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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물 & 창조적 글쓰기

결코 잊을 수 없는 이름...존 스탁스

 

 

그 때 그 얼굴과 표정이 기억난다.

 

세상의 그 어떤 남자보다 가장 괴로웠던 그 얼굴이.

 

1994NBA파이널 7차전에서 그는 11개의 3점슛을 던져 단 한 개도 성공하지 못했다.

NBA 최초로 200개 이상의 3점슛을 기록했던 그의 통산 3점슛 성공률은 34%.

6점 차로 패했던 그 날 경기에서 27%의 성공률인 3점슛 11개 중 3개만, 아니 18%2개만 넣었어도 그와 뉴욕 닉스는 챔피언이 될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패배자로 돌아섰고 마지막 파이널 무대가 됐다. 그의 팬으로 그는 내게 한동안 애증의 대상이었다.

 

이후 13년이 흐른 2007년 어느 날.

NBA 매드니스 행사로 방한했던 그를 본 적이 있다.

 

정말 물어보고 싶었다. “왜 그랬냐고...”

 

그런데 이상했다. 그를 가까이서 보니, 원망의 마음은 바닐라맛 소프트 아이스크림처럼

달콤하게 녹아들었다. 그리고 나는 다시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가 그의 팬이 됐다.

 

내가 당시 그의 팬이 된 이유는 딱 하나였다. 그의 불같은 이미지 때문이었다.

물론 투쟁적인 이미지의 선수들은 많다. 그러나 그에게서는 다른 선수와는 다른,

복제할 수 없는 독특함이 있었다. 당장 코트에서 5초 뒤 무언가라도 하지 않으면

당장 죽을 것 같은, 응원하고 싶은 절박함좋았다.

그는 골리앗을 상대하는 절벽위의 다윗이자,

강자에 꿇리지 않고 달려드는 침 흘리는 언더독이었다.

 

그래서였을까. 90년대 초반 마이클 조던은 비록 한때 였지만, 그를 나의 라이벌(정확하게는 나의 라이벌 중 한 명!)”이라 인정했다. 그때 조던과 그의 매치업은 최고의 볼거리였다.

한 명은 농구의 신, 또 한 명은 하부리그를 전전했던 마이너 중 마이너.

네임밸류에서 비교도 안되는 이 말도 안되는 게임이 나는 무척 기다려졌다.

 

그는 잘 싸웠다. 50점 이상 조던에게 실점하기도 했지만 당혹스러울 정도로 조던을 괴롭히기도 했다. 훗날 그는 멋진 디펜스 격언을 남겼다. “나는 그 당시 조던을 정지시키기 보다는 지연시키는데 중점을 두고 수비했다.” 디펜스는 Stop이 아닌 Delay’이라는 스탁스의 시각은 현대농구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1993년 플레이오프에서 마이클 조던과 호레이스 그랜트를 앞에 두고 터져 나온

원핸드 왼손 슬램덩크는 그의 커리어 덩크일 것이다.

새벽에 AFKN으로 경기를 보다가 나는 그의 이 덩크의 흥분감에 빠져

아침까지 뜬 눈으로 밤을 보내기도 했다. 요즘도 가끔 NBA를 보지만, 또 여러 선수들이 훌륭한 덩크를 선보이지만, 가슴속 한 장의 필름으로 남아있는 덩크는 사진속 그의 덩크다.

 

한해가 가고 있다. 12월의 밤에 이제는 50대 아저씨가 된 그를 떠올린 것이 뜬금없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시간을 되돌아보며 가끔씩 열정이 사라졌다고 느낄 때, 힘이 부족하다고 여겨질 때, 도전하고 싶은 모종의 순간이 올 때 그를 떠올린다.

 

농구라는 스포츠가 뿜어주는 용기가 무엇인지 보여준...그래도 내게는 영원한 승리자.

 

... ...

 

그의 이름은 존 스탁스다.

 

 

 

By ThinkTanker (creationthinktank.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