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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물 & 창조적 글쓰기

2015 프로야구, 굳어져 가는 '불혹의 시스템'

 

(사진 출처: 삼성 라이온즈, NC 다이노스, SK 와이번스, LG 트윈스, 한화 이글스, KIA 타이거즈, 롯데 자이언츠)

 

 

[‘13인의 마흔 살 전사들이 프로야구 시스템에 던지는 의미]

 

사회적으로 어떤 독특한 현상이 하나 나타났을 때, 일시적이거나 단발성이면 주목을 받을지언정 사회 시스템으로 볼 수는 없다.

 

프로야구 원년이었던 1982년의 백인천이 대표적이다. 그는 당시 412리를 쳤다. 이후 프로야구에 4할 타자는 나오지 않았다. 일찍이 4할 타자의 멸종을 과학의 연구 주제로 끌어올린 사람은 세계적인 진화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다.

 

그는 메이저리그 야구 통계를 통해 리그의 평균 타율은 장기적으로 26푼에서 안정되며, 최상위 타자와 최하위 타자의 타율 차이가 갈수록 줄어든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굴드의 관점에서 백인천의 타율은 통계 값의 최상위 값이었다. 그런데 1982백인천의 나이도 최상위 값이었다. 20대 후반만 접어들어도 이미 노장 소리를 들었던 시절에 그는 당시 한국 나이로 마흔 살이었다.

 

이후 한국 프로야구에는 15여년이 흐른 1990년대 후반 투수 송진우(KBS N 해설가)가 나타나기 전까지 마흔 살 선수의 큰 활약이 두드러지지 않았다. 송진우는 43세까지 공을 던졌으며 2009년 은퇴했다. 그는 투수 통계 값의 최상위 값이었다. 하지만 백인천과 송진우 같은 선수는 흔치 않았다. 전반적으로 일시적이거나 단발성 사건이었다.

 

외국인 용병 제도를 도입한 3년째인 2000, 프로야구에는 매우 주목할 만한 선수 한명이 등장했다. 훌리오 프랑코였다. 그는 이름값에서도 나이 값에서도 최고였다. 배트를 투수를 향해 극단적으로 구부리는 폼으로 유명했던 프랑코는 메이저리그 타격왕 출신이었으며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 당시 마흔 살이었다. (알고 보니 실제는 1958년 생으로 43세였고 이마저도 정확하지 않다는 말이 많았다.)

 

그는 시즌 초반 할아버지 선수로 취급 받았다. 하지만 모두의 예상을 깨고 놀라운 활약( 0.327. 22홈런, 110타점)을 보여줬다. 프랑코가 주목받았던 이유는 마흔 살 야구 선수의 성적을 뛰어넘은 철저한 자기 관리였다. 그는 웨이트 트레이닝, 식이요법, 프로로서의 마음가짐 등 삼성 선수단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프랑코 현상은 매우 독특한 사건으로 그쳤다.

 

프랑코가 한국 야구를 떠나고 다시 15년여가 흘렀다. 사회는 발전했고 한국인의 평균 수명도 늘어났다. 지난 2월 싱크탱커는 불혹을 맞은 이승엽의 활약을 주목한다는 포스팅을 한 적이 있다.

 

2015/02/25 '불혹의 시대', 40세 이승엽을 주목하는 이유

당시 썼던 글의 통계를 다시 인용해보자.

 

1982년 이후 2015년에 이른 현재 33년 동안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15.2, 프로야구 선수의 평균 나이는 1.5세 증가했다. 선수들의 체격 또한 비약적으로 커졌다. 33년 동안 몸무게는 11.6kg (73.9kg85.5kg) 무거워졌고 신장도 6.2cm(176.5cm182.7cm)나 커졌다.

 

 

 

그때의 글을 쓰고 3개월여가 지났고 마흔 살이승엽은 기대대로 좋은 활약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불혹의 활약이 이승엽만으로 그쳤다면 이승엽 역시 과거의 백인천이나 송진우 같은 단발성 사건으로 그쳤을 것이다.

 

2015년 프로야구의 마흔 살 이승엽은 통계 값의 최상위 값이 아니다. 여러 명의 한국인 프랑코가 생겨난 것이다. 현재 프로야구에는 마흔 살이 넘은 ‘13인의 불혹의 전사들이 활동하고 있다.

 

이승엽, 임창용, 진갑용(이상 삼성), 박정진, 권용관, 조인성(이상 한화), 이병규(LG), 홍성흔(두산), 손민한, 이호준(이상 NC), 임재철(롯데), 박진만(SK), 최영필(KIA)이 주인공이다. 마흔 살에는 한 살 부족하지만 송신영(넥센)과 박명환(NC)도 나이를 잊은 선수들이다.

 

이들의 현재 팀 내 역할을 생각해보자. 대부분 팀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팬 서비스 차원에서 그냥 경기에 나오는 것이 아니다.

 

임창용은 여전히 140km 후반의 직구를 던지는 통합 4연패 팀의 마무리이다. 진갑용은 홈런을 칠 때마다 최고령 홈런 기록을 바꾸고 있다. 박정진은 한화의 필수적인 필승조이며, 권용관은 마흔 살 유격수도 가능함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17일 박명환의 투구는 매우 인상적이었다. 거의 전성기 시절 투구를 보여준 완급 조절에 삼성 타자들은 전혀 힘을 쓰지 못했다. 무려 1,789일 만의 선발승이었다.

 

1992년 부산고등법원은 전 롯데 자이언츠 투수였던 조용철이 한보종합건설과 부산시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우리나라 프로야구 투수는 만 35세까지 종사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23년이 넘게 흐른 현재, 오늘날 프로야구 선수의 정년이라는 35세라는 나이는 마흔 살 이후로 이동되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다. 이 판결 이후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72.2세에서 81.9세로 거의 10년 늘었다. 사회 현상이 이 정도면 그것은 독특한 단발성 이벤트가 아니다. 굳어져 가는 사회 시스템이다.

 

불혹의 베이스볼 시스템은 한국에만 해당 되는 현상이 아니다. 메이저리그도 매우 비슷한 시스템적 변이를 겪고 있다.

 

새철 페이지가 1965년 보스턴 레드삭스를 상대할 당시의 나이는 59세였다. 메이저리그 최고령 기록이며 아직까지 깨지지 않았다. 이후 메이저리그에서 40살이 넘은 선수의 활약은 단발성이었다. 1980년 미니 미노소 (50), 2007년 훌리오 프랑코(49), 2010년 랜디 존슨(47), 2012년 제이미 모이어(49) 등이 대표적이다.

 

올 시즌 메이저리그는 이들의 기록을 뛰어넘을 수 있는 여러 명의 마흔 살 이상의 선수들이 주목을 끌고 있다.

 

바톨로 콜론(뉴욕 메츠·41), 스즈키 이치로(마이애미 말린스·41), R.A. 디키(토론토 블루제이스·40), 라트로이 호킨스(콜로라도 로키스·42) 등이 그 얼굴이다. 특히 호킨스는 올 시즌이 끝나고 은퇴를 선언했지만 최근 덴버 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내가 건강하기만 한다면 영원히 던질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굴드는 자신의 저서 <플라밍고의 미소>에서 4할 타자가 사라진 것은 경기 환경 탓이 아니라 야구라는 '시스템의 진화적 안정화'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야구 선수들의 고령화 활동 현상 역시 야구의 연령 시스템이 진화하고 있음을 대변한다.

 

아직 프로야구 불혹의 시스템이 안정화됐다고 말하기에는 이르다. 그러나 불혹에 시스템이라는 말을 붙일 수 있을 정도로 13인의 선수들은 '평균 수명 100세 시대'에 의미 있는 활약을 보여주고 있다.

 

이제 프로야구 선수에게 불혹의 활약은 더 이상 회춘의 나이가 아니다. 그라운드의 봄을 여전히 즐길 수 있는 나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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