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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물 & 창조적 글쓰기

한화의 이치로, '3번 타자' 김경언의 몰상식

 

(사진 출처 및 권리: 한화이글스)

 

 

[다른 것은 더욱 다르게, 이상한 것은 더욱 이상하게...]

[누군가의 몰상식은 누군가에게 상식이다]

 

에이~ 쯧쯧, 저런 선수가 프로선수라고...”

 

한화의 열렬한 팬인 나의 지인은 원색적으로 그를 비난했다.

 

야구 선수를 타박할 권리는 야구팬의 권리이기도 하지만 조금 심한 표현이다 싶었다. 하지만 그의 타격을 보면 적어도 표현의 수위는 차치하고라도 비난의 이유는 타당해보였다.

 

그의 스윙은 완전히 무너져있었다. 심하게 땅에 처박히는 원바운드성 공을 땅바닥에서 다시 광부가 석탄을 파내듯이 무리한 스윙을 하고 있었다. 그것도 몸이 앞으로 심하게 쏠리면서 배트가 홈플레이트 앞에서 공의 궤적을 추적할 수 없게 춤을 췄다. 한마디로 균형이 깨져버린 스윙이었다.

 

공의 궤적은 주로 변화구였다. 상식적으로 변화구를 공략할 수 없는 스윙이었다. 변화구가 뭔가. 대표적인 변화구 커브는 홈플레이트 앞에서 떨어지는 공이다. 슬라이더는 홈플레이트 앞에서 휘어지는 공이다. 그래서 타자들은 조금이라도 공을 오래보기 위해 홈플레이트 뒤에 자리를 잡거나 타격의 중심을 뒤쪽에 놓는다.

 

사실은 타자의 기본이기도 하다. 변화구뿐만 아니라 직구 역시 조금이라도 타자는 홈플레이트 뒤에서 공을 보는 것이 유리하다. 투수와 타자의 싸움은 거리의 싸움이다. 왜 야구에서 투수와 타자의 거리는 18.44m로 정해져있는가. 왜 야구에서 포수의 미트가 타자가 스윙하는 배트에 닿으면 타격 방해를 선언하는가. 투수와 포수의 배터리가 조금이라도 공과 배트가 맞는 거리를 줄이는 행위를 방지하기 위해서다.

 

반대로 조금이라도 더 뒤에서 투수의 공을 보기를 원하는 사람이 타자다. 투수와 타자의 거리가 만약 18.44m가 아니라 20m라면 야구는 타자들이 투수들을 지배하는 스포츠가 될 것이다. 이런 타자의 월권을 막기 위해 포수의 타격 방해에 대응하는 배터 박스의 존재 이유로써 야구는 균형을 맞췄다. 그래서 투수가 던진 공의 궤적을 용이하게 추적하기 위해 타자가 최대한 홈플레이트 뒤에서 타격하거나 중심을 뒤쪽에 놓는 것은 야구의 상식이다.

 

이것이 상식이라면 그의 스윙은 몰상식한 스윙이었다. 타석 뒤쪽에 자리를 잡았을 지라도 그는 주로 팔과 배트가 먼저 앞으로 나가는 스윙을 자주 연출했다.

 

그는 4년 전 야구장에서 우연히 본 김경언(33·한화 이글스)이었다.

 

스윙이 너무 특이해서 다음 타석도 궁금했는데 역시나 였다. 헛스윙 삼진이었다. 그리고 매번 풀스윙이었다. 당시 한화 관중석에서는 조롱에 가까운 야유까지 튀어나왔다.

 

그것이 이상한 타자김경언에 대한 오래전 기억이었지만 선명한 기억이기도 했다.

 

한동안 그의 이름을 잊었다.

 

그런데 지난해부터 조금씩 그의 이름은 미디어에 흘러나왔다. 타격 상승세라는 믿을 수 없는 사실 때문이었다. 심지어 전임 김응룡 감독은 그를 ‘3번 타자에 배치했다. 하지만 꼴찌 팀의 3번 타자란 그렇게 주목받지 못하는 자리다.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났고 김성근 감독이 한화에 새로 왔다. 야신의 한화는 올해 프로야구 개막 이전부터 엄청난 주목을 받았다.

 

개막전 야신의 라인업이 궁금했다. 특히 한화의 3번 타자가 매우 궁금했다. 야구에서 그 팀의 투타 수준과 현주소를 가장 잘 보여주는 선수 두 명은 마운드의 1선발과 타석의 3번 타자다. 가장 잘 던지는 투수와 가장 정확한 타자를 대변하기 때문이다.

 

 

(사진 출처 및 권리: MBC Sports+)

 

그런데 눈을 의심했다. 한화의 3번 타자가 그 몰상식한 스윙의 기억을 안겨준 김.,. 이었다. 지난 328일 목동구장에서 열린 한화 이글스의 넥센 히어로즈와의 개막전 선발 선수에는 분명히 김경언이 3번 타자에 이름을 올리고 있었다.

 

이건 뭔가 잘못됐다 싶었다. 올해의 시작을 알리는 한화 타선의 가장 정확한 타자가 김경언이라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은 한화 야구의 얇은 선수층을 대변하거나, 부상으로 빠진 몇몇 선수들의 땜질용 타순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김응룡의 시선을 김성근도 그대로 이어받았다. 한국 프로야구의 역사를 대표하는 감독들의 시선은 정확했다. 이날 그의 상대는 20승 왼손투수 앤디 벤 헤켄(36)이었다. 그럼에도 김성근은 좌타자인 그를 3번에 배치했다.

 

김경언은 달라져 있었다. 일단 타석에서 비춰진 그의 수염과 눈매가 매우 매서웠다.

 

김경언은 한화가 3회초 잡은 22.3루의 기회에 두 번째 타석에 등장했다. 벤 헤켄은 철저한 바깥쪽 제구를 했다. 볼카운트 1-1에서 벤 헤켄은 3구째 또 한 번 바깥쪽 낮은 직구를 유인구로 던졌다. 거의 공하나 정도로 구별해야 하는 핀 포인트 제구였다. 20승 투수다운 효과적인 투구였다.

 

그러나 김경언은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투수의 핀 포인트 제구에 맞설 수 있는 핀 포인트 선구안이었다. 3구째 어려운 볼을 골라냈다. 4구째도 같은 구질, 비슷한 코스를 또 골라내며 볼카운트를 3-2까지 끌고 갔다.

 

김경언은 6구째 벤 헤켄이 끝까지 고집한 바깥쪽 직구를 놓치지 않았다. 145km의 빠른 볼을 결대로 밀어내며 좌측 안타로 연결해 2타점 적시타를 때렸다.

 

한화의 시즌 첫 타점이 나온 과정은 인상적이었다. 한화의 3번 타자는 공을 매우 정교하게 골라냈고 마침내 집요하게 기다렸던 코스에 공이 오자 아래 사진처럼 정확하게 타격했다. 몰상식한 스윙이 아니라 스윙의 정석이었고 3번 타자의 정석이었다.

 

야신이 그를 3번 타순에 배치한 것은 이유가 있었다. 김경언은 지난해에도 벤 헤켄을 상대로 4타수 2안타를 때려냈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됐다.

 

(사진 출처 및 권리: MBC Sports+, KBO)

 

개막전 이후 그의 행보는 4년전 기억 속에 자리 잡은 김경언이 아니었다. 지난해 처음으로 300타수에서 이뤄낸 커리어 하이 313(94안타)의 타율이 우연이 아니었음을 증명하고 있었다.

 

그는 오랜 시간 철저한 무명이었다. 2001년 기아에 입단해 2009년까지 주목받지 못한 타자였다. 자리를 잡지 못했고 결국 2010년 한화로 이적했다. 유니폼을 바꿔 입었어도 특별한 변화가 없었다. 2013년까지 김경언은 프로 12년 동안 510안타 밖에 때려내지 못했다. 매년 평균 42.5개의 안타만을 기록한 타자의 운명은 2군 아니면 조기 은퇴가 정해진 수순이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그는 완전히 다른 선수로 변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미디어를 통해 알려진 가장 주목할 부분은 몸이 자주 앞으로 쏠리면서 배트를 돌렸던 기존의 이상한 스윙자세를 수정하거나 버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김성근 감독은 김경언에게 보면 볼수록 신기하지만 그냥 네 맘대로 하라고 했다고 말했다. 지난해에도 장종훈 타격 코치가 같은 주문을 했다.

 

창의성의 핵심은 다른 것은 더욱 다르게, 이상한 것은 더욱 이상하게하는 <디퍼런트(Different) 정신>이다. 김경언은 창의적인 타자였다. 남들에게 보이는 몰상식한 스윙이 오히려 자신에게 상식적인 스윙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자신에게 강점이 있던 타이밍과 스윙 감각을 버리지 않았으며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 정확한 타자로 거듭났다. 엄청난 연습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모습이 지난 1일 이글스파크에서 열린 롯데 자이언츠와의 경기였다.

 

한화가 6회말 3-5에서 4-5로 추격하기 시작한 가운데 맞이한 2사 만루 기회에서 김경언은 롯데 구원 투수 왼손 심규범(24)을 맞이했다. 볼카운트는 불리했다. 1-2로 몰렸다. 4구째 심규범은 바깥쪽 깊숙하게 떨어지는 변화구를 던졌다. 매우 잘 던진 유인구였다.

 

그러나 김경언표 스윙은 사진처럼 이 공을 받아쳤다. 4년 전 나의 지인이 비난한 프로 선수답지 못한 그 이상한 스윙과 똑같이 오버랩 됐다. 균형은 무너졌고 몸과 팔이 먼저 뻗어 나왔다. 결과는 달랐다. 공은 배트에 절묘하게 컨택이 됐고 좌익수 앞에 떨어지는 짜릿한 2타점 역전 적시타로 연결됐다.

 

엉덩이가 빠지고 완전히 균형이 무너진 상태에서도 그는 방망이를 쭉 뻗으며 기어코 안타를 만들어냈다. 타격이 연출하는 한 편의 예술이었다. 한화는 결국 이날 홈런을 포함 5타수 3안타로 활약한 김경언에 힘입어 7-5로 역전승을 거뒀다.

 

(사진 출처 및 권리: SBS Sports, KBO)

 

지난해부터 올해 그는 한화 팬들에게 갓경언’, ‘김치로로 통한다. 일본의 타격 기계스즈키 이치로(42·마이애미 말린스)를 떠올리게 하는 용모와 타격 센스 때문이다. 등번호까지 51번으로 똑같다. 정작 김경언은 이치로와 전혀 관계가 없다고 말했다. 기존에 달았던 “65번이 너무 느려 보여 빠르게 보이는 번호를 원해서 51번을 달았다고 언론을 통해 밝혔다.

 

하지만 그가 이치로와 다른 부분은 이미지다. 이치로는 많은 사람들에게 야구를 잘 하는 나쁜 남자이미지가 강하지만, 김경언은 착한 남자. 그는 올 겨울 매우 착한 남자였다.

 

FA 자격을 취득한 그는 김성근 감독과 함께하고 싶어 FA 협상을 준비하는 대신, 일본 오키나와 마무리 훈련에 참가했다. 김경언의 최종적인 FA 몸값은 3년에 85000만원이었다. 역대 FA 최고액을 기록한 최정(28·SK 와이번스)의 몸값 86억 원의 10%에도 미치지 못한 FA 시장의 상대적 소액이었다. 시장의 평가도 반영됐겠지만 그는 돈 대신 땀을 선택했다.

 

그는 이렇게 착한 남자였다. 하늘은 착한 사람을 돕는다고 했다. 그가 올 시즌 벤 헤켄을 상대로 뽑아낸 첫 안타는 사실 넥센의 좌익수 브래드 스나이더가 잡을 수 있는 타구였다. 하지만 묘하게 글러브를 맞고 안타가 됐다. 혹시나 이 안타는 착한 남자에게 하늘이 내린 행운은 아니었을까. 하지만 이런 행운도 준비가 있는 자만 얻을 수 있다. 20승 왼손 투수의 빠른 직구를 받아치는 실력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김경언은 3일 롯데 전까지 한화가 치른 27경기 가운데 팀원들 가운데 가장 많은 16경기에 3번 타자로 출전해 61타수 26안타를 쳤다. ‘3번 타자타율은 무려 426리다.

 

리그를 대표하는 정확한 타격을 자랑하는 김경언은 충분히 ‘3번 타자에 들어설 자격이 있는 선수다. 그는 결코 몰상식한 스윙을 하는 3번 타자가 아니었다.

 

그리고, 야구에선 남과 다른 것이 틀린 것은 아니다. 때론 누군가의 몰상식이 누군가에겐 상식을 넘어 절대적인 진리가 될 때가 있다.

 

By ThinkTank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