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은 자들은 뻥쟁이들이었다?...!]
코엔 형제는 거짓말의 성격과 작동 기재를 일찌감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1996년 영화 <파고>를 “실화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설명하며 영화를 시작했다.
새빨간 뻥이었다. 영화 <파고>는 완벽한 허구였다. 그럼에도 코엔 형제는 ‘실화 영화’라고 거짓말을 했다. 이유는 사람들이 진실에 기댄 영화를 허구 영화보다 상대적으로 더 철썩 같이 믿는 속성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허구에서 용납되지 않는 영화 속 내용과 장면이 있어도 무사통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것이 <파고>의 감독 조엘 코덴의 답변이었다. 황당한 줄거리도 실화라고 하면 사람들이 군말 없이 받아들이게 되는 현상이 거짓말을 불렀다.
우리 생활 어디에서도 쉽게 일어나는 거짓말은 이처럼 파고들면 한없이 디테일하다. 더욱 따져보면 거짓말은 이슈화되는 거의 모든 전 세계 사회 현상의 대표적 뇌관이다.
거짓말은 사람의 지위, 성별, 나이, 종교를 불문한다. 정치인이나 연예인이 한 순간에 무너지는 큰 요인 가운데 하나에는 늘 거짓말이 자리하고 있다. 멀리 역사적으로는 미국의 대통령 리처드 닉슨이 거짓말로 대통령직을 내려놓았다.
가깝게는 몇 개월 전 이태임과 예원은 거짓말이 나쁜가, 욕설이 더 나쁜가를 가지고 사회 전반을 뜨겁게 달구었다. 2015년 상반기 최다 검색어에 오르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거짓말’은 ‘욕설’보다 대중들에게 더 좋지 않게 인식됐다.
그때 싱크탱커는 어느 한 책의 도움을 크게 받았다. 이태임의 팬이라 자처했던 나는 이 책의 결정적인 내용을 통해 예원의 거짓말에 관련된 글을 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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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뿐만이 아니다. <창조의 재료탱크>가 그동안 인용했던 책 가운데 가장 많이 언급된 책도 바로 그 책이었다. 심지어 이틀 전에도 이 책이 준 딱 하나의 문장이 실마리가 돼 마광수 교수의 에세이와 연결하여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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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 되면 이 책을 소개하지 않는 것은 이 책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그래서 그 책을 소개하기로 했다.
<우리는 10분에 세 번 거짓말한다>(로버트 펠드먼 저, 이재경 옮김, 예담)가 그 책의 제목이다.
이 책은 거짓말을 통찰한다. ‘거짓말學’이라는 말을 붙여도 될 정도다. 단순히 사례 나열에 그치는 책이 아니다. 거짓말이 왜 일어나는지, 어떻게 작동되는지, 거짓말의 화자와 청자의 심리는 어떤 메커니즘을 갖는지, 그것들이 또 어떤 의미를 가지는 지가 제대로 서술되어 있다.
저자인 매사추세츠 주립대 교수 로버트 펠드먼은 거짓말계의 장인이라 불릴 수 있는 사람이다. 무려 30년 동안 거짓말을 연구해오며 거짓말 심리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명성을 얻었다.
내용은 처음부터 끝까지 흥미롭다. 거짓말쟁이의 어드밴티지부터 “맞다, 정말 이렇지”라고 무릎을 탁 치게 만든다. 타인의 말을 무조건 믿어버리는 진실편향 현상을 치밀하게 분석한다. 이 챕터만 읽어도 사회를 바라보는 눈을 폭넓게 만들어준다.
거짓말의 개론에서 언급한 “아이들이 거짓말을 하기 시작하는 때가 사회성을 인식하기 시작하는 때와 같다”는 주장은 강한 설득력을 가진다. 인지발달에 거짓말이 큰 역할을 한다는 전문적인 내용 이외에도 거짓말을 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상황과 여러 가지 주변 사정을 고려해야 한다는 상식적인 지적이 쉽게 내용을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책 중반부의 ‘외도와 거짓말’, ‘자기기만의 심리’, ‘겉치레 속임수’는 주로 인간관계에서 나타나는 1대1일 측면의 거짓말을 다룬다. 사회생활에서 일어나는 심리전에 도움이 될 내용들이다. 책 후반부의 대중매체의 부정직성, 직장 내 속임수, 인터넷 사기 등은 사회 일반의 다층적 거짓말을 다뤄 중반부 내용과 균형을 맞췄다.
싱크탱커의 눈을 가장 크게 사로잡은 부분은 122페이지에 나왔다. “자연은 거짓말하는 개체를 선택해왔다”는 충격적인 깨달음이었다.
펠드먼은 거짓말이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거짓말의 태생적 이유에 합당한 근거를 제시해 효과적으로 세탁했다. 긍정적 세탁이었고 고개가 끄덕여졌다. 합당한 근거는 굳이 책을 읽지 않아도 다시 한 번 “맞다, 그렇지”를 연발케 한다.
<동물의 왕국> 등 자연 다큐멘터리를 보면 알 수 있다. 왜 동물들은 죽은 척을 할까. 포식자가 되기 위해, 또는 포식자에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 위장은 또 왜 할까. 위장이나 죽은 척이나 모두 속임수다. 행동이 표상화(表象化)된 거짓말이다.
그런데 그것이 번식 전략과 종족 보존의 수단이 됐다. 생명이 거짓말을 무기로 하지 않았다면 그 종은 반드시 멸종됐을 것이다. 죽은 척 하지 않은 종은 잡아먹혔고 환경에서 사라졌으며 자연계에서 선택받지 못했다. 결국 살아남은 자들은 뻥쟁이들이었다.
확대해석이 아니다. 거짓말의 DNA에는 이처럼 진화의 뿌리 깊은 생존 본능의 역사가 함께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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