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창작물 & 창조적 글쓰기

나는 왜 성난 택시기사로부터 사과를 받았나

 

 

 

[사회생활 속 태클 거는 화난 사람에게 대응하는 방법]

 

목소리 큰 사람이 사회생활에서 이긴다는 법칙은 법칙이 아니다. 일반론이다.

 

일반론을 무너뜨리는 방법은 가슴을 섭씨 19도로 유지하고 냉정하게 상황을 파악하는 것이 도움이 될 때가 있다. 얼마전 그것을 실감했다.

 

그 곳은 어둠의 카르텔 지역이었다. 택시가 10여대 항상 대기하는데 다른 곳으로 이동해 택시를 잡기 힘든 장소였다. 택시기사들은 암묵적으로 짜고 평소 승차거부를 자주 했다. 목적지가 짧은 거리는 환영받지 못했다.

 

나의 목적지는 짧았다. 기본요금을 살짝 상회하는 요금이 나오는 곳이었다. 그래서 과거 나는 1순위 대기자였는데 승차거부를 하는 택시기사들로부터 뒤차를 타라는 말에 순차적으로 계속 밀리고 밀려 무려 5순위 택시까지 돌림빵을 당한 적이 있었다. (비슷한 경험이 있으신 분이라면 이 순간이 얼마나 황당한지 알 수 있다.)

 

그나마 5순위 마음씨 좋은 할아버지 택시기사분이 태워주었기에 차를 가져오지 않은 상태에서 짐이 많았던 싱크탱커는 그 분께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이동 중에 호기심에 그 분께 한 번 물어보았다.

 

“5번째 만에 어렵게 택시를 탔네요. 승객이 짧은 거리를 가면 정말 택시 아저씨들은 기분 나쁜가요?”

 

할아버지 기사분이 대답했다.

 

나쁜 놈들 같으니라고. 복걸복으로 생각해야죠. 먼 거리만 가고 싶다고 택시기사하면 이거 못하죠. 운에 맡겨야지 어떻게 매 번 긴 거리만 갑니까. 제가 30년 넘게 운전했는데 짧은 거리를 가다보면 그 지역에서 다음 번 손님이 긴 목적지를 말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덧붙여 그 분은 차라리 승차거부를 신고하라고 했다. 택시기사가 승차 거부를 하다 2년 안에 3차례 적발되면 택시 운수종사자 자격이 취소된다는 삼진아웃제를 설명해줬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신고하고 싶지는 않았다. 택시기사를 생계로 삼고 계신 분들에게 지나치게 대응한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하지만 승차거부가 나쁜 것은 분명하다. 생각해보자. 택시의 목적은 승객의 이동이다. 이동거리가 짧고 길고는 고려 대상 자체가 아니다. 만약 필요에 따라 정말로 급한 사정이 생긴 어떤 승객이 짧은 거리를 택시로 이동하지 못한다면 택시의 존재는 부정되어야 마땅하다.

 

 

그러던 이날 드디어 문제의 그 택시 기사(이하 그 작자’)를 만났다.

 

그 작자는 승차를 거부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역시나 그 작자의 정체가 어둠의 카르텔 지역의 일원이라고 느낀 것은 나의 짧은 목적지를 듣자마자 깊은 불평의 검회색 한 숨을 토해내는 것에서 짐작할 수 있었다. 여기서부터 그 작자는 나에게 본심을 들켰다.

 

2분 정도 운행했을까. 갑자기 이상한 길로 우회를 하려 듯이 (우회전을 할 이유가 전혀 없는 목적지다.) 깜빡이를 켰다.

 

우회전 마시고 그냥 직진으로 가주세요.”

 

그 작자가 대답했다. “이쪽으로 가는 게 더 빠릅니다.”

 

아니요. 그냥 직진으로 가주세요.”

 

다시 2분 정도 택시가 이동했을 때 차 안에는 설명할 수 없는 긴장감이 흘렀다.

 

목적지 전방 대략 200미터 앞 문제의 지역에 택시가 왔다.

 

문제의 지역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목적지를 가기 위해 이곳을 반드시 통과해야 했는데, 가로질러서 차가 2차선 도로의 중앙선을 넘어가야 했기 때문이다.

 

참고로 이 도로는 차가 대략 10분에 1, 2대 꼴로 지나가는 인적이 매우 드문, 존재도 매우 드문 도로였다. 중앙선을 넘어가는 시간은 시속 10km의 차가 2초면 넘어갈 수 있는 중앙선이었다. 나는 늘 이곳을 이렇게 지나갔다.

 

최근 3년간 아무 문제가 없었고 교통경찰도 단속하는 것이 넌센스인 도로였다. 중앙선을 안 넘고 가려면 오른쪽으로 우회에 U턴을 해서 갈 수는 있지만 그렇게 운행하는 차는 아무도 없었다.

 

이 도로를 넘어서 왼쪽 건물 옆으로 가주세요.”

 

그때였다.

 

갑자기 그 작자가 에잇하는 감탄사와 함께 운전대를 휙 돌리더니 택시를 아예 갓길로 빼서 차를 세웠다. 그리고 작심한 듯이 붉은색 언어를 나에게 쏘아붙였다.

 

 

손님! 정말 너무하시네요. 지금 저보고 중앙선을 넘어가라고 하신 겁니까. 어떻게 차가 위험하게 중앙선을 넘어갑니까. 이러다 사고 나거나 교통딱지라도 떼면 책임지실 겁니까. 참나 거리도 기본요금밖에 안나오....”

 

기습 도발이었다. 나는 당황했다. 택시기사가 차까지 갓길에 세우고 목소리 크게 몰아붙이는 것은 처음 겪는 당혹스러운 일이었다. 나도 모르게 그 작자에게 움찔하며 기세에 밀렸다.

 

사회생활, 직장생활 마찬가지다. 이런 일 누구나 겪을 수 있다. 이럴 때 자칫 어버버버 머뭇거리면 바보 병신 되는 거다. 꿀 먹은 병아리처럼 아무 말 못하면 꿀도 먹지 못한 상태에서 병아리보다 못한 존재 되는 거다.

 

그때 그 작자가 흘린 마지막 말이 반격의 실마리를 제공했다.

 

참나, 거리도 기본요금밖에 안나오....”

 

말끝을 흐린 이 말이 그 작자의 숨겨진 본심이었다. 흥분하다 보니 자기도 모르게 속마음이 튀어나온 것이다.

 

그렇다. 정말로 쓰레기 택시기사가 아니거나, 법 없이 하루도 살 수 없는 성모 마리아 택시기사가 아니라면 내가 말한 2초 중앙선은 거의 모든 택시기사가 융통성 있게 넘어갈 수 있다. 중앙선 이야기는 화를 내기 위한 명목이었다. 그 작자가 정말 기분 나빴던 것은 내가 짧은 거리를 목적지로 이야기해서 택시 수입에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었다.

 

이제 모든 시나리오가 아주 잘 보였다. 차분하게 마음을 가라앉히고 머릿속에 반격의 언어를 정리했다. 그리고 대답했다.

 

 

 

아저씨가 무슨 말하는지 잘 알겠습니다. 먼저 중앙선을 넘어 불법(운행)을 가자고 한 것은 잘못됐음을 인정하겠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불법이라면 오른쪽으로 돌아서 U턴해서 가야 한다는 것을 저에게 먼저 말하는 것이 첫 번째 아니었을까요. 무턱대고 차를 위협적으로 세우고 승객을 거칠게 몰아붙이는 것이 택시기사가 할 행동인가요.

 

그리고 제가 이곳에서 20년 넘게 같은 똑같은 경로를 택시로 이동하면서 수백 명의 택시기사분들을 만났는데 아저씨처럼 이게 중앙선 침범이라고 화내는 분은 단 한 명도 만나지 않았습니다.

 

바보가 아닌 이상 이거 불법 모르는 사람 없습니다. 택시를 왜 타나요. 이 정도의 빠른 편의와 융통성 때문이 아닌가요. 손님이 가자고 하면 택시기사는 우선적으로 가돼 아니면 다른 경로를 친절하게 설명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요.”

 

순간 몇 초간 정적이 흘렀다. 그 작자는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듯 했다. 나는 반응을 기다리며 제2, 3의 반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충분히 자신이 있었다.

 

그때 그 작자가 갑자기 백기를 들었다.

 

죄송합니다. 저도 모르게 그만...사과드리며 목적지까지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는 일반론은 이렇게 모래성이 되어 허무하게 허물어졌다.

 

하지만 늦었다. 나도 겉으로는 차분했지만 속으로는 끓고 있었다. 그 작자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은 상황을 그 작자 의도대로 우습게 만들 수 있었다.

 

그래서 다시 대답했다.

 

아니요. 됐습니다. 저는 여기서 그냥 내려서 걸어가겠습니다.(사실은 목적지에 거의 다 왔다.)”

 

요금은 3300원이 나왔다. 5000원을 내니 그 작자는 마치 선심 쓰듯이 2000원을 거슬러 주려고 했다. 참으로 존재의 가벼움과 간사함이 느껴진 300원이었다.

 

아니요. 됐습니다. 그냥 1700원 거슬러주세요.”

 

그렇게 나는 카르텔 택시에서 내렸다. 발걸음은 이상하게 가벼웠다. 더욱 이상한 것은 이 사건 이후 그 지역에서 나는 더 이상 승차거부를 겪지 않게 됐다.

 

돌이켜보면 싱크탱커와 그 작자의 설전은 차악게임이었다. 차악게임은 예전 이태임과 예원의 사건에서 포스팅으로 언급한 적이 있다.

 

2015/04/01 - [ 창작물 & 창조적 글쓰기] - 이태임 vs 예원, 가려진 '차악 게임'의 승자

 

차악게임은 어려운 상황(최선-차선-차악-최악)에서 무엇이 좋은 선택인지 결단을 내려야 하는 게임이다. 나와 그 작자는 모두 최악이었다. 나는 중앙선 침범이라는 불법을 이야기했고 그 작자는 승객에게 화를 냈다. 그런데 그 작자도 마음 안에는 '승차거부'라는 불법을 담고 있었다.

 

예일대 교육 전문가 셰리 시세일러의 저서 <거짓말, 새빨간 거짓말, 그리고 과학>에 나오는 내용을 다시 인용해보자.

 

조심하라. 만약 어떤 주장이 모호하다면 (상대가) 근거 있는 판단을 내리는데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 이유가 틀림없이 있을 테니까. 그 이유를 들여다보면 이해 당사자가 선택해주길 바라는 결정이 가지는 단점에 관한 정보를 감추고 있을 가능성이 아주 높다.”

 

그 작자는 참나, 거리도 기본요금밖에 안나오....”라며 모호하게 말끝을 흐렸고 이것은 승차거부라는 본심의 단점, 자신도 불법을 노출하는 단서가 됐다.

 

나는 차악을 선택했다. 반격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불법을 마치 적법처럼 포장했다. 20년간 그곳에 살면서 수백 명의 택시기사를 언급한 것은 과장법이었다. 그러나 로버트 펠드먼의 지적처럼 <우리는 10분에 세 번 거짓말 한다> 사회생활 할때는 필요에 따라 거짓말도 해야 한다.

 

(사진= TVN)

 

그 작자 같은 유형은 어디에든 있다.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논리와 감정으로 공격해 오는 사람들을 우리는 만나게 되어있다. 직장, 학교, 군대 어디에든 있다. 사회생활 초기에 그런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그런 이상한 사람들을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는 발상의 전환도 필요하다. 앞으로 살면서 비슷한 유형의 사람을 만났을 때 대응력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이 사람보다 앞으로 더한 사람은 만날 수 없다는 의연한 태도가 가끔은 필요하다. 싱크탱커 역시 이상한 사람들 많이 겪었다.

 

심지어 군대에서는 이등병이 대대장인 자신에게 경례를 제대로 하지 않는다고 중령 모자와 야상을 이등병에게 입히고 자기가 이등병 모자를 쓰고 그 이등병에게 충성하고 크게 경례하는 초유의 대대장(결국 보직 해임됨)을 상관으로 겪었다.

 

최근에도 이승엽 고의사구포스팅에 이승엽에게 400호 홈런을 맞아줘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고 분명히 썼음에도, 나를 삼성팬(참고로 싱크탱커는 삼성팬이 아니다. 스포츠팬이다.)으로 몰아붙이고 이승엽에게 홈런을 일부로 허용해야 한다고 이해하고 나를 욕하고 내 글을 메인에 올린 <미디어다음>까지 싸잡아 비난하는 황당한 악플을 남기는 작자가 있었다.

 

도대체 그 작자의 머릿속에는 독해력이 실종된 것일까. <창조의 재료탱크> 디자인을 더럽혔기에 해당 댓글은 삭제하고 아이피를 차단했다. 대응의 가치는 전혀 없다. 티스토리는 이런 시스템이 좋다.

 

과거 선플과 악플을 동시에 수백 개 받아본 적이 있는 내게 이 정도 악플러는 애교 수준이다. <창조의 재료탱크>를 방문해주시고 댓글을 남겨주시는 분들은 격려나 좋은 의견을 주시는 분들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꼭 추접스러운 악플러는 인터넷 익스플로러에 바퀴벌레처럼 도사리고 있다.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가. 악성 댓글의 정도가 심하면 그래서 방송인 김가연처럼 악플러를 경찰에 신고하는 일이 생긴다.

   

택시기사나 악플러나 기타 그 작자 같은 유형의 공통점은 무턱대고 흥분하고 화를 낸다는 것이다. 그게 허점이다. 그 사람이 내게 어이없이 화를 낸다고 느낄 때 상황을 다시 한 번 돌아보면, 상대가 가진 어이없음의 진짜 이유가 감춰져 있다.

 

드라마 미생에서 장그래가 흥분하는 박종식 과장을 무너뜨렸을때 했던 대사 “하나의 수는 그 직전의 수가 원인이 된다. 지금 이 수가 왜 놓였는지를 이해하려면 그 전의 수를 봐야 한다. 상대가 반발하는 것을 이해하려면 지금까지의 수 중에 무엇이 아팠는지 알아야 한다”가 흡사한 참고가 될 수 있다.

 

어떤 부분이 그 사람의 감정에 동요를 일으켰는지를 찾아내면 상대의 어이없는 도발을 그대로 되돌려 주며 대응할 수 있음을 비슷한 경험을 겪는 사람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By ThinkTanker (Copyright. <창조의 재료탱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