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SKY SPORTS(왼쪽 양상문), NBA COM 데이빗 블랙)
[공격적 스포츠 수비 시스템의 함정]
“Defense creates offense”
(수비는 공격을 창조한다.)
“The best defense is the best offense”
(가장 좋은 수비가 가장 좋은 공격이다.)
원래 이 용어들은 농구의 유명한 격언이다. 하지만 용어의 의미는 농구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스포츠에서 수비 없는 승리란 존재하지 않는다. 100점을 얻어도 101점을 내주면 지는 것이 스포츠다. 100점을 얻고 99점을 내주는 수비, 마지막 1점을 방어하는 특정 플레이가 있어야만 팀은 이길 수 있다.
그때의 수비는 절박하다. 역으로 공격적일 수 있다. 그래서 스포츠 감독들은 기본적인 방어적 수비에 종종 공세적 강렬함을 입힌다. 야구에서는 수비 시프트를 극단적으로 변형하고, 농구는 특정 선수의 움직임을 봉쇄하는 더블팀을 가한다. 모두 수비의 그물을 폭넓게 펼치거나 바닥까지 쓸어버리는 저인망 그물 작전이다.
문제는 철벽으로 보이는 그물에 구멍이 뚫리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그 한 마리 고기가 미세한 그물을 빠져나가 동료인 식인 상어를 불러와 선장을 좌초시킨다. 이런 일을 막기 위해서는 철벽 그물이 뚫리는 위험성의 시나리오를 설정하거나 플랜B를 가동하는 것이다.
철벽 그물 디펜스가 허물어진 대표적인 사례가 최근에 있었다.
(사진 출처 및 권리= SKY SPORTS, KBO, EDIT By ThinkTanker)
첫 번째 선장은 야구의 양상문 감독(53·LG트윈스)이었다. 21일 목동구장에서 열린 넥센 히어로즈와 LG트윈스 전에서 LG는 3-3으로 맞선 9회말 1사 3루의 위기에 몰렸다.
‘선장’ 양상문은 이례적인 공격적 수비를 감행했다. 외야수를 2명으로 하는 대신 좌익수 박용택이 1루수로 오면서 수비 5명이 내야에 배치되는 놀라운 수비 시프트가 펼쳐졌다. 넥센의 타자 박동원에게 내야 땅볼을 유도한 뒤 무조건 홈에서 승부를 보겠다는 복안이었다.
내야의 저인망 그물이었다. 사진에 보이듯 내야의 자유 공간은 폐쇄됐다. 효과적인 작전이었다. 웬만한 내야 땅볼은 빠져나갈 수 없었다. 타자로서 심리적 압박감을 느끼게 하는 부수적 기능도 했다.
하지만 이 그물의 약점은 고정된 그물의 라인에 있었다. 5명의 내야 라인은 좌우 그물의 폭은 넓었지만 상하의 움직임은 펼치기가 어려웠다. 누군가 한 명이 앞이나 뒤로 이동하는 순간 그물의 모양이 일그러지므로 라인 수비수의 움직임이 제한적이었기 때문이다. 만약 내야수가 앞으로 이동해야 하는 기습적인 스퀴즈번트나 중견수 방향의 외야 플라이 타구는 즉각 패배를 의미했다.
이런 위험성 시나리오를 막기 위한 플랜B는 투수가 반드시 어려운 볼 배합을 하고, 외야 플라이를 방지하기 위한 무조건 낮은 코스의 공이었다. 피치아웃이나 그물 라인을 고정시킬 수 있는 포스아웃 상황을 위해 고의사구 만루 작전도 추가될 수 있었다.
(사진 출처 및 권리= SKY SPORTS, KBO, EDIT By ThinkTanker)
그러나 양상문 감독은 LG투수 정찬헌이 너무나 솔직하게 한복판 빠른공을 초구로 던지는 것을 그냥 방치했다. 이 공은 너무 착했다. 결과는 넥센 박동원의 스퀴즈번트였다. 철벽 그물은 허무하게 뚫렸고 어선 LG는 그렇게 좌초됐다. KBO리그 통산 32번째 끝내기 스퀴즈였다. 33년 프로야구 역사에 1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장면이 철벽 그물이 코미디로 변하면서 나왔다.
(사진= NBA COM)
두 번째 선장은 농구의 데이빗 블랫(56·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 감독이었다.
클리블랜드가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에 2승 3패로 뒤진 17일 2015 NBA 파이널 6차전. 4쿼터 남은 시간 8분 17초. 계속 끌려가며 탈락의 위기에 몰린 클리블랜드는 JR 스미스가 3점포를 성공하며 73-80으로 따라붙었다. 클리블랜드 홈코트 퀴큰 론즈 아레나는 관중들의 함성으로 다시 살아났다. 잔여 시간을 고려할 때 충분히 역전이 가능한 상승세 분위기였다. 파이널 전체의 큰 승부처였다.
곧바로 이어진 클리블랜드의 수비. 골든스테이트의 스타 스테판 커리가 하프라인을 넘어오며 동료 드레이먼드 그린과 픽앤롤을 시도했다. 클리블랜드는 커리를 막던 이만 슘퍼트와 픽을 스위치 하는 티모페이 모즈코프가 픽 언더로 내려가지 않고 커리를 더블팀으로 감싸는 트랩 디펜스를 썼다.
(사진= NBA COM, 커리에게 자주 붙는 트랩 디펜스의 모습)
역대 최고의 3점 슈터이자 샷 크리에이터를 막기 위한 철벽 그물이었다. 백코트의 저인망 그물이었다. 커리는 화려한 드리블 개인기를 이용해 스스로 슛 기회를 만드는 능력이 있는 MVP이다. 블랫 감독은 커리의 이런 움직임을 봉쇄하기 위한 트랩 디펜스를 파이널 내내 자주 썼다. 효과적인 공세적 작전이었다. 실제로 시리즈 2차전까지 커리는 3점슛 성공률이 19%(4/21)로 극도로 낮았다.
하지만 이 그물의 약점은 그물의 폭에 있었다. 커리의 발을 잡는 트랩 디펜스의 그물은 강도는 강했지만 더블팀으로 생긴 그물의 공간이 한쪽으로 쏠려 물고기가 빠져나갈 위험성이 높았다. 모즈코프나 트리스탄 톰슨 등 누군가 한 명이 커리를 트랩하는 순간 외곽포가 뛰어난 골든스테이트의 다른 선수에게 3점포를 얻어맞을 위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커리가 효과적인 패싱아웃을 통해 그린, 해리슨 반스, 클레이 톰슨, 안드레 이궈달라에게 노마크 3점포 상황이 생긴다면 즉각 결정적인 실점을 의미했다.
이런 위험성 시나리오를 막기 위한 플랜B는 ‘페이크 트랩’을 섞어 써 커리를 혼란스럽게 하는 것이었다. 커리를 더블팀 하는 모션만 취하고 픽을 거는 선수가 언더로 재빨리 내려가 공격팀의 시간을 지연하면서 아군의 수비진용을 그대로 유지하는 전술이다.
실제로 페이크 트랩은 NBA가 더블팀을 갈 것처럼 수비수가 움직이다 제자리로 가는 플레이를 일리걸 디펜스로 통제하던 시절에도 많은 감독들이 썼던 전술이다. 더블팀을 갈 듯 말 듯 하는 수비수의 모션을 심판들이 매번 정확히 잡아내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규칙은 없어졌고 이제는 페이크 트랩을 모든 감독들이 다 쓸 정도로 NBA경기에서 빈번하게 나온다. 페이크 더블팀 트랩이 용이하지 않다면 수비수들이 기민하게 공간을 채우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블랫 감독은 시리즈 중반에도 커리가 픽앤롤을 시도하면 대부분 커리를 의식해 트랩 더블팀을 썼다. 골든스테이트가 커리만 3점슛이 뛰어난 팀이 아니라는 것을 망각한 것일까.
결국 움직이는 아래의 사진처럼 결정적인 승부처 2번에서 커리는 빠른 패싱아웃으로 블랫 감독의 철벽 그물을 뚫었다.
73-80에서는 이궈달라가, 75-86에서는 톰슨이 커리에 몰린 공간을 이용해 클리블랜드의 추격에 비수를 꽂는 3점포를 터뜨렸다. 당시 해설을 맡았던 제프 밴 건디는 “커리가 트랩 디펜스에 당황하지 않고 결정적인 패싱아웃으로 동료의 외곽슛을 만들었다”고 칭찬했다. 승부는 그것으로 사실상 끝이었다. 르브론 제임스는 NBA 파이널 4번째 패배를 받아들여야 했다.
(클리블랜드가 73-80의 뒤진 상황에서 허용한 3점슛)
(클리블랜드가 75-86의 뒤진 상황에서 허용한 치명적 3점슛)
양상문 감독, 데이빗 블랫 감독은 경기는 패했지만 모두 뛰어난 행보를 보여준 감독들이다. ‘선장’ 양상문은 지난해 꼴찌 팀 LG를 4강까지 올려놓은 기적의 드라마를 썼다. 블랫은 유럽농구에서 ‘올해의 감독상’만 6번을 수상한 명장 출신으로 NBA가 그야말로 모셔온 감독이다.
그럼에도 어떠한 뛰어난 감독도 자신이 내린 작전으로 주변의 비난과 패배의 쓴 잔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언급한 두 개 경기에서 가정한 플랜B는 결과론이다. 하지만 자본주의와 스포츠는 결과를 가지고 밖에 말할 수밖에 없는 냉정함의 속성을 운명적으로 가지고 있다.
블랫은 NBA파이널이 패배로 끝난 뒤 여러 가지 작전 실패에 대한 질문을 받았고 “감독을 하다보면 결정을 해야 할 때가 있다”는 말을 남겼다.
그 결정이 매번 성공적이고 ‘5인 내야시프트’와 ‘트랩 디펜스’의 철벽 그물이 매번 뚫리지 않으면 얼마나 좋을까. 애석하게도 철벽 그물에도 함정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감독이란 자리의 어려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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