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 속 천재' 이진아, 기억할게요

 

(사진 출처 및 권리: <시간아 천천히>를 부르기 직전의 이진아, SBS)

 

['크리에이터' 이진아가 '천재'라 불릴 수 있는 이유]

 

코맹맹이 소리처럼 들렸다.

 

“안녕하세요. 저는 피아노 치고 노래하는 싱어송라이터 이진아입니다.”

 

그녀의 말하는 목소리는 그랬다. 그런데 건반 앞에 앉아있는 그 짧은 순간 이상한 아우라가 느껴졌다. 건반이 체화(體化)된 것 같았다. 체화는 물체로 변화하거나 물체로 변화하게 하는 것이다. 피아노가 그녀 같았다. 그녀가 피아노 같았다. 다가가서 손가락으로 그녀의 뺨을 살포시 누르면 도레미파솔라시도가 나올 것 같았다.

 

음악이 시작됐다.

 

페달이 소리를 내지 않아 잠시 음악이 끊어졌을 때 심사위원 유희열과 박진영은 그녀의 전주 연주만 듣고 합격 버튼을 눌렀다. 2014년 11월 23일 일요일 그녀의 첫 방송 모습이었다.

 

(사진 출처 및 권리 : 10초만에 합격을 누른 두 명의 심사위원, SBS)

 

 

그리고...

 

또 그리고...

 

살아오면서 싱크탱커는 많은 음악을 들어왔다. 특정 음악인, 어떤 장르의 음악이라는 좁은 영역만은 아니다. 정확하게는 많은 ‘소리’를 들어왔다. 이런 소리의 경험은 전문가의 영역이 아니다.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범용적 경험이다.

 

유년시절 아이스케이크를 당하고 울던 소녀의 울음소리, 아파트 앞 아주머니의 수다 소리, 휘몰아치는 비바람소리, 강아지가 밥 달라고 보채는 소리, 2002년 월드컵 홍명보의 승부차기 결승골이 터질 때의 함성 소리, “인간이 외로울 땐 저급하게 들리던 뽕짝이 가슴을 어루만져 주는 위대한 멜로디로 들린다”는 작가 이외수만의 특별한 감정의 비슷한 소리까지도 나는 들어왔다.

 

이런 소리들은 그때는 새로웠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종류별로 묶을 수 있을 정도로 머릿속에 카테고리화 시킬 수 있었다. 이 소리의 카테고리는 성인이 되고 나이를 먹고 무감각해졌다. 음악도 소리다. 그녀의 음악을 듣기 전에도, 들은 이후에도 듣고 좋은 음악은 많았다. 그런데 새로운 느낌은 크게 없었다. 새롭고도 또 좋은 음악은 더욱 듣기 힘들었다.

 

그런데 그녀의 음악은 내게 새로웠다. 무감각했던 소리의 감각을 일깨웠다. 새롭다고 모두 좋은 것은 아니다. 어느 유치원생이 불협화음의 미파시도솔레미를 50번 반복하고 3옥타브를 넘나드는 변화무쌍한 어떤 피아노곡을 작곡한 것은 새로울 수 있다. 어떤 초등학생이 “당신은 내게 달콤 청록한 태평양의 말미잘이다”라는 문장을 의기양양하게 쓴 것은 새로울 수는 있다. 그러나 좋게 들릴지, 좋게 읽힐지는 미지수다. 

 

그런데 그녀의 음악은 새로우면서 좋게 들렸다. 단조와 장조가 합성되고, 플랫과 샵을 어떻게 쓰고, 어느 심사위원이 말한 대위법이니 화성악이니, 흑형들의 R&B 소울 등 음학적(音學的) 기교를 칼로 분해하거나 핀셋으로 집어내는 것은 내게는 의미가 없었다.

 

드라마 <시크릿 가든>에서 현빈이 말한 “내가 너를 왜 좋아하냐고? ‘나는 하늘을 날고 싶다.’ , ‘나는 행복하고 싶다’에 이유 필요해? 이거랑 똑같은 거야.” 싱크탱커 역시 그녀의 음악이 새롭고 좋은 이유는 김은숙 작가가 탄생시킨 이 명대사와 똑같았다.

 

그녀의 음악을 계속 들었다. 풋풋한 옷차림에 아름다운 생얼로 노래한 그녀의 곡 ‘편지’(싱크탱커가 그녀의 노래 중 가장 좋아하는 노래다.)는 거의 백 번 가깝게 들었다. ‘겨울부자’와 ‘치어리더 쏭’ 역시 마찬가지다. 그때 나는 그녀가 천재라고 결론 내렸다.

 

변형하기 어려운 독창성

 

(사진 출처 및 권리 : K팝스타는 자막도 참 잘 붙인다. SBS)

 

그녀가 남긴 곡들을 하나로 묶어 편집해보고 싶었다. 천재 소녀(24살의 아가씨만 내게는 소녀로 보인다)가 만든 음악에 손을 댄다는 것은 심한 결례라 생각해 그동안 많이 참아 왔었다. 그래도 시도했다. 천재의 멜로디를 내 손과 감각으로 다시 느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싱크탱커, 이런 음악 재편집 몇 번 했었다.

 

그동안 <창조의 재료탱크>를 방문해서 음악 카테고리의 포스팅을 보신 분들이라면 참으로 조악한 편집 음악들이 몇 곡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음악을 콜라주 한다’는 것은, 괜한 고상한 척이라는 째려봄의 시선을 위해 적나라한 표현으로 바꿔 ‘음악을 짬뽕 시킨다’는 것은 창의성 기법의 재료가 될 수 있다는 개인적 판단에서 나온 무모한 작업들이었다. 그래서 이런 작업들을 순수 재미로 해왔었다.

 

내가 알고 있는 음악들을 샘플링해서 대상 곡에 집어넣기도 했고, 하나의 가수 또는 여러 가수들의 다른 음색을 조합하기도 했다. 이 작업들은 대체적으로 끝이 있었다. 완전히 다르게 들리는 곡들도 결국은 도레미파솔라시도 이다. 음과 음이 연결될 수 있는 지점들이 있었다.

 

그런데 그녀의 음악은 달랐다. 이진아의 음악은 도무지 연결할 수가 없었다. ‘이진아 역대 무대 자작곡 모음 가상메들리’로 만들기가 너무나 어려웠다. 몇 번 시도하다 지우기를 수차례 했다. 참고로 이진아 만큼 좋아하는 지존(장미지·존추)의 역대 무대 가상메들리는 기성곡들이라 그런지 1시간 조금 넘게 작업시간이 걸렸다. 퀼리티를 떠나 과정자체는 머리를 복잡하게 할 정도로 어렵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진아 자작곡들은 음과 음의 연결 지점이 하나의 곡 안에서 완성된 채로 너무나 강하게 부착돼 있어 좀처럼 또 다른 그녀의 음악을 집어넣어 <7곡의 자작곡을 묶어 하나의 곡처럼 좋게 들리도록 합성하기>가 박진영이 가곡 ‘그리운 금강산’을 부르는 것만큼 상상하기도, 실행하기도 힘들었다. 물론 나의 음악적 감각과 편집 실력이 턱없이 부족한 이유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가장 큰 이유는 그동안 유희열 등 여러 차례 심사위원들이 이야기한 이진아의 음악에서 한 음, 한 음 정성들여 만든 흔적이 느껴진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인 것으로 나는 추측했다. 그녀가 방송에서 유재하의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을 편곡하기가 어렵다고 한 적이 있다. 건드리면 이상해지는 곡이라 했다. 자체로 완성된 곡이었기 때문이다.

 

역설적으로 이진아의 음악들이 그랬다. 이진아의 자작곡은 건드리면 이상해졌다. 수정과 편집은 어울리지 않았다. 독특한 음색도 강점이었다. 가창력이 탁월하거나 엄청난 고음과 폭넓은 음역대가 느껴지진 않았다. 하지만 이진아의 목소리는 이진아의 음악 자체에 가장 최적화된 음색으로 들렸다. 과연 다른 음색으로 이진아의 <겨울 부자>나 <냠냠냠>을 부르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크리에이터는 독창성을 가진다. 독창성이 강할수록 그 독창성은 변형을 허락하지 않는다. 크리에이터의 아이덴티티(Identity), 천재의 고유성은 이러한 독창성에서 더욱 공고해진다. 크리에이터는 천재가 아닐 수 있지만 싱크탱커가 기억하는 천재들은 거의 크리에이터다. ‘크리에이터’ 이진아가 만든 음악에서 나는 그 천재성을 어려운 편집을 일으킨 내 손가락에서부터 직접 느낄 수 있었다.

 

[ps. 결국 이진아의 역대 무대 자작곡 가상메들리는 아직도 완성하지 못했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최종 작업이 끝나면 공개할 수도, 아닐 수도 있다.]

 

놀라운 스토리텔러

 

(사진: 뮤지컬 <더 래스트 파이브 이어스> 공식포스터)

 

개별적인 하나하나의 곡이라는 측면에서 그녀의 음악을 듣다가 나는 조금 묘한 부분을 발견했다. 자작곡의 멜로디끼리는 연결하기 어려웠지만, 한 곡의 노래가 가지는 감정선이 노래가 끝나고도 뭔가 계속 여운이 이어진다는 느낌이 희미하게 다가왔다.

 

그래서 약간 거시적으로 그녀의 자작곡 7곡을 다시 들어봤다. 그녀는 경연에서 <1.시간아 천천히> → <2.마음대로> → <3.두근두근 왈츠> → <4.편지> → <5.냠냠냠> → <6.겨울부자> → <7.치어리더 쏭>의 순서로 노래를 불렀다.

 

이 순서를 여러 가지로 섞어서 다시 들어봤다. 1,3,5,7,2,6,4로 들어봤고, 3,6,1,5,7,4,2로도 시도해봤다. 여러 가지 조합 가운데 귀를 붙잡은 하나의 조합이 있었다. <3.두근두근 왈츠> → <1.시간아 천천히> → <7.치어리더 쏭> → <5.냠냠냠> → <4.편지> → <2.마음대로> → <6.겨울부자>였다.

 

그리고 직감적으로 어떤 뮤지컬이 하나 떠올랐다. <더 라스트 파이브 이어스’(The Last 5 years)>였다. 이 뮤지컬은 남녀가 만나 헤어지는 과정을 남녀의 입장에서 각각 시간의 순서를 역전시켜 감정의 추이를 표현한 숨겨진 명작이다.

 

이진아의 3,1,7,5,4,2,6의 순서 조합이 그랬다. 이 순서를 그녀의 노래 가사와 함께 따라가면 아래와 같은 한 소녀의 이야기를 구성할 수 있었다.

 

따스한 한 날의 오후 2시, 연두색 잔디에 누워 소녀는 조용히 눈감아 보다 생각나는 남자가 있다. 짝사랑이다. 서랍 속 숨겨져 있는 나의 마음은 뜨겁다. 너에게 달려가 내 마음을 꺼내고 싶다. 알 수 없는 너의 마음이 내게 향하기를 아무도 몰래 수줍게 기도한다.

<3.두근두근 왈츠>

 

그 마음이 통했다. 둘은 연인이 됐다. 소녀의 마음은 날아갈 듯하다. 너와 손을 잡으면 노래가 나온다. 너와 함께 있으면 시간이 도망가 버린다. 이 시간이 너무 빨리가는게 아쉽다.

<1.시간아 천천히>

 

둘의 애정은 깊어졌다. 남녀의 사랑이 깊어지면 여자가 남자에게 애교를 부리기도, 또 힘든 남자를 격려하기도 한다. 하지만 남자는 소녀와 자주 만날 수 없는 곳으로 갔다. 이곳은 군대일 수도, 해외 이주일 수도 있다. 남자는 간혹 소녀에게 현재 어렵고 힘들다고 편지를 보내왔다. 소녀는 남자를 위해 치어리더 복장을 입은 치어리더의 마음으로 남자를 응원한다. 지친 마음 속 외로움은 내가 위로할거야. 아무 걱정 하지마, 그래 슬퍼하지는 마. 아무도 없는 데서 노래 한번 해볼까. 라라라라라.

<7.치어리더 송>

 

남자의 연락은 끊겼다. 너의 무관심한 표정들. 둘 사이는 멀어졌다. 소녀도 투정 섞인 마음으로 너의 달콤한 기억들을 이제는 담아 두지 않을 거라며 밝게 엄포한다. 냠냠냠 너의 기억을 다 먹을 거야. 아름다운... 영원할 줄 알았던...소중했던 모든 기억들...

<5.냠냠냠>

 

소중했던 기억들은 사라졌다. 둘은 이제 헤어졌다. 하지만 소녀의 마음은 여전히 그리움이다. 예전에 남자가 보내왔던 편지를 꺼냈다. 여전히 남아있는 잔잔한 글씨들이 내 마음을 내 눈빛을 움직인다. 잠시 눈감아 생각해보네. 조용히 내 손을 잡아주던 그 순간들. 아...그리운 그 사랑. 아...그리운 그 사람.

<4.편지>

 

시간이 흐르고 이제는 감정의 여운마저 희미해져간다. 헤어졌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하는데 쉽지 않다. 만날 수 없는 남자를 향한 마음의 그리움이 극한에 이른다. 돌아오지 않는다는 건 변함없는 사실이지만, 그리워해요. 그대는 어디에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나요. 바보 같은 내 마음을 알까요. 기다릴래요. 새로움이 내게 말을 걸어와도 변함없네요. 그대만이 나를 웃음 짓게 만드네요. 차가움이 내게 와도 언제나 그대를 기다려요.

<2.마음대로>

 

“차가움이 내게 와도 언제나 그대를 기다려요”에 남자가 마침내 응답했다. 꿈속의 판타지 세상이었다. 기다리던 소녀를 위해 남자는 겨울왕국의 왕자가 되어 나타났다. 살포시 소녀를 안았다. 눈이 내리는 하늘 아래 날 바라고 있는 그대의 품에 안긴 나는 모든 걸 다 가졌죠. 아무 걱정도 안할래요. 어떤 것도 생각나지 않아. 그대의 품에 안길 때 아무것도 부럽지 않아요... 엔딩 크레딧이 흐르며 소녀의 사랑 이야기는 겨울밤 그렇게 눈이 내렸다.

<6.겨울부자>

 

(사진 출처 및 권리: 편지를 노래하는 이진아, SBS)

 

이 소녀의 사랑 이야기는 내가 만든 것이다. 사실 이진아의 7개 자작곡은 모두 K팝스타 기간에 작곡한 곡이 아니다. <두근두근 왈츠>는 고등학교 때 만든 곡이다. <시간아 천천히>, <편지>는 자신의 1집에 수록된 곡이었다. 그럼에도, 참으로 묘하게도, 이 7곡을 따로 가져와 경연 순서를 바꿔 구성하면 이렇게 감정과 가사 장면을 연결해 소녀의 사랑 이야기로 구성이 가능했다.

 

이진아가 이렇게 정말로 생각해서, 또는 자신의 경험담이 <시간아 천천히>처럼 일부 노래에 있다고 했지만 이 사랑 이야기를 일부로 드러내지 않기 위해 순서를 뒤바꿔서 노래한 것인지는 확인할 수 없다. 싱크탱커가 이진아의 노래를 통해 만든 소녀의 사랑 이야기가 작위적이며, 무리한 전개라고 지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작사 작곡한 이진아의 의도가 그랬건 아니건, 이 7개의 곡을 듣고 이렇게 이야기를 구성한 누군가가 있었다는 사실, 이로 인해 7개의 곡이 통째로 내 머릿속에 붙어 사라지지 않았다는 점에 있다.

 

크리에이터들이 쓰는 ‘스티커 메시지 기법’은 대표적인 창조적 기법 가운데 하나다. 스티커 메시지를 구성하는 핵심 요소가 바로 ‘스토리’다. 메시지가 스토리를 이루면 그 메시지는 사람들의 머릿속에 달라붙어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새로운 멜로디가 ‘사랑’이라는 보편적 감성과 어우러진 이진아 음악의 스토리성은 이렇듯 내게 스티커 메시지가 됐다.

 

이 7개 노래 가운데 하나의 노래라도 빼면 이야기가 어색해진다. 짝사랑하다 갑자기 너의 기억을 냠냠냠 먹거나, 뜬금없이 찬바람 속에서 겨울부자가 되면 이야기가 안 된다. 과정과 맥락이 있어야만 전체 스토리가 구성된다. 크리에이터들이 가진 천재성은 이야기를 만드는 능력에서도 빛을 발해왔다. 스토리 구성에 남다른 능력을 보여줬다. 때로는 천재라는 소리도 들었다.

 

그런 사람이 실제로 과거에 있었다. 유재하다.

 

나는 분명히 기억한다. 유재하는 처음부터 천재라는 소리를 듣지 않았다. 그가 활동할 때 그의 음악은 대중들의 주목을 거의 받지 못했다. 음색이 여리고 가창력이 돋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고, 또 그가 세상을 떠나고 그가 남긴 8곡(연주곡 제외)은 조금씩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노래가 모두 좋았다.

 

유재하의 1집은 알고 보니 전체 노래가 한 여자를 향한 실제 자신의 사랑 이야기였다. 8곡이 모두 사랑의 감정을 노래로써 표현해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구성됐다. 유재하가 남긴 딱 한 장의 이 앨범은 한국 대중음악 역사에 명반으로 꼽힌다. 그리고 그는 이제 천재로서 기억된다. 그는 ‘논픽션 뮤직 스토리 텔러’였다.

 

이진아의 자작곡 7곡을 하나로 모아 유재하의 1집처럼 하나의 앨범으로 구성한다고 생각해봤다. 오랜 고심이 필요 없었다. 그녀도 내게는 너무나 Lovely한 뮤직 스토리 텔러였다.

 

공감각을 활용하는 언어의 마술사 & 감각적 가사

 

(사진 출처 및 권리 : SBS)

 

많은 크리에이터들이 다양한 장르에서 사용하는 언어적 수사법은 그 사용에 있어 주의를 요하는 기법이다. 적절한 사용은 작품을 빛나게 하지만 과하면 작품의 품격을 현격하게 떨어뜨리는 독소가 될 수 있다. 작품안의 창의성을 얼마나 어떻게 보여줄 수 있느냐도 관건이다. 그래서 수사법은 보기보다 매우 어렵다.

 

“시간을 죽인다”가 대표적이다. 이 수사법을 처음 쓴 사람은 대단한 비유를 했다. 시간에 생명을 부여했다. 시간을 의인화 시켰다. 시간을 죽여 시간을 소모시킬 수 있다는 것을 여섯 음절로 각인시켰다. 그래서 이제는 상투적인 표현이 됐지만 상투적이 될 정로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살아남아 국어사전을 비롯해 전 세계 14개 국가의 사전에 등록될 정도로 일반적이 됐다.

 

“시간은 청춘에게 주었던 번성함을 없애고 그 아름다운 이마에 주름을 그어놓는다. 시간의 낫이 베려는 것에 견디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셰익스피어의 표현은 시간에 관한 수사법이 음절에서 문장으로 확대된 조금 더 차원이 높은 수사법이다.

 

이진아 역시 ‘시간’의 수사법을 효과적으로 사용했다. 그런데 그것을 음절과 문장을 넘어 노래 가사 전체에 이용했다. 그녀의 노래 ‘시간아 천천히’가 그렇다. 이 노래 역시 시간을 의인화 했다. 시간에 말을 걸고 있다. 그와 함께 있는 시간이 너무 좋아 천천히 가달라고 말을 하고 있다.

 

그런데 가사를 자세히 들어보면 시간에 말을 하는 것은 내가 좋아하는 ‘그’에게 말을 하는 것에 연결되어 있다. 노래 중간 “너와 항상 있다간 할머니 되겠네”라는 표현에서는 미소가 나오면서도 문장 선택의 재치에 놀라움이 느껴졌다. 여기서의 ‘너’가 ‘시간’과 ‘그’라는 중의적 표현으로 쓰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진아의 음악이 한 음 한 음 정성을 기울였다는 평가 이외에도 그녀는 가사 역시 한 자 한 자 정성을 기울였다는 느낌을 나는 강하게 받았다.

 

인간의 오감에 포함될 수 없는 가장 고차원의 감각인 공감각을 효과적으로 이용했다는 요소도 추가된다. 공감각은 감각이 합성된 것이다. 시각과 미각, 청각과 후각, 촉각과 시각 등이 하나로 묶이는 것이다. 쉽게 쓸 수도, 쉽게 나올 수도 없는 표현이다. 잘못 쓰면 매우 우스꽝스러워진다.

 

그런데 그녀는 <두근두근 왈츠>에서 ‘꽃빛 바람’이라는 언어를 썼다. 심사위원 양현석의 심사평이 기억난다. “도대체 꽃빛 바람은 어떤 바람일까요?” 양현석이 질문한 것은 당연하다. 이 언어는 시각화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바람은 보이지 않는다. 바람은 색깔이 없기에 시각화 할 수 없다. 촉각이다.

 

그런데 그 바람에 이진아는 ‘꽃빛’이라는 정체불명의 색깔을 입혔다. 꽃빛은 노란색일 수도, 파란색일 수도, 빨간색일 수도 있다. 창의성 기법 중 애매성이라는 요소까지 추가되어 있는 셈이다. 그러나 그 애매성도 ‘꽃’이라는 만고불변의 선(善)의 개념이 녹아있기에 이 표현은 누구에게나 호감으로 다가오면서도 양현석처럼 일순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시각과 촉각뿐만이 아니다. 시각에 미각까지 합성한 노래는 <냠냠냠>이다. 이 노래 가사는 감각사용의 결정판이다. 공감각에 은유법을 동원해 노래 시작부터 끝까지 전체를 끌고 간다. 인간의 기억을 머릿속 냉장고로 비유하며 시작한다. 눈으로 떠올릴 수는 있는 아름다운 기억을 시각화했다.

 

그런데 이 기억에 달콤함의 조미료를 추가해 냠냠냠 다 먹어버릴 거야, 너의 미소, 우리 사랑을 다 먹어버린다고 노래한다. 도대체 이런 수사법은 어떻게 익혔을까. 정말로 이진아 머릿속 냉장고에는 미소와 사랑 말고도 수시로 꺼낼 수 있는 냉장보관 된 번득이는 언어들이 있는 것일까.

 

은유법만 있는 것이 아니다. 직유법도 빛났다. 그녀는 <치어리더 송>에서 정말 없애고 싶은 걱정거리를 커다란 여드름으로 비유했다. 추측컨대 이것은 이진아의 체험담은 아니었을까. 그녀의 얼굴에 있었던 커다란 여드름이 정말로 걱정은 아니었을까.

 

여드름에 대한 세심한 묘사도 노래에 녹아있다. 실제로 여드름이 없어지는 과정은 갑자기 없어지지 않는다.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걱정거리인 여드름이 “금방 들어갈 거야. 잔잔하게 사라질 거야”로 정확하게 표현했다. 이 여드름은 노래 2절에서 ‘정말 바라지 않던 생각, 현실로 걸어오는 하기 싫은 것’으로 바꿔 노래해 여드름의 개념을 확장시켰다.

 

(사진 출처 및 권리 : SBS)

 

단어 하나를 극적으로 상징시킨 노래는 <편지>다. 이 노래에는 편지의 글자를 ‘꽃송이’로 비유한 부분이 나온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다. 더 이상 일체의 비유법은 등장하지 않는다. 딱 세 글자 꽃.송.이.다. 그 꽃송이를 통해 잔잔한 글씨들이 오버랩 되며 내 마음과 내 눈빛을 움직인다. 살며시 꽃송이를 전해주던 그 순간들이 떠오르며 그 사람이 그리워진다.

 

이러한 가사들의 유사한 창의성을 이진아에게서만 느꼈다는 것은 어불성설일 것이다. 우리나라에 뛰어난 작사가들은 많다. 하지만 이진아의 멜로디와 어울려 이런 언어들이 함께 극대화된 경험은 내게 처음이었다. 그녀의 비유법은 절대 과하지 않았다. 수사법을 남발하지 않았다. 노래의 포인트 적재적소에 이용하면서도 노래 전체를 끌고 가는 동력으로도 사용하는 과감함도 보여줬다.

 

그 언어가 창의적이면서도 보편성을 갖췄다. 말을 거는 시간, 꽃빛, 꽃송이, 여드름, 머릿속 냉장고, 의성어 냠냠냠은 어려운 언어들이 아니다. 받아쓰기 80점 이상이면 누구나 쓸 수 있는 쉬운 언어들이다. 그런데 여기에 어울리는 멜로디와 과하지 않은 변형의 말들이 조화가 됐다. 그리고 이런 노래들이 ‘사랑’이라는 누구나의 보편적 감성과 어울림을 이뤘다. 기억에 오래 남을 수밖에 없었다.

 

뮤지컬 작곡가의 양대 산맥으로 영국의 앤드류 로이 웨버와 미국의 스티븐 손드하임이 꼽힌다. 음악은 웨버의 멜로디가 손드하임보다 대중들에게 쉽게 들린다. 그럼에도 미국 뮤지컬 팬들이 손드하임을 결코 웨버에 뒤지지 않는 자신들의 자존심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손드하임이 웨버와 다르게 대부분 그의 곡의 작사까지 직접 썼기 때문이다. 작곡가가 작곡을 잘하는 능력은 대단한 것이다. 그런데 그 작곡에 또 대단한 가사까지 입히는 능력은 더 대단한 것이다.

 

하나 더. 그 가사가 사람들의 마음까지 오랫동안 움직일 수 있다면...더 이상의 표현은 과한 수식어가 될 것 같아 ‘가왕’ 조용필의 오래된 명언으로 대신하겠다.

 

“음악인은 자신이 부르는 노래 가사에 책임을 가져야 한다. 그 노래가 시간이 흘러도 어떤 시대, 어떤 순간, 어떤 감정으로 노래가 불릴 지에 대해 항상 고민해야 한다. 그래서 가사는 그냥 만들어서는 안 된다. 끝까지 최선을 다해 만들어야 한다.”

 

이진아의 가사에는 시간이 흘러도 어떤 시대, 어떤 순간, 어떤 감정으로 노래가 불려도 감성의 진정성이 오래도록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는 요소들을 담고 있었다.

 

다양한 음악적 스펙트럼과 합성 효과

 

(사진: 내가 좋아하는 음악적 요소들)

 

박진영은 이진아의 음악에서 설명할 수 없는 R&B 소울이 느껴져서 좋아한다고 했다. 이러한 개인적 취향은 박진영 뿐만 아니라, 이진아를 좋아하는 많은 사람들도 각각의 개인 취향으로써 다양하게 느낄 만한 요소였다.

 

나의 개인적 취향은 창의적 가사, 엔니오 모리꼬네의 선율, 유럽풍의 영화음악, 음악의 뮤지컬적 입체감, 그림으로 떠오르는 멜로디의 감성이다. 나는 이런 요소들을 이진아의 음악을 통해 느꼈다. 그래서 또 좋았다.

 

보통은 언급한 음악들의 선호 요소들은 개별 음악이나 대상 음악인을 통해 각각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이진아의 음악은 이런 요소들을 모두 담고 있었다.

 

<치어리더 쏭>의 라라라 후렴구에서는 ‘프랑스 OST의 대가’ 블라디미르 코스마의 영화음악이 떠올랐다. <냠냠냠>이나 <시간아 천천히>에서는 모리꼬네의 밝은 선율이 합쳐지기도 했다. CF송으로 많이 등장했던 모리꼬네의 ‘무숙자’나 그의 앨범 <카페 모리꼬네>등을 들어보면 이 말이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뮤지컬 음악과 흡사하다는 평가를 받은 <겨울부자>에서는 뮤지컬 <위키드(Wicked)>가 오버랩 됐다. 위키드의 작곡가는 스티븐 슈월츠다. 슈월츠는 뮤지컬 ‘가스펠’, ‘피핀’과 애니메이션 ‘포카혼타스’, ‘이집트의 왕자’ 등의 작품으로 3개의 아카데미상, 4개의 그래미상을 수상한 음악인이다. 공교롭게도 아마도 언급한 슈월츠의 작품들을 좋아하다보니 위키드의 멜로디도 <겨울부자>에 연결된 것 같다.

 

 

<위키드>가 떠오른 또 하나의 이유는 ‘렛 잇 고(Let it Go)’로 잘 알려진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의 엘사, 이디나 멘젤이 실제로 2003년에 ‘위키드’의 엘파바 역으로 토니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는 것도 추가된다.  

 

그림으로 떠오르는 문학적 감수성은 <편지>에서 체감했다. 편지를 들으면 어떤 하나의 소설, 오래전에 본 TV문학관의 아름다운 마지막 장면이 떠올랐다. 의식의 흐름을 텍스트로 표현한 김승옥의 단편 소설도 머릿속에서 연상됐다.

 

그녀의 음악 장르는 하나의 장르로 규정할 수 없었다. 가요와 재즈, OST, 뮤지컬 넘버, 심지어 개인적으로 또 좋아하는 바로크 음악까지도 넓게 아우를 수 있었다. 다양한 음악적 스펙트럼이 종합적으로 합성되며 나타난 결과로 나는 받아들였다. 모두의 예상을 깨며 경연에서 그동안 보여준 색깔과 완전히 다른 <겨울부자>를 부른 것은 중요한 하나의 변곡점이었다.

 

버릴 곡 없는 7개의 자작곡

 

(사진: 유재하 1집과 들국화 1집 앨범 자켓)

 

보통 가수의 앨범에는 작게는 7곡에서 많게는 12곡 정도까지 구성된다. 이러한 대중 가수들의 앨범에는 비슷한 공통점이 있다. 대부분 히트하는 곡이 1,2곡이다. 많아야 3,4곡이다. 자연스러운 것이다. 앨범속 모든 음악이 대중들에게 히트하며 사랑받고 기억해주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들국화 1집은 여러 차례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의 1위 자리에 오른 명반이다. 하지만 수록된 9곡 가운데 ‘행진’, ‘그것만이 내 세상’, ‘매일 그대와’, ‘세계로 가는 기차’, ‘사랑일 뿐이야’, ‘아침이 밝아올때까지’ 말고 ‘더이상 내게’, ‘축복합니다’, ‘오후만 있던 일요일’은 상대적으로 히트하지 못했고 대중들에게 생소하다. 하지만 9곡 가운데 앞 선 6곡이 히트했기에 명반이 될 수 있었다.

 

또 하나의 명반 유재하 1집은 들국화 1집 보다 대중적으로 알려진 곡은 더 많다. 자작곡 8곡 가운데 인기가 덜 했던 ‘텅 빈 오늘 밤’을 빼고 ‘지난날’, ‘우울한 편지’, ‘사랑하기 때문에’ 등 무려 나머지 7곡 중 버릴 곡이 없다. 모두 명곡이고 수없이 리메이크 됐다.

 

이진아가 경연에서 부른 7개의 자작곡을 하나의 앨범으로 만든다고 다시 가정해봤다. 나로서는 유재하 1집처럼 버릴 곡이 없었다. 모두 좋았다. 다른 사람들에게 이진아의 자작곡 7곡을 묶으면 명반이 된다고 강요 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자신의 사랑 이야기를 전체 소재로 앨범을 구성한 유재하 1집에 다시 한번 감히 비견하고 싶은 마음은 크다.

 

조금은 다른 이야기지만, 그래서 이진아가 경연 후반에 <치어리더 쏭>을 끝으로 자작곡을 부르지 않은 것은 나로서는 너무나 아쉬웠다. 7곡으로는 살짝 부족했다. 7곡 이외에 1,2곡 정도만 더 자작곡을 부르고 탈락하는 것이 앨범 구성적 관점에서, 또 자신의 색깔 면에서 좋은 그림이 됐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판타지 세상의 겨울왕자님이 사랑 이야기의 마지막 장면이라면 할 말은 없지만.

 

역설적으로 그녀는 유재하의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 산울림의 ‘회상’, GOD의 ‘길’ 등 기성곡을 편곡해서 부르면서부터 매 라운드마다 대부분 턱걸이로 상위 라운드에 올라갈 만큼 위기를 겪었다. 결국 아쉽게 Top3에서 경연을 멈춰서야 했다.

 

'천재' 이진아의 의미

 

(사진 출처 및 권리 : SBS)

 

지금까지 나는 이진아의 창의성, 특히 천재성에 관한 개념으로 글을 끌어왔다. 그런데 이 ‘천재’라는 개념은 사실 매우 위태로운 개념이다. 논란의 개념이다.

 

지극히 상대적인 개념이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천재는 누군가에게 ‘낫싱(Nothing)’이 될 수 있다. 태어난 아기가 몇 개월 만에 피아노 앞에 앉으면 “우리애가 혹시 천재 아닐까”라는 생각이 드는 게 부모라고 했다. 하지만 옆 집 아줌마는 그 아기를 전혀 천재라고 생각 안할 수 있다.

 

따라서 천재라는 개념은 위태롭기도 하지만 또 조금은 무게감을 빼고 바라봐야 할 개념이기도 하다. 동시에 또 다른 개념적 측면의 요소도 천재 안에 추가하여 살펴봐야 한다.

 

기본적으로 싱크탱커는 천재의 개념을 경외시 하지 않는다. 일단 천재의 명확한 개념이 없다. 뒤에서 언급하겠지만 하늘에서 천부적인 능력을 하사받은 전지전능한 천재의 기준이 될 수 있는 사람을 특정할 수 없다.

 

야구를 예로 들어보자. 프로야구 삼성 라이온즈의 타자 채태인은 삼성팬들에게 ‘채천재’로 통한다. 그러나 다른 구단 팬도 채태인을 천재로 부를까. 5일 방송된 K팝스타에서는 정승환의 팬이 ‘감성 천재’라는 피켓을 들어보였다. 감성이 천재라는 말은 또 어떻게 규정지을 수 있을까.

 

유재하나 김광석은 활동 당시 천재 소리를 듣지 못했다. 고인이 된 이후 천재로 조명 받았다. 요한 세바스찬 바흐의 ‘마태오 수난곡’은 클래식에서 위대한 천재의 작품이나 불멸의 명곡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이 곡은 바흐의 살아생전에 단 두 번 밖에 연주되지 않은 철저한 먼지 속 음악이었다.

 

천재가 어느 정도의 사회적 인정과 합의를 받아야 한다는 것도 넌센스다. 도대체 그 어느 정도의 ‘어느’가 어느 수준인가. 전 세계 10억 명에게 천재 소리 들으면 천재이고 9억 명에게 인정받으면 천재가 아닌가. 천재가 되는 수능이나 국가고시에 통과하면 천재라는 자격증이 부여되는 것도 아니다. 그런 천재 인증 자격증은 존재할 수도 없다.

 

그래서 천재라는 소리를 듣는 대상자는 호불호(好不好)의 대상이 된다. 누구나의 개념으로 천재일 수도,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진아가 그렇다. 싱크탱커는 지금 이진아의 천재성을 언급하지만, 이진아를 싫어하는 어떤 사람은 이진아가 천재는커녕, 인터넷에서 아래와 같은 평가를 내리기도 한다.

 

“가수가 노래를 잘해야 가수지 피아노 잘 치고 편곡 잘 하고 작곡 능력 있는거 다 좋다 이거다. 근데 노래는 완전 음치 수준 아니냐. 이진아는 진짜 하는 행동도 좀 (...(중략) 말이 심해서 자체 편집을 하겠다.) 얘 나오면 걍 채널 돌린다.”

 

(사진 출처 및 권리 : SBS)

 

이것이 현실이다. 나는 이진아의 음악뿐만 아니라 목소리도 좋아하지만 누군가는 이진아를 음치라고 생각하며 채널을 돌리는 사람도 있다. 당연한 결과이다. 어떤 천재이든, 어떤 크리에이터이든, 어떤 글을 쓰는 사람이든, 자신의 결과물을 모든 사람이 좋아해줄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무리이다. 또 욕심이다. 크리에이터는 이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세상의 천재나 크리에이터들은 그래서 이런 불호(不好)의 시각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다. 대한민국 대표 크리에이터 이어령 선생은 언제나 시대를 앞서간 새로운 생각과 글 때문에 평생을 안티 팬들의 비난과 시기, 질투에 시달렸다.

 

일찍이 역사적 크리에이터들이 고민한 지점이기도 하다. <크리에이터스>의 저자 폴 존슨은 그래서 “수준 높은 창조자가 되는 일은 쉽지 않으며, 최고의 경지에 이르면 창조자라는 것이 도리어 고통일 때가 많다. 창조는 즐겁기보다는 인내해야 하는 고통이며 차라리 창조자가 아니길 바라는 때도 많다는 게 그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이다”라고 지적했다.

 

이진아에게서 그것을 일정 부분 느낄 수 있었다. 5일 방송된 K팝스타 경연에서 자신의 생각이 담겨 있다는 가사의 노래 GOD의 ‘길’을 불렀기 때문이다.

 

이 노래에는 아래와 같은 가사가 있다.

 

“나는 왜 이 길에 서있나, 이게 정말 나의 길인가. 이 길의 끝에서 내 꿈은 이뤄질까. 자신 있게 나의 길이라고 말하고 싶고, 그렇게 믿고 돌아보지 않고 후회도 하지 않고 걷고 싶지만 아직도 나는 자신이 없네.”

 

크리에이터의 길에서 그녀가 고심하고 힘겨워 하고 있다는 것을 조심스럽게 느낄 수 있었다. 이진아가 앞으로 이겨내고 극복해야 할 부분을 스스로 노래한 것으로 나는 받아들였다.

 

이러한 천재라는 수식어가 가지는 압박을 이겨내는 방법은 천재라는 말을 듣기 위해 필요한 ‘노력’에서 나온다. 이 지점에서 천재의 개념적 정의에 추가될 요소가 있다.

 

 

 

위에서 잠시 언급한 천재의 기준이 될 수 있는 사람은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가 대표적이다. 그는 음악 분야에서 큰 이견없이 천재라는 수식어를 자신 있게 붙일 수 있는 인물이다. 모차르트가 누군가. 5살에 작곡을 시작해, 8살에 공식석상에서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연주했으며, 평생 수백 곡에 이르는 보물 같은 음악을 만들어 음악사에 위대함의 상징으로 남았다. 그 평생이라는 시간이 고작 35년이다.

 

하지만 모차르트가 어떠한 습작 과정 없이 머릿속에서 뚝딱 음악을 만들어, 악기 앞에 서면 자동판매기에서 튀어나오는 콜라처럼 위대한 음악을 들려줄 수 있는 그런 전지전능한 천재 같은 천재는 아니었다는 점을 학자들은 지적한다.

 

우리에게 많이 알려진 말콤 글래드웰도 이야기했고, <포츈>의 편집장 제프 콜빈도 주장했다. 특히 콜빈은 자신의 저서 <재능은 어떻게 단련 되는가>에서 모차르트의 천재성은 하늘에서 내려온 재능이 아닌 노력으로 얻어진 재능임을 부각한다.

 

실제로 모차르트는 3살 때부터 권위적 아버지인 레오폴트 모차르트로부터 혹독한 연습을 통해 성장했다. 그의 아버지는 습작으로 작곡한 아들의 작품을 좋게 보이게 하기 위해 곡을 고치기도 했다.

 

11살 때 모차르트가 만든 네 개의 피아노 협주곡은 사실 그가 직접 작곡한 새로운 곡이 아니었다. 다른 작곡가들의 곡을 합쳤을 뿐이다. 싱크탱커 이전에 이미 몇 백 년 전에 어린 모차르트는 음악을 짬뽕했다.

 

콜빈은 “16살 때 모차르트가 만든 피아노 협주곡 역시 요한 크리스티나안 바흐 곡의 여러 작품을 편곡한 곡이다. 이런 모차르트의 작품은 오늘날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덧붙였다.

 

실제로 대중들에게 천재라는 호칭을 받는 그의 음악들은 21살 이후의 피아노 협주곡 9번 이후부터다. 이 기간까지 모차르트에게는 18년 이라는 노력의 시간이 필요했다. 천재가 되는 데 필요한 시간이었다.

 

또 다른 천재 레오나르도 다빈치도 다르지 않았다. 그의 역작 모나리자는 천재적 역량에서 갑자기 탄생한 그림이 아니다. 다빈치는 모나리자 눈에 대한 수백 가지 눈의 습작을 가지고 있었다. 찢어진 눈, 젖은 눈, 늘어진 눈 등 뿐만 아니라 코, 입, 머리, 턱 등과 같은 얼굴 부위 각 부분에 관해서도 수백, 수천가지 습작을 모아 놓고 있었다. 얼굴 각 부위의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있었던 것이다. 수없이 많은 얼굴의 부분들을 모아온 노력의 시간이 있었기에 천재의 그림은 나올 수 있었다.

 

골프 천재라는 타이거 우즈 역시 마찬가지다. 그의 아버지 얼 우즈의 맹렬한 교육법은 그의 저서 <타이거 훈련법>을 통해 많이 소개된 적이 있다. 얼 우즈는 아들이 생후 7개월째에 골프채를 손에 쥐어줬고 훈련을 시켰다. 4살 이후에는 전문적인 코치를 붙여 맹렬하게 골프 기술을 가르쳤고, 결국 미국 아마추어 대표팀 골프 선수로 만들었다. 몇 년 뒤? 17년 이라는 노력의 시간이 필요한 뒤였다. 천재가 되는데 필요한 시간이었다. 농구 천재 마이클 조던은 말할 것도 없다. 그는 NBA에 입성해서도 정상에 서기까지 생각보다 긴 7년이 필요했다.

 

싱크탱커는 이진아가 어떠한 성장 과정을 거쳤는지는 알 수 없다. 어렸을 때 얼 우즈나 레오폴트 모차르트처럼 부모님에게, 또 어떤 음악 전문가에게 무슨 음악 교육을 받았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녀가 걸어온 시간은 충분히 추측할 수 있다. 그녀는 4살 때부터 피아노를 쳤다고 했다. 그리고 지금 그녀는 24살이다. 이 기간은 20년에 이르는 시간이다.

 

내가 이진아의 음악에서 천재성이 느껴졌다고 말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그녀가 내가 언급한 음악적 요소를 들려줄 수 있는 노력(흡사 다빈치가 모나리자의 눈, 코, 입을 모아온 노력)에 기울였을 시간, 이 20년에 있다.

 

만약 이진아가 이 20년을 허투루 보냈다면 “전 세계 음악들 가운데 진아양 음악을 듣고서 나도 정말 음악을 열심히 해야겠구나. 꿈속에서만 존재하던 여성 뮤지션의 실체를 만났다”라는 프로 음악인, 유희열의 마지막 솔직한 심사평은 절대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이진아의 팬으로서 그녀의 음악들, 그녀의 천재성과 미래의 노력들이 보호 받았으면 좋겠다. 흔들림 없이 그녀가 가는 길을 걸어가 주었으면 좋겠다.

 

(사진 출처 및 권리 : SBS)

 

그녀의 음악을 접할 수 있었던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4월 초순까지 150여 일간은 내게도 매우 특별한 시간이었다. 창의성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해줬고 음악 자체로도 감성과 감각을 일깨웠다.

 

나 역시 유희열의 심사평처럼 그 어떤 것이든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했다. 그녀가 들려준 새로운 소리 때문이었다. 앞으로 나는 크리에이터가 누구인지, 또 창의성 기법이 무엇인지 내게 물어온다면 우선적으로 이진아의 음악을 들어 보라고 말할 것이다.

 

“옛 사람의 말에 천재의 뒤에 지기(知己)의 사람이 하나만 있을 것 같으면 죽어도 한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만해 한용운이 남긴 말이다. 사전적으로 지기(知己)는 참된 친구이기도 하지만, 자기의 진심과 참된 값어치를 잘 알아주는 사람을 뜻하기도 한다.

 

천재는 그렇다. 전 세계 10억 명의 인정은 필요 없다. 단 한 명의 지기만 있다면 한용운의 말처럼 천재가 될 수 있다. 내 마음속에도 그녀는 충분히 자신있게 천재였다.

 

이제 단 한 명만은 아닐 것이다. 그녀의 가치는 이미 싱크탱커 뿐 만 아니라, 그녀를 좋아하는 수많은 팬들이 생겨나 천재로서 알아봐주는 무수한 지기들이 생겼을 것이다.

 

나는 이런 휴먼 드라마가 좋다. 자신의 앨범이 50장 밖에 팔리지 않던 이상한 목소리에 자신 없어 하던 소녀가, 세상 밖으로 환하게 나온 이 휴먼 드라마가 좋다. 이진아의 가능성을 알아보고 첫 회부터 이 휴먼 드라마의 주인공인 그녀를 남다르게 편집한 감각적인 K팝스타 제작진에게도 박수를 보내고 싶다.

 

이진아, 그리고 그녀의 음악을 오랫동안 기억할 것 같다.

 

By ThinkTank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