에 터져 나온다. 독립기념관의 추억이 똥냄새의 추억이 되어선 곤란하다.

 

후각이 남달랐던 헬렌 켈러는 냄새는 우리를 수천 미터 떨어진 곳에 많은 시간을 건너뛰어 데려다주는 힘센 마술사라고 했다. 싱크탱커는 이날 유관순 누나가 태극기를 흔들며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던 아우내 장터에 가고 싶었다. 가긴 갔다.

 

하지만 내가 최종적으로 힘센 마술사에 이끌려 간 곳은 똥냄새가 어처구니 없이 모락모락 나는 인분하수처리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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