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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물 & 창조적 글쓰기

김태희와 이태임의 차이...그리고 앤디 워홀

 

 

 

여자들은 간혹 이런 질문을 한다.

 

어떤 여자 연예인 (또는 스타일) 좋아하세요?”

 

여자들은 이것이 도대체 왜 궁금할까! (이 질문을 받으면 대부분의 남자들은 속으로 너 같은 스타일을 좋아한다고 말하고 싶을 것이다...)

 

이 곤혹스러운 질문에 대해 몇 년 동안 뚜렷하게 생각나는 여자 연예인이 없었다.

나는 누구를 좋아할까. 그러던 어느 날 확실하게 대답할 수 있는 여자가 생겼다.

 

... 이었다. 2010KBS드라마 결혼해주세요를 통해 우연히 그녀를 처음 봤다.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가 살아 돌아온 것 같았다. 완벽한 미녀에 완벽한 이미지였다. 마스크만 봐도 그냥 남자들의 기분을 좋게 만드는 배우였다. 그래서 이젠 확실히 대답했다. 좋아하는 여자 연예인은 이태임이라고. 하지만 드라마가 방영되고 있을 때도 그랬지만 사람들은 의외로 이태임이라는 이름을 잘 몰랐다.

 

이태임? 이태임이 누구지? 그녀가 주목받지 못하는 게 안타깝기도 했지만 묘하게 나만의 연인인 것 같은 소년의 짝사랑 같은 심정에 잘 알려지지 않는 것이 역설적으로 다행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역시나 그녀의 미모는 숨길 수 없는 낭중지추였다. 조금씩 얼굴을 드러내더니 영화 <황제를 위하여>에서 확실한 노출을 통해 완전히 이름을 알렸다.

 

이후 몇 차례 예능 프로그램에서 활약하며 이제는 스타가 됐다.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나는 여전히 이태임의 팬이며, 그녀가 대한민국 대표 미녀(이런 소리 하면 성형했다고 깎아내리는 여자들 꼭 있다!)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영화 <쇼생크탈출>에도 내게 이태임과 비슷한 존재의 여자가 등장한다. 이 영화는 많은 사람들의 명화로 기억되고 있는데 나의 시선을 잡아끈 장면은 아래의 장면이다.

 

(사진: 영화 <쇼생크탈출> Edit By ThinkTanker)

 

포스터 속의 여자는 리타 헤이워드. 1940년대와 1950년대 초반까지 최고의 스타로 군림한 배우다. 쇼생크탈출에서 그녀는 자유의 이상향으로 상징되어 있다. 교도소 내 극장에서 죄수들이 영화를 보는 장면에서 그들은 헤이워드가 머리를 뒤로 젖히며 카메라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화면에 환호한다. 그녀는 내게 이태임이 그렇듯이 당시 최고의 핀업걸이었다고 한다. 

 

영화의 원작자 스티븐 킹조차 원작 제목은 리타 헤이워드와 쇼생크 탈출(Rita Hayworth and Shaw sank Redemption)’일 정도로 킹은 잠깐 등장하는 헤이워드의 이미지에 많은 의미를 부여했다. 원자폭탄 실험 폭탄에도 당시 군인들은 리타라는 이름을 붙일 정도였다.

 

리타의 전성기는 팝아트의 거장 앤디 워홀이 10대 청소년기와 20대를 보낸 시기다. (헤이워드는 워홀보다 10살 많다.) 예술적 영감이 무르익고 발산될 시간이다. 워홀은 생애 엘리자베스 테일러, 잉그리드 버그만, 마릴린 먼로 등 여배우를 대상으로 작품을 만들었다. 하지만 묘하게도 워홀은 헤이워드를 모델로 작품을 남기지 않았다.

 

혹시나 해서 자료를 찾아봤는데 어디서도 워홀의 헤이워드 작품은 없었다. (알고계신 분들은 제보를...) 워홀은 자신의 예술적 영감의 원천이었던 팩토리걸에디 세즈윅을 모델로도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세즈윅과 같이 찍은 사진은 많다. 그러나 워홀의 뮤즈세즈윅은 워홀의 모델로는 등장하지 않았다.

 

정작 워홀의 여배우 그림으로 대표작은 1964년 작 오렌지 마릴린 먼로.

 

 

워홀의 기록을 보면 그는 어린 시절부터 할리우드 스타에 매료돼 스타들의 사진을 모으고 영화 잡지를 정기 구독했다. 그는 여자 배우뿐만 아니라 엘비스 프레슬리, 말론 브랜도 등 자신이 좋아했던 남자 스타들을 작품으로 재탄생시키기도 했다. 1950년대 중반부터 하락세이긴 했지만 당시 최고의 섹시 스타는 헤이워드였다. 한번쯤 등장할 만하다. 그녀를 잠깐 고민했다는 흔적은 있다. 하지만 워홀은 헤이워드 대신 먼로를 선택한다.

 

워홀은 헤이워드가 아닌 먼로의 팬이었다. 워홀의 이 작품은 먼로의 사후 2년 뒤에 나왔다는 점 등 먼로가 헤이워드와 다르게 요절했다는 측면도 있다. 하지만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할머니로 장수했고 그녀는 워홀의 모델이 됐다. 워홀은 헤이워드보다 6년 더 살았지만 끝까지 헤이워드는 그림속의 여자가 되지 않았다. 워홀은 왜 헤이워드나 세즈윅(그녀를 예술적으로 착취했다는 비판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특히나 헤이워드는 왜?)을 모델로 하지 않았을까.

 

최근에 그 실마리를 찾았다. 블로그를 개편하며 새롭게 크리에이톨로지라는 창의성 기법 카테고리를 만들었다. 카테고리에 걸맞은 아이콘이 필요했다. 창조적 방법에 어울리는 그림을 떠올리다 워홀의 오렌지 마릴린 먼로의 실크 스크린 기법이 생각났다. 워홀이 먼로의 팬이었던 것처럼 나도 이태임을 모델로 똑같이 모방을 해봤다.

 

그런데...

 

 

 

 

이태임은 전혀 느낌이 살지 않았다. 나의 부족한 포토샵 실력 때문인 것도 어느 정도 있지만 이것으로 모두를 설명하기에는 부족했다. 이태임의 다른 사진으로도 바꾸고 색깔도 달리 해봤지만 원하는 아이콘으로서의 이미지로 그녀의 얼굴은 2% 부족했다. 이태임의 부드러운 얼굴 라인에 색깔을 강하게 입히자 마스크가 죽어버렸다.

 

그래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또 다른 미녀의 상징 김태희로 모델을 바꿔보았다.

 

!!!

 

 

 

1초의 망설임도 필요 없었다. 보자마자 확 다가오는, 바로 이 느낌이었다. 김태희를 모델로한 크리에이톨로지 아이콘은 싱크탱커가 생각한 바로 그 이미지였다. 어떤 사진, 어떤 색깔을 입혀도 그녀의 마스크는 바깥의 환경에 좌우되지 않았고 살아 움직였다. 오히려 외부의 변화와 시너지 효과를 일으켰다. 나는 주저 없이 이태임 대신 김태희를 아이콘으로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이래서 김태희, 김태희 하는 건가. 광고 모델로 왜 김태희의 마스크가 그렇게 이용되는지를 직접 체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문득 워홀을 생각했다. 그가 헤이워드 대신 먼로를 선택한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니었을까.

 

워홀은 자신이 좋아하는 배우에게서 자신이 원하는 이미지를 작품 속에 남길 수 있었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배우에게서 내가 원하는 이미지를 배너 속에 남길 수 없었다.

 

먼로에게 스타 자리를 넘겨주고 전성기가 지난 어느 날 헤이워드는 이런 말을 남겼다.

 

내가 자주 갔던 트로카데로(당시 할리우드의 나이트클럽)에서 조차 사람들이 나를 알아보지 못하고 내 사진을 원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참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 매우 슬펐다.”

 

김태희도 사실은 전성기는 아니다. 하지만 여전히 대한민국에서 미녀의 상징은 김태희다.

김태희 보다 어린 20대 유명 스타 사진으로도 테스트를 해봤는데 누구도 김태희 만의 이미지를 복제할 수는 없었다. 그녀는 마스크만으로 이미 크리에이터였다.

이것이 내가 발견한 이태임과 김태희의 차이였다.

 

이글을 이태임이나 이태임의 팬들이 보지는 않겠지만 혹시나 진심을 다시 재차 밝히자면, 김태희가 내 블로그의 모델이 됐음에도 나는 여전히 이태임의 팬이며 그녀가 대한민국 대표 미녀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그림은 그림이고 팬 심은 팬 심이다.

 

By ThinkTank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