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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물 & 창조적 글쓰기

'극혐' 김경란과 당혹스런 '인지 부조화'

 

(사진 출처 및 권리= tvN)

 

[‘더 지니어스김경란은 왜 불편함을 줄까]

[김경란을 보고 예진아씨가 떠오른 이유]

 

이럴 수가! 극혐(極嫌)이란다.

 

네티즌들이 쓰는 인터넷 신조어다. “극도로 혐오감을 준다내지는 극한의 비호감이라는 말과 동의어로 보면 큰 무리가 없다.

 

극혐이라는 말은 주로 연예인들을 다룬 인터넷 연예 기사 댓글을 보면 아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특정 연예인에 대해 극혐이라고 누군가가 쓰면 동조하기도 하고, 왜 극혐이냐고 반대하기도 한다.

 

그런데 극혐이라는 이 달갑지 않은 수식어가 몇 년 전부터 좀처럼 붙기 힘든 사람을 따라다닌다. 김경란이다. 김경란이 방송에 출연한 기사의 리플들을 보라. 도배를 한 사람들도 있다. ‘극혐김경란, 심지어 혐경란까지 있다. 또는 오만 정이 다 떨어졌다는 댓글도 나는 봤다.

 

이 수식어의 정확한 탄생시점은 2013tvN<더 지니어스> 시즌1부터다. 김경란은 여기에 출연했고 홍진호에 이어 준우승을 했다. 여러 쟁쟁한 출연자들을 따돌린 좋은 성적이었다. 그런데 이후 혐경란이 됐다. <더 지니어스> 그랜드파이널에서도 그녀는 26일 현재 매주 살아남으며 탈락하지 않았다. 하지만 여전히 김경란의 이름 앞에는 극혐이 함께한다.

 

싱크탱커는 극혐 김경란이라는 언어에 대해 참 복잡한 생각이 든다. 도무지 이것을 어떻게 설명해야할지 굉장히 난감하다. 최근에 겪은 사회 현상 가운데 극도로 어려운 난제다.

 

문제를 일으킨 첫 번째 이유는 내가 김경란에 대해 예전부터 큰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에서부터 시작한다.

 

(사진 출처 및 권리= KBS)

 

김경란이 누군가. 그녀는 KBS의 간판 아나운서였다. 내가 관상가는 아니지만 그래도 건전한 평상심으로 누군가의 얼굴을 볼 때 대부분 느끼게 되는 보통의 상식선이라는 것이 있다.

 

그녀는 얼굴만 봐도 신뢰도 100%를 주는 마스크와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늘 바르고 정확한 말만 해야 했던 직업적 특성에서 오는 이미지도 무시할 수는 없지만 부차적이다. 모든 아나운서의 이미지가 100% 신뢰도를 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것은 김경란 만의 얼굴과 고유의 분위기 때문에 그렇게 됐다는 것이 더 정확하다.

 

이제는 프리랜서를 선언하고 방송인으로 활동하고 있지만, 여전히 김경란은 내게 우아한 분위기와 부드러운 멘트로 <열린 음악회>를 진행하고, 선한 눈매와 자애로운 봉사 활동이 돋보였던 <사랑의 리퀘스트> 사회자로 변함없이 각인돼 있다. 쉽게 말해 단 0.1%의 악역 이미지도 전혀 없는 순도 100%의 선역만 남아있다.

 

그런데 최근에 방송에서 보는 김경란의 이미지가 자꾸 불편하다. 심지어 극혐 김경란에 나도 모르게 점점 동조하게 된다.

 

<열린 음악회>와 똑같은 이미지를 하고 어떻게 <더 지니어스>에서는 역적임에도 충신으로 애절하게 연기를 하며 천연덕스럽게 거짓말을 할 수 있을까. 게임이니까 할 수는 있다. 그런데 왜 또 그 모습이 나는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을까.

 

시즌1 결승전에서 홍진호가 그녀의 더블아이템을 무력화 시키자 감정을 심하게 드러내고, 얼굴이 일그러지며 분해하는 모습이나 패배에 눈물을 흘렸던 모습은 왜 내게 자연스럽게 보이지 않았을까.

 

시즌4 그랜드파이널 김경훈과 이상민의 데스매치에서 너무나 자연스럽게 김경훈을 속이는 행위는 또 어떤가. 자신의 지원군 이상민이 의도와는 다르게 탈락하자 눈시울이 붉어진 모습은 왜 악녀의 비통한 눈물로 나는 느껴졌을까.

 

결정타는 아래의 사진이었다.

 

(사진 출처 및 권리= tvN)

 

그녀는 25일 방송된 <더 지니어스 그랜드파이널> ‘충신과 역적편에서 최정문을 거의 공개적으로 비난했다. “(장)동민이 옆에 붙어서 종종종종 거리는 모습이 저렇게까지 살고 싶은가. 그냥 살면 되는 건가라는 발언은 최정문을 향했다. 자신도 살기 위해 거짓 연기와 거짓말을 했기 때문에 이중 잣대라는 비난이 SNS에서 잇따랐다.

 

그냥 살면 되는 건가

 

특히 김경란의 이 말은 내게 생각해 볼 여지를 남겼다. <더 지니어스> 게임의 본질은 서바이벌 게임이다. 국민윤리 게임이 아니다. 끝까지 최후의 1인으로 살면 되는 것이다. 착해야만 되는 게임이 아니다. 룰을 어기지 않는 이상 수단의 정당성은 필요충분조건이 아니다. 멋있고 페어플레이로만 이기면 분명 훌륭한 것이겠지만 모두에게 같은 방식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요구하는 것도 무리다.

 

그냥이 포함하는 뜻은 매우 광범위하겠지만 역설적으로 만약 어떤 참가자가 매회 그냥살아 우승까지 하면 그는 매우 성공적으로 게임을 한 것이다. ‘그냥은 누군가에게는 비난의 언어가 될 수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효과적인 전략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쉽게 그냥으로 누군가의 플레이를 하대하거나 무시할 수 없는 이유다.

 

하지만 그녀가 쓴 그냥이라는 부사에는 최정문이 마치 도덕룰을 어기고 비열하게 살아서 좋지 않다는 뜻을 연상케 했다. 그러나 김경란이 이 말을 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포함해 모든 플레이어가 그냥 살면안 되는 것이다. 배신과 거짓말, 아첨, 모략, 어떤 정치적인 수단은 배제되어야 맞다. 매우 착하게 게임해야 그냥이라는 언어를 털어낼 수 있다.

 

애석하게도 <더 지니어스>는 그런 프로그램이 아니고 김경란 자신을 포함해 누구도 그렇게 플레이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녀는 최정문에 대해 속상한 마음을 그렇게 표현했다. 고개를 숙인 상대에게 눈도 마주치지 않고 차갑게 상대했다. 그래서 이중 잣대라는 말이 나온다.

 

한마디 더 덧붙였다. 그녀가 김유현과 데스매치를 해서 다행인 것은 부글부글 끓고 화가 나고 열이 받는 상대랑 가면 정신이 없다가 이유였다. 명시적이지는 않았지만 날선 언어로 사실상 최정문을 겨냥했다. PD의 편집도 한몫했다.

 

김경란의 이런 행동과 언어를 도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사진 출처 및 권리= tvN)

 

어떤 의미에서 <더 지니어스>의 김경란의 모습에 대해 싱크탱커가 지금까지 언급한 내용들은 매우 순진한 생각들이다.

 

<더 지니어스>는 넓은 의미의 예능 프로그램이다. TV 게임이다. 배신과 거짓, 악행을 유도하는 PD가 설정한 게임이다. 참가자의 모습을 실제 모습과 동일시하는 것은 마치 주말 드라마에서 악녀로 나온 배우를 실제 생활에서도 악녀로 생각하는 것과 똑같은 매우 어처구니없는 것이다.

 

김경란은 이제 KBS 아나운서가 아니다. 우아한 <열린 음악회> 사회자가 아니다. 순백의 천사가 아니다. 그럼에도 같은 이미지를 <더 지니어스>에서 기대하는 것은 참으로 순박한 행동이다. 게임을 떠나 모든 사회생활과 인생사에 일체의 마키아벨리즘이 없다고 믿는 것은 유토피아다.

 

친구와 고스톱이나 카드게임 원카드를 하는 경우를 설정해보자. 나나 친구나 이기기 위해 모두 속인다. 패를 드러내지 않기 위해 거짓말을 한다. 그렇다고 게임이 끝나고 친구를 나쁜 친구로 비난하는 것은 너무 유치한 짓이다. 게임은 게임으로 끝나는 것이다. 오히려 김경란의 명연기는 칭찬받아야 한다.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한 특유의 행동은 내가 만약 반전 영화감독이라면 캐스팅 1순위로 해야 할 정도로 뛰어난 것이다.

 

...라고 생각했고, 생각하려고 했다.

 

그럼에도 나는 호감형이었던 김경란의 이미지가 너무 불편하다. 드라마와 다르게 본심과 평소 행동 방식이 조금은 더 드러날 수 있는 tv게임이어서가 아니다. 경험하기 힘든 특정 대상이 주던 이미지의 이질감과 괴리감이 마음을 계속 복잡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도대체 왜 그럴까.

 

이유는 심리학에서 말하는 인지부조화(cognitive dissonance)가 실마리가 될 수 있다.

 

이미지는 인간의 마음에 잔상을 남긴다. 이미지를 인간이 사전에 느꼈다는 것은 특정 감정을 오감으로 마음속에 형상화했다는 것을 뜻한다. 대상에 따라 다르다. 마음속에 완전히 굳어진 이미지는 다른 이미지로 변이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허용되면 속이 거북하다. 인간은 속이 거북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거북하게 되면 이게 인지 부조화다.

 

심리학용어사전을 통해 정확히 정의하자. 인지부조화는 우리의 신념 간에 또는 신념과 실제로 보는 것 간에 불일치나 비일관성이 있을 때 생기는 것이다. 인지 부조화 이론에 따르면 개인이 믿는 것과 실제로 보는 것 간의 차이가 불편하듯이 인지 간의 불일치가 불편하므로 사람들은 이 불일치를 제거하려 한다.

 

그랬다. 나는 ‘<열린 음악회>의 김경란‘<더 지니어스>의 김경란사이에서 이미지의 불일치와 비일관성을 경험했다. ‘호감 김경란극혐 김경란이 주는 마음속의 불일치가 불편했다. 제거하려고 했다. 그런데 제거되지 않았다. 그래서 계속 불편했다.

 

인지부조화가 대중들에게 큰 영향을 준 한 명의 연예인이 떠올랐다.

 

배우 황수정이다.

 

(사진 출처 및 권리= MBC)

 

황수정은 내게 김경란 이전의 순백의 이미지였다. 90년대 브라운관의 대표 배우이자 국민적 스타였다. 싱크탱커 역시 그녀를 너무 좋아했다. MBC 드라마 '허준'의 예진아씨는 황수정의 선녀같은 이미지를 완벽하게 모사했다.

 

그녀가 예진아씨고 예진아씨가 그녀였다. 청순한 외모와 드라마 속 기품 있는 캐릭터는 모든 여자들이 닮고 싶은 로망, 남자들에게는 범접하기 힘든 반드시 보호해야할 여신이었다. 목소리는 또 어땠나. 성우 이상의 안정감 있는 톤은 시 낭독 음반으로도 발매된 기억이 있다.

 

그런데 그랬던 예진아씨가 2001년 필로폰 투약 혐의로 구속되면서 모든 이미지가 마음속에서 엉망이 됐다. 대중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광고시장에서는 황수정 쇼크가 이어졌다. 그녀가 모델이 됐던 각종 상품들이 큰 타격을 받았다.

 

청순하고 우아했던 그녀가 마약을 했다는 것은 대중들에게 크나큰 인지 부조화를 안겼다. 선녀와 마약은 절대로 어울릴 수 없는 단어였다. 황수정은 재판결과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았다. 이후 황수정은 약 5년 동안 칩거하며 자숙의 시간을 가졌다.

 

시간이 더 흐르고 그녀는 연예계 복귀를 시도했다. 하지만 그 때 마다 시청자들의 반발은 컸다. 캐스팅 단계에서 하차하기도 했고, 출연해도 과거처럼 큰 관심을 일으키지 못했다.

 

과거 대마초 등 마약 사건에 연루됐다가 복귀한 연예인들은 많다. 그런데 왜 유달리 황수정은 힘들었을까. 대중들이 받아들이는 인지 부조화의 갭(Gap)이 상대적으로 큰 것이 하나의 이유가 될 수 있다. 인지 부조화의 갭이 클수록 사람들이 느끼는 불편함의 강도도 커진다. 비례관계다. 그만큼 예진아씨의 이미지는 강력했다.

 

그때 그녀가 복귀했던 어느 드라마 속 모습이 기억난다. 연기는 변함없었다. 외모도 거의 그대로 아름다웠다. 하지만 자꾸 아름다운 외모 뒤로 마약을 투약하는 그림이 오버랩이 됐다. 불편했다.

 

황수정은 그렇게 내게 인지부조화를 느끼게 했다. 비슷한 경험을 나는 최근에 <더 지니어스>의 김경란을 통해 하고 있다.

 

극혐 김경란의 감정에 자꾸 가까워지고 있지만 호감 김경란에 서 있었던 사람으로서는 여전히 극혐 김경란'을 받아들이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요즘에는 김경란의 눈빛과 얼굴이 무섭다.

 

특히 인디언 포커를 통해 시즌1에서 홍진호에게, 또 그랜드파이널에서 김유현에게 했던, 남자를 무장해제 시키는 선한 눈매 속에 새하얀 치아를 드러내고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으며 하는 그 말.

 

 

(사진 출처 및 권리= tvN)

 

진호~ 유현~ 나를 봐요~ 제발 날 좀 봐줘~ 아이, 정말”

 

이 말은 정말로 공포스럽다. 부드러움 속에 감춰진 날카로운 칼이다. 시즌1 결승전에서 김경란을 꺾었던 홍진호는 당시 김경란의 눈빛을 피하고 게임을 했다. 이에 대해 그는 "잠시만 봐도 빨려들 것 같은 '메두사'"라는 표현으로 이유를 대신했다.

 

내가 '열린음악회의 김경란'을 과거의 이미지로 덮고, 왕성한 활동의 '방송인 김경란'이라는 새로운 이미지로 느껴 '인지 부조화'를 없애기 위해서는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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