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커리가 역대 최고의 3점 슈터인 이유]
동네 농구 한 번이라도 해본 사람은 다 안다.
3점슛은 어렵다. 성공시키기 힘들다. 이유는 두 가지다. 림과 슛을 쏘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거리가 멀면 당연히 슛을 위해 힘이 많이 들어간다. 정확성은 2점 미들슛에 비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농구는 골밑을 지배하는 스포츠다. 농구가 작은 선수의 이점을 위해 3점슛을 도입했다는 것은 표면적인 이유다. NBA가 1979년, FIBA가 1984년 3점슛을 도입한 보다 정확한 농구의 진실은 골밑을 지배하는 스포츠를 더욱 확실하고 공고히 하기 위해서였다.
3점 라인(FIBA 6.75m, NBA 7.24m)이 생기고 림과 공격 영역의 공간이 커지면서 골밑과 백코트 수비진의 거리가 벌어졌고 외곽 슈터의 존재는 인사이드만을 수비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상대적으로 골밑의 장신 공격자들은 공간을 얻게 됐고, 이 과정에서 농구는 인사이드, 아웃사이드의 균형을 포함해 다양한 작전과 전술을 파생시켰다.
3점 슈터는 그래서 역설적으로 3점 라인의 수혜자이면서도 골밑을 위한 농구의 보조자이자 조연이었다. 농구의 역사에 3점 슈터가 주연으로서 돋보였던 경우는 드물다. 3점 슈터는 기본적으로 정적이다. 그만큼 정확성이 요구된다. 미들슛보다 정교한 조준과 팔에 가중된 힘을 써야하기 때문에 신체의 많은 동적 움직임은 마이너스 요소다.
그들의 모습은 코트의 한 지점에서 자리를 잡고 슛을 던지는 스팟업 슈터(Spot Up Shooter)나 오픈 찬스에서 수동적으로 동료의 패스를 받아 슛을 하는 캐치 앤 슛(Catch-and-Shoot)이 전형적이다. 농구의 시간이 오랜 기간 자리잡아온 통념이다.
NBA가 배출했던 뛰어난 3점 슈터였던 스티브 커(현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 감독)는 전성기 3점슛 필드골 성공률이 5할이 넘는 정확한 슈터였고 우승에 큰 공헌을 했지만 시카고 불스 황금시대에 주연은 마이클 조던이었다.
레지 밀러(전 인디애나 페이서스)와 레이 앨런(전 마이애미 히트)은 3점 슈터의 발전된 형태로서 3점슛의 역사가 됐다. 밀러는 ‘밀러 타임’으로 대표되는 무서운 폭발력과 스크린을 돌아 나와 자리를 잡고 기회를 만드는 능력이 역대 최고였다. 3점슛이 가공할 무기가 될 수 있음을 리그에 처음으로 인식시켰다. 하지만 우승반지는 얻지 못하고 은퇴했다.
캐치 앤 슛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3점 슈터는 앨런이었다. 극도로 짧은 슈팅 릴리즈와 속사포 3점슛의 신기원이었다. 그러면서도 매우 정확했다. 포물선이 거의 없는 완만한 직선으로 날아가 림에 빨려 들어가는 앨런의 3점슛은 르브론 제임스와 케빈 가넷에게 우승을 선물했다. 다만 앨런 역시 주인공은 될 수 없었다.
밀러와 앨런은 3점슛의 최고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일정 부분 동적 움직임(특히 앨런의 경우 밀워키 벅스 시절 뛰어난 운동능력을 보여주기도 했다.)이 있었지만 그들 역시 3점슛의 통념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순 없었다. 밀러나 앨런이 드리블 개인기를 통해 3점슛 기회를 만드는 장면은 극히 제한적이었다.
국내 농구에서 3점슛이 뛰어났던 선수를 돌아보면 우지원과 문경은, 그 이전에는 이충희와 김현준이 있었다.
하지만 우지원과 문경은 역시 3점 슈터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선수들이었다. 우지원이 현역시절 드리블로 기회를 만들어 3점슛을 성공시킨 적은 거의 본 적이 없다. 문경은은 넓은 슈팅 레인지와 스크린 움직임, 속사 능력 등에서 역대급 슈터였다. 다만 ‘람보 슈터’로서의 폭넓은 이미지는 동적이었지만 3점 슈터로서의 움직임은 역시 정적인 틀을 깨뜨리지는 못했다.
‘슛의 전설’ 이충희는 전형적인 스코어러이지, 3점 슈터로 보기는 무리가 있었다. ‘전자 슈터’ 김현준 역시 마찬가지였다. 다만 3점슛이 만들어지고 성공하는 동작 측면만 볼 때 가장 동적 3점슛에 가까운 선수는 김현준이었다. 그는 간혹 드리블로 선수를 제쳤으며, 앨런처럼 포물선 없는 정교한 외곽슛으로 시대를 풍미했다.
(※김현준의 동적 3점슛의 움직임에 아주 흡사한 선수가 김민구(KCC·24)였다. 그러나 음주 교통사고로 그를 코트에서 보기 힘들다는 것이 안타깝다.)
3점 슈터란 이렇다. 어렵고 정교해야 하고 동적이기보다는 정적이며, 드리블 능력이 전반적으로 떨어지고 팀에 기여는 하지만 주연이 되기 힘든 인물이다.
다시 동네 농구로 돌아와서 생각해봐도 마찬가지다. 아파트나 학교 운동장, 각종 농구 동호회 농구장에서 주변 사람들이 농구 잘한다는 말을 하는 선수는 거의 3점 슈터가 아니다. 뭔가 드리블을 화려하게 잘하고 빠르게 코트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선수를 농구 좀 한다고 한다. 아마추어 농구판에서도 3점 슈터는 가려져있다.
스티븐 커리(27·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는 이 같은 농구의 통념, 3점슛의 모든 통념을 무너뜨렸다.
지금까지 싱크탱커가 3점슛에 대해 쓴 2,214글자를 모두 무효로 만들어버린다. 언급한 전체 문장의 서술어를 반대로 바꾸거나 합성하면 커리에게 의미가 통한다.
개인적으로 농구 경기를 30여년 보아왔지만 커리 같은 움직임을 보여주는 선수는 도대체 본 적이 없다. 커리는 3점슛을 매우 쉬우면서 정교하게 던진다. 정적이기보다는 동적이며, 드리블 능력이 매우 뛰어나며 팀에 기여를 하면서도 농구의 주연이다.
커리는 3점 슈터의 완벽한 혁명가이자 크리에이터다.
커리를 수식하기 위해 많은 설명은 불필요하다. 단적으로 한 문장으로 표현하면 ‘3점슛을 미들슛처럼 던지는 창조적 슈터’이다.
이 말에 커리를 설명하는 모든 의미가 함축돼 있다. 미들슛은 개인기의 영역이지만 3점슛은 개인기의 영역이 아니다. 미들슛은 농구에서 가장 쉽고 빈번하게 나온다. 선수 개인이 드리블로 기술을 사용하거나 점프력을 극대화 할 수 있다. 아이솔레이션 일대일 상황에서 선수 능력을 십분 발휘할 수 있는 영역이다.
커리는 이런 미들슛을 7.24m 밖에서 똑같이 시연한다. 3점슛을 개인기의 영역으로 끌어들인 최초의 선수다. 전술적으로 골든스테이트는 앤드류 보거트나 드레이먼드 그린이 커리의 3점슛을 위해 스크린을 자주 건다. 그러나 스크린만이 커리의 3점슛에 필수 요소였다면 그는 크리에이터가 아니었을 것이다.
커리는 ‘샷 크리에이터’다. 너무 쉽게 일반 미들점퍼와 흡사하게 개인기를 이용해 기회를 창출하여 3점슛을 던진다. 거리가 먼 것은 커리에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정확성은 말할 것도 없고, 밀러의 스크린 이용과 앨런의 속사 능력까지 겸비했다. 가히 밀러와 앨런의 장점을 합성한 3점슛의 완전체다.
아래의 움직이는 사진은 커리에게 가장 돋보이는 드리블 능력을 이용한 3점슛을 잘 보여준다.
먼저 상대 포인트가드 레이먼 세션(워싱턴 위저드)이 다가오자 커리는 오른쪽으로 돌파할 것처럼 속도를 내다가 갑자기 크로스오버를 이용해 왼쪽으로 몸의 중심을 놓는다. 이때 빠른 순간 비하인드 백드리블로 다시 오른쪽으로 이동한다. 첫 번째 페이크다.
두 번째 페이크는 곧바로 연이은 크로스오버 드리블로 연결한다. 오른쪽으로 갈 것처럼 하다가 왼쪽으로 움직였다. 이어 세 번째 페이크인 왼손으로 공을 두 번 튕기는 헤지테이션 드리블이 나오자 수비수는 당황한다.
커리의 움직임이 오른쪽인지 왼쪽인지 전혀 알 수가 없다. 세션이 멈칫 하는 순간 재빠르게 3점 라인 중앙으로 이동해 번개 같은 3점슛을 던진다. 커리의 스피드에 세션의 블록슛은 미칠 수가 없었다.
세션 말고도 토니 파커(샌안토니오 스퍼스)나 러셀 웨스트브룩(오클라호마시티 선더스) 같은 리그 정상급 가드들도 커리의 드리블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특히 현역 최고의 포인트가드 크리스 폴(LA 클리퍼스)도 아래 장면처럼 커리에게 앵클 브레이커를 당하며 코트에서 발이 엉키고 넘어지는 굴욕을 당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커리는 폴을 속이기 위해 매우 빠른 두 번의 비하인드 백드리블을 연속으로 사용하는 고난도 기술을 보여줬다.
2015 NBA 플레이오프에서 커리는 밀러와 앨런을 넘어 3점슛 역사를 바꿨다. 지난 24일 커리는 플레이오프 13경기에서 총 64개의 3점슛을 성공시켰다. 이는 밀러가 1999-2000시즌 플레이오프 22경기에서 넣은 58개를 넘어서는 역대 최다기록이다. 앨런은 2000-2001시즌 18경기 57개가 개인 최다기록이다.
커리는 3점슛만 뛰어난 것이 아니다. 골밑 돌파에 이은 플로터와 어시스트에도 능력을 발휘한다. NBA 역사도 새로 써나가고 있다. 커리는 이미 39년만에 골든스테이트를 콘퍼런스 결승에 올려놓았으며, 르브론 제임스(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와의 NBA 파이널 격돌을 눈앞에 두고 있다.
역대 NBA 우승팀 가운데 3점슛을 주무기로 한 팀, 3점 슈터가 팀의 중심인 팀이 우승한 적은 단 한 차례도 없었다.
골든스테이트는 과거 ‘TMC 트리오’로 대표되는 팀 하더웨이, 미치 리치몬드, 크리스 멀린이라는 뛰어난 외곽 슈터들이 있었음에도 우승권과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현재 커리에게는 수비수를 분산할 수 있는 또 다른 뛰어난 샤프슈터 클레이 톰슨과 함께 하고 있는 것이 행운이 되고 있다.
커리 개인에게도 이번 시즌은 남다르다. 3점 슈터가 처음으로 NBA MVP가 된 것이다. MVP는 가장 가치 있는 선수라는 뜻이다. 르브론 제임스도 코비 브라이언트도 아니다. 그는 2015년 현재 시대를 사는 전 세계 농구 선수 가운데 가장 농구를 잘하는 선수로 평가받은 것이다.
커리 인생에 있어 중요한 기폭제가 된 경기가 지난 2013년 2월 27일 메디슨스퀘어가든에서 열린 뉴욕 닉스와의 경기였다. 그는 이날 무려 54득점을 퍼부었다. 팀은 패했지만 3점슛이 농구를 지배할 수 있다는 것을 충분히 보여줬다.
그날 커리가 신었던 노란색 나이키 운동화에 그가 직접 써넣은 문구가 주목을 끌었다.
“I Can do all things...”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젊은 농구 선수의 패기가 돋보였다. 싱크탱커는 한동안 이 사진을 컴퓨터 바탕화면으로 삼았다.
역사의 많은 혁명과 창조적 사고도 두려움 없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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