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전 9회초 1사 만루에서 김상수의 범타는 시리즈의 결정적인 승부처였다. 사진 출처 및 권리= SBS & KBO)
[삼성 야구의 우승 시스템을 고장 낸 도박사건]
[우승의 가치는 왜 소중한가]
역사는 때론 예기치 않은 하나의 사건이 결과를 근본적으로 바꾸기도 한다.
어느 학자는 “독일 통일은 동독 정부의 의도와는 상관없는 무비자 동독 주민들의 서독여행을 허가한다는 국경 주변의 한 장의 쪽지가 결정적인 도화선이 됐다”고 말한다.
야구의 역사도 그렇다. 송진우(당시 빙그레)가 1991년 해태와의 한국시리즈 3차전에서 최초로 이룩할 뻔 했던 퍼펙트게임은 내야수가 잡을 수 있었던 파울 플라이를 놓치면서부터 무산됐다. 이후 24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한국 프로야구의 역사에 퍼펙트게임은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결과를 놓고 역사의 논리를 바라보면 매우 어색해진다. 당시 상대팀이었던 해태의 입장에서 “송진우가 퍼펙트게임을 못하기 위해서는 잡을 수 있는 파울플라이를 먼저 놓쳐야 한다”는 이상한 해석이 된다. 하지만 역사는 그 하나의 예기치 않은 사건을 원인으로 기억하게 됐다.
그래서 독일의 비평가 고트홀트 E. 레싱은 “역사는 논리적 연관성을 상실한 우연한 사건들의 집합체”라고 말하기도 했다.
만약 시계를 대략 시즌 초반인 올 4월 초로 돌려 “두산이 우승하기 위해서는 삼성의 주축선수들이 마카오에서 도박을 해야 한다”고 누군가가 주장했다면 그는 정신이상자 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그 시기에 <삼성 선수의 도박이라는 A>라는 요소와 <두산의 우승이라는 B>를 놓고 “A이면 B이다”는 레싱이 말한 대로 논리적 연관성을 상실한 것이다. 우리 팀이 승리하기 위해 상대팀이 삼진당하는 것이 아닌, 도박을 하는 것은 야구의 논리, 그라운드의 논리와 맞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 한국시리즈가 끝난 현재로 돌아와 “A이면 B이다”를 다시 바라보자. 놀랍게도 역사가 됐다. 논리적 연관성의 외관을 갖추게 됐다. 최소한 4월초의 그 누군가는 정신이상자는 면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A가 B의 유일한 이유는 아니다. 두산은 A가 없었어도 우승을 차지했을 만큼 훌륭한 경기력을 보여줬다. 그러나 삼성이 무너진 것이 A가 많은 영향을 준 ‘예기치 않은 사건’이었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삼성에게 도박 사건은 분명 예기치 않은 사건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그 하나의 사건은 4년간 이어진 철옹성 같았던 삼성 왕조가 붕괴되는 역사의 큰 흐름에 기폭제가 됐다. 삼성에게 도박 사건은 야구가 아닌, 야구 외적의 도덕적 해이로 스스로를 무너뜨렸다는 점에서도 뼈아프다.
(사진 출처 및 권리= YTN)
야구적으로 삼성은 주축투수 3명(야구팬 모두가 아는데도 삼성이 끝까지 공식적으로 실명을 밝히지 않았음으로 각각 ‘윤,안,임’으로 통칭하겠다)이 빠진 빈자리를 메우지 못했다. 앞과 뒤 모두에서 삼성의 견고했던 우승 시스템이 고장 난 것이다.
류중일 감독은 지난 2년간 1차전 한국시리즈 1선발이었던 ‘윤’이 없자 ‘앞’을 놓는 전략에서 흔들렸다. 만약 ‘윤’이 1차전과 4차전에서 많은 이닝을 버티며 피가로보다 훨씬 잘 던지거나 이로인해 차우찬의 활용폭이 더 넓어졌다면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시리즈 흐름은 또 어떻게 달라졌을까.
필승조 ‘안’과 ‘임’이 없자 6회 이후 ‘뒤’를 보는 시각에도 문제가 생겼다. 차우찬 한 명에 기대는 얇은 불펜을 의식한 탓인지 공격에서 많은 점수를 얻기 위해 빅볼에 치중하는 작전이 나왔다. 작전 타이밍은 여유가 없었고, 볼카운트 2B 0S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피치아웃을 하기도 했다.
헐거워진 투수진은 공격까지 연쇄 효과가 미쳤다. 투수진이 약해졌으므로 뭔가 장타를 치거나 다득점을 해야 한다는 조바심이었을까. 삼성 타자들은 팀 타율 3할이라는 시즌 때와는 다르게 나쁜 공에 배트가 자주 나갔고 불리한 볼카운트에서 어려운 타격을 했다. 타이밍은 늦었고 스위트 스팟은 벗어났다. 멘도사 라인의 타자들 같았다. 중심타선의 연쇄 부진으로 ‘삼성의 심장’ 이승엽이 3차전 선발 출장을 하지 못한 장면은 그 자체로 상징적이었다.
컨택 히터들도 마찬가지였다. 승부의 분수령이 된 4차전 9회초 1사 만루의 역전 기회에서 9번 김상수는 경기 내내 자신을 괴롭힌 높은 코스의 공에 줄곧 대처하지 못하며 범타로 끝났다. 이어진 1번 구자욱 역시 1구째 높은 볼과 똑같은 코스에 들어온 존을 벗어난 2구째 높은 유인구를 건드려 내야 땅볼에 그쳤다.
(케미스트리 없는 우승팀은 존재하지 않는다. 사진 출처 및 권리= SI)
(두산은 우승의 자격을 시리즈 내내 넘치도록 보여줬다. 유희관 역시 벗을 이유가 충분했다.
사진 출처 및 권리= SOTV & KBO)
(삼성이 이번 시리즈에서 가장 잘 한 것은 시상식에서 자리를 뜨지 않고
도열해 두산을 축하해준 것이었다. 사진 출처 및 권리=SPOTV & KBO)
야구 외적으로 가장 크게 타격 받은 부분은 ‘케미스트리’일 것이다. 선수단 개인의 역량이 하나로 모여 팀 전체에 발생하는 긍정적 화학작용은 야구를 떠나 모든 우승하는 전 세계 스포츠팀의 공통 요소다. 사회과학자들은 행복도 전염되고 불행도 전염된다고 했다. 선수단 상호간 행동이 거울 뉴런의 형태로 서로에게 복사된다.
하지만 삼성은 시리즈 시작부터 긍정적 화학작용의 발화점에 찬물을 끼얹었다. 소속팀 야구단 사장이 공개사과를 하며 대중 앞에 고개를 숙이는 장면을 봤다. 1년 내내 같이하며 5년 연속 정규 시즌 1위에 공헌한 3명의 선수가 좋지 않은 사건에 연루돼 뉴스에 크게 보도되고 엔트리에서 제외되는 것을 목격했다.
자동차 바퀴 빠져나가듯 동력은 추진력을 잃어버렸다. 선수단을 하나로 만드는 응집력에 악영향을 미쳤음을 추측케 한다. 이런 모습으로 삼성이 우승하기는 힘겨웠다.
야구팬들에게 프로야구는 지난 4년간 “나머지 팀들이 치고받고 싸우다 결국 마지막에 삼성이 우승하는 것”이라는 우스개 댓글이 성행하는 리그였다. 삼성은 그만큼 2010년대 타 팀들을 압도하며 시대를 장악했다. 2000년대 초반부터 고려하면 밥 먹듯이 우승했다.
(사진 출처 및 권리= KBO)
그러나 우승이란 얼마나 힘든 것인가. 야구팀 삼성의 33년 역사를 돌아보면 그들은 80-90년대 줄곧 우승 앞에서 돌아서는 패배자였다. 1982년 창단 이후 무려 20년 동안 우승하지 못했다. 김유동의 만루 홈런에 울었고 최동원의 투혼에 조연으로 돌아섰으며, 선동열과 해태라는 벽에 가로막혔다. 모래알 전력, 노력하지 않는 2등, 돈으로 우승을 산다는 비난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삼성이 이런 질곡을 털어버리고 왕조를 구축한 것은 2000년대 들어서부터다. 그러나 자주 우승하면서부터 상대적으로 미디어로부터 우승의 가치는 점점 무던하게 변해갔다.
하지만 스포츠에서 그 어떤 우승도 기다림의 가치가 없는 우승이란 없다. 2015년 승자 두산은 우승하기까지 14년이 걸렸다. 롯데는 1992년 이후 23년 동안 우승이란 단어를 잃어버렸다. 메이저리그 보스턴 레드삭스는 밤비노의 저주를 푸는데 86년이 걸렸으며 시카고 컵스는 100년 넘게 월드시리즈 우승이 없다.
올해 얻은 우승을, 또 우승 할 수 있는 기회를 언제 어떻게 팬들에게 안겨 줄지는 아무도 모른다. 삼성이 80-90년대처럼 20년 동안 우승하지 못하는 상황이 다시 생기지 않는다고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그래서 야구를 좋아하는, 또 어떤 팀을 응원하는 팬들과 선수 자신의 인생에 우승은 살아생전에 다시 찾아오지 못할 소중한 순간이 될 수 있다.
2015년 한국시리즈는 이런 우승의 가치를 대하는 간절함과 실력에서 두 팀의 차이를 느낄 수 있었다. 두산은 준플레이오프부터 많은 체력을 소모하며 힘들게 한국시리즈에 올라왔다. 주요 선수들의 크고 작은 부상 등 전력적인 열세가 있었지만, 준플레이오프 4차전 넥센전 2-9의 기적 같은 역전승을 발판으로 어려움을 딛고 일어서며 마침내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사진 출처 및 권리= KBS)
반면 디펜딩 챔피언은 우승의 가치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팬들을 도박을 통해 저버렸다. 도덕 불감증에 빠진 선수, 그런 선수를 관리하지 못한 프런트까지, 시작부터 시스템에 균열이 생기며 완벽한 몸을 만들지 못했다. 그 상징적인 완벽하지 못한 몸이 정신까지 지배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한 가지는 확실하다.
스포츠 세계에서 스스로 완벽한 몸을 만들지 못한 것은 그것도 실력이라는 것, 그런 몸으로 또 링에서 무너지는 것, 그래서 역사에 영원한 승리자는 없다는 평범한 교훈을 알려주는 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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