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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물 & 창조적 글쓰기

의미 있었던 한화 이글스의 탈삼진쇼

 

(사진 출처 및 권리: 윤규진 월페이퍼, 한화 이글스)

 

[권혁·윤규진의 위력...경기 후반을 삼진으로 지배한 달라진 한화]

 

야구에서 삼진은 야구의 개념을 이루는 단어지만, 역설적으로 삼진은 야구의 개념을 극단적으로 부정한다.

 

야구(野球)가 뭔가. 들판에서 공을 가지고 하는 게임이다. 야구는 일본식 표현을 한자로 받아들인 한국적 표현이다. 들판의 공놀이가 야구만 그렇지는 않다. 축구도 들판에서의 공놀이다. 뜻만으로 보면 사실 들야()를 쓰면 야구와 축구는 구별이 안간다. 언뜻 들판에서 공놀이라고 하면 야구보다 직감적으로 축구가 먼저 떠오른다.

 

그래서 우리처럼 프로야구가 있는 대만은 들야()를 쓰지 않고 막대 봉()자를 써서 야구를 봉구(棒球)라고 한다. 그런데 삼진은 이런 들판이나 막대기를 모두 부정한다. 막대기에 공을 스치지도 못하게 해서 들판에 뛰어나가는 것 자체를 부정한다.

 

영어의 베이스볼도 마찬가지다. 집나갔던 아들이 가출을 하더라도 홈으로 들어와야 야구는 해피엔딩이다. 그래야 득점이 이루어지고 팀은 승리한다. 삼진은 아들의 가출 가능성을 말살시킨다. 한없이 착한 소년으로 만들어버린다. 야구에서 착한 소년은 매력 없다. 메이저리그 감독 레오 듀로서의 말처럼 사람 좋으면 꼴찌 된다.

 

그래서 야구에서 삼진이 나오는 순간은 수많은 야구의 장면 가운데 공격팀과 수비팀의 희비를 짧은 순간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다.

 

 

 

막대기라는 배트에 공이 맞아서 들판이라는 그라운드에 공이 굴러가거나 공중에 떠야 안타가 나온다. 실책이라도 나온다. 그래야 출루가 되고 점수가 나온다. 야구에서 타자가 배트에 공을 스치지 않고 1루에 나갈 수 있는 방법은 인내심을 발휘해 볼을 4개 고르거나, 공에 맞은 아픔을 감내하는 방법 말고는 없다. (인내심 필요 없는 고의4구, 포수의 타격방해, 투수의 촉진룰 위반, 스트라이크 아웃 낫아웃 등도 있긴 하지만 제한적이다.)

 

무사 만루에서 3연속 탈삼진을 당한 공격팀의 감독 표정을 보라. 이때 이 감독은 세상에서 가장 가슴이 까만 남자가 된다. 하물며 가상의 야구도 그렇다. PS4 야구 게임 MLB 더쇼 (The Show)에서 1점 뒤진 9회말 12.3루 역전 기회에서 후속 타자가 삼진 당했을 때 싱크탱커는 패드를 던져버리고 싶었다! 야구에서는 배트에 공만 맞아도 득점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삼진은 그래서 공격팀은 최악, 수비팀은 최상의 그림을 받아든다. 역으로 삼진을 잡지 못하는 수비팀도 최악이다. 야구에서 수비의 꽃은 야수의 호수비가 아니다. 투수의 탈삼진이다. 호수비를 자주 연출하는 삼성의 유격수 김상수(25)가 가슴이 쓸리며 다이빙캐치를 하는 것은 멋지다.

 

그러나 김상수의 가슴을 처음부터 땅바닥에 쓸리지 않게 하는 투수의 삼진은 더 멋지고 가치가 높은 플레이다. 팀원 김상수의 불필요한 부상을 막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외야의 큰 타구를 잡다가 펜스에 부딪혀 부상을 당하는 외야수도 타자가 삼진이었다면 부상은 없었을 것이다.

 

이런 삼진이 가장 취약한 팀이 한화 이글스였다. 지난해 한화는 9개 구단 가운데 9이닝 당 탈삼진이 6개가 안 되는 유일무이한 팀(5.96)이었다. 반면 우승팀 삼성 라이온즈는 8개에 육박(7.84)했다. 이 두 개의 차이가 우승팀과 꼴찌팀의 차이라고 확언할 수는 없다. 9이닝 당 탈삼진 데이터가 우승과 꼴찌에 명확한 상관관계가 있다고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실례로 2012년 한화(7.19개)는 삼성(6.71개)보다 9이닝 당 탈삼진이 많았음에도(심지어 리그1) 삼성은 우승을, 한화는 꼴찌를 했다. (참고로 2012년 한화에는 류현진(28·LA다저스)이 있었고 그는 혼자 210 삼진을 기록해 탈삼진왕에 올랐다.)

 

 

(사진 출처 및 권리: 권혁(왼쪽)과 윤규진, 한화 이글스)

 

9이닝 당 탈삼진 데이터에는 이처럼 어떠한 장면, 어떤 이닝, 어떤 유형의 투수라는 세부 카테고리가 구분 없이 섞여 있어 이런 결과가 나온다. 그러나 경기 중후반 이후 위기상황을 벗어날 수 있게 하는 투수의 삼진은 분명히 위력적이라는 사실을 부정하는 야구인은 없다.

 

마무리 투수의 탈삼진이 대표적이다. 만약 삼성시절의 오승환(33·한신 타이거즈)이 맞혀잡는 스타일의 기교파 투수였다면 오.승.환.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아웃카운트를 완벽하게 지워버리는 삼진이 있었기에 그는 타자 위에 군림하는(Dominate) 마무리 투수가 됐다.

 

만약 지난해 한화가 2012년 처럼 선발 투수 류현진에 집중된 삼진이 아닌, 미들맨과 마무리 투수 쪽에서 삼성에 부족했던 2개의 탈삼진을 찾을 수 있었다면, 한화가 9개 구단 가운데 홀드(30)와 세이브(26개)를 합친 데이터가 56개로 꼴찌가 될 수 있었을까.

 

한화는 2일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파크에서 열린 두산 베어스와의 경기에서 올해는 다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매우 인상적이었다. 한화의 미들맨 권혁(32)과 클로저 윤규진(31)은 경기 중후반 두산의 타자 13명 가운데 무려 8명을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두산은 이날 27개 아웃카운트 가운데 1/3이 넘는 10개의 아웃카운트가 절대로 가출할 수 없는 착한 소년이었다. 6회초 권혁은 두산의 클린업 트리오를 모두 삼진으로 잡았다. 9회초 윤규진 역시 아웃카운트 3개가 모두 삼진이었다.

 

(사진출처 및 권리: 2구째 오재원의 표정,SBS Sports)

(3구째 윤규진의 포크볼 삼진, SBS sports) 

 

특히 윤규진이 9회초 오재원(30)을 삼진으로 잡은 장면은 압권이었다. 윤규진의 포크볼에 헛스윙하고 2스트라이크 이후 화면에 잡힌 오재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뭔가를 알았다는 듯 한 행동을 보여줬다.(위 사진 왼쪽) 하지만 윤규진은 3구째 또 포크볼을 던졌고 오재원은 타이밍을 전혀 맞추지 못하고 이도 저도 아닌 어정쩡한 스윙을 하며 삼진을 당했다.(사진 오른쪽) 빠른 공이 뒷받침된 윤규진의 포크볼은 이날 마구였다. 알아도 칠 수가 없는 공이었다.

 

권혁과 윤규진 모두 타자들을 압도하는 공과 구위였다. 타자의 배트에 공이 컨택이 되어도 밀리는 장면이 여러 번 나왔다. 그리고 삼진으로 이어졌다. 강팀에서 볼 수 있는 모습이었다. 늘 힘없이 경기 후반 역전 당했던 한화의 모습과 어울리지 않았다. 꼴찌 한화도 투수가 타자를 힘으로 누르며 경기 후반 승리를 확실히 지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어디서 많이 보던 장면이다. 우승 감독 김성근의 SK, 4연패를 했던 삼성의 후반 이닝과 순간적으로 오버랩 됐다.

 

아직은 시즌 초반이다. 올 시즌 한화의 최종 순위가 어느 자리일지 속단할 수는 없다. 그러나 충분히 강렬한 인상을 주며 묘한 의미를 남겼다.

 

전국적으로 비가 오는 가운데 유일하게 열린 경기라 그런지 삼진을 앞세워 경기 후반을 지배하는 한화의 2승 경기는 그래서 더욱 집중력 있게 돋보였다.

 

By ThinkTanker