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MBC,KBS/ EDIT By <창조의 재료탱크> ThinkTanker)
[윤시내의 ‘열애’를 좋아하게 된 이유]
[김경호의 ‘열애’가 아쉬웠던 이유]
윤시내는 내게 전형적인 비호감 가수였다.
어렸을 때 보았던 그녀의 충격적인 비주얼 때문이었다.
긴 머리는 정돈하지 않고 풀어헤쳤다. 그 머리가 상당부분 얼굴을 가렸다. 마스크 분위기도 음울했다. 대담한 의상 역시 뭔가 피곤함을 안겨줬다.
여기에 음색은 또 어떤가.
음침한 동굴에서 내 목숨을 살려내라고 외치는 정체 모를 여자의 울음 같았다. 그 외침의 메아리 색깔이 너무 진해, 잊고 싶어도 잊을 수 없게 만드는 강렬함이 부담스러웠다.
한마디로 마녀였다. 그리고 귀신이었다. TV가 그녀가 나오면 나는 채널을 돌렸다. 무서웠다. 윤시내가 연출하는 마성의 분위기가 유년기 어린이에게는 공포로 다가왔다. 도입부의 내레이션부터 귀를 막고 싶었다. 마녀의 주문이었다. 그때 그녀가 부르는 노래가 ‘열애’였다.
그런데 참으로 묘하게도 나의 아버지는 이 ‘열애’가 애창곡이었다. 너무 멋진 노래라고 하셨다. 음악인이 아님에도 비올라, 첼로, 바이올린을 취미로 연주하시는 클래식한 아버지가 왜 이 기이하게 보이는 가수의, 기이하게 들리는 ‘열애’를 좋아하시는지 나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더구나 이 노래는 여자 노래다. 그런데 도대체 왜?
시간이 흐르고 머리가 크면서 나는 아버지를 이해하려고 했다.
어린이가 ‘열애’를 이해한다는 것 자체가 넌센스였다. 마침내 어느 날 이해가 됐다. 긴 설명이 필요 없었다. 이 노래는 명곡이었다. 부끄럽지만 십 여 년 전에 윤시내가 TV에서 열애를 부르는 모습을 보고 감동에 눈물이 핑 돌기도 했다.
그녀는 가수 이상의 예술가였다. 윤시내의 기이한 모습은 80년대 초반에 시대를 앞서간 퍼포먼스와 외모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여기에 한국에서는 절대로 나올 수 없는 음색, 누구도 복제할 수 없는 스모키 메이크업이 성대에 녹아있는 목소리, 노래하는 한음절 마다 심장의 일부분을 조금씩 태우듯이 내뱉으며 숨을 극도로 모았다가 한꺼번에 뿜어내는 창법은 감동이란 두 글자만으로는 너무 약했다.
어린시절 내게 마녀였던 그녀는 80년대 가수들에게 '남자는 조용필, 여자는 윤시내'라는 수식어가 붙는 유명 가수였다. 단언컨대, 최근 약 30여년간 내가 보아온 국내 여성 보컬 가운데 윤시내의 무대 위 카리스마와 독보적인 분위기를 뛰어넘는 여가수는 아직까지도 보지 못했다.
미디어를 통해 알려졌듯이 이런 윤시내의 ‘열애’는 깊은 사연이 있는 노래다. 노래를 작사한 배경모 PD는 젊은 시절 암세포에 시달려야 했다. 그의 아내는 투병하다 삶을 등진 남편의 곁을 지키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랑의 주인공이 되는 아픔을 겪었다.
‘열애’는 이런 배경모 PD의 아내를 향한 사랑에 대한 애끊는 마음의 표현이자, 사랑의 실화였다. 그는 윤시내의 녹음 리허설 도중에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다. 이후 당대 최고의 작곡가로 활동하던 최종혁이 가사에 멜로디를 입혔다.
열애(熱愛)는 이런 노래다. 가사처럼 열렬하게 사랑함을, 열렬하게 사랑하고 싶었는데 이제 그럴 수 없음을, 가슴을 후벼 파듯이 완전 연소하여 태워 부르는 노래다. 윤시내는 이 노래를 그렇게 표현했고 ‘열애’는 한국대중가요 역사에 절대 빼놓을 수 없는 곡이 됐다. 이제 방송 출연이 드문 그녀가 가끔씩 TV에 나와 노래하는 장면은 소중한 예술품을 소장하듯 찾아서 볼 정도가 됐다.
지난 17일 방송된 <나는 가수다3>에서 김경호가 이 노래를 불렀다. 엄청난 기대가 됐다. 나의 아버지 이후 처음으로 남자가 표현하는 ‘열애’였다. 대한민국 대표 로커가 '열애'를 시도하는 사실만으로 흥분이 됐다. 노래의 사연으로 볼때 열애는 남자가 부르는 것이 더 맞다.
하지만, 김경호 팬들에게는 대단히 미안한 얘기지만 (사실은 싱크탱커도 김경호를 너무 좋아한다), 나는 별로였다.
그는 다르게 해석했다. 담백하게 불렀다. 드럼, 베이스, 기타가 빠진 사운드 역시 담백하다 못해 조용했다. 그래서 목소리가 너무나 깨끗하게 들렸다. 마치 전성기 시절 김경호의 칼날 같은 고음 미성이 들리는 것 같아 반갑기도 했다. 하지만 귀에 좋게 들리지 않았다. 목소리만으로 승부했지만 가슴을 움직이지 않았다.
물론 <나는 가수다>가 <나는 성대다>가 되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가수의 곡 해석은 가수에게 달린 문제다. 그래서 잘못했다와 잘했다는 차원이 아니다. 열애가 왜 꼭 열애여야 하나. 담담하게 사랑하는 담애(淡愛)도 역설적으로 그것이 열애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김경호의 해석은 내게 그렇게 들렸다. 사랑의 방식은 사랑의 당사자만이 아는 것이다. 여기에 가치판단을 개입하는 것은 사실 어불성설이다. 청중들의 반응과 이후 네티즌들의 호평, 경쟁을 벌였던 소찬휘의 극찬까지 모두 김경호의 열애는 호불호(好不好)가 없었다. 모두 ‘호(好)’였다.
하지만 나는 99명이 ‘호(好)’를 말해도 이 무대만큼은 1명의 불호(不好)가 굳이 되고 싶었다.
열애의 고음에서 터져 나오는 김경호의 거친 퍼포먼스를 보고 싶었던 것일까. 태워도 태워도 재가 되지 않는 남자의 강한 사랑 표현을 기대해서 그랬을까. 아니면 재가 되지 않았어야 했는데 재가 너무 쉽게 돼서 그랬던 것일까. 또는 뭔가 윤시내의 강렬한 무대처럼 유사한 해석을 기대해서 그랬을까. 허를 찌른 김경호의 다른 창의석 해석이 새로워서 좋기보단 오히려 불편을 느껴서일까.
(아쉬운 마음에 윤시내 김경호의 가상듀엣을 만들었다. 둘의 목소리는 너무나 잘 어울렸다.
혹시나 윤시내를 모르는 10대 20대 분들은 꼭 윤시내의 '열애' 원곡을 들어보시기를 권한다.)
정확한 이유는 말할 수 없지만 이것은 확실하다.
나는 김경호의 ‘열애’에 감동받고 싶었다. 하지만 그 소리에 감동받지 못했다.
By ThinkTan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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