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MBC, KBS, Edit By ThinkTanker)
[박정현이 부르는 노래는 왜 좋게 들릴까]
노래 ‘아무말도 아무것도’를 주말 아침 9시, 춘천에서 서울로 가는 자동차 안에서 항상 강제적으로 들은 적이 있었다.
군대에서 당직 근무를 끝내고 퇴근하면서 주말에 서울로 점프를 뛰는 선배의 차안에서였다.
그 선배는 항상 출발할 때 이 노래를 틀었다. 밝은 아침, 그것도 서울행 주말 차안에 이 노래가 가당키나 한 멜로디일까. 그녀의 팬들은 모두 알겠지만 ‘아무말도 아무것도’는 매우 느린 곡이다. 거기다 너무 노래가 애절하다. 그래서 처음에는 좀 빠르고 신나는 노래를 틀어달라고 했지만 선배는 고집이 있었다. 그야말로 다른 노래에 대해 ‘아무말도’ 해서는 안됐다.
두 번째, 세 번째 같은 경험을 한 뒤였을까. 나는 중독됐다. 일직 근무를 끝낸 밝은 아침, 서울행 주말 차에는 ‘아무것도’ 더 이상 다른 노래가 필요 없었다.
심지어 춘천에서 서울까지 가는 80분 동안 차안에서 이 노래만 남자 둘이 무한 반복으로 들으면서 간 적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국방을 지키는 다 큰 남자 단 둘이 좁은 차안에서... 매우 닭살스런, 도저히 다시 하기에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군대에서 밤을 새고 아침을 맞는 다는 것은 피곤한 일이다. 그런데 이 노래의 멜로디는 나의 지치고 힘든 몸과 마음을 너무나 따뜻하게 어루만져주고 있었다. 이 멜로디에 입혀진 가수의 목소리가 가장 큰 원인이었다.
그녀는 노래를 극한으로 달콤하게 불렀다. 내 귀에 아주 바짝 대고 “피곤하게 근무 섰으니 고생했어요. 노래를 들으면서 눈을 감아요”라고 부드럽게 속삭이는 것 같았다. 나는 스르르 잠들었고 깨보면 서울이었다. 그때부터 싱크탱커는 이 가수를 좋아하게 됐다.
박정현이었다. 그때 참 안타까웠다. 당시에도 마니아들은 있었다. 하지만 가수의 역량에 비해 그녀는 전반적으로 인지도가 떨어졌고 인기가 많지 않았다. 스마트폰이 보편화 되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시간이 흘렀다. 그녀의 목소리는 변함없었다. 사람들이 알아듣고 또 알아보기 시작했고, 그 목소리를 내기 위한 노력의 시간들이 방송에서 주목받았다. 이제 박정현은 대한민국 대표 여성 보컬이 됐다.
가수가 보컬로 주목받기 위해서는 목소리의 고유성이 첫 번째, 어떤 곡도 이 목소리를 통하면 좋고 색다르게 표현된다는 ‘멀티플 인스트루먼트 (Multiple Instrument)’, 다양한 악기로서 기능하는 목소리가 두 번째라고 생각해왔다. 세 번째는 노래를 통한 연기력이다.
박정현은 이 두 번째와 세 번째 능력이 단연 최고인 가수다. 어떤 멜로디도 그녀의 성대를 통과하면 유통기한 지난 우유도 10분전에 제조한 바닐라 셰이크로 탈바꿈 시킨다. 지금까지 내가 목격한 방송에서 박정현은 거의 단 한 차례도 실망스런 무대를 보여준 적이 없다.
이러한 박정현이란 가수의 가치를 다시 한 번 느낀 것이 10일 방송된 MBC <나는가수다3>에서 였다. 그녀는 ‘80년대 명곡’의 주제로 펼쳐진 경연에서 무려 200곡의 80년대 노래를 들으며 이 가운데 하나의 노래를 선택했다고 했다. 이 선택도 놀라웠다. 윤수일의 ‘아름다워’였다.
하고 많은 80년대 명곡 200곡 가운데 왜 이 노래였을까. 윤수일의 ‘아름다워’는 물론 좋은 노래다. 몸에 좋은 우유라고 할 수 있는 곡이다. 하지만 유통기한이 너무 지난 우유다. 무려 31년 전인 1984년에 발표된 노래다.
가요톱텐에서 1위에도 오른 히트곡이긴 하지만 ‘아름다워’는 윤수일 히트곡 중에서도 상대적으로 가려져있는 곡이다. 1984년에 박정현은 미국에 있었다고 했다. 이 노래를 알지도 못했다. 하지만 200곡 가운데 유달리 이 노래가 그냥 자신의 귀에 좋게 들렸기 때문에 표현할 수 있겠다는 스스로의 직감에 자신이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멜로디를 선별하는 동물적인 청각 능력도 가수의 강점이다.
무대가 시작됐다. 아무말도 아무것도 더 이상의 수식어는 필요 없었다.
바닐라셰이크였다.
이 오래된 노래가 어떻게 이렇게 세련되게 변할 수 있을까. 돈 스파이크의 훌륭한 편곡에 박정현의 목소리가 입혀지자 31년 전 노래는 토니상이나 그래미 시상식 축하 무대의 노래로 변해버렸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청중들에게 그렇게 좋게 들리진 않은 모양이다. 경연 순위는 하위권인 6위였다. 하지만 내게는 0순위였다. 노래가 너무 좋아 주말에 몇 차례 반복해서 들었다.
그러다 박정현·윤수일이라는 좀처럼 상상하기도, 구성하기도 힘든 조합의 가상 듀엣곡을 만들게 됐다. 이런 좋은 노래는 머릿속에 멜로디를 남겨야 한다. 원곡을 듣다가 알게 됐다. 윤수일이 직접 작사 작곡한 ‘아름다워’는 시대를 앞서간 노래였던 것 같다. 기본적으로 이 노래는 31년 전 사운드가 아니었다.
그리고 박정현의 훌륭한 무대를 보다가 새삼 기억이 되살아났다.
그 시절 서울행 차안에서처럼 박정현은 또 내 귀에 달콤하게 속삭였다.
노래 제목처럼 정말로 아름다웠다.
By ThinkTan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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