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출처 및 권리= KBS)
[불확실성 시대의 그레이존]
[창의적 사고의 열쇠 ‘융통성’과 ‘유연성’]
다시 한 번 강조를 해야겠다. 재탕도 조금 해야겠다.
“예전부터 생각해왔다. 창조는 결합이다. 절대 단독개념으로는 탄생할 수 없다. A와 B가 있을때 A와 B를 합쳐 C를 만들거나 C를 A와 B사이에서 움직이며 상호작용을 만든다.”
위의 말은 <창조의 재료탱크>가 개설된 지 23일째인 지난 1월 9일 싱크탱커가 <창조의 3각 기법>이라며 의기양양하게 썼던 표현이었다. 이미지까지 만들어 설명했던 기억이 난다.
(사진 출처 및 권리=<창조의 재료탱크>)
이후 시간이 상당히 흘렀다. 하지만 이 생각에는 여전히 변함이 없다. 어떤 의미에서는 이 부족한 블로그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라고 하면 나는 당시 썼던 위 문장을 다시 쓸 것이다.
참으로 감사하게도 지난 17일 방송된 <이어령의 100년 서재> 제7회 ‘옷, 입다’ 편을 통해 나는 또 한 번 ‘창조의 3각 기법’을 소중히 해야겠다는 마음을 다지게 됐다.
7회의 방송 내용을 한 단어로 요약하자면 ‘그레이존’이었다. 이어령 선생의 사상을 이루는 핵심이기도 하다. 그동안 많은 서적을 통해 선생은 그레이존의 효용성을 주장해왔다.
회색은 사실 긍정의 색깔은 아니다. 회색하면 떠오르는 것이 회색분자, 박쥐 등의 여기저기 붙어 이익을 취하는 나쁜 이미지다. 그런데 이어령 선생은 이 회색을 창조의 색깔로 탈바꿈 시켰다.
창조의 3각 기법의 관점에서 나는 선생의 그레이존은 회색의 인자 A(검정), B(흰색), C(회색)를 자유자재로 각도를 변화하여 의미를 더하거나 증폭시켜 무수한 D, E, F의 크리에이션이 탄생할 수 있다는 창조적 기법으로 해석했다.
사실은 이어령 선생도 7회 방송에서는 약간 재탕도 하셨다. 가장 크게 다가온 단어는 ‘버려두다’였다. ‘버려두다’는 2013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세상에 완벽한 흑백은 없다고 설명하는 과정에서 나온 예시였다.
‘버린다(A)’와 ‘두 다(B)’는 원래 상반되는 뜻이다. 그런데 둘을 합친 ‘버려두다(C)’가 되면 버리는 것인지, 그냥 두어야 하는 것인지, 뜻이 불명확해지며 의미가 양쪽으로 오버랩 된다. ‘버려두다’가 형성한 이 같은 그레이존에서 다양한 창조적 아이디어가 나온다.
(사진 출처 및 권리= KBS)
또 어떤 것들이 있을까. 7회 방송과 그동안 선생이 각종 책과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설명한 것들을 정리해 보자.
우선 선생의 저서 <유쾌한 창조>에 나오는 ‘이마(A)를 짚는(C) 손(B)’이 있다. 이마를 짚는 손은 타인의 손이면서 이미 타인의 것은 아니다. 누군가가 이마를 짚어줄 때, 그 촉감과 체온을 통해서만 자기 자신의 열을 비로소 확인할 수 있다. A라는 나의 이마를 B라는 타인의 손이 닿으면서 B는 B이면서 A가 될 수 있다. A와 B가 접촉하는 C라는 촉감을 매개변수로 등장시켰다.
또한 동전의 안쪽(A), 바깥쪽(B) 그리고 세워놓고 보는 관점(C)으로도 타성을 거부했다.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 상안적(象眼的) 분류로 사물을 보아야 함을 선생을 강조했다.
이외에도 열 개(A)나 따개(B)가 같이 있는 마개(C)의 역할, 나가다(A)와 들어오다(B)가 합성된 나들이(C), 새(A)와 짐승(B)의 영역을 허무는 역박쥐(C), 디지털(A)과 아날로그(B)의 합체 디지로그(C), 이질성을 나타내는 ‘엇(A)’과 동질성을 나타내는 ‘비슷(B)’을 결합한 ‘엇비슷(C), 잘하다(A)와 못하다(B)가 합쳐진 ‘잘못하다(C)’, 열고(A) 닫는(B) 여닫이(C)가 있다.
(사진 출처 및 권리= KBS)
7회 방송에서는 의식주의 의(衣), 옷의 관점에서 한국 문화의 특별함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그레이존이 언급됐다.
서로 다른 옷감(A&B)끼리 결합시키는 바늘과 반짇고리(C), 버려진 조각 천들(A&B)을 붙여 만든 헝겊(C), 여러 사물(A&B)을 한데 묶어 감쌀 수 있는 보자기(C), 계란의 상태(A)와 크기(B)를 동시에 알 수 있는 계란 꾸러미(C), 인간(A)과 도시(B)의 선후관계를 통한 도시 계획(C)이 등장했다.
또 있었다. 사람(A)을 감싸 안는(B) 한복(C), 매고(A)도 남는(B) 옷고름(C), 오른쪽(A), 왼쪽(B)이 없는 짚신(C), 늘었다(A) 줄었다(B) 하는 고무신(C) 등 인간을 옷에 맞추는 한국문화는 반대로 옷이나 신발에 인간을 맞추는 서양 문화와 극명한 대조를 이뤘다.
여기서 오차를 허용하지 않는 서양 문화와 두루뭉술하게 감싸는 우리 문화로 논의가 확장(D)됐다. 그래서 서양의 관료문화(뷰로크라시)와 상반되는 애드혹(ad hoc·adhocracy), 즉 임시방편의 해결책이라는 즉석에서 만들어진 계획 ‘애드호크라시’(E) 사회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주장까지 연결됐다. 고무신(A)이라는 오래된 단일 개념에서 요즘 우리 사회에 자주 등장하는 애드호크라시의 예인 비상대책위원회에까지 개념이 D나 E까지로 발전된 것이다.
(사진 출처 및 권리= KBS)
지금까지 언급한 C만 다시 보자. 바늘과 고무신과 보자기의 공통점은 역시나 결합이다. C라는 창조물은 A와 B의 특성을 융합하거나 흡수할 때 탄생했다. 이처럼 이어령 선생같이 융복합 사고를 자유자재로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레이존을 수시로 만들어낼 수 있다면 얼마나 세상이 다르게 보일까.
그러나 싱크탱커 같은 범인(凡人)들도 희망을 가질 필요는 있다. 7회 방송에서 이어령 선생이 언급한 ‘융통성’과 ‘유연성’이 열쇠다. C의 개념과 그레이존은 이 두 가지 태도에서 비롯됐다.
융통성과 유연성은 사실 인간에게 자연스럽다. 반드시 규칙에 얽매이지 않도록 인간은 타성을 배격하고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것을 좋아한다. 창의성 발현에 관심을 어느 정도 기울이면 우리도 충분히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얘기다.
방송에 소개됐던 용기를 주는 이어령 선생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
“정보화 시대에는 말이야. 정확한 정보는 정보가 아니야. 다 아는 거야 그거. 부정확하니까 정보가 필요한 거지.”
(사진 출처 및 권리= KBS, Edit By <창조의 재료탱크>)
정보화 시대에는 정확한 정보는 오히려 정보가 아닐 수 있다는 선생의 탁월한 지적에 수많은 정보의 공백과 여백을 누구도 채울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볼 수 있었다. 세상에 완벽한 백색과 흑색은 없듯이, 색을 칠하기 위해서 당신도 자신 있게 붓을 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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