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1989년 플레이오프 디트로이트 피스톤스와의 컨퍼런스 결승 6차전에서 패하고
시카고 불스의 탈락이 확정된 뒤 고개를 숙인 마이클 조던, 경기화면)
농구는 공간(Space)의 스포츠다.
스포츠 가운데 가장 좁은 공간에서 가장 격렬한 신체의 움직임이 이루어지는 운동이 농구다. 농구의 공간은 득점을 위해 솟구쳐서 매순간 공중을 이용해야 한다는 점에서 넓은 공간을 활용하는 축구보다 더욱 입체적이고 극적이다. 공간 없이는 슈팅도 없고 승리도 없다.
농구 역사상 농구의 공간을 가장 강력하게 지배한 선수가 마이클 조던이다. '농구의 신'에게 코트는 신이 거닐 수 있는 유희의 공간이자 치열한 전쟁터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는 농구 역사에 승리자로 남았다. 하지만 조던이 승리자가 되기 위해서는 1980년대 후반 자신을 괴롭힌 하나의 법칙과 하나의 팀을 넘어서야만 했다.
그 하나의 팀은 디트로이트 피스톤스, 하나의 법칙은 ‘조던룰(Jordan Rules)’이었다.
조던룰의 시작은 디트로이트의 감독 척 데일리의 분노와 숙고에서 시작됐다. 1987년 3월 조던은 디트로이트를 상대로 무려 61득점을 폭발했으며, 이듬해 4월 미전역에 방송 전파를 탄 경기에서도 59득점을 쓸어 담았다. 데일리는 이를 참을 수 없었고 결국 코치진과 함께 조던룰을 만들었다.
조던룰은 당시 디트로이트 방송 아나운서의 멘트로써 한마디로 표현할 수 있다. “When He Goes To The Bathroom, We All Go With Him.” “조던이 화장실을 가면 우리도 거기까지 따라간다” 였다. NBA 최고의 득점기계를 봉쇄하기 위한 철저한 밀착 방어였으며, 벌떼처럼 조던에게 달려들어 공간을 주지 않기 위한 10여 가지의 공간봉쇄장치 였다.
구체적인 조던룰의 시행 세칙은 데일리의 표현대로 ‘합법화된 폭력 (Legalized Assault)’이었다. 배드보이스로 대표되는 디트로이트의 거친 수비에는 기술적인 반칙도 상당부분 포함돼 있었다.
배드보이스의 리더 아이재이아 토마스를 비롯하여, 디펜스팀에 4차례나 선정된 조 듀마스, 조던이 플로퍼로 비난했던 악동 데니스 로드맨, 절대 부드럽지 않은 ‘하얀 악마’ 빌 레임비어, ‘유니폼을 입은 조폭’ 린 마혼 등 그들은 철저하게 조던의 공간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조던은 1987-88시즌부터 3년 연속 플레이오프에서 디트로이트의 벽을 넘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조던룰의 진정한 가치는 역설의 미학에 있었다. 조던룰은 ‘조던이 지배하지 못하게’를 위한 전술이었지만, 여기에는 ‘조던이 지배하게끔’ 용인하는 방법도 숨어있었다. 실제로 당시 조던룰에는 조던의 특정 움직임에 반응하지 않고 내버려두거나, 떨어져 수비해 공간을 내준다는 내용도 포함이 되어있다.
이 같은 조던룰의 이면은 나머지 시카고 불스 선수들을 혼란스럽게 했다. 조던룰은 때로 조던에게 행해졌던 육탄 방어가 똑같이 나머지 선수들에게도 적용됐다. 하지만 조던을 제외한 23살의 동갑내기 어린 스카티 피펜과 호레이스 그랜트 등은 1988-89시즌 아직 기량이 완전히 오르지 않은 신진급 선수였다.
당시의 기록을 담은 샘 스미스의 저서 <조던룰>에는 피펜이 디트로이트의 팀 디펜스와 로드맨의 헬프 디펜스를 매우 곤혹스럽게 여겼으며 그랜트는 감정적으로 조절하기 힘들 정도로 코트에서 평정심을 잃었다는 내용이 나온다. 존 팩슨 역시 크게 심리적으로 동요했으며, B.J 암스트롱이나 스테이시 킹은 아직 이들에 맞설 준비가 되지 않은 선수들이었다.
조던룰이 역설적인 또 하나의 이유는 조던룰이 조던에게 행해졌음에도 아래의 표처럼 조던의 평균 득점과 평균 야투수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점에서 실증할 수 있다. 더욱 미스터리한 부분은 조던룰이 조던의 야투율을 상당 부분은 하락시켰음에도 조던은 시즌 평균과 유사한 야투수와 득점을 기록했다는 사실이다. 해답은 평균 자유투 시도에 있었다. 조던은 떨어지는 야투율에도 더 많은 자유투 기회를 얻어 이를 상쇄시킬 수 있었다. 이는 조던이 그만큼 디트로이트 수비에 신체적으로 격렬한 방해와 압박을 받았음을 의미한다.
결국 조던은 더욱 힘든 '피지컬 게임'을 해야했고, 항상 패싱 아웃을 생각해야 했다. 1989년 디트로이트와의 컨퍼런스 결승 6차전에서 조던은 32득점 13어시스트 3스틸 2블록으로 맹활약했지만 동시에 무려 8턴오버를 범했다. 자유투 성공률도 41.7%(5/12)라는 믿기 힘든 기록이 나오며 결국 팀도 패했다. 외관상 기계의 퍼포먼스는 같아보였지만 기계 자체의 내구력은 피곤하게 고갈되고 있었던 것이다. 궁극적으로 조던룰은 조던을 이기는 전술이 아니라 시카고를 이기는 전략이었고, 조던 중심의 시카고 시스템을 고장 나게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낸다.
시스템에는 시스템으로 대응해야 한다. 결국 시카고는 조던룰에 대응할 수 있는 텍스 윈터가 고안한 ‘트라이앵글 오펜스’로 맞섰다. 팀 전원이 조던의 움직임에 따라 조직적으로 공격에 가담할 수 있는 새로운 공격 시스템이 빛을 발하며 조던의 시카고는 마침내 디트로이트를 넘어서며 1990-1991시즌 NBA 정상에 올랐다. 조던룰은 이때서야 비로소 폐기될 수 있었다. 후에 연속 우승으로 시카고의 명장이 된 필 잭슨은 “샘 스미스의 저서 <조던룰>이 승리에 큰 도움이 되었다”는 말을 남겼다.
조던룰은 단 한 명의 선수를 막기 위해 상대팀 전체가 유기적인 대응 전략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스포츠 역사상 매우 주목할 만한 사례이며, 또 성공을 거두었다는 점에서 창조적인 전략기법으로 가치가 있다.
(사진: 1989년 컨퍼런스 결승 6차전에서 승리가 확정된 뒤 패한 마이클 조던을 위로하는 아이재이아 토마스)
흔히 조던이 정상에 서기까지 7년의 시간이 필요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를 막아섰던 디트로이트의 심장 아이재이아 토마스 역시 정상에 서기까지 8년의 시간이 필요했다는 사실은 많이 간과된다. 만약 조던룰이 없었다면 토마스와 디트로이트가 우승에 이르는 시간이 더욱 길어졌을 지도 모른다. 아니면 ‘배드보이스의 우승’ 이라는 말 자체가 없었거나.
쉬운 승리와 쉬운 우승이라는 말은 스포츠에 존재하지 않는다.
By ThinkTan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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