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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적 기법

이어령의 100년 서재(2), 하늘의 시선 '창의성'

 

(사진 출처 및 권리: KBS)

 

 

[윤동주의 마음이 창의성 마인드다?]

[폭 넓은 시야는 창의성에서 왜 중요할까]

 

이어령 선생의 여러 가지 수식어 가운데 그의 경력상 가장 첫 번째로 붙여졌던 수식어는 문학평론가.

 

지난 12<이어령의 100년 서재> 네 번째 방송 하늘의 시선편에서 선생은 윤동주의 서시를 문학 평론했다.

 

역시나 전혀 다른 시각이었다. 학교 수업에서 들었던 종교시, 저항시, 정치시가 아니라 하늘의 마음을 담은 시라는 해석이 눈길을 끌었다.

 

윤동주의 서시를 설명하기 전에 선생은 동양의 하늘 속에서는 서양과 달리 모든 것을 뛰어넘고 통합하는 초월적 의미가 담겨있다고 언급했다. 동양 사상의 천(하늘), (), (사람)에는 하늘과 땅이 대립하는 서양의 이원론과 달리 셋이면서 하나인 통합과 조화로움을 품고 있다. 윤동주의 서시는 이 같은 동양의 삼재사상과 맥을 함께 하고 있었다. 선생은 서시를 하늘, , 사람으로 나누면 이 시가 보인다고 말했다.

 

사실은 언어를 칼로 분해하는 문학 분석의 평론이 아니라 감성의 일깨움이었다. 우리가 말하는 창피함이란 땅에서의 창피함, 남의 시선을 의식한 부끄러움이다. 그러나 윤동주가 서시에서 말하는 부끄러움이란 하늘이 나를 바라볼 때의 부끄러움, 즉 자기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이었다. 그래서 서시의 첫 번째 표현으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이 나왔다.

 

(사진 출처 및 권리: KBS)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선생의 설명처럼 윤동주는 하늘까지 올라가 있는 사람이었다.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하면서 풀잎에서부터 별까지 바람을 따라 하늘까지 가겠다는 의미는 마지막에 나는 나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로 함축적으로 표현했다.

 

그런데 선생의 설명을 듣고 싱크탱커는 이어령 선생이 해석한 윤동주가 서시에서 표현한 마음이 창의성 마인드와 매우 유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슨 의미일까.

 

(사진 출처 및 권리: KBS)

 

먼저 창조의 재료를 바라보는 시선이 서시의 마음과 비슷하다. 윤동주는 서시에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하겠다고 말했다. ‘모든 죽어가는 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의 대상이 아니다. ‘무가치한 그 어떤 것으로도 대변된다. 그러나 윤동주는 이런 것들도 사랑하겠다고 했다.

 

창조의 재료도 마찬가지다. 창조의 재료에는 한계가 없다. 무엇이든 될 수 있다. 역사상 많은 창조는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의 대상이 아니며 무가치한 그 어떤 것에서 탄생했다. 창의성 마인드도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면 창조 작업에서 다른 사람보다 유리하다. 상대적으로 더 많은 것을 창조의 재료로 삼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창조의 재료는 광범위하고 포괄적인 통합적 시각에서 더 잘 보이고 더 많이 모을 수 있다. 그 시각이 윤동주가 서시에서 가졌던 하늘의 시선이다. 하늘의 시선은 일단 결정적으로 아름답다. 방송에서 소개된 겸재 정선의 관동명승첩이나 금강전도’, 김응환의 만물초가 일본의 화가 가쓰시카 호쿠사이가 그린 후지산의 36보다 훨씬 아름다웠다.

 

우리 조상들이 그린 그 그림들이 하늘에서 바라본 눈으로 그렸기 때문이다. 창의성 마인드도 하늘의 시선처럼 남들보다 더 높은 위치에서 볼 때 모든 죽어가는 것으로 대표되는 창조의 많은 재료들을 더 잘 볼 수 있게 된다. 아름다운 창조 작업도 그때 나온다.

 

이어진 방송에서 다뤄진 프랑스의 사진작가 얀 아르튀스 베르트랑 (Yann Arthus-Bertrand)이 찍은 아래의 사진에서 다시 한 번 하늘의 시선이 갖는 창의성의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사진 출처 및 권리: 얀 아르튀스 베르트랑, KBS)

 

이 사진은 5년 동안 독도에서 마라도까지 한국의 초상을 찾아 나선 얀 베르트랑의 사진을 모아 2008년 발간한 사진집 <하늘에서 본 한국 (KOREA from ABOVE)>에 나온 플라스틱 쓰레기 더미를 하늘에서 찍은 사진이다.

 

이 사진을 모니터에서 떨어져서 약간 더 뒤에서 보자. 그때 이 사진은 쓰레기 사진이 아니라 예술 사진이 된다.

 

이 사진은 창의적 시각이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설명해 준다. 대부분은 누구도 쓰레기 더미를 눈 여겨 보지 않는다. 그러나 하늘의 시선, 폭 넓은 시야로 바라보면 누군가에게 무가치한 쓰레기’, 윤동주가 말한 죽어가는 모든 것 중 어느 하나는 이렇게 창조의 재료가 되고 전 세계 많은 사람들에게 신의 눈으로 평가받는 한 사진작가가 펴낸 사진집의 재료가 되기도 한다.

 

(사진 출처 및 권리: KBS)

 

위에서 보는 시선을 갖자”, “미래를 보는 넓은 안목과 이해관계를 뛰어넘는 하늘의 마음을 품어야 한다는 이어령 선생의 최종 메시지는 다름 아닌 크리에이터가 가져야 할 시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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