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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적 기법

'애매성의 시대', 정보전달 어떻게 할 것인가

 

(사진: 치매예방 테스트로 인터넷에 화제가 된 개구리 그림)

 

 

[창의성 기법으로서의 애매성과 모호함’]

 

치매가 걸릴 나이는 아니지만, 그래도 다행히 치매는 아니었다.

 

몇 주 전 카카오톡을 통해 알게 된 위의 사진은 치매예방 테스트로 인터넷에서 한동안 떠돌던 그림이다. 이 그림을 보고 30초안에 개구리 이외의 동물을 찾지 못한다면 치매라고 했다.

 

이 그림은 인간은 자신이 본 것을 조직화하려는 기본 성향을 가지고 있다는 게슈탈트 심리학 중복 그림의 한 예시이다.

 

그런데 이 그림이 멀리 퍼진 이유에 대해 의문이 들었다. 개구리 그림에는 중요한 키워드가 숨어있다. 바로 애매성모호함이다. 개구리 그림은 각도를 어떻게 해서 보느냐에 따라 다른 그림이 나온다. 이 그림을 보는 사람 스스로 애매모호함 때문에 시각을 바꿀 수 있고 해석을 만들 수 있다.

 

애매성과 모호함은 이처럼 자신이 본 것을 조직화한다는 인간의 기본 성향을 작동시킨다는 점이 중요하다. 여기서 또 하나의 창의성 기법을 이끌어낼 수 있지 않을까.

 

오래전부터 애매성은 그다지 각광받지 않던 개념이었다. 무엇이든 확실하고 명확한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다고 믿었다. 애매성에 관한 기사를 찾아보니 5년 전만 해도 애매성은 부정적인 시각이 대부분이었다. 특히 광우병 사태 등 루머의 확산에 있어 애매성은 잘못된 정보의 주범으로 인식됐다.

 

그 당시 인터뷰에서 조대엽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사회학적으로 루머는 정보의 중요성과 애매성이 클수록 확산하기 쉽다는 게 공식이라며 광우병 사태와 천안함 사건에서 우리 정부는 중요한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기보다 애매성이 높은 수준으로 제공해 국민이 진실을 추론해 가는 과정에서 루머가 생기고 커졌던 것이라고 분석했다. (연합뉴스 2010.09.30)

 

이 인터뷰의 내용은 매우 중요하다. 2가지의 중대한 사실을 설명한다.

 

첫 번째는 루머의 확산성과 애매성이 정비례 관계라는 점이며, 두 번째는 정부가 정보를 애매성이 높게 제공해 국민들이 진실을 추론하게 되는 과정을 만들었다는 점이다. 여기서 루머정부의 불충분한 정보라는 단어를 사람들이 알고 싶은 사실이나 정보로 바꾼다면 애매성의 숨겨진 진면목이 드러난다. 바로 정보가 애매하면 사람들이 관심을 갖게 되고 널리 퍼진다는 점이다.

 

이제 5년 전과는 사회가 달라졌다. 애매성의 높아진 위상을 효과적으로 이용하는 크리에이터들이 생겨났음을 느끼게 한다. 실제로 애매성이 우리 사회의 트렌드를 주도하고 있다는 점을 여러 부분에서 목격할 수 있다.

 

 

(사진: SBS)

 

가요 이 대표적이다. 소유와 정기고가 부른 은 지난해 디지털 음원 시장에서 41일 연속 최장 1위 기록을 세웠고, 음악 프로그램에서 총 22개의 트로피를 얻었다. 발매시기를 고려하면 거의 1년 내내 꾸준히 남녀노소 고르게 사랑받으며 국민가요로 인기를 얻었다.

 

노래 제목 자체가 2014년 대중문화계 전반에 걸쳐 신드롬을 만들었다. 썸은 애매함, 모호함과 동의어다. 노래 가사 내 것인 듯 내꺼 아닌 내꺼 같은 너에는 애매성이라는 키워드가 녹아있다. 편안한 멜로디를 떠나 사람들은 이 노래의 가사에서 스스로를 이입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했고 오래도록 이 노래를 잊지 않게 만들었다.

 

또 하나의 신드롬 드라마 <미생> 역시 마찬가지다. 예전 포스팅[창조적 기법] - 'Creative' 미생이 보여준 7가지 새바람 에서 언급했듯이 미생은 드라마 전체에 모호함과 불확실성이 흐른다. 캐릭터 하대리, 장백기 등을 통해 피아식별을 흐리게 만들었고, 러브라인은 끝까지 결말이 드러나지 않았다.

 

특히 장그래의 정규직 전환 여부가 마지막회 선차장이 등장하고 무려 59초간 침묵으로 표현된 뛰어난 연출력에서는 모호한 화면 구성이 얼마나 사람들에게 큰 효과를 낼 수 있는지를 증명했다. 미생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창의성 기법 중 하나인 불확실성에 대한 포용력(Sfumato: A willingness to embrace ambiguity, paradox and uncertainty)이 무엇인지를 보여준 드라마다.

 

스포츠 역시 예외는 아니다. 지난해 삼성라이온즈의 히트상품 박해민(24)은 빠른 발과 번트 능력을 애매성의 키워드로 이용했다. 박해민은 원래 타격이 약했다. 하지만 센스 있는 번트 기술로 자신을 어필하며 기회를 얻기 시작해 주전 중견수 자리를 꿰찼다. 0.297의 타율과 36도루로 이후 공격 능력에도 소질을 드러냈다.

 

그의 번트는 수비수들에게 애매한 정보를 항상 인식시켰다. 수비수들은 주자가 없을 때 박해민이 등장하면 늘 기습번트에 대한 대비를 해야 했다. 주자가 있을 때는 박해민의 페이크 번트 앤 슬래시(Fake bunt and slash)가 대표적인 모호성 무기였다. 번트 자세만 취해도 복잡해지는 상황을 만드는 그의 빠른 발과 컨택 능력은 상대의 수비 시프트를 흔들었고, 삼성벤치의 작전 루트를 다양하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해냈다.

 

 

(움직이는 사진: 박해민의 번트2루타, KBS)

 

박해민은 지난해 68일 대전구장에서 열린 한화 이글스와 경기에서 7회초 번트로 2루타를 만드는 깜짝 놀랄 장면을 연출했다. 애매모호함을 느낀 한화 3루수 송광민이 어정쩡한 수비위치에서 앞쪽으로 달려 나왔고 박해민은 절묘하게 송광민 머리 위로 공을 넘겼다. 타구는 좌익수 앞까지 굴러갔다. 박해민의 애매성이 만든 진기한 2루타였다.

 

이어령 선생 역시 애매성의 가치를 주장한다. 그의 대표적 주장인 된 저서 <디지로그>는 정보의 결합이 주요 메시지지만 진짜 메시지는 애매성이라고 싱크탱커는 생각한다. 사실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합성 자체가 애매함과 모호함이다. 어떤 개념이 합성되면 합성된 개념은 새로운 개념이기도 하지만, 이 안에는 원래 가진 개념들이 섞였기 때문에 최초 요소들의 애매함이 묻어있게 마련이다.

 

은근한 정보가 시선을 잡는다. 완전한 노출보다 벗은 듯 노출한 여체의 이미지에 더욱 섹시함을 느끼는 남자의 본능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은근함은 애매성과 연계되어 있고 애매성은 정보에 대한 주목도를 자극한다. 정보의 은근함에 대해 이어령 선생은 디지로그에서 이렇게 말했다. “진짜 정보는 은근함에 있다. 노골적으로 겉으로 노출되어 있는 정보는 이미 정보 가치가 반감된다. 정보는 은밀할수록, 애매성을 띨수록 그 효과가 커진다.”

 

 

 

(사진: 애매성과 연계되어 있는 현대사회의 징후 마인드맵, By ThinkTanker)

 

 

애매성의 가치는 제레미 리프킨의 엔트로피(Entropy)’ 개념과도 연결할 수 있다. 엔트로피 법칙은 오늘날 하나의 물리학 법칙에 국한되지 않고 현대사회의 하나의 세계관으로까지 간주된다. 우리말로 무질서도인 엔트로피는 사이버 공간의 오염이라는 부정적 개념으로 주로 쓰여 왔다.

 

그러나 정보의 확산성 측면에서 엔트로피는 더 이상 무질서한 쓰레기가 아니다. 인터넷의 발달은 엔트로피 증가를 가속화하며 새로운 긍정적 효과를 유발하기도 한다. 엔트로피가 높을수록 정보에 대한 참여도도 높아지고 끌어당기는 힘도 커진다. 이 엔트로피를 높이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정보의 애매성이다.

 

글 서두에 애매성은 개구리 그림처럼 자신이 본 것을 조직화한다는 인간의 기본 성향을 작동시킨다고 했다. 자신이 본 것을 조직화 한다는 것은 <스스로 편집할 수 있는 가능성>과 같은 말이다. 편집 가능성이라는 인간의 본성을 건드리는 애매성은 그래서 효과적인 창의성 기법이 될 수 있다.

 

By ThinkTank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