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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적 기법

이어령의 100년 서재, 개념의 창조 사슬

 

(사진 출처 및 권리: KBS)

 

[이어령 선생의 주목할 만한 창의적 표현 기법]

[무한 하이퍼텍스트에 고개가 숙여지다]

 

다소 고심했다.

 

이어령 선생을 너무나 좋아하는 싱크탱커는 <창조의 재료탱크> 블로그 개설 이후 줄곧 선생의 창의성 관련 내용 여러 글을 작성했었다.

 

그런데 몇 주 전부터 <이어령의 100년 서재>KBS를 통해 방영되고 있다는 반가운 사실을 접하게 됐다. 처음에 싱크탱커는 이 프로그램이 2~3부작으로 끝날 것으로 보고 프로그램 종료 뒤 총정리 형식으로 글을 쓸 계획이었다.

 

하지만 알고 보니 10부작으로 방송된다고 한다. 그래서 더 이상 미룰 수가 없었다. 고심 끝에 방송을 보고 생각나는 것을 묶어 주기적으로 포스팅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바꿨다. 강연 내용을 정리하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일단 <이어령의 100년 서재>를 기획한 KBS(책임프로듀서 민승식)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선생의 일생은 대한민국의 현대사이자 크리에이터의 발자취다. 가치를 판단한 제작진이 선생의 강연에 훌륭한 편집을 가미해 10부작의 영상으로, 그것도 토요일 황금 시간대인 저녁 8시에 방송한다는 결정을 내린 것은 탁월한 구상이었다. 이 프로그램은 창의성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소장가치 1호인 영상이 될 자격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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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및 권리: KBS)

 

이제 첫 번째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당신에게 기억에 남지만 기억에 남지 않는 연설이란 무엇일까.

 

이 무슨 이상한 질문일까. 정확하게 다시 풀어쓰겠다. 당신에게 연설 상황은 기억나지만 연설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 연설은 무엇일까.

 

쌍두마차가 있다. 학창시절 아침 조회시 교장 선생님의 연설과 결혼식장 주례 선생님의 주례사다. 왜 그런지 떠올려보자.

 

우선 연설 상황은 확실하게 기억난다. 교장 선생님의 아침 조회는 주로 월요일이었다. 학생들도 월요병이 있다. 월요일 아침은 누구나 피곤하다. 그런 상황에서 전교생이 운동장에 우르르 몰려나와 군인들처럼 줄을 맞춰 서있다. 서서 조는 학생도 있다. 교장 선생님이 근엄하게 연단에 선다. 목소리와 말소리는 왜 그렇게 건조하고 느리신지...아무튼 그렇게 확실히 기억난다.

 

주례 선생님의 주례사는 주로 주말 점심때였다. 하객들도 배고픔과 식곤증이 있다. 점심 먹기 전이면 빨리 결혼식이 마무리 되고 밥을 먹고 싶고, 점심 먹은 뒤면 빨리 집에 가고 싶다. 그런 상황에서 하객들이 웅성웅성 결혼식장 안에 앉아있다. 역시나 앉아서 조는 사람들이 있다. 주례 선생님이 연단에 선다. 목소리와 말소리는 왜 그렇게 건조하고 느리신지...아무튼 그렇게 확실히 기억난다.

 

연설 내용으로 들어가면 처음 1분간은 집중하게 된다. 두 분 모두 지체 높으신 분들이다. 듣게 된다. 그런데 듣다보면 나도 모르게 지루해진다. 이유가 있다. 두 분 모두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결국 비슷하다. “공부 열심히 하는 학생이 돼라”, “검은 머리, 파 뿌리 될 때까지 해로해라이다.

 

하지만 이 메시지까지 전달되는 과정이 너무 삼천포를 자주 왔다 갔다 하신다. 이 내용, 저 내용 여러 가지를 말씀하시는데 상호간 연결이 안 된다. 심지어 이 내용, 저 내용이 흥미를 느낄 내용 또한 아니다. 점점 눈이 감긴다. 지루해진다. 그러다 연설이 다행스럽게 끝나고 학교종이 울리며 결혼 행진곡이 퍼진다. 물론, 아니신 분들도 있다. 그러나 대개는 그렇다. 시간이 지나고 연설 내용은 머릿속에서 증발된다. 이것이 쌍두마차의 패턴이자 범인(凡人)들의 전형이다.

 

(사진 출처 및 권리: KBS)

 

놀랍게도 이어령 선생의 강연도 형식상 비슷했다. 그는 5일 방송된 제3내 얼굴 찾기에서 지난 70년 동안 가장 많이 바뀐 것은 한국인의 얼굴이다라며 호기심을 일으켰다. 그런데 강연 도중 갑자기 바이칼 호수가 나오고 부랴트인이 등장한다. 펭귄이 나오고 난데없이 커피가 화제의 중심이다. 불길하게도 교장 선생님과 주례 선생님의 삼천포 연설이 연상됐다.

 

그러나 이어령 선생은 역시 크리에이터였다. 그의 삼천포는 시간이 지나고 듣다보니 삼천포가 아니라 지식의 심연, 그 심연도 무수한 터널로 모두 이어진 12차선 광대역 해저 연결망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선생의 강연은 역사속 얼굴, 생물학적 얼굴, 문화적 얼굴이 상호 연계를 가지며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얼굴 대장정의 시작은 시베리아의 바이칼 호수였다. 아프리카에서 시작된 인류의 조상 가운데 하나인 몽골로이드(황인종)가 빙하기에 바이칼 호수 주변에 정착했다. 외모와 문화, 언어, DNA까지 우리와 흡사한 부랴트인이다. 그 곳은 추웠다. 그러다보니 눈은 작아지고, 추위에 취약한 드러난 코를 감싸기 위해 광대뼈가 코를 감싸며 튀어나오게 됐다. 바이칼 호수의 혹한이 만들어낸 얼굴, 참고 견디고 추위를 뚫고 나온 한국인의 얼굴이 된 것이다.

 

한국의 주류 문화가 된 이같은 북방계의 특성은 시야가 넓고, 형태 지각, 공간 지각 능력이 뛰어났다. 그래서 한국인은 골프와 양궁 사격 등에서 다른 민족보다 우위에 서게 되는 것이 자연스럽다. 이렇게 바이칼 호수에서 갑자기 박세리, 진종오가 하이퍼텍스트로 이어진다.

 

연이어 선생은 한국얼굴연구소조용진 소장의 분석을 통해 우리의 얼굴은 유전적인 DNA도장이 찍혀있다는 것을 설명한 뒤 그 첫 번째 DNA 안에 한국인은 네오필리아(Neophilia), 즉 새로운 것에 이끌리는 모험심을 담고 있다고 지적했다.

 

두 번째 DNA경쟁력은 약하지만 생존력은 강하다였다. 그리고 또 급작스럽게 예시로 등장한 것이 척박한 땅에서 환경을 이겨낸 소나무와 펭귄이다. 이 두 개의 개념을 통해 선생이 끌어온 소결론은 한국인은 평화를 사랑하고 모험심이 강한 민족이다.

 

결국 소나무, 펭귄, 한국인의 공통점을 누가 물어보면 평화 사랑과 강한 모험심이라고 대답할 수 있게 된다. 만약 누군가가 선생의 강연 흐름을 인지하지 못한 채 방송을 중간부터 보면 바이칼 호수를 이야기 하다 박세리가 나오고 소나무와 펭귄이 화면에 이어져 이 무슨 삼천포냐고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언급한 것 처럼 자연스럽다. 쉬운 대상들을 통해 고차원의 개념을 연상시키고 개념을 연결하여 창조하는 전형적인 크리에이터의 작업이다.

 

그럼 인간의 얼굴은 DNA에 계속해서 영향을 받는 존재일까. 그렇지 않다. 곧이어 선생은 “40세가 넘으면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한다는 링컨의 유명한 말을 인용해 마흔 이후의 얼굴은 문화의 얼굴, 역사의 얼굴이 된다는 점에서 DNA 결정론을 뛰어넘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증거는 미각의 쓴 맛이다. 아기들은 쓴 것을 먹지 못한다. 동물도 마찬가지다. 만약 나뭇잎이 쓴 맛을 내지 않았다면 지구상 모든 숲은 동물들에 의해 멸종됐을 것이라는 흥미로운 가정도 덧붙인다.

 

하지만 어른은 다르다. 어른은 쓴 맛을 즐긴다. 대표적인 것이 커피와 맥주다. 이것은 아기때부터 쓴 맛을 싫어하는 유전적인 영향을 뛰어넘은 결과이다. 이 개념을 위해 선생은 커피와 맥주라는 매우 쉬운 예를 들어 모두를 공감하게 한다. 커피를 좋아하는 대표적인 민족이 한국인이다. 다시 말해 한국인은 DNA의 원초적인 한계를 능가할 수 있는 민족이라는 재미있지만 의미 있는 문장이 끌려나온다.

 

얼굴의 보다 깊은 의미는 가면을 통해 구체화했다. 얼굴은 모든 오감의 집중을 받는 곳이다. 이런 얼굴을 가면으로 가리면 시선은 몸으로 이동하는데 그때 춤을 추면 몸의 소통이 일어난다. 그래서 발레리나들은 보통 표정 없이 공연 중 중립적 얼굴을 한다. 가면을 쓰면 이처럼 개성이 사라진다. 따라서 얼굴은 자신의 모든 정체성이 압축된 표본으로서 의미를 가진다.

 

가면의 연장선상에서 이모티콘도 비슷하다. 차이점은 가면을 쓰면 표정을 가린 것을 알 수 있지만 이모티콘은 표정의 표상을 외부에서 진실로 받아들인다는 점이다. 그러나 표정은 꾸민 것이지만 안색은 숨길 수 없다. 서양인들은 안색에 관해서 표현이 취약하다. 한국인은 다르다. 안색과 관련해서 미묘함을 느낄 정도로 섬세하다. 그래서 선생은 송강 정철의 속미인곡의 한 구절 반기시는 낯빛이 옛날과 어찌 다르신고?”를 인용했다. 여기서의 낯빛은 표정이 아니라 안색이다.

 

(사진 출처 및 권리: KBS)

 

내 얼굴은 주어진 DNA의 얼굴이지만 문화로 새롭게 바꾸고 만들 수 있다의 논의는 화장과 성형으로 연결되는데, 선생은 논어의 꾸밈과 바탕은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문질빈빈(文質彬彬)’을 통해 우리의 얼굴을 빗대 설명했다. 인간은 꾸밈을 원하면서도 자연스러움을 잃고 싶지 않은 팽팽한 긴장감을 통해 얼굴을 만들었다는 주장이다.

 

얼굴의 꾸밈에 도움을 주는 화장품의 개념을 더 파고 들어가면 새삼스러운 오묘함도 느낄 수 있다. 영어로 코스메틱(cosmetic)인 화장품은 우주의 질서를 뜻하는 그리스어 ‘kosmos’에서 왔다는 설명이 그렇다.

 

혼돈에서 질서로 가는 것이 우주다. 그런데 화장품은 이런 혼돈을 품은 인간의 얼굴에 질서(아름다움)를 부여하는 매개체가 된다. “화장품은 우주의 질서와 조화를 가져 온다는 문장은 만약 누군가 화장품 광고 카피라이터라면 그대로 응용할 수 있는 훌륭한 표현이 된다. “여자에게 크림(Cream)은 드림(Dream)이다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선생은 작가 최인호의 <돌의 초상(1978)>을 통해 역사와 문화가 녹아있는 우리의 얼굴이 사라지고 성형과 화장 문화가 발달하면서 고유의 얼굴이 점차 상실되어 가는 현재를 지적한다. 우리에게는 너새니얼 호손이 말한 표상이 될 만한 큰 바위 얼굴이 없다는 것이 아쉽다.

 

그렇다면 이런 현실 안에서 우리의 바람직한 얼굴은 무엇일까. 나의 문화, 나의 역사, 나의 유전자를 종합하여 미래에는 어떤 내 얼굴을 찾아야 할까.

 

이어령 선생의 결론은 빛나는 눈빛, ‘Shining Eye’.

 

얼굴의 눈빛이 죽으면 나의 존재가 죽고, 회사가 죽고, 나라가 죽는다. 모든 것이 죽는다. 눈빛이 살아있던 한국인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눈빛이 사라져가고 있다. 한국인의 눈빛을 어떻게 살리느냐는 것이 지금부터 내 얼굴을 찾는 길이고 내가 가는 길이다. 내 강연은 비록 짧지만 여러분이 나의 강연을 듣고 눈빛이 달라졌다면 (소임을 다 한 것이다.)”

 

바이칼 호수부터 가면을 거쳐 화장품까지 다채롭게 전개된 내 얼굴 찾기에 대한 선생의 결론은 눈빛이 달라지는 것이 얼굴이 달라지는 것이다.” “눈빛이 살아있는 얼굴을 만들어야한다.수 만년 동안 우리가 가꿔온 얼굴이 가진 최후의 결전장이 눈빛에 달려있는 것이다였다.

 

(사진 출처 및 권리: KBS)

강연은 그렇게 끝났다.

 

이어령 선생의 강의를 정리하는 것만으로도 뇌가 새로운 에너지를 공급받는 것처럼 꿈틀거렸다. 이유를 생각해보면 선생은 수많은 개념을 창조의 사슬로 엮었기 때문이라고 나는 결론 내렸다.

 

이어령 선생의 창조의 사슬은 1%의 견강부회나 삼천포가 없었다. 그래서 교장 선생님과 주례 선생님과 달리 강연 상황과 강연 내용이 모두 확실하게 기억났다.

 

처음에 내 얼굴과 함께 나타난 바이칼 호수부터 부랴트인, 양궁, 사격, 얼굴의 DNA, 네오필리아, 소나무, 펭귄, 링컨, 나뭇잎, 커피, 맥주, 가면, 발레리나, 이모티콘, 화장품, 성형, 속미인곡, 돌의 초상, 큰 바위얼굴까지 모두 20개의 핵심 키워드를 미래의 얼굴이라는 개념을 위해 효과적으로 사용했다. 곁가지로 보일만한 장치는 찾기 힘들었다. 그래서 아래와 같은 마인드맵을 10분 만에 만들어 한눈에 시각화할 수 있었다.

 

 

(사진 출처 및 권리= <창조의 재료탱크> By ThinkTanker)

 

82세의 노령이지만 표현의 언어와 소재도 신구를 잘 조화시켰다. 몇 백년 전의 속미인곡을 설명하다 21세기의 한류가 나오고 성형과 이모티콘이 등장한다. 20대 젊은이의 현대 감각을 잃지 않는다. 이미 스마트 펜을 쓰고 서재 안 6대의 컴퓨터를 모두 연결해 동기화 시킬 정도로 첨단을 걷는 분이다.

 

구성면에서도 발단-전개-절정-결말이라는 시나리오 식 기본 골격에 충실하면서도 사이사이 주의를 환기시키는 전환을 배치하고 있었으며 그 전환은 결국 최종적으로 결말로 수렴됐다. 창조의 사슬은 쉽게 끊어지지 않는 초합금 강력 사슬이었다.

 

사실은 어떤 개념을 설명할 때 이어령 선생처럼 다양한 예를 들어 말하는 것은 아주 특별한 것은 아니다.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개념의 확장 폭과 개념의 이질성에서 동질성을 끌어내는 선생의 사슬은 차원이 달랐다. 강가에서 물고기를 찾는 것은 쉽다. 그러나 강가에서 뜬금없이 진공청소기를 찾아 강가와 유의미하게 연결하는 것은 어렵다. 비유, 유추, 메타언어, 하이퍼텍스트의 크기와 범위에서 선생의 내공을 다시 한 번 느끼며 고개가 숙여졌다.

 

싱크탱커 같은 凡人들은 쉽게 따라할 수준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희망도 봤다. 어떻게 개념을 확장시키고 어떻게 개념들을 연결시킬지 창의성 방법론에 실마리를 제공했다. 창조의 사슬을 무엇으로, 또 어떻게 만들지에 큰 도움이 됐다. 선생의 남은 강연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마지막으로 내 얼굴 찾기에서 이어령 선생이 남긴 문장을 소개한다. 선생은 훌륭한 강연가이기 전에 오래전부터 뛰어난 문필가이기도 하다. 크리에이터가 말도 잘하고, 글도 잘 쓰면 그땐 천하무적이 된다.

 

 

이어령

 

-얼굴-

 

 

이제 우리가 서로 눈을 마주할 때가 왔구나

 

가면도 벗고 복면도 찢고

 

 

별과 별이 몇 억 광년 떨어져 있어도

 

서로 마주 보듯이

 

 

어찌 흐르는 눈물을 성형하랴

 

어찌 빛나는 그 눈빛을 화장하랴

 

 

그게 내 얼굴이다

 

 

그게 인간의 얼굴이다

 

 

그게 내 나라의 얼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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