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출처 및 권리= 삼성 라이온즈 월페이퍼)
[‘행복하지 않은 은메달’ 거부한 삼성 야구의 힘]
[‘반사실적 심리’ 분석을 통해 본 삼성의 우승]
그때 그녀의 표정이 기억난다.
왜 김연아는 2014 소치 동계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획득하고 웃지 않았을까.
우리의 마음속에 김연아는 늘 금메달리스트였다. 그런데 완벽에 가까운 플레이를 했음에도 금메달을 빼앗기듯이 놓쳤다. 당사자인 김연아 자신의 심정은 어땠을까. 김연아는 시상식대 위에서 결코 환하게 웃지 않았다.
당시 해외 언론은 심판의 편파 판정으로 금메달을 잃어버린 김연아에 대해 ‘불행한 은메달(Unhappy silver medal)’이라는 토픽을 붙였다. 물론 세계대회에서 은메달을 따낸 것은 결코 나쁜 성적이 아니다. 하지만 2등이다. 한 계단 위 1등을 할 수 있었는데 하지 못했다는 마음의 벽은 가슴 안에 남는다.
실제로 올림픽 등 각종 세계 대회에서 은메달리스트가 동메달리스트 보다 심리적 만족감이 떨어진다는 연구 보고는 여러 실증 사례를 통해 발표됐다. 한마디로 3등이 2등보다 더 낫다는 것이다.
1995년 처음으로 이 연구를 발표한 이들은 코넬대학의 심리학 연구팀 빅토리아 메드벡과 토마스 길로비치 등이다. 그들은 1992년 스페인 바르셀로나 올림픽 은메달 및 동메달리스트들의 만족도를 조사해 실제로 동메달리스트들이 은메달리스트들보다 더 큰 행복감을 맛본다는 것을 밝혀냈다.
분석결과 동메달리스트의 행복점수는 10점 만점에 7.1점이었지만 은메달리스트는 행복 점수가 4.8점에 불과했다. 동메달 리스트들은 노메달의 위기를 벗어나 자신의 활약으로 입상했다는 사실 자체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동메달 리스트의 만족도가 은메달 리스트의 만족도 보다 더 낫다. 시상대 위에서나 시간이 지나서도 결과는 동일하다)
이후 올림픽 시상식 현장에서 은메달과 동메달리스트들의 표정까지 연구한 결과도 발표됐다. 예상대로 김연아처럼 은메달리스트들은 웃음의 빈도가 떨어졌다. 웃어도 웃는 게 아니었다. 반면 동메달 리스트들은 동메달을 목에 걸고 자진해서 어깨동무를 하는 등 금메달리스트 못지않게 환하게 미소 짓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결과들은 우리의 직관에 반하는 일이다. 2등은 분명히 3등보다 나은 결과인데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메드백과 길로비치는 이를 ‘카운터팩츄얼 싱킹(counterfactual thinking)’ 즉 현실에서 일어난 일과 다른 상상을 하는 행위인 ‘반사실적 심리’로 설명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다시 상향식 반사실적 사고와 하향식 반사실적 사고로 구별한다.
다시 말해 은메달리스트는 ‘내가 금메달을 받을 수 있었는데...’라는 상향식 반사실적 사고를 하고 동메달리스트는 ‘메달을 못 받을 수 있었는데...’라는 하향식 반사실적 사고를 한다.
상향식 반사실적 사고는 더 좋은 결과를 놓쳤다는 생각에 후회를 남기지만 하향식 반사실적 사고는 안 좋은 상황을 피했다는 안도와 만족을 남긴다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여기에는 부작위(하지 않은 행위)와 작위(한 행위)라는 중요한 개념이 각각 녹아있다.
한마디로 상향식 반사실적 사고를 통한 ‘내가 하지 않은 행위인 부작위에 대한 후회’는 하향식 반사실적 사고를 통한 ‘내가 한 행위인 작위에 대한 후회’보다 더 크게 인간의 마음에 아쉬움을 남기며, 결과적으로 만족감을 떨어뜨리는 심리 기재를 만든다는 것이 심리학자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한 일에 대한 후회는 내가 실제로 어떤 행동을 실행했기 때문에 자기 합리화를 통해 해소가 된다. 그러나 내가 실제로 하지 못한 행동에 대한 후회는 행동 이후 어떤 결과가 나왔음을 눈으로 확인할 수 없기 때문에 자기 합리화의 여지가 줄어든다. 결국 미련이 더 크게 남는다.
용어를 조금 더 쉽게 더 풀어보자.
클럽에서 내가 어떤 여자가 마음에 들어 말을 걸까 말까 망설이고 있다. 그래서 말을 걸었다.(작위) 그런데 여자는 내가 싫다고 했다. 기분이 별로 좋지는 않았지만 일단 여자는 나를 싫어한다는 결과가 명확해졌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결과에 대해 순응하게 된다. 미련은 없다.
반면에 망설이다 말을 걸지 않았다.(부작위) 여자로부터 거부의 창피를 당하지 않아 안도는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곧바로 나보다 훨씬 아니라고 생각한 남자가 그 여자에게 말을 걸어 성공하는 장면을 보았다. 그때 후회한다. 혹시 모르니 그냥 말이라도 한 번 걸어볼걸. 시간이 지나고 집에 돌아와서도 미련이 남는다.
전자가 하향식 상향비교, 후자가 상향식 상향비교를 통해 도출되는 심리 상태다. 그래서 은메달리스트처럼 그때 하지 않은 일(금메달을 획득)을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상향식 반사실적 사고를 할 때 위에 제시된 표의 결과처럼 더 깊이 오래 후회하게 된다. 행복할 수가 없다.
(사진 출처 및 권리= 삼성 라이온즈 홈페이지)
이제 2015년 프로야구를 대입해 보자.
삼성 라이온즈는 3일 천신만고 끝에 정규시즌 1위를 확정지었다. 5년 연속 리그 우승의 위업을 이루었다. 하지만 삼성은 하마터면 소치의 김연아처럼 ‘언 해피 실버리스트(Unhappy silver medal)’가 될 뻔 했다. 무슨 이야기일까.
삼성은 9월 24일까지 7경기를 남긴 상황에서 2위 NC 다이노스에 4경기 차로 크게 앞서 있었다. 그러나 야금야금 패하며 승차를 까먹더니 승차는 1경기 차까지 줄어들었다. 1위를 확신할 수 없는 위기에 빠졌다. 자칫 한 경기라도 내주고 NC가 잔여 2경기를 모두 이기면 우승은 물거품이었다.
만약 실제로 이런 일이 벌어졌다면 33년 프로야구 역사상 특정 팀이 시즌 중 경험하는 ‘최악의 심리적 쇼킹’이 벌어질 가능성이 컸다.
싱크탱커가 ‘최악의 심리적 쇼킹’이라는 극단적 표현을 쓴 이유는 간명하다. 전 세계 야구 역사를 통해 이런 일은 없었기 때문이다. 삼성이 어떤 팀인가. 통합 4연패를 이루고 있는 현시대 최고의 강팀이다. 올해도 정규시즌 대부분 1위를 지켰다. 그런데 143경기를 1위를 하다가 마지막 144경기 째에서 1위를 놓친다? 비극도 이런 비극은 없다. 이건 다된 밥에 코를 빠트리는 것이 아니라 다된 밥에 똥을 빠트리는 것이다.
그 밥은 먹을 수가 없다. 2등으로는 결코 웃을 수가 없는 삼성의 지난 4시즌과 올해의 행보였다. 삼성이 정말로 2위로 시즌을 마무리했다고 해보자. 그때의 심리적 박탈감이 주는 후유증을 삼성 선수단은 이겨낼 수 있었을까. 이후 그들이 플레이오프를 거쳐 한국시리즈에서 우승을 한다는 그림은 별개의 문제이다. 삼성은 ‘우리가 늘 그렇듯이 정규시즌 1위를 했다면...’이라는 부작위가 주는 상향식 반사실적 비교라는 크나 큰 마음의 구렁텅이에 빠질 위험에 직면할 수 있었다.
야구적인 시선으로 봐도 삼성이 2위를 했다면 누구도 그들의 한국시리즈 5연패는 장담할 수 없다. 팀의 상징 이승엽과 올해 삼성의 히트 상품이자 1번 타자인 구자욱은 부상으로 빠졌다. 팀의 1선발인 알프레도 피가로 역시 피로 누적으로 한 달 동안 마운드에 서지 못했다. 삼성의 추격조는 올해 완전히 무너졌다. 안지만, 임창용 말고는 믿을 만한 뒷문이 없다. 한국시리즈에 직행할 때만 류중일 감독이 자랑하는 차우찬 등을 미들맨으로 돌리는 1+1 전략을 더 효과적으로 쓸 수 있다.
그래서 심리적 쇼킹을 당한 채 정상적인 전력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플레이오프에 진출한 삼성이 상대팀을 이긴다고 쉽게 말할 수 없다. 또한 플레이오프를 거쳐 한국시리즈에 오르는 팀은 시리즈가 길어질 경우 팀의 1선발이 한국시리즈 1차전에 등판하지 못하는 핸디캡을 안게 될 가능성이 높다.
삼성의 지난 통합 4연패 시즌은 이런 위험성을 모두 완치하는 한국시리즈 직행이라는 시간의 프리미엄이 있었음을 무시하지 못한다.
그 프리미엄을 삼성은 기어코 올해도 얻어냈다. 마지막까지 NC는 삼성을 압박했지만 한 발이 부족했다. 반면 삼성은 NC와 벌인 파워 게임에서 미세하게 승리했다. 한 달 만에 나와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완벽에 가까운 호투를 펼친 피가로의 활약이 결정적인 역할을 해냈다. 아직 한국시리즈 우승을 한 것은 아니지만 삼성으로서는 일단 정규시즌 우승으로 가뭄 속 단비와 같은 귀중한 생명의 시간을 얻게 됐다.
야구를 ‘멘탈 게임’이라고 하는 것은 이유가 있다. 멘탈이 플레이를 지배하지 못하는 팀은 승리할 수 없고, 우승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삼성은 야구가 주는 그 멘탈 게임에서 시즌 막판 치명적인 ‘집단 패배’를 당할 뻔 했다. 하지만 우승팀다운 저력으로 고비를 넘어서며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최악의 심리적 쇼킹인 행복하지 않은 2등이라는 ‘집단 패닉’도 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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