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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물 & 창조적 글쓰기

'염갈량' 염경엽 감독의 상식 파괴 작전

 

(사진 출처 및 권리= 넥센 히어로즈)

 

 

[야구의 상식적 접근을 거부하는 뉴씽킹’]

 

염경엽 감독(47·넥센 히어로즈)에게는 마이러니티의 이미지가 있다.

 

광주제일고 시절에는 돋보이는 유망주였지만 프로에서 그는 주목받지 못한 타자였다. 큰 기록을 남기지도 못했다. 아니, 매우 약한 타자였다. 그런데 프로야구 감독이 됐다. 스타 출신만 감독하라는 법은 없다. 그래도 감독 염경엽은 그때 뭔가 이질적으로 다가왔다.

 

역대 선수 출신 프로야구 감독 가운데 가장 인지도와 개인 성적이 떨어지는 감독이 염경엽 감독이다. 그는 '1할 타자'였다. 9시즌 896경기에 나와 5개의 홈런을 기록했다. 통산 타율은 195리였다.

 

하지만 누구나 인생을 살면서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다양한 자아를 만든다. 그는 선수 시절 투수에게 쉬어가는 타자였지만 감독으로서는 염갈량이 됐다.

 

그는 미디어를 통해 선수 시절 재능만 믿고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음을 여러 차례 인정한 바 있다. 그래서일까. 감독 염경엽은 프로야구 10개 구단 감독 가운데 김성근 감독과 더불어 가장 많이 경기에 개입한다는 인상을 준다. 감독이 경기를 끌어가야 한다는 지론을 갖기 위해서는 스스로의 노력이 있어야 가능하다. 노력은 결실을 맺었다. 넥센의 성적이 말해준다. 야구가 새롭고 재밌다는 점을 알게 해주는 것도 염경엽 감독을 통해 느낄 수 있다.

 

14일 삼성 라이온즈와의 경기에서 그는 벅 쇼월터(볼티모어 오리올스 감독)가 됐다. 쇼월터는 1998년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감독 시절 팀이 9회말 2점 앞선 2아웃 만루 수비에서 배리 본즈에게 고의 사구를 지시했다. 자살골 밀어내기로 그냥 상대에게 1점을 헌납했다. 야구의 역사에서 아직도 회자되는 희대의 작전이었다.

 

(사진 출처 및 권리= SPOTV, KBO)

 

염경엽 감독도 비슷했다. 넥센이 6-5로 앞선 7회말 21,3루 수비에서 삼성 최형우를 사실상 고의사구로 내보내 만루를 만들었다. 상식의 파괴였다. 1점 앞서 있는 상황에서 단타 하나로 2점을 실점할 수 있는 위기를 스스로 만든 것이다. 7회말이 아니라 9회말이었다고 생각해보자. 자칫하면 게임 오버다.

 

후속 타자가 김재현이라고 거른 것이 아니다. 염갈량이 류중일 감독이 대타로 채태인을 낼 것으로 예상하지 못했다면 염갈량이 아니다. 그것보다는 이날 물이 오른 최형우의 타격 감각을 먼저 피하는 것이 동점과 역전을 막는 작전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래서 최형우를 만루의 위험을 감수하면서 까지도 걸렀다. 그 순간 넥센의 야구는 감독이 하는 것이다를 극명하게 보여줬다. 결과는 쇼월터처럼 성공이었다.

 

15일 삼성전도 염갈량은 경기에 적극 개입했다. 넥센이 4-4로 동점으로 맞선 8회말 12,3루 수비에서 박석민이 등장했다. 투수는 손승락이었다. 여기서 야구의 상식은 박석민을 걸러 1사 만루에서 병살타를 노리는 것이다.

 

12,3루에서 내야 땅볼은 실점이지만 1사 만루에서 내야 땅볼은 병살타다. 대체적으로 그렇다. 하지만 뉴씽킹. 염경엽 감독은 이번에도 자신의 선택을 믿었다. 후속 타자를 볼 때 그를 상대하는 한국 프로야구 수비팀의 공통 트라우마 ‘약속의 8회 이승엽을 피해야 했다. 이승엽이 8회마다 적시타를 치라는 법은 없다. 충분히 내야 땅볼 병살타가 나올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감독 염경엽은 전자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었다.

 

만루 작전을 하지 않고 손승락에게 정면 승부를 지시했다. 2스트라이크 노볼로 볼카운트를 잘 이끌었다. 그러나 12,3루였다. 몸 쪽 공은 위험했다. 손승락은 이후 바깥쪽 유인구에 박석민이 말려드는 것을 기대할 수밖에 없었다. 박석민은 지속적인 외곽 공을 침착하게 기다렸다가 결국 기어코 바깥쪽 공을 밀어 쳐 우익수 방면으로 결승 희생플라이를 쳤다.

 

만약 만루였다면 넥센의 볼배합은 달라졌을 것이다. 12,3루에서 넥센이 가진 최상의 옵션은 삼진이었다. 손승락에게 볼카운트 0-2에서 바깥쪽 유인구는 제한된 볼배합이었다. 그러나 만루에서는 5-4-3이나 6-4-3 병살타를 유도하기 위해 과감하게 몸 쪽 낮은 공을 던졌을 것이다. 넥센은 이날 전날과 달리 패했다.

 

염경엽 감독은 만루를 만들지 않아야 될 때는 만루를 만들었고 만루를 만들어야 되는 상황에서는 만루를 만들지 않았다. 상식과는 반대로 움직였다. 한 번은 성공했고 한 번은 실패했다. 하지만 어떠랴. 여전히 넥센은 강팀이다.

 

뉴씽킹의 핵심은 역발상이다. 남들이 아니라고 할 때 그렇다고 할 수 있고, 남들이 그렇다고 할 때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다. 무작정 청개구리 식은 창의성이 아니다. 타당한 이유가 있어야 창조적이라는 수식어를 붙일 수 있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부분을 볼 수 있어야 역발상이 가능하다. 염경엽 감독에게는 역발상을 해야 하는 타당한 이유가 있었다.

 

삼국지에서 제갈량은 화살이 필요함에도 마지막 날까지 낮잠으로 일관하다 수만 개의 화살을 얻었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기후를 봤기 때문이다. 한국 프로야구에도 그런 사람이 있다. 제갈량의 별명을 따와 염갈량으로 불리는 사람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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