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출처 및 권리: kt wiz)
[kt 감독 조범현이 ‘김성근의 불문율’에 다가서는 자세]
2007년 어느 날 우연한 기회에 그를 직접 본적이 있다.
서울 고등학교 야구부에서 인스트럭터로 선수들을 지도하던 조범현(55)이었다. 그는 몇 개월 전 SK 와이번스 사령탑을 김성근(73)에게 내줬다. 야인이었다. 하늘색 츄리닝 차림이었다. 현역 감독이 유니폼을 벗으면 미디어의 관심에서 멀어진다. 주변에는 단 한 명의 야구 기자도 없었다.
하지만 초라해 보이지 않았다. 가까이에서 바라본 그는 인상적이었다. 때론 직접 그 사람과 대화를 하지 않아도 한 인간이 담고 있는 기품을 느낄 때가 있다. 조범현이 그랬다. 츄리닝을 입었어도 그에게서 묘한 남자의 품격이 풍겼다.
조범현은 남은 시간 고등학교 선수들에게 성심성의껏 자세를 직접 잡아주고 따뜻하게 조언해줬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 지도하고 그는 운동장에서 멀리 사라졌다.
사람의 인생은 아무도 알 수 없다. 새옹지마(塞翁之馬)라 했다. 야인(野人)이 귀인(貴人)이 되고 귀인이 야인이 되는 것이 새옹지마다. 그는 츄리닝을 벗고 귀인이 됐다. 다시 프로야구 KIA 타이거즈 감독으로 복귀했다. 2008년 첫 해는 6위. 2009년에도 전망은 좋지 못했다. 어떤 전문가도 우승은커녕, KIA의 4강권을 예상하지 않았다.
사실 조범현의 시대는 ‘야신’의 시대였다. 김성근이 이끈 SK는 리그를 지배했다. 2007년, 2008년 2년 연속 우승을 했다. 조범현이 만든 SK의 토대라는 말은 잊혀졌다. 2000년대 후반 프로야구는 누가 뭐래도 야신과 SK의 시대였다. 팀 전력상 조범현이 김성근을 넘어서는 것은 불가능해보였다.
2009년 4월 21일 중요한 트레이드가 있었다. KIA는 LG를 통해 김상현을 얻었다. 정성훈에 가려 자리를 잡지 못했던 타자 김상현은 7년 만에 친정으로 복귀해 완전히 다른 타자가 됐다. 조범현은 그를 전폭적으로 신뢰했고 김상현은 36홈런, 126타점으로 ‘KIA의 해결사’가 됐다.
로페즈, 윤석민, 양현종, 유동훈 등의 마운드도 힘을 내며 5월 14일 처음으로 4위로 올라선 KIA는 7월말까지 3위권을 지키다 마침내 8월 2일 SK를 제치고 단독 1위에 올랐다. 무려 6년 11개월 만의 단독 1위였다.
그때부터 조범현은 김성근과 치열한 싸움을 벌였다. 2009년 KIA와 SK의 19차례의 승부 가운데 14차례가 3점차 이내의 접전이었다. 야신은 야신이었다. 7,8월 김광현과 박경완의 부상 등으로 추락하던 SK는 8월말 이후 시즌 최종전까지 무려 19승 1무라는 믿기 힘든 레이스로 마지막까지 KIA의 정규시즌 우승을 괴롭혔다. 결국 KIA는 시즌 최종전에서 한국시리즈 직행을 확정지었다.
KIA가 한국시리즈에서 만난 상대도 SK였다. SK는 플레이오프에서 두산에 2연패로 몰렸지만 3연승 역스윕으로 한국시리즈에 올랐다. 첫 두 경기도 KIA에 2연패를 당했지만 결국 7차전까지 갔다. 최종 우승은 나지완의 극적인 끝내기 홈런이 터진 KIA의 차지였다.
만약 2009년에도 SK가 정규시즌에서 KIA를 제치고 우승했다면 이듬해 우승했던 김성근은 삼성 이전에 통합 4연패를 차지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 공고하던 ‘야신의 시대’는 조범현에 의해 유일하게 스크래치를 당했다. 이후 김성근은 언론을 통해 “2009년 우승하지 못한 것이 너무나 아쉽다”고 밝혔다.
조범현은 그런 남자였다. 야신의 시대에 브레이크를 걸고 유일하게 정규시즌과 단기전에서 야신을 잡은 남자였다.
(사진 출처 및 권리: SBS & KBS)
김성근과 조범현의 각별한 인연은 잘 알려져 있다. 충암고와 OB베어스 시절 스승과 제자였다. 김성근이 삼성 감독이었을 때 조범현은 주전 포수였고 1996년 김성근이 쌍방울 지휘봉을 잡으며 재회했다. 조범현은 김성근과 만남과 헤어짐을 계속하며 선수로는 7년, 코치로는 3년 6개월을 함께 했다.
그래서 현역 감독 가운데 야신의 성공과 실패를 가장 근접거리에서 오랜 시간 지켜본 사람이 조범현이라는 사실은 그가 김성근의 스타일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의미와도 연계된다.
김성근은 1승과 1점의 가치를 매우 소중히 여기는 감독이다. 이 특징적인 장면 2가지를 조범현은 직접 목격했다. 2002년 한국시리즈 6차전에서 조범현은 삼성 코치였다. 김성근이 이끈 LG는 8회초까지 삼성에 9-5로 앞섰다. 모두가 경기는 LG에게 넘어갔다고 생각했다.
야신은 달랐다. 김성근은 점수를 더 내야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8회초 1사 1,2루에서도 희생번트를 지시했다. 하지만 추가 점수는 없었고 우승은 삼성이었다. 야신은 마해영의 끝내기 홈런이 터질 때 더그아웃에서 눈물을 흘렸다고 고백했다.
2009년 한국시리즈 7차전 감독 대 감독으로 야신을 만난 조범현은 7년전 상황과 매우 흡사한 장면을 경험했다. 6회초까지 SK는 5-1로 KIA를 리드했다. 경기는 중반이었지만 분위기는 SK의 우승이었다.
김성근은 마찬가지로 추가득점을 원했다. SK는 7회초와 8회초 모두 주자가 출루했다. 하지만 추가득점은 없었고 최종적으로 역사는 야신에게 또 한번 한국시리즈 끝내기 홈런 패배의 쓰라림을 안겼다. 두 경기 모두 추가득점이 없어서 벌어진 일이었다.
(야신을 꺾고 우승을 경험한 조범현, 사진 출처 및 권리: 한국야구위원회)
1승과 1점에 의미를 크게 부여하는 감독을 상대하는 방법은 같은 방식으로 대응하는 것이다. 상대 감독이 1승과 1점을 생각할 때 그 1승과 1점을 거두지 못하게 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여기에는 야구의 불문율이 끼어들 여지가 극도로 제한된다. 조범현은 스승 야신과 그렇게 싸워왔다.
1승이 두 사람에게 상징적으로 조명됐던 때가 있었다. KIA가 우승했던 2009년 시즌 6월 25일 광주 KIA-SK전이었다. 당시 경기에서 김성근은 5대5 동점이던 연장 12회말 느닷없이 3루수 최정을 마운드에 올렸다. 12회초에는 투수 김광현이 대타로 타석에 섰고 12회말에는 우익수 박정권이 극단적인 전진 수비를 했다. 결국 승리는 KIA의 6-5 승리였다.
2009시즌 ‘무승부=패’ 계산법에 항의하는 야신의 ‘져주기 경기’라는 의혹이 꼬리를 물었다. 야신은 그 정도로 1승, 승리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 감독이었다. 무승부는 승리의 의미가 없기 때문에 이런 이상한 시프트를 쓰는 경기가 야신의 입장에서는 나올 수 있었다. 김성근은 당시 져주기 경기는 아니었다고 부인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 한 경기 패배 때문에 KIA에 1승을 내준 SK가 한 경기 차로 정규시즌 1위를 놓쳤다는 지적도 뒤따랐다.
2009년 한국시리즈에서 조범현은 이런 김성근을 괴롭혔다. 1차전이 끝나고 사인 훔치기 의혹을 제기했다. 3차전에서는 정근우와 서재응의 감정싸움으로 인한 벤치 클리어링도 나왔다. 5차전을 앞두고 조범현은 “4차전에서 SK 전력분석원이 또다시 수신호를 했다고 전해 들었다”며 김성근을 압박했다.
그 시리즈에서 조범현은 결국 야신을 이겼다. 하지만 심리전과 감정싸움을 떠나 조범현이 2009년 한국시리즈에서 김성근을 넘어설 수 있었던 것은 ‘1점을 중시하는 야신’에 맞설 수 있는 전력을 갖췄기 때문이었다.
다시 6년의 시간이 흘렀고 김성근과 조범현은 각각 한화 이글스와 kt 위즈의 감독이 됐다.
두 사람의 팀이 최근 야구의 불문율로 화제의 중심이 됐다. 지난 23일 수원 kt위즈파크에서 열린 한화와 kt의 경기에서 한화가 6-1로 리드하고 있는 9회초 도루를 하고 9회말 KT의 마지막 공격 때 아웃카운트 1개당 한 명씩 투수를 두 차례 바꿨다는 점 때문이었다. 이 과정에서 KT 주장 신명철이 흥분한 얼굴로 한화 선수들에게 몇 마디를 던졌다.
kt입장에서는 기분이 좋지 않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정작 감독 조범현은 언론을 통해 “섭섭할 게 있나. 우리가 힘이 없어서 지고 있어서 그런 건데…”라는 말을 남겼다.
그리고 “5점차가 났는데 이기는 팀은 확인 점수가 필요했을 것이다. 김성근 감독 같으면 5점차라고 안심할 수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 경기를 운영하다보면 재활을 마치고 올라온 투수가 마운드에서 어떤 모습으로 던지는지 확인하고 싶을 때가 있다.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사진 출처 및 권리: kt wiz)
순간 눈을 의심했다. 이 발언의 주어가 누구인지 몇 차례 확인했다. 조범현 감독 맞았다. 발언의 내용만으로 보면 한화 코칭스태프의 발언이나 김성근의 대변인 같았다. 그러나 분명히 상대팀 감독 조범현의 입에서 나온 멘트였다.
그때 8년 전 서울 고등학교에서 그에게 보았던 남자의 품격이 느껴졌다. 조범현에게서 너저분하고 구차한 발언은 일체 찾아볼 수 없었다. 야신의 눈물과 영광의 시간을 함께한 남자, 야신을 이겨봤던 남자, 스승의 야구를 존중하는 남자의 쿨함과 멋짐만이 있었다.
야구의 불문율은 몇 점 차 이기고 지고 뒤집고 도루하고 빈볼 날아오는 투수 교체가 전부가 아니다.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아도 또는 우회적인 진심의 표현으로 누군가의 가슴에 파장을 일으킬 수 있다면 그것이 멋진 스포츠 야구가 만들어내는 쓰이지 않은 불문율이다.
kt가 9회초 한화 강경학에게 도루를 허용했을 때 kt 수비진은 도루를 막기 위한 어떠한 수비도 하지 않았다. 조범현이 지시한 것이 아니다. 감독이 경기를 포기했다고 명시적으로 말하지도 않았는데 선수들이 알아서 베이스 커버도 하지 않고 경기가 넘어갔다고 포기한 것이다. 선수들이 스스로 9회말 5점 차는 뒤집을 수 없다고 지례 짐작한 것이다.
우승전력이 무엇인지 알고, 우승 전력을 만들어봤던 경험이 있는 kt 감독은 이 모습을 보고 “우리 팀이 힘이 없어서 그런 건데...”라는 말로 대신했다. 결코 수비 하지 않은 선수를 나무라지 않았다. 조범현의 이 멘트를 품격과 그라운드의 풍류를 즐기는 유유자적한 부드러운 발언으로 생각했다면 잘못 해석한 것이다. 감독의 멘트는 선수들이 경기가 끝나고 호텔에서 안본다고 하면서도 인터넷으로 결국 다 본다.
정상적인 승부근성이 있고 승률이 비록 2할도 안 되는 팀이지만 프로라는 자존심이 있는 야구 선수라면, 감독이 우리 팀이 힘이 없어서 이런 일을 겪었다고 말하는 것을 듣고 향후에도 9회 5점 차를 포기하는 선수는 프로가 아니다.
kt 선수들은 다음날 24일 경기에서 달라졌다. TV에 비친 선수들의 눈빛은 살아 움직였다. 이기겠다는 의지가 플레이에서 보였다. 한화 마운드를 맹폭했고 kt는 창단 이후 최다 점수를 뽑으며 13-4로 대승했다. 감독이 불문율을 다루는 자세는 이런 식으로 선수단을 변화시키기도 한다.
솔직하고 쿨한 조범현식 불문율은 상대 감독 야신도 움직였다. 스승 김성근은 제자 조범현을 직접 찾아와 사과했다. 굳이 인간적으로 물고 뜯고 싸울 이유가 없는 남자들이다. 불문율 소동은 그렇게 훈훈하게 마무리됐다.
조범현의 kt는 올 시즌 프로야구 신생팀이다. 최약체로 평가받고 성적도 좋지 않다. 그러나 kt가 초대 감독에 조범현이라는 남자를 맞은 것은 행운이다. 야구의 예상과 장담은 대부분 허언으로 끝날 확률이 높지만 싱크탱커가 허언을 무릎 쓰고 장담을 한 가지 한다면, 그는 시간이 주어주면 반드시 승부를 포기하지 않는 kt로 만들어 나갈 것이다. ‘야구의 품격’과 ‘승부의 근성’을 아는 남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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