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Edit By ThinkTanker)
졌다. 졌어. 이번에는 도저히 그냥 지나 칠 수가 없었다.
그녀가 내뿜는 언어의 마력에 내 목구멍은 항복했다. 콸~콸~ 시원하게 녹색액체를 유쾌하게 들이켰다.
일하다 보면 마주치게 되는 녹즙 아줌마들은 몇 가지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 일단 매우 인사성이 밝으시다. 일면식은 있지만 교류가 거의 없는 사람과 엘리베이터 안에 단 둘이 1층부터 20층까지 올라가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나를 포함해 우리나라 사람! 거의 인사 안한다. 먼저 인사하면 지는 거다. ‘설국 열차’가 아니라 ‘설국 승강기’다. 이 작은 공간은 블랙홀이다. 전 우주의 썰렁함을 빨아들인다. 시간은 또 왜 이리 긴지, 20층이 아니라 200층을 올라가는 기분이다..
녹즙 아줌마들은 다르다. 자동 인사다. 먼저 인사해서 승자가 된다. 인사를 받으면 나도 모르게 온실 속 화초가 된다. 설령 이 인사가 판매의 목적이 담겨있는 인사라고 옹졸하게 생각해도, 웃으며 인사하시는 분은 기분을 좋게 만들어 줄 수밖에 없다. 언뜻 보면 같이 일하는 직원으로 착각할 정도다.
그리고 매우 기민하고 상황 판단이 빠르다. 무수한 파티션 사이를 리오넬 메시가 드리블 하듯 요리조리 살랑살랑 빠져 다니며 홍보를 한다. 그러면서도 업무에는 거의 지장을 안준다. 업무가 바빠 보이는 사람에게 녹즙 권유는 독즙 권유가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멀리서 판매 대상의 상황을 이미 포착했다는 이야기다.
여기까지는 보통 비슷하다. 그러나 녹즙 아줌마들의 판매 실적은 이후 어떤 멘트를 하느냐 에서 판가름 난다. 녹즙이 몸에 좋다는 것은 대부분 다 안다. 그러나 막상 한 달간 매일 책상에 녹즙이 놓이는 상황까지는 잘 안 그린다. 마셔도 한번, 숙취 때문에 한두 번 정도가 대부분이다. 설득은 많이들 하시지만 최종적으로는 월간 배달까지 신청을 하지 않는 약간 미안한 상황이 생긴다.
그래서 싱크탱커도 평소 자주 얼굴을 보이시며 친근하게 다가오신 녹즙 아줌마에게 비슷한 미안한 마음이 있었다. 농담도 잘하시고 상품에 대한 적절한 설명에 무료 시음도 몇 번 했다. 맛도 좋았고 괜찮았지만 신청은 안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날도 녹즙 아줌마는 내 곁에 왔다. 그런데 뭔가 달라보였다. “아이고, 총각 하여튼 잘 생겼다니깐~ (아줌마의 전략 멘트다. 절대로 오해마시길!)”
걸쭉한 농담이 사무실 분위기를 조금씩 바알갛게 예열하고 있었다.
그리고 신들린 듯 혀에 찰싹 감겨 나온 농익은 그 멘트...
“얼굴 잘생기고 허우대만 멀쩡하면 뭐혀~
남자는 밤에 힘을 잘 써야지. 아침에 이거 한잔 주~욱 들이키면
밤에 ‘긍정적인 부작용’이 생긴다니까~ 여자들이 헤벌레 하고 다 죽어나가♫”
순간, 아주 짧은 0.5초의 그 순간. 사무실은 바늘소리까지 들릴 정도로 정적에 휩싸였다.
그리고 곧바로 동시에 여기저기서 폭발적인 웃음이 터져 나왔다. ㅋㅋㅋ 푸하하핫 낄낄낄 등 사무실 남자들은 돌림노래처럼 “ㅋㅋㅋㅋ 긍정적인 부작용 이래!!”를 외쳤다. 업무가 한동안 마비됐다.
(사진: Edit By ThinkTanker)
그랬다. 웃음의 포인트는 “여자들이 헤벌레”가 아니라 헤벌레의 원인이 되는 이 문제의 긍.정.적.인. 부.작.용.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위력적인 언어를 쓸 수 있을까!
‘긍정적인 부작용’은 참...이건...뭐... 정말 이제는 매우 식상해졌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이 쓸 수 밖에 없는... CF의 그분이 수년전 했던 유명한 광고카피 “남자한테 정말 좋은데 뭐라 설명할 방법이 없네”였다.
아줌마의 너무나 유쾌한 전달 방법에 결국 나는 녹즙을 신청 안할 수가 없었다. 대단했다. 남자라는 동물의 DNA를 언어로써 유린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이 ‘긍정적인 부작용’은 매우 수준 높은 메타언어이자 역설어법이었음을 느끼게 한다. 부작용은 누구나 싫다. 그런데 여기에 반대 수식어인 ‘긍정적인’이 붙으면 쉽게 양립 할 수 없는 두 개의 요소가 이상하게 섞이며 화학작용이 일어난다.
이것을 다시 치명적인 상징어 ‘남자의 밤’과 연계시켰다. 이러면 게임 오버다. 남자들은 누구나 부작용이라도, 긍정적인 부작용이라면 매일 밤 그 부작용을 느끼고 싶어 할 것이다. 그 매개체가 녹즙이라면 안 마실 수가 없다.
메타언어는 대상을 직접 서술하는 언어 그 자체를 다시 언급하는 한 차원 높은 언어이다. 창의성 기법의 주요한 수단이다. 그러나 메타언어? 파생 언어라는 하이퍼텍스트? 괜히 말만 뭔가 있어 보이지만 이렇듯 별것 아니다. 녹즙 아줌마가 쓴 이 긍정적인 부작용이야말로 진정한 메타언어이자 하이퍼텍스트다.
창조와 창의성도 마찬가지다. 크리에이터도 똑같다. 창조는 거창한 것이 아니다. 생활 속에 매우 가까이 있다. <창조의 재료탱크>의 지향점이다. 궁금함에 ‘긍정적인 부작용’을 검색해보니 아줌마가 처음 쓴 용어는 아니었다. 그러나 웹 관찰 결과 가장 상황에 맞게 찰지고도 기막히게 쓴 분은 녹즙 아줌마였다.
그래서 녹즙 아줌마는 멋지고 유쾌한 크리에이터였다.
아줌마!! 존경합니다!!
By ThinkTan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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