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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물 & 창조적 글쓰기

KBS스포츠 하이라이트의 무배려·무성의 농구 편집

 

(사진: KBS)

 

[농구의 맥락’과 시청자 입장을 무시하는 졸속 편집]

 

구는 시간의 스포츠다.

 

구기 종목 가운데 농구만큼 시간을 강조하는 스포츠는 드물다. 아니, 없다. 우선적으로 시간의 제한성을 매우 세밀하게 따진다. 축구 역시 90분이라는 시간제한이 있다. 하지만 축구의 90분은 정확하지 않다.

 

주심의 판단에 따라 인저리 타임은 1분에서 크게는 5분 이상 까지 고무줄이 된다. 축구경기는 90분이 아니라 92분이 될 수도 있고 95분이 될 수도 있다. 인간이 시간을 편집할 수 있다.

 

그러나 농구는 시간이 인간을 편집한다. 농구의 모든 플레이는 시간에 지배를 받는다. 농구의 시간은 어떠한 불확정성도 개입하는 것을 극도로 혐오한다. 축구의 시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정밀하게 움직인다. 그래서 그나마 주심이 주관적으로 선언하는 3초룰 위반도 ‘3로 최소화 되어 있다.

 

여기에 농구는 시간 개념도 극도로 중요시 한다. 규칙의 대부분이 시간 개념으로부터 파생한다. FIBAKBL40, NBA48분은 전체 시간의 큰 테두리다. 여기에 세부적인 시간과 연계된 시간 규칙들로 다양한 각칙을 만들었다.

 

3초룰은 공격자와 수비자로 양분 된다. 공격 제한시간은 24초 또는 30초로 묶여있다. 인바운드 패스는 주심이 손가락을 5개를 펴기 전에 해야 한다. NBA 공격팀은 8초 안에 하프라인을 넘어가야 하며, 5초 이상 포스트업으로 수비수를 밀고 들어가면 백다운 바이얼레이션이다. 심지어 농구에서는 작전타임까지 20초짜리가 있고 90초짜리가 있다.

 

농구의 이러한 무수한 시간 개념은 맥락으로 작용한다. 농구 경기를 보는 사람은 이 시간 맥락을 통해 경기의 흐름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특정 플레이가 어느 시점에서 이루어지고 쿼터당 남은 시간이 얼마인지가 다른 스포츠보다 특별히 중요하다. 시간을 모르면 농구의 맥락과 흐름을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내가 응원하는 팀이 4쿼터에 10점을 뒤지고 있는데 4분 남았는지(역전 가능), 3분 남았는지(역전 내지 연장 가능), 2분 남았는지(역전 불가능)는 농구를 바라보는 시각을 근본적으로 뒤흔든다.

 

범위를 더 축소해 마지막 공격권을 가진 팀이 1초를 가졌는지, 0.3초를 가졌는지는, 사람들에게 시간 개념이 농구 안에서 어떻게 집중력 있게 나타나는 지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순간이다.

 

그래서 농구 경기는 경기장이 아닌 TV로 시청할 때, 남은 시간을 항상 스코어 옆에 움직이는 카운트다운 형식 등의 시간 자막으로 반드시 표시해야 한다. 

 

그런데 KBS스포츠 하이라이트에는 이 가장 중요한 농구의 시간 자막이 빠져있다. 밤늦게 시청하게 될 때 혹시나하고 보는데, 볼 때 마다 언제나 역시나. 항상 '남은 시간' 자막은 없다.

 

(사진: KBS, Edit By ThinkTanker)

 

KBS스포츠 하이라이트는 10일 경남 창원실내체육관에서 열린 프로농구 6강 플레이오프 2차전 창원 LG와 고양 오리온스와의 경기를 하이라이트로 보여줬다. 내용적으로는 괜찮았다. 득점 주요 장면을 잘 편집했다는 것은 인정할 수 있다. 이날 맹활약한 트로이 길렌워터(27·오리온스)를 중심으로 한 화면도 역동적이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시간 자막이 없었다. 이것은 밤에 선글라스를 끼고 미인에게 윙크를 하는 것과 같았다. 농구의 맥락은 완전히 무시됐다. 3쿼터까지 자막이 없었다는 것은 그나마 참을 수 있었다. 하지만 승부처인 4쿼터에도 시간 자막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답답함의 극치였다.

 

11일 방송한 인천 전자랜드와 서울 SK전 하이라이트는 정도가 더 심했다. 이 경기는 1점 차로 승부가 결정 날 정도로 마지막 순간까지 승부를 알 수 없는 긴박한 경기였다. 그럼에도 어떠한 시간 자막은 찾아 볼 수 없었다.

 

10일 경기에서는 오리온스 한호빈이 자유투를 얻어 70-70 동점이 된 중요한 순간에도 남은 시간이 얼마인지 표시되지 않았다. 그래서 화면 위쪽에 가끔씩 잘리면서 보일락 말락 하는 경기장의 시간 계기판을 보고 내 눈을 위아래로 왔다 갔다 해서 판단해야하는 (이런다고 남은 시간을 알 수도 없는데!) 코미디 같은 상황이 벌어졌다. 하이라이트는 그렇게 마무리됐다.

 

11일 경기는 1분을 남겨두고 리드가 연속으로 뒤바뀌는 극적인 순간이 연출됐음에도 자막 없이 아나운서 멘트로만 남은 시간은 15라고 유일무이하게 잔여 시간에 대해 언급했다.

 

그리고 승부가 전자랜드의 역전승으로 끝나자 한편의 영화와 같은 경기라고 했지만 이 하이라이트가 만든 영화의 평점은 5점도 받기 힘들 정도로 농구의 묘미와 감동을 급감시켰다. 가장 중요한 리카르도 포웰(32·전자랜드)이 역전 결승골을 넣는 순간의 시간과 이후 잔여시간이 표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약, 이 방송이 특정 덩크 장면이나 3점슛이 터지는 순간 한 두 클립만 보여줬다면 시간 자막은 필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방송 명칭이 KBS스포츠 하이라이트. 10일 경기는 419초간 영상을 보여줬다.

 

40분 경기를 4분으로 압축했다면 더욱더 농구의 맥락을 파악할 수 있게 하는 정성 있는 편집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시청자의 입장을 전혀 생각하지 않는 무배려·무성의한 편집이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남은 시간자막 하나 넣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일까.

 

참으로 비교하기 싫지만, NBA 하이라이트를 보자. 그 어떤 하이라이트에도 남은 시간이 빠진 화면은 보기 힘들다. 자동적으로 시간 자막이 입혀진 중계 화면인 이유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NBA0.1초의 디테일을 매우 중요하게 편집한다. 이것은 KBLNBA의 농구판 규모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농구를 바라보는 시각의 문제다.

 

농구는 0.1초 단위까지 계측하는 스포츠다. 이 0.1초 마다 농구가 만들어내는 양상이 달라진다. 가장 기본인 슈팅만 봐도 그렇다. 남은 시간이 최소한 0.8초는 되어야 슈팅 릴리스가 가능하다. 0.4초부터 0.7초까지는 정상적이진 않지만 슈팅을 위해 팔을 약간 구부릴 수는 있다. 0.3초 이하는 팁인만 가능하다. 스포츠 하이라이트라면 이 ‘0.1초의 차이를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대표적인 장면이 1994-1995NBA 파이널 1차전이다. 올랜도 아레나에서 벌어진 휴스턴 로키츠와 올랜도 매직과의 경기에서 휴스턴은 120-118로 승리했는데 이 경기는 농구의 남은 시간에 대한 중요성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경기이며, 동시에 남은 시간 편집의 중요성도 확인해주는 경기다.

 

(사진: sbnation.com)

 

올랜도는 이날 경기종료 ‘5전까지 110-107로 앞서 있었다. 하지만 11일 서울 SK처럼 올랜도의 닉 앤더슨이 자유투 4개를 연달아 놓치는 유명한 사건 덕분에 기회를 얻은 휴스턴은 종료 ‘1.6를 남기고 터져나온 케니 스미스의 동점 3점포로 경기를 연장으로 끌고 갔다.

 

연장전 결승골은 하킴 올라주원의 몫이었다. 휴스턴의 마지막 공격에서 올라주원은 클라이드 드렉슬러의 레이업슛이 림을 돌아 나오자 다시 팁인으로 득점해 극적인 장면을 연출했다. 남은 시간은 0.3. 올랜도는 작전타임 이후 인바운드 앨리웁 패스를 시도했지만 무위로 끝났다.

 

이 경기는 싱크탱커가 실황을 중계로 본 것이 아니다. 하이라이트로 봤다. 그럼에도 20년 전 경기를 자료를 대조하고 나서도 그렇게 차이나지 않게 시간까지 이렇게 기억할 수 있게 해준 이유는 NBA시간 중시하이라이트 때문이었다. 이 경기는 경기 종료 5초전, 1.6초전, 0.3초전 이라는 농구경기의 중요한 3가지 맥락이 있었다.

 

NBA 하이라이트는 이를 놓치지 않았다. 반복적으로 이 순간을 조명하고 확대하고 의미를 담아 영상화했다. 올라주원의 '0.3초의 기적'으로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농구에서 0.3초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부각했다. 농구가 달리 보였다. 멋져 보였다. 0.1초의 소중함을 깨닫게 해줬다. 하이라이트를 통해서였다.

 

만약, KBS스포츠 하이라이트가 준비한 경기가, 남은 시간이 0.3초인 상황에서 어떤 특정팀이 마지막 공격권을 앞둔 상황이라고 가정해보자. 지금까지의 모습이라면 그때도 시간 자막이 빠져있을 것이다. 감동도 없고 재미도 없는 건조한 영상이 됐을 것이다. 11일 방송처럼 아나운서가 멘트로 남은 시간이 0.3초라고 이야기 할 수는 있겠다. 하지만 귀로 듣는 소리는 눈으로 시각화된 시간 자막에 비해 농구가 만들어내는 정보 전달력에서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다.

 

국내에서 농구 인기가 예전만 못하다는 말은 수년전부터 나왔던 식상한 이야기다. 여전히 한국농구는 90년대 마이클 조던, 마지막 승부, 허재, 이상민 시대의 향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농구 인기는 다른 것이 아니다. 이런 작은 부분도 세심하게 시청자들에게 전달하는 것이 인기의 시작이 될 수 있다.  

 

만약, 거의 새벽 1시라는 밤늦은 시간에 10분짜리 하이라이트 방송을 보며 "좀스럽게 시간 자막하나 안 보이는 것 가지고 이런 소리를 하느냐"고 내게 묻는다면 굳이 반박하지는 않겠다. 그러나 그 순간 농구팬은 다른 스포츠나 NBA로 눈길을 돌린다.

 

(사진: KBS 스포츠하이라이트 홈페이지)

 

 

KBS스포츠 하이라이트는 이광용 아나운서가 매일 아래와 같이 자신 있게 외치며 오프닝을 시작한다.

 

놓치지 말아야 할 경기! 놓쳐서는 안 될 순간! 스포츠 하이라이트에서 확인하시죠.”

 

하지만 농구를 아끼는 어떤 시청자는 순간이라고 포장된 그 시간이 눈에 보이지 않아 순간을 매번 눈으로 놓치고 있다.

 

순간의 맥락이 무시됐기 때문이다.

 

By ThinkTank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