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십자가의 성요한의 그리스도, Stephanie-Moncada)
영화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에서 김기덕 감독과 <십자가의 성 요한의 그리스도>를 그린 달리가 초두효과를 무너뜨리며 ‘어떻게’ 첫인상 파괴를 일으켰느냐는 점이다.
이 두 작품에는 이 ‘어떻게’를 설명할 수 있는 유용할 만한 창조적 기법, ‘크리에이톨로지’가 숨어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다음 포스팅에서는 우선적으로 달리의 <십자가의 성 요한의 그리스도>의 창의적 기술을 분석해보겠다. |
위의 글 지난 포스팅(김기덕 감독과 살바도르 달리의 공통점)의 예고에 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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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 그림에 숨어있는 창의성 요소...뉴싱킹, 결합, 유추, 모호성]
이미지가 파괴되면 감각이 뒤틀린다.
머리가 뱀인데 몸이 강아지이거나, 얼굴이 김태희인데 체형이 이국주라면 굳이 보지 않아도 상상만으로 뭔가 이질적인 이미지의 감각이 형성된다.
파괴된 이미지의 형태는 다양하다. 그림, 음악, 몸의 움직임 등을 매개로 타인의 감각에 형성된 새로운 감각은 뇌를 거쳐 가슴에 영향을 준다. 이 가운데 인간의 오감 중 원초적이며 즉각적인 감각인 시각을 이용하는 미술의 크리에이터들은 가장 직접적이고 빠르게 이미지 파괴를 전달한다.
살바도르 달리(1904~1989)는 대표적인 미술의 크리에이터다. 그리고 그의 그림 <십자가의 성 요한의 그리스도(Christ of St john of the Cross, 1951)>는 다양한 창의성 기법을 분석할 가치가 있는 ‘크리에이션 종합선물세트’같은 그림이다.
상단의 그림을 다시 보자. 평온하다. 예수로 보이는 한 남자가 십자가에서 푸른 호수를 바라보는 가운데 호수 주변에는 조그마한 배가 있다. 구름이 살짝 어둡고 조용하게 드리워진 배경이 예수의 이미지와 어울리며 경건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일체의 이미지 파괴는 없어 보인다.
그러나 이 화가의 이름이 달리라면, 그리고 그림이 그려진 시기와 배경이 1950년대 영국이라면 문제가 달라진다. 달리가 누군가. 온갖 금기와 기괴한 그림으로 일생을 덧칠한 초현실주의의 아이콘이다. 그 당시 초현실주의자들은 교회와 종교 자체를 반대했다.
달리는 전통적인 종교화를 그리는 화가도 아니었다. 오히려 신성모독을 그렸고 스스로 교회의 적이라 자청할 정도였다. <십자가의 성 요한의 그리스도>가 1951년 12월 런던의 미술관에서 첫 전시되었을 당시 언론은 “예술적인 누드 사진을 주문하던 한량이 갑자기 색다른 그림으로 마음을 바꾼 것과 같다”고 조롱했다. 신앙심이 깊은 사람들에게 고통과 충격을 줄 것이라며 글래스고 장로회 등 종교계를 포함해 많은 사람들이 격렬하게 이 그림을 싫어했다.
하지만 이제 <십자가의 성 요한의 그리스도>를 비난하는 사람은 미술계에서 조차 소수일 정도로 자취를 감췄다. 첫 전시 이후 글래스고 성 멍고 종교예술박물관에 소장된 이래 무려 50년간 많은 종교 지도자들마저 감탄시켰다. 20세기 최고의 종교화라는 평가는 20세기 어떤 종교화도 시도하지 않았던 창의성 넘치는 그림이었기에 가능했다.
새로운 생각, 달리 생각한 달리
이 그림의 가장 우선적인 창의적 요소는 새로운 생각, ‘뉴 싱킹(New Thinking)’이다. 우리가 아는 예수의 모습은 머릿속에서 어떤 고정된 이미지를 갖는다. 고통스럽게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의 형상이다. 16세기에 활동한 독일의 화가 마티아스 그뤼네발트(Matthias Grünewald)의 그림이 전형이다.
(마티아스 그뤼네발트의 제단화) |
(그뤼네발트의 표현기법) |
스타스부르그 사원의 제단화로 알려진 이 그림은 사진처럼 예수를 최대한 고통스럽게 표현했다. 못이 손과 발을 뚫고 들어가고 날카로운 가시관이 온몸을 송곳처럼 찌른다. 확대된 사진 속 그뤼네발트의 그림을 자세히 보면 예수의 발이 모아진 상태에서 그 발등 위로 못이 찍어 누르고 있다. 발가락은 괴롭게 구부러져 있으며, 발톱에서는 붉은 피가 튄다. 지나치게 사실적인 묘사에 감동을 느끼는 사람도 있다고 하지만 나는 눈살이 찌푸려졌다.
그뤼네발트의 그림은 당시 원래 병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을 위한 종교 안식의 목적으로 쓰였다. 고통을 고통으로써 치유한다는 목적으로 배색됐다. 많은 사람들이 공감했고 현대 화가들까지 이 그림을 따라 그리고 싶어 할 정도로 영향력을 줬다. 그러나 달리는 그뤼네발트의 예수 그림에 반감을 가졌다. BBC 다큐멘터리 <The Private Life of a Masterpiece>에 출연했던 에섹스 대학교의 던 에이더스 교수는 “달리는 이 그림을 추악하다면 싫어했다. 고통을 너무 직접적으로 표현해 불쾌하다고 여겼다”고 증언했다.
달리는 그뤼네발트와 달리 아름다운 예수의 모습을 원했고 이를 실현했다. 달리의 그림은 일반적인 생각에 머무르지 않았다. 왼쪽의 사진처럼 예수의 몸이 어떠한 고통도 없이 부드럽게 십자가에 찰싹 붙어있다. 가시관과 못은 없다. 그런데 공중에 떠있다. 이게 말이 되나! 예수는 허경영이 아닌데 허경영 식 공중부양을 썼다.
어떠한 물리적 법칙이나 사실적인 구상은 배척되어 있다. 크리에이터는 남들이 “YES”할 때 “NO”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 세계적인 미술 작품의 탄생을 알린 근본적인 창의성의 출발점은 달리가 달리 생각했던 남 다른 생각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창의성의 0순위 핵심 요소...‘결합’
두 번째 창의성 요소는 <창조의 재료탱크>에서 여러 차례 이야기한 ‘결합’이다. 결합 없는 창조는 결코 없다. 결합의 시작은 원본 재료를 선택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십자가의 성 요한의 그리스도>는 무(無)에서 창조된 유(有)가 아니다. 달리는 성 요한이 그렸던 그림에서 영감을 얻었는데, 특히 성 요한이 예수의 형상을 보았다는 종교적 체험을 자신에게 적용시켰다. 성 요한은 당시 화랑을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았고 이 때문에 십자가를 내려다는 구도를 그림에 이용할 수 있었다. 달리는 이 방법을 차용했다.
구도 뿐만이 아니다. 그림에 등장하는 배경 속 요소도 상당 부분 남의 것에서 따왔다. 사람은 17세기 예술가 벨라스케즈의 <브레다의 항복자>, 배 주변의 어부는 프랑스 화가 루이 르 나인이 그린 농부를 거의 Con+C, Con+V를 했다. 그러나 <십자가의 성 요한의 그리스도>가 당시 8점의 그림을 모방했다고 고소당하면서도 명작으로 살아남은 이유는 단순 표절이라는 말을 잠재울 수 있는 창조적 결합이 있었기 때문이다.
원본의 재료가 자신의 역량에 흡수되어 화합물로 변해버려 달리의 작품이 재료만의 동질성으로 이루어졌다고 주장할 수 없게 만들었다. 바탕은 세심한 관찰력이다. 관찰 없이는 결합이 불가능하다. 달리는 뛰어난 관찰자였다. 배경 속 인물들은 남의 것이었지만 그림으로 표현된 자신이 평생 보아온 스페인 포트 리가트의 풍경은 사실이었다. 자신의 종교적 상상력을 그의 눈속에 들어있는 경치 위에 수놓은 것이다.
창조적 결합은 관찰 이외 제3의 노력도 추가된다. 달리는 그림 속 예수의 형상을 육체로 구현하기 위해 할리우드의 실제 스턴트맨 러스 선더스의 몸을 이용했다. 영화사 사장 잭 워너에게 도움을 요청해 선더스를 캐스팅했고 전문 견적사까지 고용해 사진을 찍고 정교하게 그림의 소실점을 결정해 구도를 완성했다.
(사진: 달리의 리구아항의 마돈나,1950) |
(사진: 달리 그림의 시점과 수학적 모델) |
<십자가의 성 요한의 그리스도>는 이처럼 하늘에서 어느 날 뚝 떨어진 그림이 아니다. 이미 이 그림을 발표하기 1년 전 달리는 그의 그림 중 가장 종교적이라는 <리구아 항의 마돈나>를 통해 <십자가의 성 요한의 그리스도>를 탄생시키기 위한 전초 작업을 진행해왔다. 이런 노력이 들어간 그림이 표절이라고 하는 것을 전문용어로 주로 ‘코미디’나 ‘시기·질투’라 칭한다. 그리고 예술계에는 “우리를 시기하고 질투하는 사람들이 결국 우리 예술을 전설로 만들어 준다”는 격언이 있다.
고난도 기법...유추
세 번째 창의성 요소는 ‘유추’다. 유추는 결합보다 상위의 창의성 기법이다. A를 통해 저 멀리 있는 X나 Y를 연결해야 한다. 예를 들면 상관관계가 전혀 없어 보이는 이질적인 아마존 피라니아를 통해 간통죄 폐지 헌재 결정을 연상시켜야 한다. 그래서 유추는 매우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한다. 잘못 유추하면 어이없는 헛소리나 견강부회(牽强附會)가 된다.
그런데 달리는 이 어려운 유추를 자신의 작품 속에 이용했다. 개인적으로 <십자가의 성 요한의 그리스도>에서 가장 놀라운 부분이다. 이 그림이 핵물리학에서 탄생했다고 하면 당신은 믿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사실이었다. 핵물리학과 예수의 십자가가 도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달리는 평소 핵물리학에 관한 책을 즐겨 읽을 정도로 원자과학의 요소들에 관심이 많았다.(이래서 인간은 빵만 먹으면 안되고 텍스트를 먹어야 한다!) 그러던 어느날 꿈을 꾸었는데. 그 꿈이 원자핵에 관한 꿈이었다. 달리는 형이상학적인 원자의 이미지를 우주의 조화로 생각했고 이를 예수로 연결했다. 원자핵을 통해 예수를 유추하여 가톨릭 신비주의와 우주이론이 결합되는 순간이었다. 그림의 수학적 모델은 이렇게 탄생했다.
이와 관련해 달리는 1955년 BBC TV와의 인터뷰에서 주목할 만한 용어를 꺼냈다. “내게 재미를 주는 것은 핵이다. 전자와 원자들이 이리저리 튀어 오르고 부딪히는 건 놀라운 ‘유리드믹스’를 느끼게 해준다.”
<유리드믹스>라는 용어가 사용됐다. 유리드믹스(Eurythmic)는 스위스 출신의 음악교사이자 작곡가 에밀 자크달크로즈(Émile Jaques-Dalcroze)가 창안한 것으로 세계무용사전에는 신체의 움직임을 통해 음악을 경험하고 학습하는 것이라 기술되어 있다. 음악의 흐름과 신체 흐름의 연관성을 찾는 것으로 오늘날에는 의미를 확장해 ‘통합예술교육’으로 쓰이기도 한다. 미술가인 달리가 유리드믹스라는 용어를 썼다는 것에서 그가 평소 사물의 연관관계를 찾는 모습을 짐작케 한다. 핵물리학과 예수의 유추가 허황되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결국 그것이 작품 전체 구상의 목적을 갖고 시각화 할 수 있는 그림으로 현실화 됐기 때문이다.
다 보여주면 재미없다...애매성
마지막 요소는 지난 포스팅에서 언급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창의성 기법 중 하나인 ‘애매성’이다. 애매성은 정보에 대한 주목도를 자극한다. 노골적으로 겉으로 노출되어 있는 정보는 정보로서의 가치가 반감된다. 정보는 은밀할수록, 애매성을 띨수록 그 효과가 커진다.
<십자가의 성 요한의 그리스도>에 등장하는 주인공 예수는 얼굴을 가리고 있다. 고개를 숙여 뒷머리만 나온다. 뒤태가 섹시한 여성을 앞에 가서 얼굴을 확인하고 싶은 남자의 원초적 본성을 비슷한 연출 기법으로 이용했다. 뒤태가 섹시한 여성은 대부분 뒤태만 섹시할 가능성이 높다. 앞에 가서 확인하면 예전 방송에 나온 것처럼 얼굴은 정주리일 확률이 높다. ‘뒤태만 섹시한 여성’이라는 코드 자체가 호기심을 유발한다. 마찬가지로 만약 그림에서 예수의 얼굴이 노출됐다면 신비성과 호기심은 현격하게 떨어졌을 것이다.
그림을 보는 각도 역시 모호하다. 십자가에서 예수는 아래를 바라보고 있지만 정확한 목표 지점은 판단하기 힘들다. 십자가를 아래로 하강시키면 포트 리가트의 호수에 떨어지는지, 산등성이의 계곡에 이르는지 불명확하다. 또한 잘려있는 십자가의 윗부분은 공중의 어느 부분까지 십자가가 연결되었는지 측정을 못하게 만들었다.
이런 예수를 또 우리가 공중에서 바라본다. 모든 각도에서 연출되는 수많은 시점이 그림에 대한 다양한 해석을 낳는다. 중요한건 이 그림이 정확히 알 수 없는 느낌을 만들어냈다는 점이다. 애매성과 모호성을 그림 안에 적절히 배치한 달리의 재치 있는 감각을 느낄 수 있다.
창의성을 위해 자신의 정체성까지 무너뜨릴 수 있는 용기
자신이 무언가를 상상한다는 것은 쉬운 것이 아니다. 상상 행위 자체는 쉽지만 의미를 담은 예술성을 갖추기는 어렵다. 이것이 다시 시각화되기는 더욱 어렵다. 그런데 달리는 자신의 상상이 아닌 성 요한이라는 ‘남의 상상을 상상’해 자신의 그림으로 연결했다.
역설적으로 달리가 그린 그림 가운데 가장 덜 초현실주의적인 작품이라고 평가받는 <십자가의 성 요한의 그리스도>는 다양한 창의성 기법을 총체화시켜 기존 이미지를 파괴했다.
그림의 이미지 파괴를 위해 달리 자신이 '초현실주의자의 대표자'라는 스스로의 이미지까지 파괴하는 용기 있는 크리에이터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By ThinkTan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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