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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물 & 창조적 글쓰기

홍진호의 마지막 퇴장 멘트가 돋보였던 이유

 

(사진 출처 및 권리= tvN)

 

[마지막에 남긴 말이 그 사람을 보여준다]

 

그는 처음에 존재감이 없었다.

 

예능 프로그램이지만 어느 한 인간의 두뇌 사용이 공개적으로 방송 전파를 타는 것은 작게 볼 문제는 아니었다. 그래서 2년 전 처음으로 <더 지니어스> 시즌1에 참가했던 13명의 사람들이 가진 저마다의 캐릭터가 시청자들에게 강하게 다가왔다. 그 중에서도 그는 유달리 미약하게 보였다.

 

홍진호였다. 그는 만년 2인자였다. 프로 게이머 시절 늘 우승의 문턱에서 자주 분루를 삼켰다. 그래서 강해 보이는 2인자보다는 고비를 넘지 못하는 유약한 남자의 이미지가 더 크게 느껴졌다.

 

시즌1 방송 초기에도 짧은 발음의 어색함과 활발하지 못한 운신의 폭으로 방송 분량에서도 큰 조명을 받지 못했다. 금방 탈락할 것으로 봤다.

 

하지만 이후 홍진호는 더 지니어스가 됐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기발한 착상과 문제 해결 접근 방식, 규칙의 이면을 통찰하는 눈과 뛰어난 관찰력, 정치적으로 휘둘리지 않으면서도 조직을 이용하는 영민함과 위기에서의 과감성까지. 가히 게임의 천재이자 착한 두뇌 플레이의 표본을 보여줬다. 많은 사람들의 호감을 끌어냈으며 당연히 우승도 그의 차지였다.

 

(사진 출처 및 권리= tvN)

 

우승 이후 그는 전직 프로 게이머가 아니라 더 지니어스의 아이콘방송인이 됐다. 잘 어울렸다. 어떤 방송 화면에서도 홍진호가 나오면 그냥 그 화면이 좋게 다가왔다.

 

2년 뒤인 2015년 여름, <더 지니어스> 그랜드 파이널에서도 홍진호는 탑4에 올랐다. 그런데 과거와 같은 존재감은 아니었다. 매주 살아남으면서도 시즌1과 같은 화제성을 불러일으키지 못했고 방송 분량도 체감상 상당부분 줄어들었다. 편집의 초점도 김경훈, 장동민, 오현민 등 신흥 강자들에게 더 실렸다. 많은 그의 팬들은 홍진호만의 스타일이 잘 나오지 않는 것 같다고 아쉬워했다.

 

공교롭게도 지난 29일 방송을 끝으로 홍진호는 탈락했다.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자신의 주특기인 양면포커에서 김경훈에 밀리며 데스매치에서 패했다.

 

그의 마지막 멘트가 궁금했다. 보통 방송인들은 자신의 이미지를 완벽하게 보여주지 못한다. 만들어진 대사나 방송 내용의 캐릭터로 이미지를 대신 한다. 그래서 시상소감으로 어떠한 가공된 포장 없이 진솔하게 자신은 남들이 다 차려놓은 밥상 위에 숟가락 하나 올려놓았을 뿐이라는 명언을 남긴 배우 황정민을 통해 그 사람의 겸손함과 황정민이라는 남자를 읽을 수 있었다.

 

비슷한 순간이었다. 홍진호는 <더 지니어스> 작가의 표현처럼 이 방송의 창세기를 열었던 주인공이었다. 감회가 남다를 것 같았다.

 

(사진 출처 및 권리= tvN)

 

첫마디로 그는 아래와 같이 정확하게 자신의 시간을 돌아봤다.

 

그동안 아쉬운 게 있다면 이렇게 탈락하는 것 보다 살고 보자는 마인드가 컸던 것 같아요. 기대했던 분들에게 죄송스런 마음이 크고. 뭔가 보여주고 갔어야 했는데 그게 가장 아쉽네요.”

 

시즌1 때와 같은 적극적이고 창의적인 접근이 아닌, 탈락을 일단 피하자는 소극적, 방어적 접근이 탈락의 원인이라는 자기 분석이었다. 그래서 팬들이 원하는 플레이를 보여주지 못했다는 아쉬움의 이유도 대신했다.

 

그는 마지막까지 역시나 냉철한 더 지니어스였다. 패배의 원인을 결코 외부로 돌리지 않았다. 담담하게 자신의 플레이 스타일이 예전과 달리 소극적이었다며 패배의 결론을 스스로에게 명확하고 짧게 내렸다. 동시에 그를 좋아하는 팬들의 마음을 달래주면서도 납득시켰다.

 

인상적인 탈락 멘트는 계속 이어졌다.

 

시간이 흐르면서 또 시대가 바뀌고 그러다보면 또 많은 것이 바뀌잖아요. 저 역시 초대 우승자로서 언제까지 제가 우승자, 왕 그런 대접을 받겠어요. 지금은 저보다 더 뛰어난 친구들, 더 잘하는 친구들, 그리고 지금 숨어있는 친구들이 굉장히 많을 거라고 생각을 해요. 그런 분들이 좀 더 앞에 나서야 할 타이밍인 것 같고. 저도 이제는 도전자의 입장에서 다시 그렇게 시작하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사진 출처 및 권리= tvN)

 

이 멘트를 듣고 싱크탱커는 놀랐다. 지나치게 솔직했기 때문이다. 홍진호는 <더 지니어스>의 상징이다. 아무리 탈락했다 하더라도 초대 우승자라는 자존심이 있다. 그러나 그는 그런 자존심을 무의미하게 채색하며 내려놓았다. 왕좌의 자리에서 내려오는데 구차한 변명은 일체 없이 지니어스 우승자라는 그동안의 수혜를 제가 언제까지 왕 대접을 받겠느냐고 표현하며 욕심 없이 물러났다.

 

시간이 흐르고 시대가 바뀌면 많은 것이 바뀐다는 말에서, 또 그런 시대의 흐름에 맞는 사람들에게 자리를 내어주어야 한다는 멘트는 품격 있고 겸손한 경영인의 마인드를 떠올리게 했다. 그러면서도 이제는 도전자의 입장에서 다시 시작하겠다는 각오와 결심도 잊지 않았다.

 

홍진호의 마지막 퇴장 멘트는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했다.

 

흔하게 우리는 떠나갈 때와 물러날 때를 모르는 사람들을 사회 속에서 접한다. “문제 해결에 가장 좋지 못한 것은 문제가 무엇인지 모르는 것이라는 말도 경험한다. 마지막에 떠날 때 나 이런 사람이었다고 떠벌리고 자랑하거나 멋지게 한 줄이라도 더 남기려고 집착하다 욕망에 무너지는 사람도 목격한다. 그런 모든 것이 내 탓이 아니라 남의 탓이었다고 회피하기도 한다.

 

홍진호는 떠나갈 때 이 모든 것들과 거리가 멀었다. 그는 진퇴의 타이밍을 알고 있었다. 과거의 영광에도 매달리지 않았다. 또한 그가 쓰는 언어에는 어떠한 기름기도 없었다. 담백했으며 매우 편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문제의 원인과 이에 따른 이유가 정확하게 있었고 그 문제를 넘어서려는 의지 역시 의연하게 살아있었다. 왕관을 벗고 도전자가 되는데 전혀 거리낌이 없었다.

 

새삼 그가 왜 그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호감을 받으며 우승자가 됐는지 알게 됐다.

떠나갈 때 사람들에게 어떤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는 지도 알게 됐다.

패배 이후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하는 지도 알게 됐다.

 

그렇다. 때론 마지막에 남긴 말이 그 사람을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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