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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물 & 창조적 글쓰기

꺼진 불도 다시 봐야 하는 삼성 야구

 

(사진 출처 및 권리= 삼성 라이온즈 홈페이지, KBO, Edit By ThinkTanker)

 

['이닝의 상대시간'을 늘리는 삼성 타선의 집중력]

[2아웃 이후가 강한 삼성 야구, 선두 질주의 힘]

 

야구에서 이닝(inning)의 개념은 절대적이면서도 상대적인 시간을 포함한다.

 

3개의 아웃카운트로 이루어진 것은 절대적이지만, 각 아웃카운트의 시간 간격은 매우 짧을 수도, 또 길 수 도 있다. 수비 팀은 이닝의 상대 시간을 최소화 하고 반대로 공격 팀은 최대로 늘려야 한다. 야구의 승부는 바로 이 이닝의 상대 시간 싸움에서 갈린다.

 

이닝의 상대 시간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시점은 2아웃과 3아웃의 간격이다. 수비 팀은 짧을 수록 유리하다. 3번째 아웃카운트를 반드시 잡아야 1이닝이 성립한다. 만약 수비 팀이 2아웃에 주자가 없는 상황을 맞았다면 다소 안심이 된다. 갑작스런 솔로 홈런이 아닌 이상, 곧바로 실점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1963년 조지 린지는 야구에서 2사에 주자가 없다면 가장 안심할 상황이라고 통계적으로 주장했다.

 

그가 고안한 주자 상황과 아웃카운트에 따른 기대 득점 모형에 따르면 주자의 상황은 주자가 없는 경우, 주자1, 주자 1,2, 만루 등 8가지가 있고, 아웃카운트는 3가지 상황이 있다. 이를 종합하면 총 24가지의 모델이 나오는데 린지는 이 데이터를 바탕으로 주자 상황과 아웃카운트 상황의 발생 빈도에 따른 기대 득점을 모두 계산했다.

 

결과는 역시나 직관적이었다. 최댓값은 당연히 무사 만루 상황으로 기대 득점은 2.220이었으며, 최솟값은 2사에 주자가 없는 상황으로 0.102의 기대 득점이 나왔다. 이 최솟값은 주자가 나가야만 조금씩 올라가며 2사에 만루까지 가면 0.823점으로 상승했다.

 

2사에 주자 없는 상황을 맞은 수비 팀은 그래서 긴장을 누그러뜨릴 수 있다. 0.1점이라는 극도로 낮은 기대 득점을 삼자범퇴 시켜 아예 0점으로 만들어 버릴 수 있다는 기대감을 안을 수 있다. 금방 3번째 아웃카운트를 기록할 것 같다. 불은 모두 꺼진 것 같다. 그런데 야구는 그런 쉬워 보이는 상황에서 꺼지지 않은 작은 불씨가 도화선이 돼 의외의 시나리오가 나온다.

 

역으로 공격 팀은 수비 팀의 이 같은 작은 허점을 노려 이닝의 상대시간을 대폭 늘린다. 주자가 야금야금 나가며 기대 득점이 점점 높아진다. 결국 끝날 것 같은 이닝이 계속 이어지며 득점을 한다. 강팀이 조건이기도 하다.

 

삼성 라이온즈가 그랬다. 그들은 1일부터 시작된 1위 경쟁자 NC 다이노스와의 2연전을 모두 쓸어 담으며 미리 보는 한국시리즈에서 기선을 제압했다. 승차도 3.5경기 차로 벌어졌다. 새삼스럽지만 통합 4연패 기간 거의 매년 중요한 시기에 경쟁 팀을 맞대결로 따돌려 버리는 삼성 야구는 올해도 현재까지 똑같은 그림을 그렸다.

 

이번 2연전의 승패는 기대 득점이 가장 낮은 ‘2사 주자 없는 야구’, ‘2번째 아웃카운트와 3번째 아웃카운트의 시간 간격 싸움에서 갈렸다.

 

2일 삼성이 13-0으로 대승한 경기는 시간을 훨씬 거슬러 올라가 1회초가 승부처였다. NC는 전날 뼈아픈 역전패를 한 상황에서 에이스 에릭 해커가 나왔다. 이미 지난 경기에서 맞대결을 펼친 윤성환을 이긴 경험이 있는 투수며, 16승을 거둔 다승 1위다. 8월의 리그 MVP로 선정될 정도로 좋은 흐름을 보였다. 그만큼 기세 싸움에서 초반이 중요했다.

 

(사진 출처 및 권리= SPOTV, KBO, Edit By ThinkTanker)

 

1회초 해커는 기대대로 무리 없이 2아웃을 잡았다. 2사 주자 없는 최소 득점 기대 상황을 맞았다. 그러나 삼성은 3번째 타자 야마이코 나바로가 내야안타로 출루하며 삼자범퇴를 허용하지 않았다.

 

약간 깊긴 했지만 비교적 평범한 땅볼이었고 충분히 아웃이 될 타구였다. 평소 1루에 전력 질주하지 않는 나바로였다. 유격수 수비라면 리그 톱을 다투는 손시헌이었다. 그런데 나바로가 평소답지 않게 전력 질주를 했다.

 

결과는 세이프. 손시헌이 정상적으로 빠른 푸트 워크를 통하거나 느슨하게 송구하지 않았다면 공수가 교대되는 상황이었다. 1루에 공을 던진 뒤 손시헌은 아웃을 예감하고 NC 더그아웃 쪽으로 이동까지 했다. 그런데 세이프가 되자 놀란 표정을 지었다.

 

(사진 출처 및 권리= SPOTV, KBO)

 

놀랄 만한 일은 계속됐다. 후속 최형우가 안타를 치고 나갔고 다음 타자 박석민이 급기야 벼락같은 3점 홈런을 터뜨렸다. 삼성의 기대 득점은 분명히 0.1점이었는데 결과는 3득점이 나왔다. 박석민이 홈런을 치는 순간 해커가 흥분하는 표정이 화면에 잡혔다. 더그아웃에서 쉬면서 다음 이닝을 준비해야 할 시간에 3실점을 하며 계속 마운드에 서게 됐다. 불의의 일격을 당해 기선을 빼앗긴 해커는 이미 그때 평상심을 잃어버렸다.

 

NC의 늘어난 이닝 상대 시간은 투구 수로 표현할 수 있다. 나바로가 아웃돼 삼자범퇴였다면 1회초 해커의 투구 수는 15개로 끝날 수 있었다. 하지만 이후 3명의 타자를 더 상대하며 11개의 공을 더 던져야 했고 3점을 실점해야 했다. 투구 수는 26개로 대폭 증가했다.

 

삼성의 집요한 2아웃 이후의 야구는 이날 NC를 끊임없이 괴롭혔다. 13점 가운데 무려 11점이 2아웃 이후에 나왔다. 1회초 처럼 2사에 주자가 없는 상황도 있었고, 마지막 아웃카운트만 잡으면 무득점으로 공수가 바뀌는 장면도 있었다. 그러나 삼성은 그때마다 무서운 집중력으로 기어코 적시타를 쳐내며 손쉬운 공수 교대를 허용하지 않았다.

 

(사진 출처 및 권리= SPOTV, KBO, Edit By ThinkTanker)

 

하루 전인 1일 경기도 마찬가지였다. 8회초 2사 주자 없는 상황까지 NC3-21점 앞서고 있었다. 마무리 임창민이 이때 등판했다. 삼성 타자는 이지영. NC의 승리가 보이는 듯 했다. 그러나 이지영은 볼카운트 1B 2S의 어려움 속에서 유격수 깊은 땅볼을 치고 1루에 전력 질주한 끝에 내야 안타를 만들었다. 이후 삼성은 도루와 볼넷, 2안타를 연속으로 묶어 전세를 4-3으로 뒤집었다.

 

야구를 흔히 10cm의 스포츠라 말한다. 어느 감독은 5cm라고 말할 정도로 야구의 승부는 매우 작은 부분, 그 작은 부분을 끝까지 놓치지 않는 집중력에서 갈린다. 손시헌이 방심하지 않고 빠르게 송구했다면, 임창민이 볼카운트 1B 2S에서 성급한 한복판 직구 승부보다는 이지영을 조급하게 하는 유인구를 하나 더 던졌다면, 2연전의 승부는 어떻게 바뀌었을지 아무도 모른다.

 

심판이 3번째 아웃카운트를 선언하고, 전광판에 켜진 2개의 빨간불이 완전히 꺼져야만 이닝이 성립이 되고 이닝의 절대 시간이 마무리 된다. 그때까지 수비 팀은 절대 마음을 놓아서는 안 된다. 요기 베라의 명언 끝날 때 까지는 끝난 것이 아니다야구는 9회말 2아웃 부터는 주로 공격 팀에 초점이 맞추어진 야구 격언이다. 그러나 실상은 2아웃 이후 수비 팀의 방심이나 집중력 저하를 경계하는 격언이기도 하다.

 

통합 4연패를 했지만 삼성의 레이스가 언제나 비단길은 아니었다. 2013년 한국시리즈에서 두산 베어스에 13패로 몰리기도 했으며, 지난해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는 넥센 히어로즈에 9회말 2아웃까지 0-1로 뒤지기도 했다. 거기서 이닝이 끝났다면 삼성은 시리즈 전적 2승 3패로 또 벼랑끝이었다. 그러나 그때마다 삼성은 좀처럼 이닝 종료를 당하지 않으며 승부를 뒤집었고 최종적으로 우승했다.

 

삼성을 상대하는 팀은 반드시 꺼진 불도 다시 봐야 한다. 완전히 불이 꺼졌는지 끝까지 확인해야 한다. 작은 불씨가 살아나 대형 화제로 번져 빌딩을 모두 태우는 법이다. 사실은 삼성뿐만 아니라 야구에서 팀이 패하는 과정, 역으로 승리하는 과정도 이와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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