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출처 및 권리: MBC)
[소녀 가수가 이겨낸 20년의 시간 공백]
[<나는 가수다>와 <불후의 명곡>의 결정적인 차이]
[너라면 좋겠어, 붉은 노을, 아름다운 강산, 누구없소를 가상 메들리로 만든 이유]
“축하합니다. 양파 이은진!”
가왕으로 호명되는 순간 그녀는 흐르는 눈물을 참지 못했다.
지난 24일 방송된 MBC <나는 가수다> 시즌3 가왕전에서 가수 양파가 ‘가왕’이 됐다.
가왕은 가수의 왕이다. 양파에게 붙은 ‘가수의 왕’이라는 이 타이틀이 ‘가왕’ 조용필에 어울릴법한 ‘가수의 왕’과 유사한 아우라를 주는 ‘언어’ 가왕인지를 논하는 것은 무의미했다. 다만 언어의 중량감은 무의미했을 지라도 ‘가왕’이라는 언어가 붙은 과정과 시간의 흐름은 유의미했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그 사람에 대한 인상과 기억도 쉽게 변하지 않는다. 17세의 소녀는 어느덧 30대 중반을 넘어서는 여자가 됐지만, 연약해 보이는 보호 본능, 아니 보호 의무를 일으키는 가녀리고 부드러운 백색의 순수함은 그대로였다.
양파라는 이름과 이미지는 많은 사람들에게 추억을 일으킨다.
20살로 대표되는 X세대 열풍이 불던 1990년대 중반, 그녀는 20살도 안된 17세의 나이에 독특한 예명으로 나타났다. 1996년 ‘애송이의 사랑’을 발표해 많은 사랑을 받았다. 1집 <Yangpa>는 밀리언셀러에 육박하는 82만 장이 팔렸다. 참고로 음악 소비 패턴이 변했지만, 올해 1분기 발표된 음반 가운데 판매 40만 장을 넘긴 앨범은 엑소(EXO)의 정규 2집이 유일하다.
싱크탱커의 기억으론 양파는 노래도 잘했지만, 공부 역시 매우 잘했던 학생 가수로 떠오른다. 당시 기사를 찾아보니 고등학교 2학년때까지 전교 1~2등을 다투었던 우등생이었다. 원조 엄친딸이었다. 그러나 방송활동 이후 반에서 10등 안팎의 성적으로 떨어졌다. (1997. 8.7 경향신문)
이후 방송 활동을 중단하고 상당부분 성적을 회복했다고 알려졌다. 그러나 1998년 대입수능시험에서 불운을 겪었다. 시험 도중 갑작스런 위경련으로 쓰러져 병원으로 후송됐다. 당시 매니저 위명희씨는 “최근 모의고사에서 전교 1등을 차지하는 등 공부를 잘했는데 이런 일을 당해 안타깝다”고 말했다. (1997. 11.20 한겨레)
이후 소녀의 시간은 20세기에 멈췄다. 그녀의 가수 인생은 노래 제목처럼 애송이의 사랑으로 머물렀다. 몇 개의 히트곡이 있긴 했지만 예전처럼 주목받지 못했다. 그리고 소속사와의 소송과 공중분해 등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2000년 이후 발표한 정규앨범 <Perfume>, <The windows of my soul> 등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녀는 "세상을 몰랐고 처세에 무능했다"고 말했다. 소녀는 점점 잊혀졌다.
그 시기에 우연히 방송에서 들었던 양파의 노래가 <너라면 좋겠어> 였다. TV에서 오랜만에 본 그녀는 너무 열심히 노래를 불렀던 모습이 눈에 띄었다.
(사진 출처 및 권리: KBS)
나 지금 그댈 만나러 갑니다
추억들이 반가워 자꾸 눈물이 흘러
사는게 참 힘들때 가끔 울다지쳐 외로울때
내 눈물 닦아줄 안아줄 사람이 너라면 좋겠어
양파가 직접 쓴 가사의 노랫말은 추억을 노래하고 있었다. 옛 사랑과의 재회로 표현한 가사에는 예전에 받았던 팬들의 애정을 그리워한다는 의미가 “너라면”이라고 녹아있는 듯 했다.
그런데 노래(작곡 김도훈)가 참 좋았다. 이 노래가 대중들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은 것이 안타까웠다. 몇 번을 반복해서 듣게 할 정도로 멜로디와 가사가 조화가 잘 이루어졌다. 특히 미디엄 템포의 비교적 빠르고 밝은 노래가 그녀의 음색에 잘 어울린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애송이의 사랑’에서 느낀 느린 애절한 노래만이 양파의 이미지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씩 얼굴을 보이더니 그녀는 나는 가수다3에 합류했다. 방송 첫 인터뷰에서 양파는 스스로를 “그동안 활동을 많이 못해 20년 차 가수가 무색하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오랜만에 다시 많은 사람들 앞에 선 그녀는 긴장하는 모습이 화면에 비춰졌다.
나가수의 무대는 많은 가수들에게 긴장감을 준다. 편집도 가수들이 긴장한다는 부분을 부각시킨다. 매우 효과적인 편집 기술이다. 나가수가 대중이나 미디어에게 과거의 주목도에 미치지 못하고 시청률도 부진했지만 여전히 내게 강점이 있었던 이유는 이 ‘긴장의 코드’를 버리지 않았다는 점에 있다.
(사진 출처 및 권리: MBC)
나가수에 등장하는 가수들은 아마추어 가수가 아니다. 프로가수다. 그런데 10년 넘게 무대에서 노래한 가수들도 특정 무대를 앞두고 호흡이 빨라지고 손이 떨리며 “긴장을 한다”고 고백하는 것은 가수에게 중압감을 준다는 측면을 더해, 그 중압감에 실린 노래의 의미, 무대의 가치를 보다 집중도 있게 높여주는 역할을 한다.
만약 나가수가 비슷한 시기에 인기를 모은 KBS <불후의 명곡>처럼 무게감을 빼고 예능 요소에 더 중점을 두고 시즌3를 제작하고 편집했다면 나가수의 정체성은 사라졌을 것이다. 하지만 나가수의 작가나 PD가 자존심 있게 이 흐름을 따라가지 않았다는 것은 박수를 받아야 한다.
<불후의 명곡>도 무대를 앞두고 가수들이 긴장을 한다. 그러나 나가수처럼 ‘탈락’은 없다. 그래서 긴장감이 나가수 만큼의 중량감은 덜하다. 베테랑 가수 인순이 조차 몹시 긴장하는 모습을 나가수에서 본 적이 있다. 탈락은 물론 예능요소다. 그러나 프로 가수들끼리 노래로서 서로를 견주어 비교하고 결과에 따라 탈락해 차후 방송 출연이 없다는 시스템은 가수들에게 상당 부분 스트레스로 작용할 수 있다.
단적인 예가 가수가 가수를 지목하는 방식이다. 과거 <불후의 명곡>에서도 신동엽이 잠시 공을 뽑아 가수의 무대 순서를 결정하는 기존 방식 대신, 2번째 가수부터 가수가 후속 무대의 가수의 이름을 지명하는 방법을 쓴 적이 잠시 있었다.
시청자로서 이 방식은 매우 어색했다. 웃고 즐기는 무대에서 가수가 다음 가수를 지목한다? 만약 신인 아이돌이 20년 넘은 프로가수 김종서를 지목한다? 뭔가 그림이 이상하고 중량감이 프로그램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았다. 결국 불후의 명곡은 다시 예전 방식으로 돌아갔다.
반면 나가수는 가수가 가수를 지목하는 방식이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긴장의 코드’가 경연이라는 성격에 합치됐기 때문이다. 이것이 <나는 가수다>와 <불후의 명곡>의 결정적인 차이다.
(사진 출처 및 권리: MBC)
양파는 이런 긴장감을 13차례의 무대에서 훌륭하게 이겨냈다. 프로 가수들끼리 펼쳐진 긴장감의 경쟁에서 과정과 이유가 어찌하든 컴퓨터가 집계한 스탯상으로 가장 높은 평가를 받았다.
정보의 홍수시대에 샘플링이 주는 데이터가 주요한 시대다. 다양한 연령의 불특정 다수 청중들이 라이브로 어떤 가수의 노래를 10번 넘게 듣고 종합적으로 가장 높은 평가를 준 가수가 양파였다. 경연을 함께한 가수의 그룹에는 박정현, 김경호, 소찬휘라는 쟁쟁한 가수들이 섞여있었다. 이 속에서 그녀는 고교시절처럼 1등의 성적표를 받았다.
20년의 시간 공백을 훌륭하게 채운 양파의 무대가 돋보였던 이유는 청중들에게 매우 익숙한 곡을 선곡한 것도 컸지만, 언급한 자신의 노래 ‘너라면 좋겠어’와 유사한 미디엄템포의 곡을 무대에서 효과적으로 표현한 이유가 두드러졌다.
다양한 변화를 보여주며 빠른 곡도 양파의 목소리에 어울린다는 것을 증명했다. 그녀는 첫무대 ‘애송이의 사랑’을 부르기 직전 두렵다고 했지만, 이후 무대에는 ‘애송이의 사랑’ 이미지를 떨쳐내고 두려움 없이 자유로웠다. 한영애의 ‘누구없소’, 이문세의 ‘붉은 노을’, 신중현의 ‘아름다운 강산’ 등이 대표적이었다. 그래서 이번 양파의 가상 메들리는 ‘너라면 좋겠어’를 중심 테마로 빠른 3개의 곡만 믹싱했다.
양파는 가왕에 오르고 나서 자신이 “이 자리에 어울리는 사람이 아닌 것 같은데...”라는 말을 했다.
겸손이었다. 그녀는 지난 3개월간 충분히 ‘가왕’이라는 타이틀에 어울리는 가수였다.
By ThinkTan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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